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 로켓 고스트 변두리 로켓
이케이도 준 지음, 김은모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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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오르는 골목은 경사가 가팔랐다. 변두리, 변방, 가장자리, 잘 보이지 않고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구석... 맨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 제목이 역설적이라 느꼈다. ‘로켓’이라는 첨단의 단어와 ‘변두리’라는 하찮고 보잘 것 없음을 나타내는 단어의 조합이라니.

세 권의 책에 접어들면서 사원 이름표를 선물로 받았고 상징적인 의미가 그대로 연결되듯 책을 읽으며 쓰쿠다제작소 사람들의 마음에 함께 합치되어감을 느낀다. 때로는 너무나 도덕적이고 너무나 착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순수한 문장들 - 예를 들면, 어떻게 기업이 경제적으로 힘들다고 해서 직원들을 외면할 수 있지? 와 같은 - 을 볼 때면 현실을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좋아서 한다’는 말이 지닌 순수성, 희열감, 맑은 행복감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함께 수반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이번 책에선 특히 가루베와 시마즈라는 인물에게 관심이 갔다. 가루베는 겉보기엔 쌀쌀하다 싶을 만큼 시큰둥하게 대답하고, 부하 직원들에 대한 구체적인 친절함은 찾아보기 어려워 오해를 받는 인물.

예전에 내게도 그런 동료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말이 거의 없고 자기 일만 내세우는 사람이라고 쉽게 판단내렸고 나 역시 어느 정도 수긍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까이에서 지내면서 의외의 순간들을 통해 그의 숨겨진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학기말, 바쁜 순간에 성격이 꼼꼼하고 철저한 그는 학교생활기록부에서 생각지못했던 오류를 찾아내어 살짝 툭 알려주기도 했고, 아이들에 대해 다정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 듯했지만 진짜 어려운 순간 아이의 힘든 상황을 돕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그를 오해하지 않게 되었고, 동료로서 말과 감정만 앞서는 사람보다 어쩌면 더 ‘진짜’인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시마즈와 아버지에 얽힌 이야기를 읽으며 성장기에 무언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깊이 빠져드는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그리고 대기업 직원이라는 직함이라든가 개인의 명성보다 진짜 제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연구하는 일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다운 것, 우리다운 것에 대한 고민과 관계를 이루는 과정을 함께하며 어떤 면에선 서툴고 거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는 뭉클한 감정을 되새겨본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품고 있는 진심을 가진 사람, 보이지 않아 오해받기 쉬운 진심을 들여다보는 눈을 가진 사람, 믿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다가도 어느 순간 그 진심을 깨닫는 사람, 그 많은 사람과 사람들.

회사의 위기 앞에서 어쩌면 너무 순수하다 싶을 만큼 회사의 사람들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쓰쿠다제작소가 이번에는 다른 회사의 사람들까지 지켜내려 애쓰는 모습을 본다. 회사경영의 윤리와 도덕을 생각하게 하는 <변두리로켓> 시리즈.

어느 새 3월, 세 번째 책을 덮는 이 시점, 더욱 따뜻해진 계절에 만날 최종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상상하며 기대감을 품어본다. 그리고 그 안엔 결국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변두리에 있는, 눈에 띌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공장 안에도 살아숨쉬며 눈을 반짝이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반질반질 윤기가 나는 사원 이름표를 바라보며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떠올려본다.


“......이 밸브, 우리다운 밸브라고 할 수 있을까?”
그건 아키보다도 다치바나 자신을 향한 질문이었다.
“그때 가루베 씨에게 한 소리 듣고 나서 우리다운 게 뭘까 계속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뭔지 모르겠더라고. 빈 상자처럼 알맹이 없는 존재로 느껴져. 이건 분명 괜찮은 밸브일 거야. 하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 그런 기분이 들어.” (p.117)


“자동차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딱히 새 차가 아니라도 상관없지. 좋아하는 차에 사람을 태우고 달리는 것 자체가 행복인 거야.”
아버지의 그런 철학은 그대로 시마즈의 철학으로 이어졌고,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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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엔셜 출판사의 변두리로켓단 활동에 참여하여 무료로 제공받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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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경험치를 쌓는 중입니다
김수정 지음 / 아트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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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과 셀카는 어떤 점에서 비슷할까? 예전에 고흐의 자화상들과 함께 셀카로 자아를 표현하는 수업을 한 적이 있다. 이어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연결해 청소년기의 자아정체성과 자존에 관한 토론을 했던 시간. 이 책을 읽으며 그 때 그 수업과 아이들이 생각났다. 이 책에서는 강렬한 이미지의 프리다 칼로를 등장시켜 만약 프리다 칼로가 인스타그램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이야기로 현시대 현시점에서의 미술을 이야기한다.

프리다 칼로는 화려한 색감과 인상적인 화풍을 자신의 계정에 수놓으며 수많은 팔로워들의 사랑을 받았을 것 같고, 고흐라면 뭔가 자기만의 어둑한 빛의 세계를 보여주는 계정을 운영했을 것 같은데 막상 본인이 하지 않고 동생이나 친구가 대신 운영해줬을 것 같고, 새벽 하늘과 한밤의 하늘빛 같은 계정 너머로 인디적인 매력을 발산했을 것 같다는 상상을 수놓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미술가가 현대에 되살아났다고 가정하고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상상해보면 새로운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듯!

책에서 추천하는 미술 루틴, 여기에서 우린 어떤 걸 실제 삶에서 행하고 있는지 또는 실천해보고 싶은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서 옮겨본다.

✔️SNS에서 예술 관련 채널 구독하기
✔️오늘 나의 기분을 표현한 그림 발견하기
✔️전시회, 예술 도서에 대한 감상을 짧은 글로 기록하기
✔️좋아하는 작품 이미지를 곁에 두기(ex. 엽서, 스마트폰 케이스 등)
✔️관심 있는 전시회 일정 미리 확인하기
✔️한 달에 1회 이상 미술관이나 갤러리 방문하기
✔️전시회를 다녀온 후 마인드맵으로 감상 정리하기

이 루틴들 중 꼭 해보고 싶은 것은 두 번째와 일곱 번째.

오늘의 기분, 오늘의 마음을 표현하는 그림 찾기는 아이들과 교실에서 아침을 열며 해보아도 참 좋을 것 같은 루틴이다. ‘마음 신호등’처럼 한 명씩 오늘의 기분과 마음을 그림으로 이야기 나누면 참 좋을 것 같다. 기분과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눈에 보이는 그림과 색깔로 이를 말하다보면 더욱 선명하게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고 이를 친구들과 교감하고 공감할 수 있을 테니까.

미술관 방문을 좋아하면서도 막상 다녀와서 간단한 소감 정도만 적고 리플렛을 모아두는 정도에 그쳤는데 이를 마인드맵핑해보면 더 오래, 더 소중하게 예술에 대한 마음을 품고 구체화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하나의 전시회에서 뻗어나온 가지가 또 다른 전시회나 작품으로 계속 연결되고 이어질 것 같은 상상. 내가 그린 마인드맵과 친구의 마인드맵은 또 어떻게 가지를 뻗어 서로 손을 맞대듯 마음과 마음이 만나고 이어질지 궁금해진다. 이 또한 아이들과 함께하면 참 좋을 것 같은 활동, 계속 아이들 이야기를 하게 되는 2월.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한 장씩 넘겨나갔는데, 읽어나가면서 점점 즐겁게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다. 책 속 표현 중에 “감각의 노화와 이해의 성숙”이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그 말이 와 닿아 다시 적어보며 곱씹어본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분명 같은 길을 걸어도 나뭇잎의 저마다 다른 색감과 바람의 촉감, 손끝에 느껴지는 질감... 많은 감각이 무뎌져가는 느낌이 드는데 그런 나를 발견할 때마다 느껴지곤 하는 슬픔의 감정이 ‘이해의 성숙’으로 더욱 깊어지고 뜨거워질 수 있다면 이런 나이듦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자그마한 책 한 권이 이사와 새 학기 복직 준비, 아이들 전학과 아이들의 새 학기 준비 등으로 폭풍 바쁜 2월에 “바쁜 상황에서 책 읽기 루틴(!) 만들기”를 즐겁게 도와주었다. 만약 너무 바빠서 마음의 여유가 없지만 책을 통해 마음에 신선한 바람이 통하도록 환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건네고 싶다. 겸손하고 솔직한 생활 속 미술 이야기가 평범한 일상에 신선한 즐거움을 선사할 테니까.

(아트북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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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음성같이 옛 애인의 음성같이 - 김승희가 들려주는 우리들의 세계문학
김승희 지음 / 난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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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을 보며 최근 많은 책을 읽었지만 살아있는 한국 작가 중에 이 정도 나이와 경력의 여성 작가 책을 읽은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정확히 친정어머니와 같은 해에 태어나신 분 그리고 이 책은 저자가 마흔일 때 쓴 책.

난다출판사 대표인 김민정 시인이 1992년 『세계문학기행』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던 이 책을 푹 빠져 읽고 여러 다양한 세계 고전의 세계를 탐닉했던 소중한 경험과 기억을 담아 다시 이 책을 아름답게 재탄생시켜 세상에 내어놓았다. 이런 팬심, 이런 덕질은 정말 아름답고 소중하다. 이제껏 몰랐던 책을, 이런 마음과 정성이 아니면 만날 수 없었을 책을 만나게 해주었으니.

며칠 전에는 난다출판사에서 이벤트로 김승희 시인 라이브 방송을 진행해주셨는데, 그 방송을 보고 난 이후 책을 읽으니 마치 음성지원이라도 되는 듯, 글에서 작가님 목소리가 함께 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또한 여러 인상적인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흘러가듯 말씀하신 한 마디가 이상하게 계속 마음에 남았다.

질문은 대략 이런 것이었다. ‘세계문학작품들을 어떻게 하면 깊이 노력하며 읽어낼 수 있을까요?’ 정도의 질문. 그런데 툭, 곧바로 하신 말씀. “음? 문학작품이 그냥 좋아서 탐닉하고 빠져들었던 거지, 뭔가 그렇게 노력까지 하면서 읽어야 할까요?” (정확한 워딩은 아닐 수 있지만 대략 이런 의미의 말씀이었는데) 다른 다양한 이야기들보다 이 말씀 한 마디가 자꾸만 귓가와 마음에 맴돌았다. 노력하며 읽는 게 아닌, 그냥 빠져들어서 읽게 되는 책, 그런 충만한 몰입의 시간을 상상하면서.

시인이 읽은 52권의 책들. 여기에는 읽은 책들도 있고 읽지 않은 책들도 있었다. 같은 책을 읽었음에도 이렇게 깊이 있는 통찰을 담아내다니 싶은 글들도 있었고, 내 마음과 생각을 닮아 있어 즐거운 글도 있었다. 아직 읽지 못한, 그래서 마치 아직 걸어가지 않은 길처럼 신비롭고 궁금한 책들이 담긴 세헤라자데의 이야기 같은 책.

고전은 왜 고전이 되었을까? 몇 백 년 전, 몇 십 년 전의 목소리들을 다시 길어올려 이야기하는 시인의 책 이야기가 뭔가 비밀스런 속삭임처럼 다가왔다. 읽었던 책들도 다시 한 번, 52권의 사유를 따라 다시 한 번 책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는 마음. 과연 문학에 빠져들어 읽은 사람의 이야기답고 그 때 그 시절, 지금의 내 나이 또래였던 시인의 세계에 내 마음을 살포시 얹어보게도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세계문학이 이토록 아름다우니 우리 문학은 또 우리만의 매력으로 얼마나 아름다운지 더 관심 있게 생각해보게 되기도 하는.

김민정 시인의 팬심이 가득 담긴 우아한 표지 그림에 무코팅의 책 표지 질감까지 매력적인 아름다운 책. 또 한 번 한 계절이 흘러가려 하는 이 때, 우리의 밤이 외롭지 않게 환해지는 건 먼저 이 생을 살다간 무수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여러 책을 통해 건너건너 말을 건네기 때문이 아닐까?

▪️난다서포터즈로 활동하면서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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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창비시선 452
정현우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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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머금은 큰 소년의 눈동자로 선과 악의 사이, 그 기로에 놓인 천사 또는 인간의 목소리를 담은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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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2021-04-29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제가 하고싶은 말이 이미 적혀 있었네요. 아주 좋은 표현 이에요!!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창비시선 452
정현우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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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머금은 큰 소년의 눈동자로 선과 악의 사이, 그 기로에 놓인 천사 또는 인간의 목소리를 담은 시집.

S#1. 무대, 저녁
-제1부 ▪️모든 슬픔을 한꺼번에 울 수는 없나

소년 성가대 합창단이 정갈한 흰 옷을 입고 줄지어 서서 노래를 한다. 맑은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우면 하늘로 날아가지 못한 어린 천사가 공중을 맴돈다. 누구도 보지 못한다. 노래가 절정을 향할 무렵, 소년 하나가 대열을 흐트러뜨리며 무대를 뛰쳐나간다. 마치 공중으로 튀어오르듯, 부서진 날개로 하늘을 날아오르고 싶다는 듯. 소리를 잊은 소년과 하늘을 잃은 천사가 서로를 마주 본다. 그렇게 소년은 태어난다.

S#2. 소년의 방, 깊은 밤
-제2부 ▪️시간과 그늘 사이 턱을 괴고

소년은 자웅동체의 달팽이를 사육한다. 귓바퀴를 닮은 물음표를 갉아먹는 달팽이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구분 사이에서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품는 소년을 술래로 만든다. 언젠가 어느 날, 얼굴을 잊은 친구가 나지막한 옆모습으로 했던 말, “나는 태어날 때 이미 세례를 받아서 종교의 자유가 없었지.” 그 때 그 소녀의 목소리를 귓바퀴에 다시 감돌게 하는 시들. 소년도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이미 신과 엄마와 천사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신에게 들키기 위해 / 흰 천을 뒤집어쓰고 기도하는(<오르톨랑> p.67)’ 인간의 모습으로 ‘주어진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은 귀를 잘라야 할 것(<묘묘> p.59)’이라 소리치며 소용돌이치는 소년의 밤이 깊어간다.

S#3. 소년의 방, 새벽
-제3부 ▪️소년과 물보라

성가대에서 천사를 따라 뛰쳐나온 소년은 밤새 잠을 이룰 수 없다. 변성기를 지나지 않은 영원한 소년의 목소리로 카스트라토가 되어야만 할까. 뒤척이는 새벽, 소년의 꿈에선 ‘젖은 음표들이 입속에 우글거리’고 ‘아가미를 자른 인어가’ 소년을 ‘삼킨다(<인면어> p.74)’. 거세를 거부하는 소년의 꿈은 온통 여성과 남성 그 사이를 오가며 ‘굵은 눈발이 숲을 흩뜨(<인어가 우는 숲> p.94)’리는 죽음과 사랑과 신을 노래한다. 여전한 소년의 미성으로.

S#4. 창가, 여명
-제4부 ▪️여름의 캐럴

“숨이 끊겨도 사흘 동안 살아 있는 것은 귀라는데요,”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서 ‘아버지의 귀에 대고’ 끝없이 묻고 싶은 마음과 ‘붉은 나의 두 귀를 / 감싸던 아버지의 손(<겨울 귀> p.109)’ 사이에서 소년의 오늘은 계속 질문을 머금는다. ‘다시 태어날 수 없는 사람들은 별자리로 떠돌다 목을 맨 유성으로 떨어’지고, ‘다시 꿈을 꾸어도 되느냐고’ ‘입술을 글썽이던 삼일(<소멸하는 밤> p.119)’이 이내 흘러가는, 아주 여리고 희미한 여명(黎明)이 밝아오는 아직은 어두운 시간. ‘가지를 쳐내도 징그럽게 자라나’고, ‘소매에 넣으면 길어진 나의 팔은 쑥쑥 자라 입을 수 없는 옷들만 수북이 쌓’이는 공간에서 ‘시옷 모양의 옷(<옷의 나라> p.122)’으로 죽음과 탄생 사이를 넘어 구원받고 싶은 슬픔이 여전히 소매를 적신다.

🔖 시집이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고 전체의 흐름이 비슷한 결로 이어지고 있어 계속 몽환적인 그림이 그려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시집 전체에서 흐르는 이미지가 옵티미즘(optimism)적 세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소년이 살고 있는 인간의 세상이 슬픔의 보라빛으로 물든 느낌이지만, 소년의 발걸음을 따라가면 인간의 세계는 결국 긍정으로 흘러갈 것만 같아요. 어둠의 끝에 당도한 하늘이 결코 어둡지 않고, 그 곁에 마치 수호신과도 같은 누군가들의 축복이 ‘목화가 피어 울고 싶다고 살고 싶다고’ 귓가에 목소리를 건네는 소년에게 슬픔을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무릎과 발목과 손바닥의 힘을 북돋워줄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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