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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ㅣ 범우문고 13
김승옥 지음 / 범우사 / 1986년 4월
평점 :
지리산에 자주 간다. 앞으로도 자주 갈 것 같다. 특별한 이유랄 것은 없다. 그냥 그 산이 좋고, 그 산에 안기면 푸근하기 때문이다. 지리산으로 떠나기 전,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전해오는 설레임을 사랑한다. 그 산 어느 봉우리에 가만히 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그 바람소리를 들을 때 난 행복하다. 저 멀리 보이는 숲의 더없이 신선하도록 푸르른 빛과, 검푸른 도화지에 소금을 뿌려놓은 듯 아찔하게 반짝이는 밤하늘의 별빛을 사랑한다. 굳이 이유를 대자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지리산에 오른다. 그러나 이런 것은 내 육체의 오감으로 직접 느껴지는 것으로, 내 의식과 마음의 어떤 부분이 그 산을 찾게 하는지를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다.
어찌되었든 나는, 언제나 지리산으로 떠나는 꿈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다. 비단, 지리산만이 아니다. 현재로선 박경리 『토지』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하동군 평사리를 걷고 싶고, 벚꽃이 피면 그토록 아름답다는 쌍계사에도 가고 싶다. 그리고 남도 들녘과 마을을 구비구비 적시며 흐르는 섬진강 처음과 끝을 걷고 싶고, 소나기 쏟아지는 여름날 자전거를 타며 경주를 돌고 싶다. 그렇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감은사지 탑 앞에 서면 참 좋겠다.음... 그리고 작년 봄에 걸었던 진도, 야트막한 언덕이 자주 나타나고 그 언덕길이 참 이쁜 진도에도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 또... 어디에 가고 싶더라....
이렇게 가보고 싶은 곳을 떠올려 보기만 해도 마음이 설레이고 당장이라도 배낭을 꾸려 휑하고 떠나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현실에 속해있고, 그 현실에 발붙이고 살고 있는 이상 마음이 끌리는 대로 떠날 수는 없는 법.
사람에게 현실은 무엇일까. 왜 우리는 항상은 아니지만, 자주 현실 너머의 삶을 꿈꾸고, 그리며, 떠나는 것일까. 『무진기행』에서 남자주인공은 안개가 짙은 무진으로 떠나, 그곳에서 얼마간 생활한다. 그는 그토록 짙은 안개에 자신의 모습을 가리고 싶었던 것이고, 희미하고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안개와 자신이 일치하는 것에 안도했으리라.
그렇다면...
나는 왜 지리산으로 가는 것일까.
왜 나는 평사리, 섬진강, 진도에 가고 싶은 것일까.
너무도 궁금하지만 난 아직 명확히 모르겠다.
여전히 내 현실은 답답하다는 것, 그래서 오늘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것.
이것만은 명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