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 세트 - 상.하권
열린책들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쓸모없기 때문에 영원한 문학에게 억지로라도 그 역할을 부여한다면 어떨까. 아마도 그 역할은 인간 뇌에 저장되는 기억의 유한함, 그로인해 자주 망각하는 어리석음에 저항하는 것이 아닐까한다.

문학은 허구와 실재 사이에 위치한다. 상상력으로 충만한 환타지, 혹은 실존의 인간 질서를 그대로 그려놓은 듯한 리얼리즘 작품이라 하더라도, 허구와 실재의 외줄타기는 환타지와 리얼리즘 모두에도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모든 것이 그러하듯 문학작품에게 '완벽한 재현'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완벽한 재현이 아니더라도 그동안 우리가 알지못한 것들을 일깨워주는 것이 있기에 미완에 실망하고 아쉬워 할 필요는 없다. 가끔, 사극이나 역사소설을 볼 때면 그것이 정녕 사실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알고보면 사실의 한 부분 혹은, 작가가 상상해낸 조작임에도 종종 그런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아마도 그러했을 것이다, 혹은 설마 저러했을까하는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재미있고 유익하다고 본다.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기독교가 지배한 중세의 한 단면을 충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모습은 마치 소설이 아닌 역사책의 기록처럼 세밀하고도 생생하기에, 재미있는 사극을 보는 것처럼 그것이 실재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책은 베네딕트 수도회 소속의 수도원에서 미궁의 장서관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연쇄 살인 사건을, 현명한 윌리엄 수도사가 추리, 기호, 상상으로 풀어가는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중세 기독교의 암울함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당시 종교가 가지고 있던 극단적 독선의 모습도 등장한다. 이것 때문에 『장미의 이름』은 서양 중세사를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필독서로 되어있다.

한 선배는 이 책을 백과사전 같은 책이라고 했다. 그만큼 많은 정보와 사실들이 수록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나는 중세 역사에 대해서는 까막눈이다. 게다가 출퇴근 길에 이 책을 조금씩 읽었기에 내용연결이 무난하게 되지 않았다.

책의 내용과 구성 자체가 익숙한 것도 아니었고, 참으로 생소했으니 이해와 받아들임이 쉽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장미의 이름』은 적어도 두 번 정도는 읽어야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는 것에 안도하며, 훗날을 기약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