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밖의 이름들 - 법 테두리 바깥의 정의를 찾아서
서혜진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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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부터 법을 다룬 책을 읽고 싶었지만 내가 읽기에 어렵거나 딱딱한 책이 많았다. (당연히 내가 아는 게 없어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소개 글을 읽으며 궁금해졌고, 추천사를 보니 글을 잘 쓰는 변호사님의 책이라고 느껴져서 망설이지 않고 서평단 도서로 신청했다.
내 예감은 적중했다. 다른 책들에 비해 많이 어렵지 않아서 잘 읽혔고, 역시 글을 잘 쓰는 저자의 작품이라 성찰할 부분이 많았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인권 변호사’라는 호칭이다.
서혜진 변호사가 일을 하면서 인권 변호사니까 돈이 안 되겠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고 한다. 아니면 인권 변호사니까 돈을 밝히지 않고, 더 나아가 돈을 받지도 않고 일할 수 있는 변호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내가 똑같은 말을 직접 한 적은 없지만, 나도 모르게 타인을 불편하게 하지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사람들이 으레 사용하는 호칭이나 언어라도 적절하게 쓰이는지 생각해야겠다. 

또 아동학대를 다룬 글도 유심히 읽었다. 친자식에게 직접적인 해를 가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피해 상황에서 개입하지 않아 문제가 된 경우, 부모도 공범이나 방임 혐의로 입건해 수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글을 읽었는데, 자녀가 부모가 처벌받는 걸 원치 않아서 곤란한 상황이 발생한다고 한다. 오히려 도와주려는 변호사에게 으름장을 놓는 경우가 있다는데 내가 그 자녀라면 혹은 부모라면 어땠을까, 고민하면서 읽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려운 상황이라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힘들 것 같다.

19살이었던 한 여성이 밤길을 걷다가 도로 위에서 다가온 남자의 혀를 깨물어서 혀의 일부가 절단된 사건인 ‘혀 절단 사건’에 대해 자세히 읽었다. 언뜻 뉴스에서 본 기억이 있다. 1964년에 사건이 일어났고, 1965년 법원에서 난 판결은 “성폭력을 당하는 순간에도 결코 가해자의 혀를 깨물어서는 안 돼!”이다. 당시에 혈기 왕성한 젊은 남성의 당연한 호감이자 구애 행위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키스 한 번 하려다 혀가 잘려 벙어리가 된 남성의 억울함에만 초점을 맞출 때, 최말자 님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하지만 이번에 찾아보니, 올해 7월 23일, 검사는 재심 재판에서 최말자 님에게 무죄를 구형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61년 만이었다. 이 사건은 형법 교과서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판례로,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는 대표적인 판결로 소개되었다. 엉성한 법체계로 고통스러워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답답한 심정이다.

책을 읽으며 가끔은 힘들었다.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들, 친족 성범죄에 노출한 사람들 등 그들이 입는 피해가 한 번이 아니라 무수히 반복되었다. 저자인 서혜진 변호사가 힘이 없고, 버텨온 사람들 편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재판에서 더 나은 결과를 얻어 가는 경험들이 소중하다. 새로운 책을 읽으면 몰랐던 현실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간다. 아직도 무력하게 피해를 입고 있는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하고 그 외침이 사회의 관심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출판사에서 책을 증정 받아 읽고 주관적인 생각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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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
앨러스테어 레이놀즈 지음, 이동윤 옮김 / 푸른숲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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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대전환>은 SF의 거장인 저자 앨러스테어 레이놀즈의 첫 한국어 역서라고 한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작가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작가의 왜 그동안 책을 접하지 못했나 궁금했다. 이번에 운이 좋게 서평단에서 책을 증정 받아 읽을 수 있었다.

원정대가 배를 타고 탐험을 떠나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데 배를 타고 구조물을 구하러 탐험을 떠나다 또 죽음을 맞이한다.
세기가 바뀌어서 같은 일이 자꾸 일어난다.
미지의 구조물을 찾기 위해 떠난다. (책에서 ‘구조물’이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나오는데 직접 읽으며 느끼길 바란다.)
주인공 사일러스는 기시감을 느끼면서 자신이 이전에 몇 번 죽은 경험이 있다는 걸 깨닫기도 한다.

이렇게 플롯을 설정하다니 정말 놀라웠다.

첫 문장부터 몰입하게 만들었다. ‘발소리가 나를 악몽에서 구해냈다.’로 시작해서 사람들마다 저마다 걷는 습관이 있다는 장면이 나오는데 초반부터 장면이 명확하게 잘 그려졌다.

나는 개인적으로 소설을 읽을 때 전체 이야기의 흐름, 캐릭터 등도 중요하지만 공간에 집중하게 되는데, ‘배’라는 공간이 주는 예측 불가능하고 낯선 느낌이 어깨를 움츠러들게 하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앨러스테어 레이놀즈의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역량이 있는 작가답게 배경지식을 밀도 있게 다루면서도 이야기의 흐름이 좋아서 작가가 얼마나 치밀하게 연구하고 준비했을까 감탄했다.
여러 장르의 글을 좋아하지만 SF 만큼 작가의 역량이 무궁무진하게 드러나는 장르가 없다고 생각한다. 과연 상상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입이 떡 벌어진다.

출판사에서 책을 증정 받아 읽고 주관적인 생각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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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울의 내가
현호정 지음 / 사계절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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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호정 작가의 소설집 <한 방울의 내가>를 읽었다. 현호정 작가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2020년 제1회 박지리문학상으로 등단했다는 이력을 보고 끌렸다. 박지리 소설가의 책을 읽고 적잖이 받은 충격이 아직도 생각난다.

이번에 소설집에 묶인 7편의 작품을 읽으며 참 신기했다. 약간 낯설게 느껴지는 지점이 많았다. 아마도 내가 이런 종류의 글을 많이 읽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점점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들어서 싫지 않았다. 아주 작은 것에 시선을 둔 작가의 관찰력이 돋보인다. (솔직히 호불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현호정 작가만의 개성이 물씬 풍기는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살아있는 것들과 우리가 지키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이런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작가가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아무나 이런 글을 쓰지는 못할 것 같다.

아주 세심하게 우리의 신체를 말하다가 또 자연으로 이어진다. 작품 하나하나의 줄거리를 말하는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단편 하나씩을 읽다보면 서로 연결되는 지점을 깨달을 수 있다. 처음에 조금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글도 천천히 곱씹게 된다. 특히 <한 방울의 내가>가 희곡으로 탄생되었다고 해서 놀랐고, 그 상상력을 무대 위에 어떻게 표현할까 궁금하다. 뒤에 희곡집도 수록되었는데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좋았던 부분이 있어서 올리고 싶다.

248쪽
나: 메이! 메이! 내가 너에게 갈게! 사람들이 도망치고 바람이 달려왔어. 사람들은 왜 도망치는 거지? 이렇게 금세 붙잡혀 넘어지거나 다 젖어버릴 거면서. 너.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바람이 물었고 정말 몰라서 물어? 나는 되물었어. 메이에게 가야지. 메이한테. 지금 넌 바다야. 내가 말했지. 그리고 이제 메이의 눈물은 해일을 일으킬 거야. 내가 예언했어. 내가 그렇게 만들 거였어. 내가 해낼 거였어. 메이 너를 위해서

이렇게 대사가 이어지고 '나'는 계속 말을 이어간다. 멈추려는데 몸이 통제가 되지 않는다고 실토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자기의 몸이 너무 커지고 강해졌다는 걸 깨닫는다. 그러면서 제발 멈추어달라고 절규한다. 휘몰아치는 감정이 느껴진다. 어떻게 배우의 연기와 무대 분위기, 음악으로 표현될지 정말 궁금하다.

다음에 또 이 책을 읽으면 다른 감정을 느낄 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때 내가 지닌 생각에 따라 유기적으로 다른 감정이 휩쓸고 갈 듯하다.
다양한 책을 읽어서 느낄 수 있는 이런 낯선 감정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래서 읽기 잘했다고 생각된다.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인 생각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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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주의보 - 제8회 윤석중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이금이 고학년동화
이금이 지음, 양양 그림 / 밤티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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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이금이 작가의 동화집이다. 이번에 다시 개정판으로 나온 책인데, 지금 시대에 맞게 이금이 작가가 단어와 설정을 바꿨다고 한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원작을 읽어보고 싶다.

<건조주의보>는 가족 중 자기만 건조하지 않은 것 같아 소외감을 느끼는 아이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누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안구 건조증, 아빠는 피부 건조증, 엄마는 구강 건조증으로 힘들어 한다. 주인공은 가족들이 자기한테는 관심도 없고 누나만 좋아하는 것 같아 질투를 낸다. 이런 감정은 보편적인 감정을 불러일으켜서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이 많이 공감할 것 같다. 마지막에 주인공을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주인공에게 건넨 “넌 마음이 건조해!”라는 한 마디에 갑자기 기뻐한다. 여자아이가 주인공에게 좋아한다는 마음을 표현하는데도 계속 눈치가 없자 마음이 메말랐다고 해도 계속 못 알아듣는다. 주인공은 자기를 좋아하는 아이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고 그저 건조하다는 말에 뛸듯이 기뻐한다. 이런 맛에 동화를 읽는 게 아닌가 싶다. 예상치 못한 전개와 엉뚱한 마음이 표현되어 읽다보면 미소가 절로 나온다.

<닮은꼴 모녀>에서는 코미디언이 되고 싶은 여자아이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자 엄마는 관심도 없는 것 같아 서운해하는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공부보다 친구들을 재미있게 해줄 때 큰 기쁨을 느끼는 주인공이 개성있는 얼굴이 싫어진다. 좋아하는 아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그 아이의 학습지 선생님이 주인공의 엄마다. 학습지 선생님을 존경한다고 수업 시간에 발표한 장면을 보고 주인공은 의아해한다. 자신이 알던 공부만 강조하는 엄마와는 아예 다른 사람이 자신의 엄마였다는 사실에 놀란다. 이 글을 읽으며 우리는 가족끼리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만 또 그렇지 않다는 지점도 알게 된다. 제 3자로부터 들은 이야기 하나에 놀라고 다시 보이는 면이 많을 것이다.

이 외에도 재미있는 글이 세 편 더 수록되어 읽는 재미가 있었다. 짧은 글을 하나씩 읽으며 긴 여운이 남아 바로 쭉 읽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 작품씩 읽고 천천히 감동받을 수 있어서 계속 읽고 싶은 책이다. 역시 명성대로 어린이의 마음을 잘 헤아리면서도 감동이 밀려오는 글을 쓰는 이금이 작가다. 일상을 살아가며 이런 작품을 읽으면 자연스레 나의 어린 시절도 생각나고 지금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도 떠오른다. 그래서 내가 동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 좋은 작품을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인 생각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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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귀
문화류씨 지음 / 북오션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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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귀>의 표지를 보고 충격 받았다. 굉장히 강렬한 포스를 마구 내뿜는 디자인이었다. 나에겐 생소했지만 저자인 ‘문화류씨’가 유명하다고 한다. 처음으로 장편을 썼다니 어떤 내용을 펼쳐놓을까 궁금해서 서평단 도서로 신청했다.

빠른 속도로 굉장히 흡입력있게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주인공의 집안 어르신들과 친척들이 계속 죽음을 맞이하고, 아버지마저 괴수에게 잡힌다. 그 광경을 목격한 주인공은 공포에 떤다. 미친듯이 뛰다가 낯선 남자가 주인공을 구해주는데, 더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귀신들이 너를 쫓고 있다는 내용을 듣게 된다. 이 남자의 집에서 5년간 지내며 나중에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낱낱이 밝히리라 다짐을 하지만 결코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자세한 내용은 적지 않겠다.)

초반부터 재미있긴 했지만 사람 이름 등의 정보가 많이 나와서 집중하며 읽어야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지점이 지나가면 이야기가 흥미있어서 다음 장이 궁금해졌다.

단순히 괴담이라고 보기에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비슷한 부분이 꽤나 많다. 저자는 실제 투병 생활을 하면서 집필을 했다고 하는데, 얼마나 치열하게 이 글을 써내려 했을까, 그 절실함이 느껴졌다. 또한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일까지도 비슷하게 느껴지는 장면이 있어서 많은 걸 일깨워주는 책이다.

또 한 명의 작가에게 관심이 간다. 뜻밖의 책을 읽다보면 좋은 점이 이런 거라고 느낀다. 이제 ‘문화류씨’를 검색하며 그의 작품을 하나씩 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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