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일연 지음, 리상호 옮김, 강운구 사진, 조운찬 교열 / 까치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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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중순에 동료들과 함께 경주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다. 중학교 시절 수학여행과 대학 시절 학술 답사를 통해 경주에 두 번 가봤지만, 전자는 복잡했던 기억만 남아있고 후자는 술에 찌들어 보낸 답사였기에 아무런 기억이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기 전,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 가야하는지 많은 고민을 했다.

고대사를 공부하고 있는 친구에게 자문을 구했다. 친구는 어렵지 않고 편하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역사적 유래를 정확히 살펴볼 수 있는 책으로 『삼국유사』를 읽어보고 떠날 것을 조언했다. 경주로 떠나기 얼마 전 『삼국유사』를 구입했는데,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한 내가 처음으로 사서(史書)를 구입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일연의 『삼국유사』는 불교 중심의 역사가 대부분이고, 그 중 신라의 그것이 절대적으로 많다. 신앙과 설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기에 딱딱한 느낌이 들지 않는 사서이다. 게다가 이 책에는 삽화로 많은 사진이 첨부되어 있어 이해가 쉽고 재미있다.

천년 동안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가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한다면, 이 책은 친절한 박물관 안내서라 하겠다. 책의 안내에 따라 발길을 움직이다보면 신라의 깊이와 역사의 숨결은 이내 현실처럼 다가온다. 딱딱하고 멀게만 느껴지던 오래된 사서(史書) 『삼국유사』가 훌륭한 여행 길잡이가 되는 순간. 경주, 그리고 역사는 어색하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땅의 많은 곳이 장구한 역사를 담고 있다는 식상한 말이 '구라'가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은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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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yi 2010-05-12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호랑이를 봤다 작가정신 소설향 8
성석제 지음 / 작가정신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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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바닥에 누워 책을 읽는 건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자세 중의 하나다. 방바닥에 배를 깔고 보다가 목이 아프면 돌아서 등을 바닥에 대고 눕는다. 두 팔로 책을 얼굴 위로 들고 읽다보면 이번엔 팔이 아프다. 그러면 다시 자세를 바꿔 옆으로 눕는다. 이제야 편안한 자세를 찾았군 할 때쯤이면 안타깝게도 졸음이 장맛비에 불어난 강물처럼 밀려든다. 그러면 잔다.

가장 행복한 자세가 줄곧 잠으로 연결되면 깨어난 후, '난 왜 이럴까'라는 자기 비하가 쏟아지곤 한다. 그나마 자기 위안으로 삼으려 내뱉는 말은, '책이 재미 없어서 그래'.

지난 일요일의 초가을 날씨는 그야말로 환장하게 좋았다. 마음이야 당장 사랑하는 여인네 손목을 잡고 산으로 들로 아니면 놀이공원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내겐 애인이 없다. 창 밖으로 눈부신 푸른 하늘을 내다보며 내가 택한 일은 대견스럽게도 독서.

열린 창문 사이로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성석제의 <호랑이를 봤다>를 손에 들고 방바닥에 누워 자세를 잡은 건, 커다란 실수 중의 실수. 성석제는 나른한 오후, 혹은 혼자 남은 밤에 외롭게 던져진 존재가 읽어도 웃음이 절로 나오게 하는 이야기꾼이 아니던가. 겉으론 책을 들었어도 낮잠을 잘 요량이었던 내가 성석제의 책을 들었으니 당연히 큰 실수가 아니었겠는가.

성석제는 누운 자세의 나를 일으켜세웠다. 그리고 진지한 이야기를 풀어가다가 순간순간 고꾸라질 정도로 우스운 이야기를 보태어 진지함의 무게에 질식하지 않게 하면서도 중요한 의미를 스스로 깨닫게 하는 그의 필력에 나는 웃고 울었다.

지릴멸렬하고 비루한 삶을 파헤치는 이야기 <호랑이를 봤다>. 책을 읽으면 그 삶이 어디 그게 다른 못난 놈의 삶이던가. 내 삶에 내재되어 있는 지리멸렬함을 진지하게만 그려내는 글을 읽었다면 나는 무척 화가 났을테고, 심하면 책을 던져버렸을 거다. 약올리는 듯 하면서도 어루만져 주고, 장난하는 듯 하지만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성석제의 글이었기에 책을 덮으며 나는 이렇게 다짐했다.

'오호, 인생은 계속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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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licahandbag 2010-07-23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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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헬렌 니어링 지음, 이석태 옮김 / 보리 / 199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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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간직하고 있는 여러 가지 꿈 중엔 이런 것이 있다. 앞에는 맑은 섬진강이 보이고 저 멀리 희미하게는 지리산이 보이는 곳에 툇마루와 사랑채가 있는 아담한 한옥을 한 채 짓는다. 그곳에서 토끼 같은 마누라와 다람쥐 같은 자식들 그리고 사랑하는 우리엄마와 함께 사는 것이다. 집의 담은 내 허리춤까지 오는 높이로 해서 돌담으로 만들고, 집 안쪽에는 사계절 언제나 피어나는 꽃과 나무 몇 그루를 심는다. 집 뒤쪽으로는 우리엄마와 내 자식들이 가꿀 수 있는 텃밭이 있는 것이 좋겠다. 내 마누라와 나는 실개천 아니면 섬진강에서 빨래를 함께하고 농사도 함께 짓는다.

석양이 붉게 타오르는 해질녘에는 섬진강을 걸으며 산책을 하고 심심하면 지리산에도 가고... 또, 내 자식들의 운동회 때면 마을 주민들과 함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한바탕 뜀박질도 하고 걸죽한 막걸리 마시며 흥겨운 뽕짝가락에 관광버스 춤도 한 판 땡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내 자식을 내 어깨 위에 무등태우고 길가에 화사하게 피어있는 코스모스를 한 움큼 꺾어서 눈이 맑은 마누라에게 수줍게 준다. 무엇을 크게 얻겠다는 욕심도 어떤 것을 성취해야겠다는 도전적 경쟁심 없이 자연과 더불어 내 가족과 조용하면서도 행복하게 살고싶다. 이런 것이 내 여러 가지 꿈 중의 하나이다.

누구나 한 번 쯤은 이런 꿈을 꾸어 봤을 것이다. 그것은 자연과 더불어 소박하게 살고자하는 본능적 욕구가 인간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과 차단당하고 끝없는 욕망에 사로잡힌 세상에 살면서 우리의 본능은 변질되었다. 대신 자연은 더불어 살아야 하는 대상이 아닌 정복의 대상으로 바뀌었으며, 소박하게 살려는 욕구는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으로 바뀌었다. 어쩌면 이렇게 우리는 야만의 시대에 살고있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는 헬렌 니어링이 죽은 자신의 남편인 스콧 니어링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삶, 그리고 남편과 함께 한 50년을 돌아본 이야기다. 이들 니어링 부부의 삶은 너무도 자연스러우면서도 특이한 것이었다. 스콧 니어링과 다르게 헬렌 니어링은 부유한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나 오랜 기간동안 풍요롭게 살았다. 그런 그녀의 삶은 스콧을 만나면서 변하게 된다. 차분하면서도 예리하고 너그러우면서 강하며, 성실하면서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진 스콧은 헬렌에게 또 다른 세상이 있음을 그리고 그러한 삶은 충분히 살만한 가치가 있음을 알게해준다.

대학교수였던 스콧은 모든 것을 버리고 헬렌과 함께 산골로 들어가서 손수 집을 짓고 농장을 일구며 살아간다. 제국주의적 분위기가 미국을 지배하고 있던 당시에 살았던 스콧의 현실비판과 미국비판은 대학에서 그를 좇아내게 만들었다. 그러나 스콧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아니하며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을 사랑했던 스콧은 산골 생활은 그야말로 삶과 사상이 일치된 모습이었다.

헬렌과 스콧은 언제나 일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아니하며 서로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었다. 그런 그들의 삶은 삶의 과정이 무엇을 얻고 쟁취해가는 과정이 아닌 사랑을 키워하고 자신의 마음을 키워가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공생이 아닌 파괴와 극복의 대상으로 변하면서 자연만 파괴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도 함께 파괴되었다. 자연의 파괴는 우리 자신의 파괴라는 인식이 우리에게 다가온 것은 먼 과거의 일이 아니다.

근래에 들어와서 인간은 비로서 환경의 중요성을 알게된 것이다. 그와 함께 환경보존과 복구에 대한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으나 그 미래가 밝은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크게 요구되는 것은 니어링 부부의 삶처럼 끊임없이 자연에서 배우고,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과 모습일 것이다. 주변을 변화시키고 그것을 위해 투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것 또한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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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노신 지음, 이욱연 옮김 / 창 / 199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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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내게 처음으로 '글'을 읽게 했던 책은 <빙점>이었고, 처음 눈물샘을 자극했던 것은 <잃어버린 너>라는 파란만장한 연애이야기였다. 비록 미천한 삶일지라도 내게 진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해 주었던 것은 소설 <태백산맥>이었고, 인간의 삶은 그 어떤 무엇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알게 해 준 것은 소설 <토지>였다. 첫 사랑이 잊혀지지 않듯이 '첫 번째'의 감동을 안겨준 책들도 잊혀지지 아니한다.

오늘 나는 노신을 처음 만났다. 그를 첫 대면했던 나는 단호하고 명쾌한 그의 사상에 적지않게 당황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 당황함 못지 않게 기절초풍할 것이 있었으니 바로 애매모호하기 이를데 없는 나의 입장 때문이었다. 과학적이지 못한 사상으로 애매모호한 삶으로 알 수 없는 미래의 이상향을 찾는 나에게 노신은 이 말을 했다.... '미친놈!! 니 입장이 뭐냐? 니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허한 것을 찾지 말고 현실에서 철저하게 현실에서 고뇌해라....' 처음 만난 노신이 나에게 커다란 선물을 주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현실'이었다. 입장 분명히 하라!!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는 노신의 사상과 노선을 작게 나마 알아볼 수 있는 산문집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노신 자신이 단행본으로 출간한 것은 아니다. 다양한 시간의 간격을 두고 노신이 쓴 글들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취합하여 모아 단행본으로 만든 것이다.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노신은 문학가에만 머물지 않고 사상가, 혁명가 등으로도 많은 활동을 하였다.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는 다양한 분야에서 치열한 삶을 살았던 노신 사상의 정수가 담겨있는데 이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철저하게 그것과 합일하려는, 현실을 떠나지 아니하고 그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신 삶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노신은 1881년부터 1936년 까지 삶을 살았는데 이 시기는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그러했듯이 중국 또한도 거대한 격랑의 시기이자 질곡의 시기였다. 내적으로는 봉건적 질서가 강하게 남았으며 외적으로는 서구의 침략이 본격화 되었으며 국민당과 공산당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시기로써 그야말로 인간이 자신의 주체적 입장을 세우기 어려운 시기였다. 이러한 질곡의 시대 한 본판에서 문학가로써 그리고 지식인으로써 평생을 보낸 노신에게 가장 첨예하게 다가왔던 것은 '절망'이자 그것을 넘고자 하는 '희망'의 구성이었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어지러울 때 인간이 괴로워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어떻게 확립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어지러운 세상은 인간에게 올바른 입장을 갖지 못하게 한다. 대신 가변적이고 환상적 변신을 일삼는 그야말로 기회주의적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그 속에서 인간의 의지와 마음은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는 갈대와도 같은 것이 되어버린다.

노신이 살았던 시대에도 수구와 반동 그리고 좌익이 대립하면서 중국인민에게 어떠한 것이든 하나를 선택하게 강요했다. 그런 상황에서 노신은 분명하고도 명확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는데 바로 중국의 '희망'에 근거한 진보가 그것이다. 그러면서 노신이 가장 중심적으로 비판했던 것은 일명 '성인군자'의 모습이었다. 성인군자는 세상이 어려울 때마다 지식인 계층이 현실을 도피하고 자신의 안일만을 살피는 사람들이라 노신은 규정한다. 즉 당시의 중국에서 원했던 것은 지식인들의 현실참여와 개혁이었다. 하기에 노신은 성인군자 행색을 하는 지식인들을 향해 '입장 분명히 하라!!'라고 외치고 있다. 또한 새것을 받아들이고 현실을 개혁하는 것에 두려워하는 중국인들의 특성을 맹렬히 비판하며 젊은 세대들에게 분발을 촉구하고 있다. 중국에서 희망은 오직 젊은이들 뿐이라고 그는 바라보았다.

노신의 짧은 산문은 상당히 전투적인 특성이 있으며 간결하고 명확하다. 세상이 어지러운 만큼 그는 반대로 아주 명확한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글이 아직도 우리에게 유효한 것은 현실 속에서 대안과 희망을 찾으려했던 그의 노력과 사상 때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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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길 인생의 길 - 학문의 외길을 걸어온 실천적지식인 12명의 삶과 학문
역사문제연구소 엮음 / 역사비평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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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난 90년대 초반부터 계간지 『역사비평』에서 연재했던 것을 단행본으로 만든 것이다. 애초에 우리나라 학계에서 일정한 성과를 이루어내면서 선구자적 역할을 했던 지식인들의 삶과 철학 그리고 사상을 짚어보고자 하는 의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바라봐야 할 것은 바로 '지식인'의 존재근거와 규정이다. 단지 학문적 깊이가 심오하고 많은 공부를 한 사람도 분명 지식인의 범주에 속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지식인은 사전적 의미의 지식인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모든 존재가 그러하듯 지식인의 존재규정 또한도 사회적으로 평가되고 역사적 맥락 속에서 판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사람들이 단지 자신이 걸어왔던 학문의 길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그 성과가 출중한 것에 그쳤다면 이들은 이렇게 책에서 등장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사회적으로 존경 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물론 이들은 평생을 통해서 그 누가 쉽게 접근할 수 없을 만큼의 학문적 깊이와 성과를 만들어냈다. 우리 사회에 탁월한 '학자' 또한도 이들만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이렇게 <학문의 길 인생의 길>에 등장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바로 현실을 올바로 바라보면서 현실을 왜면하지 아니하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책임을 다했기 때문이다. 이는 압축적으로 표현하면 사회적 관계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이 살아왔던 우리의 사회는 어떠했을까.

근대적 질서를 확립하기도 전에 일제의 점령을 받았던 우리에게 근대화의 길은 요원한 것이었다. 하기에 정치와 경제는 물론이고 학문체계와 성과 또한도 상당히 보잘 것 없는 것에 불과했다. 해방을 맞이하면서 근대적 학교를 세워도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영역은 고사하고 읽을 수 있는 책들도 부재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학문의 길을 걸었고 우리나라에 그 성과를 환원했다. 즉 이들은 선구사적 역할을 했던 것으로 우리나라 학계의 1세대 혹은 2세대의 위치는 차지했다.

불모의 땅에서 희망을 일구어낸 이들은 어찌보면 부와 명예의 탄탄대로를 질주하는 삶을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몇 차례씩 감옥에 다녀왔고 정보부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는 것이다. 바로 진정한 '지식인'의 길을 갔던 것이다. 앞서 지식인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존재규정이 내려진다고 했다. 20세기의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암흑이었고 야만이었다. 그 야만의 시대에 이 책에서 등장하는 이들은 침묵하거나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그 어둠을 걷어내려고 노력했다. 즉, 지식인은 사회의 억압을 없애려고 노력하고 아무도 가지 않는 외로운 길을 가는 사람이라 규정할 수 있기에 이들은 참 지식인이라 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는다.

이런 지식인의 삶을 찬찬히 살펴보고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의미있는 것이다. 선생님 보다는 선배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하면 좋을 것 같다. 모두들 현역에서 은퇴한 이들은 후배들에게 따뜻하면서도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고 있는 것은 양념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겸손하라...' 이것은 선배들이 공통적으로 충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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