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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봤다 ㅣ 작가정신 소설향 8
성석제 지음 / 작가정신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방바닥에 누워 책을 읽는 건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자세 중의 하나다. 방바닥에 배를 깔고 보다가 목이 아프면 돌아서 등을 바닥에 대고 눕는다. 두 팔로 책을 얼굴 위로 들고 읽다보면 이번엔 팔이 아프다. 그러면 다시 자세를 바꿔 옆으로 눕는다. 이제야 편안한 자세를 찾았군 할 때쯤이면 안타깝게도 졸음이 장맛비에 불어난 강물처럼 밀려든다. 그러면 잔다.
가장 행복한 자세가 줄곧 잠으로 연결되면 깨어난 후, '난 왜 이럴까'라는 자기 비하가 쏟아지곤 한다. 그나마 자기 위안으로 삼으려 내뱉는 말은, '책이 재미 없어서 그래'.
지난 일요일의 초가을 날씨는 그야말로 환장하게 좋았다. 마음이야 당장 사랑하는 여인네 손목을 잡고 산으로 들로 아니면 놀이공원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내겐 애인이 없다. 창 밖으로 눈부신 푸른 하늘을 내다보며 내가 택한 일은 대견스럽게도 독서.
열린 창문 사이로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성석제의 <호랑이를 봤다>를 손에 들고 방바닥에 누워 자세를 잡은 건, 커다란 실수 중의 실수. 성석제는 나른한 오후, 혹은 혼자 남은 밤에 외롭게 던져진 존재가 읽어도 웃음이 절로 나오게 하는 이야기꾼이 아니던가. 겉으론 책을 들었어도 낮잠을 잘 요량이었던 내가 성석제의 책을 들었으니 당연히 큰 실수가 아니었겠는가.
성석제는 누운 자세의 나를 일으켜세웠다. 그리고 진지한 이야기를 풀어가다가 순간순간 고꾸라질 정도로 우스운 이야기를 보태어 진지함의 무게에 질식하지 않게 하면서도 중요한 의미를 스스로 깨닫게 하는 그의 필력에 나는 웃고 울었다.
지릴멸렬하고 비루한 삶을 파헤치는 이야기 <호랑이를 봤다>. 책을 읽으면 그 삶이 어디 그게 다른 못난 놈의 삶이던가. 내 삶에 내재되어 있는 지리멸렬함을 진지하게만 그려내는 글을 읽었다면 나는 무척 화가 났을테고, 심하면 책을 던져버렸을 거다. 약올리는 듯 하면서도 어루만져 주고, 장난하는 듯 하지만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성석제의 글이었기에 책을 덮으며 나는 이렇게 다짐했다.
'오호, 인생은 계속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