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음성같이 옛 애인의 음성같이 - 김승희가 들려주는 우리들의 세계문학
김승희 지음 / 난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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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을 보며 최근 많은 책을 읽었지만 살아있는 한국 작가 중에 이 정도 나이와 경력의 여성 작가 책을 읽은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정확히 친정어머니와 같은 해에 태어나신 분 그리고 이 책은 저자가 마흔일 때 쓴 책.

난다출판사 대표인 김민정 시인이 1992년 『세계문학기행』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던 이 책을 푹 빠져 읽고 여러 다양한 세계 고전의 세계를 탐닉했던 소중한 경험과 기억을 담아 다시 이 책을 아름답게 재탄생시켜 세상에 내어놓았다. 이런 팬심, 이런 덕질은 정말 아름답고 소중하다. 이제껏 몰랐던 책을, 이런 마음과 정성이 아니면 만날 수 없었을 책을 만나게 해주었으니.

며칠 전에는 난다출판사에서 이벤트로 김승희 시인 라이브 방송을 진행해주셨는데, 그 방송을 보고 난 이후 책을 읽으니 마치 음성지원이라도 되는 듯, 글에서 작가님 목소리가 함께 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또한 여러 인상적인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흘러가듯 말씀하신 한 마디가 이상하게 계속 마음에 남았다.

질문은 대략 이런 것이었다. ‘세계문학작품들을 어떻게 하면 깊이 노력하며 읽어낼 수 있을까요?’ 정도의 질문. 그런데 툭, 곧바로 하신 말씀. “음? 문학작품이 그냥 좋아서 탐닉하고 빠져들었던 거지, 뭔가 그렇게 노력까지 하면서 읽어야 할까요?” (정확한 워딩은 아닐 수 있지만 대략 이런 의미의 말씀이었는데) 다른 다양한 이야기들보다 이 말씀 한 마디가 자꾸만 귓가와 마음에 맴돌았다. 노력하며 읽는 게 아닌, 그냥 빠져들어서 읽게 되는 책, 그런 충만한 몰입의 시간을 상상하면서.

시인이 읽은 52권의 책들. 여기에는 읽은 책들도 있고 읽지 않은 책들도 있었다. 같은 책을 읽었음에도 이렇게 깊이 있는 통찰을 담아내다니 싶은 글들도 있었고, 내 마음과 생각을 닮아 있어 즐거운 글도 있었다. 아직 읽지 못한, 그래서 마치 아직 걸어가지 않은 길처럼 신비롭고 궁금한 책들이 담긴 세헤라자데의 이야기 같은 책.

고전은 왜 고전이 되었을까? 몇 백 년 전, 몇 십 년 전의 목소리들을 다시 길어올려 이야기하는 시인의 책 이야기가 뭔가 비밀스런 속삭임처럼 다가왔다. 읽었던 책들도 다시 한 번, 52권의 사유를 따라 다시 한 번 책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는 마음. 과연 문학에 빠져들어 읽은 사람의 이야기답고 그 때 그 시절, 지금의 내 나이 또래였던 시인의 세계에 내 마음을 살포시 얹어보게도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세계문학이 이토록 아름다우니 우리 문학은 또 우리만의 매력으로 얼마나 아름다운지 더 관심 있게 생각해보게 되기도 하는.

김민정 시인의 팬심이 가득 담긴 우아한 표지 그림에 무코팅의 책 표지 질감까지 매력적인 아름다운 책. 또 한 번 한 계절이 흘러가려 하는 이 때, 우리의 밤이 외롭지 않게 환해지는 건 먼저 이 생을 살다간 무수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여러 책을 통해 건너건너 말을 건네기 때문이 아닐까?

▪️난다서포터즈로 활동하면서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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