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준비생의 도쿄 2 - 여행에서 찾은 비즈니스 인사이트 퇴사준비생의 여행 시리즈
시티호퍼스 지음 / 트래블코드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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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보자마자 호기심이 마구마구 피어났지만 잠깐 주저했다.

'도쿄'라는 단어는 날 설레게 하지만 '퇴사'는 아직 생각하지 않아서일까?

그래도 이미 마음만은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듯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중이다. 예전에 떠났던 일본 여행지의 풍경이 스쳐 지나간다. 이미 나는 콧바람이 잔뜩 들었고 마음은 콩닥콩닥, 서평단 도서를 신청하고야 말았다.

신청할 때 읽고 싶은 이유를 적어야 하는데 지금 보니 많이 내가 이렇게 적었구나.

유치하지만 진심이었다 ^^

"책을 읽으며 도쿄 여행을 떠나고 싶어요.

덤으로 얻게 될 참신한 아이디어를 간직하며 창의력있게 살고 싶어요."

책을 펼치기 전 잠시 깔끔한 표지를 음미하고 책장을 스르륵 넘겼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종이 재질도 좋거니와 곳곳에 사진이 있어서 일단 눈이 즐겁다. 나중에 전작인 <퇴사 준비생의 도쿄>도 읽어봐야겠다.

지은이를 보고 궁금증이 더해졌다.

시티호퍼스(City Hoppers)는 여러 도시를 넘나드는 사람들을 뜻한다고 한다. 이름이 참 귀엽다.

프롤로그에서는 코로나로 오랜 기간 동안 여행이 불가능했던 상황과 그래도 여행이 주는 설렘, 또 떠나야만 하는 이유를 담백하게 서술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읽어 볼까?

앞부분에 안내가 나오고 15가지 서비스를 소개한다. 그중 내 눈길을 끈 서비스를 소개한다.


하나노히

꽃 구독 서비스이지만 고객은 매장에 직접 들러야 한다. 솔직히 요즘같이 새벽 배송도 가능한 시대에 언뜻 들으면 귀찮고 피곤한 마음이 밀려온다. 보통 배송까지 가능한 꽃 구독 서비스는 업체에 모든 걸 맡기기에 고객이 편하겠지만 꽃에 대해 더욱 알아보고 직접 만져보며 자신이 좋아하는 꽃을 알아가는 소중한 기회를 놓치기에 딱이다. 편리함과 불편함을 적절히 이용해 틈새시장을 파악한 시도가 엿보인다. 이런 역발상은 통할 거다.


강조하는 내용 세 가지는

꽃을 구독하세요. 대신 받으러 와야 해요.

꽃을 구독하세요. '꽃알못' 탈출을 도와드릴게요.

꽃을 구독하세요. 리프레시의 계기가 필요하다면요.


'하나노히' 구독 서비스를 실현시킨 이유를 담은 인터뷰 내용을 보면 진정성이 느껴진다.

꽃을 좀 더 가깝게 느끼고 가벼운 마음으로 구매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요.

배달이 아닌 오프라인 매장에서 꽃을 받는 형식으로 만든 이유가 있어요.
고객들이 실제로 꽃집을 방문해 더 많은 꽃을 만져보고 향기를 맡아보길 바라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매장에 늘어선 꽃이 계절별로 바뀌는 것을 보면서
고객들이 계절감을 느끼길 바라요.


특히 요즘처럼 오프라인 매장의 설자리가 좁아지는 시대에 고객이 직접 매장으로 걸어 들어오게 하다니 꽃집 외에도 다른 사업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아직 내 사업에 큰 관심은 없지만 언젠가는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는데 '하나노히'의 구독 서비스는 반드시 메모해두고 기억하고 싶은 정보였다. 영어 학원과 카페, 독서 토론 장소 등을 한데 모은 공간을 꾸려나가고 싶은 바램이 있긴 하다. 혹시나 그 공간에 대한 구상이 현실로 이어지는 날이 오면 꼭 구독 서비스를 접목해야겠다(나 혼자 또 북 치고 장구 치고... 쓸데없는 상상력만 폭발한다.)

책을 넘기며 참신하고 기발한 아이디어에, 또 당장 도쿄에 가고 싶은 마음에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인 견해를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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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하시대 - 당신은 게으른 게 아니라 진심으로 지쳤을 뿐이다
로라 판 더누트 립스키 지음, 문희경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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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솔직히 말하면 이런 책은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표지와 책에 대한 설명을 읽고 나니 내용이 궁금해졌다.

나는 과부하 상태일까? 만약 그렇다면 책을 읽으며 개선하는 방법을 배우면 될 터이고, 아니라면 예전에 과부하 상태였던 때를 떠올리며 다시는 되돌아가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도 해보고, 과부하가 닥쳐와도 예전보다는 조금 더 현명하게 다스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책을 냉큼 읽고 싶어졌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과 내 생각

pp. 33-34

"이 일을 하다 보면 매일 내 안의 일부를 죽여야 해요. 하루도 빠짐없이 말이죠."

개인의 과부하 문제는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스스로 과부하에 걸린 사실을 알아채기도 어렵고, 알아챈다 해도 금세 잊기 쉽다. 본인이 과부하에 걸렸다고 명확히 인지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사실 대다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과부하는 연속적이다. 심각한 과부하 상태, 과부하가 지나간 후 재정비하고 다시 시작하는 상태, 몇 년 동안 꾸역꾸역 버티는 상태까지 다양하다. 혹은 일상에서 본인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갑자기 깨달을 수도 있다.

나도 그런 적이 있다. 열세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날 오후의 기억이다. 멀거니 서 있던 내게 다정하고 멋진 청년부 리더가 아이들을 헤치고 다가왔다. 그녀는 먼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듯'이 나를 힘껏 안았다. 그러고는 조금 뒤로 물러나 내 어깨를 잡고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넌 지금 놀랐을 거야. 한동안 그럴 테고. 그래도 괜찮아. 이런 일이 생기면 원래 다 그래. 다 괜찮아질 거야."

그 말에 나는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그 말은 훗날 내게 도움을 구하는 누군가에게 해주는 말이 되었다. 과부하가 극심해지거나 지속될 때 고립감을 느끼지 않게 막아주면 큰 도움이 된다. 때로는 과부하에 걸린 사람에게 '이 상태가 과부하된 모습'이라고 인지만 시켜줘도 훨씬 낫다.

->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은 자신의 건강과 마음을 갉아먹으면서 버티는 중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끈기는 없으면서 호기심만 많아서 일을 잘 벌리는 스타일이다. 이제 소화할 수 있는 만큼, 건강을 해치지 않을 만큼, 특히 내가 괴롭지 않을 만큼만 몰두해야겠다. 그리고 주변에 과부하 걸린 사람은 없는지 나만의 '과부하 레이더'를 작동시켜 더 자세히 관찰하고 혹시나 힘들어하는 이들이 있다면 조심스럽게 과부하 상태를 인지시켜주고 싶다.

pp. 42-43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접하지 못해서 건강이 나빠지고 과부하에 시달린다.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의 저자 리처드 루브는 이렇게 말했다.

"정식 진단명은 아니지만 자연결핍장애는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소외되어 나타나는 심리적, 신체적, 인지적 대가, 특히 아직 발달기인 취약한 아동이 치르는 대가를 설명해 준다."

유럽 환경 정책 협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녹지를 접하기 어려운 사람들과 녹지 접근성이 좋은 사람들 사이에 정신 건강의 불균형이 크다.

자연 박탈은 한편으로는 인종 문제와 연결된다. 미국 특정 도시의 주민들은 은행, 보험, 슈퍼마켓 등 서비스를 공평하게 이용하지 못한다. 레드라이닝(Redlining - 은행, 보험회사가 특정 지역을 지정해 대출이나 보험 등의 금융 서비스를 거부하는 행위)이라는 차별적인 관행으로 많은 유색인종이 중공업 지역 옆에 살고, 해당 지역의 공원이나 녹지 투자는 제한되었다.

.....

"그리핀파크와 패러모어 저소득층 구역의 오염 수준은 다정한 미국인들이 방치하는 일종의 폭력이다. 노골적인 인종 폭력만큼이나 의도적이고 정치적인 결정이다. 그리핀파크의 상황은 한 세기에 걸친 선택의 결과이고, 그 여파로 공식적인 분리 정책이 이제는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마시는 공기의 질을 차별하는 방식으로 변형되었다."

-> 우리는 자연환경까지도 차별 대우를 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자연결핍장애'라는 생소한 용어의 의미를 반복해서 읽는데 참 속상하다. 비단 경제적 위치뿐 아니라 인종까지도 영향을 끼친다니. 지금 이러한 상황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지만 어떤 좋은 아이디어도 생각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물론 내가 어떤 생각을 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이런 차별이 더하면 더했지 상황이 좋아지진 않을 거란 슬픈 예감만 짙어져 답답함을 넘어 무기력함이 느껴진다.

p. 63

"늘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학생이 많아요. 학기말에는 더 하고요. 도서관 책상에 엎드려 자는 학생이 많아요. 놀라운 사실은 학생들이 수면 부족을 훈장으로 여기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잠이 모자라면 몸이 나빠지는 줄 알면서도, 밤을 새울 만큼 바쁘게 열심히 노력하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

"군대에서는 원래 잠을 나약함의 증거로 보았습니다. 지휘관은 병사들이 근무 중일 때 자지 않았어요. 요새는 군대에서도 잠이 부족하면 심신이 약해진다고 교육합니다."

-> 이제는 밤새는 건 꿈도 못 꾸지만, 나는 몇 해 전만 해도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한답시고 밤을 새운 적이 종종 있었다. 솔직히 너무 바빠서라기 보다 할 일을 미루거나 최소 시간에 최대의 힘을 다 쓸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초능력을 겸비한 양 헛된 자신감이 솟아난 적이 있었다. 당연히 집중력 부족으로 효율성이 없었고, 더 큰 문제는 밤새고 난 후 과장을 보태면 좀비가 되어버려 시간을 생산적으로 사용하지도 못했을뿐더러,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지는 걸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왜 우리는 잠을 적게 자는 걸 정신력이 강하다고 여기는 분위기에 살았을까? 오늘만 살고 인생 끝나는 것도 아닌데 그동안 참 미련했으니까 이제 주어진 시간을 잘 쪼개서 사용해야겠다. 건강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

p. 68

스페인이나 과테말라 등 식사 전통이 견고한 나라들을 보자. 이들 문화에서는 먹는 것만 식사가 아니라, 식사를 준비하고 함께 나눠 먹고 마무리하는 모든 과정이 식사다. 식사 문화 안에 음식을 대하는 통합적이고 균형 잡힌 관점이 담겨 있다. 함께 밥을 먹고 여유를 즐기는 시간이 문화 전반에 일상적으로 스며들었다. 자연에 감사하는 자리이자 식량을 기르고 음식을 준비한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자리일 뿐 아니라, 함께 교감하면서 식사를 즐기는 풍습니다.

-> 솔직히 이 구절을 읽고 부끄러웠다. 나는 그저 저 나라들은 느긋한 걸 추구하고 나태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래서 사람이 무식하면 큰일이 나는 거다. 물론 이에 대해 머릿속으로만 생각했고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는 것 같아 다행이지만(물론 내 기억력을 믿을 수 없다), 만약 아는체하며 떠들었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이제 식사 시간에 음식이 어떻게 나에게 왔는지, 어떤 재배 과정을 거쳤을지 생각해야겠다. 그동안 허겁지겁 음식을 흡입하기 바빴는데 이제 밥을 한 숟가락씩 먹을 때마다 자연을 향해, 또 요리를 해준 이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한 숟가락씩 더하고 싶다.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를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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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피 다운 딜리
서지현 지음 / 씨엘비북스(CLB BOOKS)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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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여러 권의 책으로 마니아층이 형성된 서지현 작가의 신간이다. 출간 전부터 <다피 다운 딜리> 리디북스의 화제작이라니 더욱 궁금해졌다.

표지 디자인이 예뻐서 서평단을 신청한 이유가 꽤 크다. 딱 보자마자 산뜻해서 눈길이 갔고, 제목은 또 무슨 뜻일까 혼자 추측해 보는 재미가 있었다. 책을 읽으며 코끼리의 의미도 조금은 알 것 같아 책을 다 읽은 후 표지를 다시 봤을 때의 느낌은 또 다르다.

주인공 데샤드는 자신의 '꿈'이었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지만 어느 날부터 밤에 '꿈'을 이루지 못한다.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해 힘들어하다가 남대륙 세블레 왕국에 사는 마법사를 찾아 도움을 청한다. 새롭게 알게 되는 자연의 소중함과 반려동물 코끼리에 관한 이야기, 요정 페어리가 함께 사는 조금은 신기한 곳에서 데샤드는 성장한다. 우리는 어른이지만 누구에게나 성장은 필요하다. 코끼리는 철학자의 이름 '데카르트'를 얻고 하늘을 별을 바라보는 데샤드에게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친다. 데샤드는 그토록 원했던 '꿈'을 과연 찾을 수 있을까?

기억하고 싶은 부분

p. 37

"지식은 현재 삶의 습득이에요. 지혜는 지금 이전의 나로부터 온 것이죠. 한순간에 탄생하는 게 아니거든요. 지금 책을 많이 읽으면 다음 생에는 아주 지혜로운 사람이 될 거예요. 그리고 전 견해가 부족할 뿐 지식은 부족하지 않아요. 다음 생에도 저는 아주 지혜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겠죠."

p. 44

"이론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어요. 세상에는 밝혀지지 않은 것이 훨씬 많고, 또한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새로운 것이 나오니까요."

p. 45

보통 꿈의 형상은 일상생활의 기억 표상과도 같은 것을 나타낸다고 알고 있다. 삶의 깊은 의미, 원인과 결과에 대한 인식, 어떠한 법칙, 일상생활의 여운, 주변 환경의 왜곡된 인상, 그리고 상태. 몸이든 건강이든 그것이 놓인 상태에 따라 각기 다르며, 모두 상징적이다.

pp. 56-57

당신에게 지혜롭고 고독한 친구가 존재한다면, 어째서 그들이 가끔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하는지, 완전한 미치광이처럼 구는지 이해하려고 하지 마라.

.....

단지 세상에 우리가 알 수 없는 미치광이가 많다는 것이다. 이 미치광이에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으니 비하하는 눈은 삼가도록 하자.

p. 58

"그래, 다포딜. 왜 농사를 짓지?"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죠. 그것도 모르세요?"

다포딜이 한심하다는 얼굴로 되묻었다. 물론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단지 데샤드는 이미 다 자란 작물을 그저 돈을 주고 사는 행위만 했을 뿐이다. 먹기 위해서는 그저 돈을 벌어서 그걸로 물건을 사면 되었다.

그런데 농사라니.

데샤드의 알 수 없는 시선을 받으며 다포딜은 그에게 작업복을 넘겼다. 호미, 곡갱이, 삽. 데샤드가 시선을 돌려 데카르트를 바라봤다. 이미 땅을 갈 준비를 마친 코끼리가 뭐 하냐는 듯 데샤드를 바라봤다. 그가 처참한 시선으로 그것들을 보다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p. 60

"헤이즈먼을 만나고 나서 세상의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죠. 제 세상이 그렇게 좁은지 몰랐어요. 단순히 이 초원과 숲, 마을만 있는 줄 알았죠. 원래 사람들은 자신이 본 세계 속에서만 살잖아요. 마을에서 전 현명한 사람 중 하나였어요. 첫 번째는 할머니였고, 두 번째는 저였어요. 촌장님은 세 번째죠. 어쨌든 저는 현명한 세 사람 중 한 명이었어요. 다른 누구에게도 침범 받지 않는 모두가 인정하는 똑똑한 사람! 근데 저보다 더 현명한 사람을 만난 거죠. 세상에. 내가 그 세 손가락에 들어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처음 느낀거예요."

pp. 62-64

"죽고 싶으면 나중에 죽어요. 곱게 죽여드릴게요. 전혀 아프지 않게 죽을 수가 있어요. 저에겐 대대로 내려오는 지혜가 있거든요. 그리고 이왕 죽을 거라면 일단 그전에 당신의 삶을 세상의 이바지에 좀 쓰세요. 세상엔 좋은 일이 많은걸요. 농사 같은 거 말이죠!"

.....

"농부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해요."

.....

"먹지 않고 살 수 있어요?"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알지 못한 채, 다포딜이 바로 이어 말했다.

"노예든, 평민이든, 귀족이나 왕족이라도, 하다못해 황제라도 먹지 못하면 살 수 없어요."

데샤드가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그건 틀린 말이 아니다. 사람은 먹어야 살 수 있으니까.

"농부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사람들이죠. 그것만큼 위대하며, 세상에 이바지하는 직업이 어디있다는 건가요?"

위대한 직업이라는 말에 순간 데샤드의 머릿속에 황제, 사제가 떠올랐다. 아니면 영웅? 그래. 영웅도 위대한 직업이기는 했다. 사실 데샤드의 사고방식으로는 농부가 위대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농부는 하층의 직업 중 하나였다.

지금의 나에게 '꿈'이라는 단어는 언제 들어도 설레이고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준다. 하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20대 초반까지 아무런 꿈이 없었다. 수업 시간에 형식적으로 자주 물어보는 장래희망을 묻는 순간이 너무 괴로워 가끔은 솔직하게 대답하다 이상한 시선을 마주했다. 또 가끔은 그 한심스레 바라보던 시선이 따가와서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학생들과 자연스레 꿈 이야기를 하게 되면, 꿈이 없다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괜찮다고 이야기한다. 지금 당장 명확한 생각이 있다고 해도 이루어 지지 않을 수도 있는데, 꿈이 없다고 한심한 아이 취급받는 건 너무 편협한 생각 아닌가.

나는 꿈을 자주 꾸는 편이다. 황당한 이야기, 꿈인 줄 아는 데도 진행되는 꿈, 아직도 무서운 개들이 달려드는 꿈 등등.

딱히 나누거나 기억할 만한 꿈이 아니기에 그냥 잊고 살았는데 한창 내 꿈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던 한 학생이 생각났다. 지금 건축학과 새내기가 된 아이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대학 입학 전까지 나와 공부했다.

어느 날 학생이 묻는다.

"선생님은 꿈꾸세요? 저는 꿈꾸고 싶은데 꿈을 꾼 기억이 없는 것 같아요."

처음엔 너무 놀랐지만 자기가 그렇다는데, 믿을 수밖에 없었다. 자꾸 꿈 이야기를 해 달라고 보채기에 들려주면 신나게 듣다가, 어떻게 그게 가능한 지 재차 묻곤 했다. 내 머릿속에 뭐가 들었냐며,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 거냐고 꼬치꼬치 물었다. 이제 제발 공부하자고 말린 적도 많다. 자기는 지금 공부보다 내 꿈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며 우기다가 내게 혼나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 아이는 내게 상상력이 풍부하다면서 칭찬을 해줬다. 처음엔 의아했지만 고마운 아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그 학생을 잊고 있었는데 나에게 이 일화 외에도 여러 가능성을 열어준 특별한 아이임에 틀림없다.

책을 읽으며 한쪽으론 주인공 데샤드가 제발 꿈을 이루길 바라는 마음에, 또 다른 한쪽으론 건축가를 꿈꾸는 아이의 꿈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에 내 머릿속은 즐겁게 몽글몽글 거린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를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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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지키는 아이
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김정화 옮김 / 꿈꾸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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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에게 인기 있는 책인 <전천당>의 작가 히로시마 레이코가 돌아왔다. 조카들도 사달라고 말했었고 영어 수업을 위해 어린 학생들 집에 방문하면 책장에 여러 권 줄지어있던 <전천당> 시리즈를 많이 봤던 터라 이미 익숙한 작가의 이름이었다. 이번에 청소년 독자에서 성인 독자까지 아우를 수 있는 인간 욕망에 관한 판타지를 선보인다고 해서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졌다.

표지에서 감도는 느낌은 섬뜩하고 뭔가 사연이 있을 것만 같다. 빨리 책장을 넘기고 싶어졌다.

간략 줄거리

치요라는 아이는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저택을 들어가는 중이다. 치요는 본채와 여러 채의 곳간 및 별채를 이어주는 정원수까지 아름다운 이런 저택엔 천황님은 살지 않을까 감탄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만나는 이들의 시선은 서늘하다. 병약한 어미를 대신해 밥도 짓고 옷도 고치며 살아온 치요는 여기에 일하러 왔다. 밭일도 했고 숲에 들어가 약초나 버섯을 따서 살림에 보태기도 했던 치요이기에 웬만한 일은 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어떤 이의 수발을 들고 이야기 상대가 되라는 말을 듣는다. 독방에 개인 목욕실까지 후한 대접을 받은 치요에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함부로 저택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
아고 가문을 지켜주는 보호신의 수발과 말상대 임무를 받은 치요. 소녀의 모습이던 보호신은 갑자기 짐승 같이 울부짖는다. 보호신의 눈은 새빨갛게 불타오르고 입은 귀까지 찢어지며 날카로운 엄니를 드러내는 데다 머리카락은 솟구쳐 불꽃 덩어리 같다. 정신을 잃었던 치요는 눈을 뜨자마자 걱정이 앞선다. 보호신을 기쁘게 하기는커녕 화나게 했으니 어떤 벌을 받게 될까 덜컥 겁이 났다. 치요가 이곳에 온 목적은 오로지 보호신을 모시게 하려는 것이니 보호신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몇 번이라도 별채로 가서 그 보호신을 만나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듣는다. 하지만 마을을 떠나올 때 치요를 배웅한 이 하나 없고, 심지어 엄마가 죽었을 때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허전함과 고독함에 힘들었는데, 그 마음을 보호신인 아구리코가 처음으로 알아차려 주다니 치요의 눈에선 눈물이 흐른다. 치요는 아구리코가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할 거란 다짐을 한다.
별채에서 일하는 하녀들 사이에서 아구리코의 공식적인 존재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아고 유사이의 여동생이고, 치요는 그 '공주님'을 돌보는 중이다. 치요는 이곳에서 아기가 태어나지 못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구리코에게 자초지종을 묻는다. 알고 보니 아구리코는 아구리 숲에서 태어난 여우 혼령이고 나이는 백오십이 넘었다. 아구리코가 백 년 전 아고 집안을 도우려 했을 당시 아고는 가난한 농사꾼이었다. 아구리코가 모내기를 도와주면서 모종들이 병충해를 입지 않아 수확이 껑충 뛰자 아고 집안은 조금씩 살림이 피기 시작했고 아구리코를 신처럼 받들어 주었다. 하지만 아고 집안 인간들의 마음은 변하기 시작해 다시 가난해질 것에 대한 두려움에 아구리코를 영원히 잡아둘 계획을 세우고 잔치라는 명목으로 아구리코를 초대한 뒤 억지로 마구 눌러 비틀어 붙잡는다. 아고의 논밭은 해마다 풍요로워지고 행운은 또 다른 행운과 재물을 불러들인다. 마침내 주변 일대를 다스리는 호족으로 번성한 아고는 저택을 지으며 '아고'라는 가문의 이름을 짓는다. 아고의 '아'는 아구리코를 뜻하고 '고'는 힘으로 누른다는 뜻이다. 그렇게 탄생한 아고 가문에선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데....

기억하고 싶은 부분

p. 27
"넌 운이 좋아. 보호신이 죽이지 않았으니까."
치요는 찬물을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운이 좋다. 죽임을 당하지 않았으니까.
그것은 치요가 죽임을 당해도 이상할 게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헤이하치로는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 치요를 그 방에 보냈다는 뜻이다.
문득 생각했다. 정말 무서운 것은 그 방 안에 있는 보호신이 아니라, 아고 가문 사람들이 아닐까 하고.

p. 47
그러나 아구리코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은 치요의 이야기였다. 치요가 본 하늘색, 구름 모양, 처마 밑에 생긴 고드름 수, 그런 아무것도 아닌 일을 몹시 듣고 싶어 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는 동안 아구리코의 눈에는 더할 나위 없이 애절한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p. 87
이때 치요는 분명히 깨달았다. 헤이하치로는 확실히 아구리코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러나 결코 아구리코를 자유롭게 해 줄 마음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난 달라. 나는 꼭 아구리코 님을 밖으로 빼낼 거야. 햇살과 대지를 아구리코 님에게 돌려드려야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누르면서 치요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내 생각

판타지에 스릴러까지 가미된 책을 한 장씩 넘기며 궁금해서 참기 힘들었다. <전천당> 시리즈 작가답게 흡입력 있게 독자를 유혹한다.
욕심이라는 게 참 뭔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어이없다가도 치요와 아구리코의 사연을 읽으면서 애처로운 마음이 든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바라는 게 인간의 본능이면서도 어느 정도의 선을 지켜야 하는지, 또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리고 조절하며 살아야 할지 깨닫게 하는 바가 많다.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은 '신'이라는 소재로 극단적으로 비칠 수 있지만 조금만 더 확대해 보면 이 이야기는 비단 책 속에만 존재하는 일이 아니기에 더욱 씁쓸하다. 바라던 뭔가를 이루면 처음엔 고마움을 느끼다 거기에서 멈춰야 하는데, 사람의 마음이 바뀌는 건 한순간이고, 탐욕으로 번져, 해서는 안 될 일까지 스스럼없이 벌이게 된다. 누군가를 탓하려는 게 아니다. 나 또한 가질 수 없는걸 가지려 욕심부린 적이 너무 많기에 잠시 반성을 해본다. 같은 이야기라도 누군가 내게 '욕심부리지 마라!'라며 훈계하면 거부감이 들 테지만 흥미진진한 등장인물과 그들의 애처로운 대사가 생동감 있게 들려와 자기개발서보다 이런 글이 더 끌리는 것 같다.
학부모님들의 욕심에 자녀들이 힘들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학부모님을 욕하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더 잘 해보려고, 자녀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영어 공부를 강요할 수밖에 없는 심정이 십분 이해된다. 수업 외에 매일 이루어지는 전화상담을 통해 나와 학부모님은 어려움을 나누고 최대한 더 나은 방향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성적 외에도 수업 중 아이에 대해 관찰한 바를 자세히 말씀드린다. 부모님이라도 교실에서 어떤 특정한 순간에 자녀가 내뱉은 말과 행동을 다 알 리가 없다. 의외의 모습일 것 같은 찰나를 잘 기억하고 메모했다가 전달하며 아이의 성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제는 내가 예전보다는 더 자신 있게 아이가 힘들어하면 영어 공부를 조금 쉬게 해달라고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수업 중에 방긋방긋 웃으며 즐거워하는 귀염둥이들의 얼굴만 봐도 가끔 애처롭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좋으나 싫으나 영어 공부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기에 일단 학습자가 즐겁고 소화할 수 있는 정도를 찾아가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이런저런 말과 철학도 나만의 욕심일 수 있기에 교육엔 정답이 없고 나도 알아가는 중이라고 조심조심 말씀드린다.
책을 읽으며 내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남들에게, 특히 내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에게 욕심을 내비치진 않았는지 돌아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인 견해를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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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의 봄
강경애 지음 / 다봄북스 / 2020년 10월
평점 :
품절


책을 꼼꼼히 읽으며 밑줄 긋고 싶은 구절을 골랐다.


- 밑줄


p. 10

대중은 중하요, 현실은 판로라 하였으나 이와 반대로 대중은 ‘힘’이요 현실은 ‘길’이라 하고 싶다. 우주에 상하가 없는 것같이 문명과 야만도 상하 분별이 없을 것이니 반드시 문명을 산봉우리로, 야만을 산기슭으로 비유할 것도 아니다. 대중의 힘은 그때그때 현실의 길을 문명, 야만 어느 것을 막론하고 향하는 대로 쉴 새없이 몰아 나갈 것이니 여기 있어서 즉 핸들이 필요할 것이며 또 핸들을 잡는 영적 동물을 요구할 것이다.

p. 42

나는 언제나 글을 쓰게 되면 맨 먼저 남편에게 보입니다. 그는 한참이나 말없이 묵묵히 읽어본 후에 나에게로 돌리며 다시 한번 크게 읽어보기를 청합니다. 나는 웬일인지 그 순간만은 가슴이 떨떨해지며 남편이 몹시도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울울한 가슴으로 읽어 내려가다는 남편이 어느 구에 불만을 품게 되었는지를 곧 발견하고 즉석에서 다시 펜을 잡아 고치는 것입니다. 다 고친 후에 나는 크게 읽으면서 그의 눈치를 살피면 그는 만족한 웃음을 입가에 띄우며,

“이번에는 좀 나아진 듯하오!”

이 말을 듣는 나는 어찌나 기쁜지 그만 가슴이 뛰어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이 거의 늘 당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남편이 없어 혼자 쓰게 될 때에는 이보다 더 갑갑하고 안타까운 때가 없습니다. 그래서 두세 번 읽어 보거나 그렇지 않으면 쓴 채로 내버려 두거나 하게 됩니다.

* 생각하고 싶은 부분: 글을 쓰고 나서 소리 내어 읽는지, 가장 먼저 읽어주는 이가 있는지, 어떤 독자가 내 글을 읽길 기대하며 서평을 쓰는가? 출판 번역가(사실 밝히고 싶진 않지만 여기에 이렇게 써야 숨지 않을 것만 같아서 ^^;;;)를 꿈꾸는 내게는 번역 스터디를 같이 하는 두 명의 벗이 있다. 그분들은 나보다 번역 실력도 훨씬 뛰어날뿐더러 인품과 태도 등 배우고 싶은 점이 많은 분들이다. 그들은 나의 서툰 번역을 가장 먼저, 나보다 더 꼼꼼하게 읽는다. 정말 소중하다. 이 페이지를 읽으며 스터디원이 떠올라 뭉클했다. 내 글을 읽어주는 이가 있으니 나만 글을 잘 쓰면 된다. 바쁘다는 핑계로 후다닥 번역 연습을 한 후 번역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이제 소리 내어 읽어야겠다. 강경애 작가처럼 남편은 없지만 내 글을 읽어 주는 이들이 있음에 더욱 조심조심 퇴고하며 번역하는 습관을 길러야겠다.

p. 44

눈이 아물아물하도록 펴나간 저 푸른 벌! 그 속으로 반듯반듯 빛나는 작은 시내며 이 산모퉁이 저 산모퉁이 끝에 다정스레 붙어 앉은 농가들, 그리고 들을 건너 깃을 찾는 새무리들은 푸른 하늘가에 높이 떴습니다. 그 날개까지도 파랗게 보이죠. 낮이 저들에게 있어서 엄한 아버지라면 밤은 저들에게 자애스러운 어머니일 것입니다. 그 평화스러운 품 안에 안기어 차츰차츰 잠들어가는 저 푸른 벌, 누가 감히 저들의 고운 꿈을 깨칠 수 있으랴.

p. 50

붓을 들고 쓰지 못하는 이 가슴! 입이 있고도 말 못하는 이 마음! 저 달 보고나 호소해볼까. 그러나 차디찬 저 달은 이 인간사회의 애달픈 이 정황에 구애되지 않고 구름 속으로 또 구름 속으로 흘러간다.

대자연은 크게 움직이고 있다.

p. 56

내 손끝은 물에서 헤엄질 칩니다. 빨래는 희어집니다. 헹구면 헹굴수록 희어지는 이 빨래, 새 옷을 입을 때의 쾌감보다도, 때 묻어버릴 것같이 알았던 이 빨래가 눈이 시어지도록 희어지는 쾌감이야말로 빨래하는 이가 아니고서는 상상도 못 할 것입니다. 무심히 보니 내 손끝은 파란 물결 속에서 붉게 타오릅니다. 나는 손을 번쩍 들며 ‘봄이다!’ 하고 중얼거렸나이다.

pp. 98-99

나는 약수터에 가서 약수를 한 컵 쭉 들여 마시고 나니 심신이 아울러 날아갈 듯한 가벼움에 쌓여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벅찬 가슴을 붙안고 약수터를 벗어나 천천히 걷기로 하였다. 쳐다보니 앞산이 하늘에 닿았고, 그 산을 덮어 떡갈나무, 참나무, 오리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밤나무, 소나무 등이 그 자리를 다투었고, 그 사이를 안개가 벌레처럼 날아다닌다.



길가 이름 모를 긴 풀잎에 이슬이 산딸기처럼 무르익었고 어깨위를 어루만지는 나뭇잎에서 생선 비린내가 후끈거린다. 냇물은 귀밑에서 돌돌거린다. 아니 발아래서 사물거린다. 그 소곤거리는 소리에 입김이 섞여 있는 듯, 휘끈 돌아보게 된다. 척척 휘늘어진 버드나무 가지를 헤치고 푸른 바위 밑을 돌아 함박꽃 같은 웃음을 터뜨리며 돌돌 굴러내린다. 아침이라 맑음을 더해서 푸른 리본을 달고 나팔거린다. 우악스레 큰 놈, 얄밉게 도드라진 놈, 미욱스레 한가운데 떡 버티고 선 놈, 이러한 바위돌들을 얼리고 달래면서 언제나 그 눈썹에 겸손한 웃음을 띠고 흘러내린다.

원컨댄, 세속에 티 묻은 이 몸과 맘을 저 샘물에 씻어버리고저. 나는 가만히 앉아 물을 쥐어본다. 다정하면서도 차디차다. 손끝을 베어갈 듯한 매움이 들어 있다. 그 속에 산내음새 오이내같아……

* 생각하고 싶은 부분: 자연이 선사하는 감각적인 기쁨을 느낀 적이 언제였고 자연으로부터 위로받은 경험이 있는가? 나는 걷는 게 너무 싫었다. 당연히 운동은 할 리가 없었지. 800미터 거리의 빵집을 갈 때도 차를 끌고 가는 그런 인간이었다. 그런데 작년에 허리 디스크 파열로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살 수 없어서 날씨가 따뜻할 때 한 시간 이상씩 걸었던 적이 있었다. 청계천과 동네 뒷산을 걸으며 두 눈에 푸르른 나무와 들꽃을 담았는데 그 느낌이 퍽 신선했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나는 일만 미친 듯이 하며 일에서 즐거움을 찾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 빵을 흡입하며 고칼로리 음료를 벌컥벌컥 마셔댔다. 그래야 전투적으로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나 보다. 작년에 아프지 않았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자연의 소중함을 걷기를 하며 이렇게나마 발견했다. 왜가리가 작은 천에 살고 있다는 것도 놀랍고, 왜가리를 소재로 독서모임 친구와 한 시간 이상 조잘조잘 이야기를 나눈 경험도 참 신기하다. 요새 한참 걷지 않았는데 자연을 세세하게 관찰하면서 잠시나마 이런저런 생각에 푹 빠지고 싶다.


강경애는 1906년에 황해도에서 태어난 소설가이다. 그 시대에 드물게 하층민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했던 작가로 여러 작품을 집필했으며 조선일보 간도 지국장을 역임했다. <인간 문제>는 발표 당시에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독서 모임의 첫 책인 <간도의 봄>을 읽는 중 첫 글에서부터 대쪽같은 면모가 드러난다. 자신이 생각을 드러낼 수 있는 자신감이라는 게 약 100년 전에, 더욱이 하층민 여성의 입장에서 쉽지는 않았을 텐데 참 멋있다. 또, 여성의 독서 장려를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음을 책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굉장히 현실적으로 자신의 유년 시절부터 결혼한 이후의 삶을 서술하는 데 잠시 멈춰서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 많았다.

산문집으로 이루어진 <간도의 봄>의 짧은 글을 하나씩 읽으며 독서 편식을 했던 내가 몰랐던 책도 읽어봐야겠다는 결심을 굳혔기에 참 소중하다. 나는 오래도록 영미 소설 위주만 읽었던 것 같다. 강경애 작가의 작품을 더 읽고 싶다는 마음에 설렌다.

한 달 여전, 이 책을 구입한 후 거실 탁자위에 툭 올려놓고 책의 존재를 잠시 잊고 있었다. 하지만 책은 다른 누군가에게 가서 관심을 받았다.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엄마가 이 책을 다 읽었다는 게 아닌가. 엄마는 책을 잘 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한 대가 아니라 두 대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엄마는 어렸을 때 책을 많이 읽었다고 가끔 이야기했는데 내가 그걸 마음대로 무시했던 것 같다. 엄마는 어릴 적 고향과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제 이 책을 나보다 더 먼저 읽은 엄마의 이야기가 다르게 다가온다. 경외심까지 든다. 문득 엄마와 독서 모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런저런 독서모임에서 활동 중이지만 가끔 혼자만 떠들어대는 모임원때문에 피로감을 느낀 적이 많다. 그런데 우린 가족에겐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그렇게 타인에겐 싫은 내색 하나 없이 고개도 끄덕여가며 열심히 맞장구치는 나를 조금만이라도 엄마 쪽으로 끌고 와야겠다. 강경애 작가의 책 <소금>도 얼른 구해와 엄마와 읽어야겠다. 또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거다. 안 하던 걸 하려니 솔직히 벌써부터 걱정이 앞서지만 나중에 분명 하길 잘했다고 생각할 듯하다.


뭐든지 처음은 남다른 의미가 있지 않나.

나는 이 책을 여러 면에서 잊지 못할 거다.

독서 편식에 대해서도,
엄마와의 독서 모임도,
내가 바라보는 엄마의 삶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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