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사생활 아이의 사생활 시리즈 1
EBS 아이의 사생활 제작팀 지음 / 지식채널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자녀교육에 대한 철학과 원칙을 세울 때는 내 아이에 대한 믿음이 밑바탕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믿음이란, 우리 아이에게는 부모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능력이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그리고 그것을 부모가 믿고 뒷받침해줄 대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철학과 원칙이 자녀의 의시와 반대되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 자녀교육에 대해 철학과 원칙을 세우려는 부모에게 "아이의 사생활"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다섯 가지 덕목을 선사합니다. 우선 내 아이가 가진 능력을 바르게 이해하고 파악하기 위해 두뇌의 비밀, 아들과 딸의 차이, 다중지능 이론을 소개합니다. ... 또한 아이가 가진 능력이 더욱 가치 있고 행복한 결실로 맺기 위해 도덕성과 자아존중감을 소개합니다. ... 우리의 아이들은 보물창고이자 난해한 글이 가득한 비밀문서와 같습니다. 열쇠가 없으면 보물창고를 열 수가 없고, 암호를 모르면 비밀문서를 읽을 수도 없습니다. 이 책 속에 그런 열쇠와 암호가 있습니다.   (5-7쪽)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생각과 마음, 느낌을 말로 표현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관계라 할 지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다른 누군가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더욱 그렇다. 순전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만으로 풀어낼 수 없는 여러 가지의 잡다한 것들이 섞이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과의 만남에서는 조금 다르다. 어느 정도는 생각이나 마음, 느낌을 말로 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대화 가능 수준이 요구될 수 있긴 하지만 이는 그리 큰 제한 사항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아이들과는 허물없는 이야기, 대화가 가능하며 더 나아가 마음으로 받아들 수 있을 만큼의 넉넉함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들의 태도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특히나 교육의 현장에서 (그것이 가정이 될 수도 있겠지만 보다 전문적이고 특성화된 공간에서도)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들의 마음자세는 한 번쯤 심각하게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항상 가르침을 받아야만 하고, 지도를 받고, 통제를 받아야 하는 대상, 어리숙하고 성숙하지 못한 미완성의 존재라는 생각이 오히려 아이들과의 대화를 가로막는다. 그래서 신뢰라는 것을 주지 못한다. 이런 어른들에게 이 책은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생산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아이들을 향한 신뢰라는 것을 되짚어 주고, 그들을 보물창고로 여기며 그 보물창고로 다가서는 열쇠를 소중하고 조심스레 다루는 마음을 생겨나게 해 준다. 여기서 이해와 받아들임의 공간이 생겨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철학적인 내용보다는 실험적인 내용, 이해를 도와주는 실제적인 사례들로 여러가지 정보를 전달해 준다. 그 정보들을 꿰어가며 아이들과의 만남을 풍성하게 하는 것은 읽는이의 과제로 남겨질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앙감정론 조나단 에드워즈 전집 1
조나단 에드워즈 지음, 정성욱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0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국의 식민지 시대는 아직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았던 시대였다. 따라서 종교적 삶은 정치, 사회적 삶의 기준과 같았다. 특히 영국이 미국 식민지의 주도권을 잡은 이 후는 회중교회의 청교도적 삶이 사회를 지배하는 법으로, 기준으로, 신념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의 미국은 급증하는 이민자와 더불어 새로운 종교적 지형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기독교는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었다. 한편으로 종교는 식민지 환경이 빚어내는 독특한 상황 속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감정에 맞는 종교를 만들어내야 하는 요구를 받게 되었다. 이 과정은 청교도적 전통사회를 이어가고자 했던 자들에게 당연한 위기였다. 사회를 지배하고 사회에 종교적 삶을 요구하는 것이 그들이 뜻하는 바였으나 새롭게 만들어져가는 종교적 지형은 이와 정반대의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기는 또 다른 기회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제1차 대부흥의 종교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1차 대부흥은 감성적 종교경험을 중요시하며 개인의 경건과 영성을 추구하였다. 이는 식민지 기독교의 주축을 이루고 있던 교리적-이성적 기독교에 대한 일종의 반란과 같았다. 에드워즈는 이러한 대부흥을 이끌었던 대표자 중 하나였다. 바로 『신앙감정론』은 이러한 부흥운동의 시기 속에 쓰여 졌고 선포되어진 설교였다.

교리적-이성적 기독교, 곧 전통적인 청교도 사회는 부흥운동에서 일어나는 순간적인 회심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다. 설교를 들으면서 혹은 그 후에 갑작스럽고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어떤 변화의 과정, 신앙 결심과 결단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못했다. 전통주의자들은 오랜 교육과 훈련과정을 통해 교회가 가지고 있는 신앙고백을 내면화시켜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대부흥 시기에 이루어지는 개인적인 변화의 경험과 이러한 부흥현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열정적인 감정에 치우진 열광주의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에드워즈는 이러한 전통주의자들의 견해를『신앙감정론』에서 반박한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고백되어지는 신앙을 긍정하는 것이다. 특히 에드워즈는 흔히 생각하는 감정의 의미를 영혼의 의지, 성향, 마음의 움직임으로 풀어내어 전통주의자들이 비판하는 열정적이고 순간적인 인간의 육체적 느낌과 차별화 시킨다. 그리하여 참된 신앙 감정이 무엇인지, 참된 신앙 감정(affections)이 거짓된 감정, 단순히 육체적이고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격정(passions)과 어떻게 구별되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이 논지는 참된 신앙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참된 신앙 속에 누리는 감정은 어떤 것인지, 즉 신앙의 본질을 상세하게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에드워즈에게 신앙 감정은 영혼의 의지, 성향, 마음과 관련되어 나타나는 영혼의 움직임이다. 인간의 영혼에 이러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인간적이고 일반적인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영의 내주하심이었다. 성령의 내주하심에서 인간은 비로소 영혼의 감각이 변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영적인 감각, 미각의 변화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의 거룩함, 도덕적 탁월함을 볼 수 있게 되었고 그 거룩함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인간은 영혼의 감정을 통해 진리를 이해하고 확신하게 된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본 인간은 겸손해 질 수 밖에 없다. 두려워 하나님을 경외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전적으로 무능하고 추악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거리가 놓여져 있다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거리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여하게 되는 변화는 인간 스스로에게서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변화이기에 크나큰 은혜이다. 이 은혜는 그래서 자애(Charity)와 같은 것이다.

이제 이 변화는 인간의 성품의 변화,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으로 확대되고 더욱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키운다. 변화의 과정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일시적일 수도 없다. 이 변화 속에서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맛보는 달콤함을 누렸고, 이 달콤함 속에 참된 행복과 즐거움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즐거움은 인간적인 것, 인간적인 상상에 기반한 감각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래서 초자연적인 것이다. 단순한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순간의 격정과는 견줄 수조차 없는 것이다. 에드워즈가 신앙감정론에서 말한 감정은 바로 이 초자연적인 것에서 누리는 영혼의 기쁨, 행복, 달콤함과 같은 것이다. 이 감정이 참된 감정이고 이 감정에서 참된 신앙인의 삶이 이루어 질 수 있다. 그러나 이 감정은 구분해 내기도 판단하기도 쉬운 것이 아니다. 성령의 역사는 다양하기 때문에 비밀스럽게 역사하시기도 하지만 인간이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도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 판단은 인간의 몫이 아니다. 그저 인간이 해야 하는 것, 신앙인이 해야 하는 것은 참된 신앙인으로서의 삶이다. 그래서 에드워즈는 신앙인이 마땅히 해야 할 바는 타인의 신앙과 감정을 구분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 감정의 지표를 따라 스스로를 성찰하며 “열매”를 맺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에드워즈는 감성적 종교경험을 중요시하며 개인의 경건과 영성을 추구하는 그 시대를 넘어선 신학적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교리적-이성적 기독교, 전통적 기독교와의 차별성을 보여주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에드워즈는 그 당시의 역사적 삶 속에서 호흡을 같이 하는 신앙인이기도 하였다. 에드워즈는 칼뱅주의적 청교도 신학의 전통을 견지하면서 교회부흥에 관한 외조부 스토다드의 열심을 발전시켜 부흥운동의 신학적 근거를 탁월하게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에드워즈의 칼뱅주의적 청교도 신학의 영향은 곳곳에서 살펴볼 수 있다.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전통적인 신앙고백의 중요성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이 신앙고백은 기독교의 본질적인 것에 대한 고백이었다. 곧 예수의 메시야 되심이다. 그리고 이 신앙고백은 그리스도인의 전제였다. 회개는 신앙고백에 필수적인 것이었고 이와 함께 세례를 받기 위한 필수적이고 가시적인 조건이기도 했다. 세례는 공적으로 행해져야 하는 것이었다. 또한 신앙을 고백한 자들이 자신들이 고백하고 있는 내용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일반적인 능력을 갖추도록 신앙의 원리들을 충분히 교육시켜야만 했다. 이렇게 본다면 물론 개인적인 경험과 경건에서 고백이 이루어진다는 측면에서는 전통주의자들과 차이는 있겠지만 교육과 소정의 훈련과정이 이루어져야 하며 공적으로 행해져야 하는 부분도 있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그 영향을 찾아볼 수 있겠다. 그리고 결국 에드워즈가 말하고자 했던 신앙의 거룩한 실천적인 부분, 열매 맺는 신앙을 위한 삶도 그 엄격함이나 철저함에 있어서 당시 사회에서 강조되었던 청교도적 삶과 견주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야기 교회사 - 교양인을 위한 13가지 기독교 신앙 이야기
이성덕 지음 / 살림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우리의 기독교회와 기독교 신앙은 역사의 과정 속에서 탄생하였으며,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전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의 기독교적 정체성은 이러한 전통 속에서 형성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기독교인에게는 이 전통을 잘 알아서 소중하게 생각하고 계승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통을 계승한다는 것이 단지 과거의 것을 그대로 오늘에 재현하는 것을 아닐 것입니다. 전통이라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과 전승을 각자의 시대에 맞게 소통 가능한 언어와 사상과 제도로 재해석하여 현재화하려는 치열한 노력 속에서 탄생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통의 올바른 계승이란 바로 이러한 정신을 우리의 시대에 맞게 창조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4-5쪽)

기독교가 역사적인 종교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가슴에 담아두는 것은 참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종교적 관심, 그것도 다분히 이데올로기적이거나 인간의 욕망에 지극히 충실한 것이라면 그것이 배태할 문제는 그리 간단하게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기독교는 그 문제를 심각하게 앓고 있는 듯하다. 기독교가 역사적인 종교라는 것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절대절명의 확고한 권위를 가진 종교가 아니라 인간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좌충우돌하며 지독히도 종교적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모순을 겪어내고 또 겪어내 왔던 종교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어찌보면 기독교의 역사성은 그 모순의 발견에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이 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그러한 역사적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접하기 위한 디딤돌과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제목에 충실하고자 한 책이다. 교양인들이라는 일반 독자들에게 - 물론 여기에는 기독교인들이 들어갈 것이다 - 역사적 종교로서 기독교가 어떠한 변천과정을 겪어 왔는지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 되는 성서와 또 다른 한 축으로 볼 수 있는 신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기독교 공동체의 신앙을 표현해 왔던 절기와 예식, 또한 기독교 공동체의 실체적 모습들을 각각의 주제로 뽑아내어 이에 대한 뿌리 깊은 시대적 배경을 일련의 시간 순으로 이야기한다. 그리하여 성서의 내용을 기초로 삼고, 초대교회와 중세교회를 거쳐 종교개혁가들의 이야기를 중심적으로 들려주면서 현재의 모습에 대한 반성적 검토에까지 이르게 도와준다. 역시 중심은 기독교 자체의 모습이고, 그 중에서도 프로테스탄트의 입장이 대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말하는 것은 여기서 한층 더 나아갈 필요도 있겠다. 교회라는 제도적 실체, 신앙 공동체로서의 실존은 교회 자체의 시대적 변천사 속에서만 존재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리라는 것은 교회내에서만 치열한 논쟁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긴밀한 영향력 속에서 이루어졌고, 이러한 뿌리깊은 배경은 교회를 교리를 뛰어넘어 서구의 정치, 문화적 형태 자체를 기독교적 양상을 보이도록 만들어 버렸다. 종교가 드러나는 지점, 종교의 역사성은 따라서 보다 포괄적으로 바라봐야 함이 마땅하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기독교의 역사성은 종교 내부를 벗어나 있는 곳을 좀 더 심층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이 책을 비판하기에는 '기독교'에 대한 일련의 시대적 변천사 이해의 필요성이라는 측면을 간과할 수 없을 것 같다. 기독교의 역사성이라는 의미를 보수적, 획일적, 고정적인 전통의 느낌에서 벗어나게 도와주는 것으로도 적극적으로 이 이야기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겠다. 그래서 디딤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기 성장 보고서 - EBS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EBS 아기성장보고서 제작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의 모든 아기의 엄마라면, 꼭 알아야 할 행복한 육아의 키워드 10!

하나. 엄마와의 접촉이 아기의 두뇌를 만든다.
두울. 온몸으로 세상을 배우는 아기, 마음껏 움직이게 하라.
세엣. 아기는 과학자로 태어난다.
네엣. 두되발달은 생후 3년간의 경험으로 결정된다.
다섯. 아기 두뇌발달에 가장 좋은 자극은 칭찬이다.
여섯. 엄마와의 안정된 관계는 인간관계의 원형이다.
일곱.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야말로 아기 생애 최고의 선물이다.
여덟. 아기의 언어습득은 자궁에서부터 시작된다.
아홉. 말 잘하는 아이로 키우려면 아기의 대화상대가 되라.
여얼. 내 아이의 기질을 이해하는 것이 최상의 양육법이다. 

                                                                                  - 뒷표지에서 -

나에게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삶은 그래서 살아봐야 하는 것 같다. 막상 새로운 생명이 선물로 다가오니 모든 것이 새로워 보인다. 그리고 문득 들었던 생각은 내가 생각이상으로 어린 아기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 그저 무지함 그 자체라는 사실이었다. 또 다른 생명을 자신의 몸에 직접 품지 못하고, 생명의 신비로움을 몸으로 함께 직접 겪지 못하는 남성이라는 신체적 제한에서 비롯한 무관심이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위안을 던져 보면서도 뒷맛은 개운치 않다. 그런 면에서 이 책에서 아기와의 가장 중요한 대상으로 엄마를 선정하고, 모든 이야기를 '엄마'라는 존재를 중심으로 풀어내려가는 것에 대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해 보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빠'도 분명 아기에게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약간의 아쉬움 내지는 조그마한 불평을 던져본다.
어찌되었든 그 무지함을 달래기 위해서 구입한 첫 번째 책이다. 나 스스로도 놀란 초짜 부모의 마음인 듯... EBS 다큐멘터리였다는 사실만으로 신뢰감을 듬뿍 갖고 구입했다. 사실 최근들어 EBS에서 괜찮은 다큐멘터리 작품들이 방영되는 것을 보고 간간히 시청을 하곤 했다. 아이의 사생활, 동과 서 - 사고구조, 상상에 빠지다, 녹색혁명 등등. 다큐멘터리의 내용도 실제적인 실험과 관찰, 전문가들의 참여와 조언들, 다양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어서 내용에 대해 신뢰를 할 수 있었다. 이런 다큐멘터리 작품들을 통해 유용한 정보들을 많이 얻었기 때문에 마음 편안히 구입하고 읽어내려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나같은 사람도 이렇게 반응을 하고 인식을 해서인지 최근에 다큐멘터리 작품을 영상자료로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기록자료로, 보다 대중적인 자료인 책으로 출판하는 경향이 생겨난 듯하다. 

아기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놀라운 생명력을 접할 때마다, 읽어갈 때마다 신비로움을 감출 수가 없다. 나중에 태어났을 때 아기와 함께 어떤 일을 겪어갈지, 그 때에는 신비로움이 아니라 어떤 실제적인 이야기를 적어내려갈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 엄마 배 속에 있는 이 조그만 아기가 가진 생명력의 놀라움이다. 그 생명력을 헤아려 보고 이 생명력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이 다름아닌 부모의 생명력이라는 사실을 짚어보면서 아기에 대한 두근거림과 설레임을 갖게 해 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내용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생명은 생명으로 살고, 또 다른 생명과 더불어 깊은 만남, 관계를 일구어 갈 때 그 아름다움이 더해질 수 있다. 부모가 풍성한 생명으로 아기의 생명을 대할 수 있을 만큼의 준비가 분명 필요하다. 이건 내 삶을 뒤바꾸는 새로운 경험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 책에서는 세상을 돌아다니는 바람의 딸이나 구호팀장인 여전사로서맹활약하는 현장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이번 책에서는 고단한 여행과 위험한 재난 현장에서 돌아와 한숨 돌리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 그렇게 다 털어놓고나니 알 수 있었다. 세상과 나를 움직이는 게 무엇인지 보였다. 세상을 향한, 여러분을 향한, 그리고 자신을 향한 내 마음 가장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도 또렷하게 보였다. 그건 사랑이었다. (8-9쪽)

한비야의 글을 두 번째로 읽었다. 나와 같은 사람과는 뭔가 다른 사람, 뭔가 특별하고 대단해 보이는 사람인 한비야가 이번엔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니 궁금하기도 했고, 뭔가 나의 마음을 꿈틀거리게 하는 그녀의 글을 다시금 접해 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기 때문이었다. 읽고 나니 한비야가 보여주는 자신의 솔직한 내면의 마음도 짚어볼 수 있었고, 역시나 뭔가 내 마음을 꿈틀거리게 하는 잔잔하면서도 여운 깊은 파도 물결을 맞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아깝지 않다. 참.. 잘 읽었다.

한비야의 글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은 행복발전소와 같이 솟아나는 기쁨과 열정의 힘이다. 그리고 그 매력은 내겐 가장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다시 되돌아 오는 듯한 느낌이지만 그래서 내게 가장 큰 매력일까.. 

행복의 조건이 순전히 외부에서만 오는 걸까? 외부에서 그 조건이 오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는 걸까? 나는 아니라고 믿는다. 바깥에서 어떤 종류의 힘이 가해지는 그것을 내 안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꿔 스스로 행복의 저건을 만들면 되는 것라고 믿는다. 이름하여 마음 속에 '행복발전소'가 있으면 되는 것이다. (64쪽) 내 안에 무엇이 들어와도 바꿔주는 '행복발전소', 그리고 일상의 사소한 일들을 행복으로 느끼게 하는 '행복센세' 이 두가지를 마음 속에 두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다. 우리 동네 떡집 할머니의 작은 칭찬, 베트남 복권 파는 아이의 씩씩한 희망, 그리고 집바브웨의 라면 한 봉지 같은 사소한 행복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 정도는 누구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그것도 아주 가뿐하게! (68쪽)

한비야가 주는 행복발전소의 매력은 거짓이 없이 솔직하고 진실된 그녀의 삶을 그대로 닮아 있기 때문에 더욱 크게 다가온다. 이전에는 그녀의 진실된 모습을 현장에서 찾았다면 이번에는 그녀의 내재적 모습에서도 찾을 수 있다. 자기 스스로  이러한 행복발전소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삶의 고된 순간도 맞부닥뜨리는 열정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일기장에 적으며 어금니를 악물었다. "어떻게 하든 참고 견디자. 이 고비는 반드시 넘어갈 것이고 나는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106쪽) 혹시 당신도 내 친구처럼 인생의 오르막길이 힘겨워 그만둘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는가? 내 경험상, 안간힘을 쓰며 붙들고 있던 끈을 '나, 이제 그만 할래' 하고 놓아버리면 그 순간은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 같지만 곧이어 찾아오는 '포기의 고통'은 더욱 깊고 오래갔다. 어쩌면 그 어려움이 마지막 고비였을지도 모르는데, 그것만 넘었으면 문이 열렸을지 모르는데, 하면서 후회막심이다. 돌이킬 수 없기에 그 후회는 더 뼈아프다. 그러니 젖 먹던 힘까지 내서 한발짝만 더 가보는 거다. 이제 정말 그만 하고 싶을 때 한 번만 더 해보는 거다. 딱 한 번만 더 두드려 보는 거다. (108-109쪽)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위에서 말한 모든 몸부림을 치고 있는 중이다. 자, 어떤가? 여러분도 머리르 때리는 글이 아니라 가슴을 때리는 글이 쓰고 싶은가? 그래서 기꺼이 이런 몸부림을 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 몸부림이 달콤한 고통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건투를 빈다. 내게도 건투를 빌어주시길. (117쪽)

맺을 수 없는 사랑을 하고 견딜 수 없는 아픔을 견디며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이룰 수 없는 꿈을 꾸자.  언제나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돈키호테>의 내용이다. 대단히 비현실적이고 비이성적인 말이지만 나는 이것이 젊음의 실체라고 생각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도전, 무모하리만치 크고 높은 꿈, 그리고 거기에 온 몸을 던져 불사르는 뜨거운 열정이 바로 젊음의 본질이자 특권이다. 이 눈부신 젊음의 특권을 그냥 놓아버리겠다는 말인가. (152쪽)

이러한 열정은 현실에서도 희망과 꿈을 포기하지 않고 더욱 성장해나가도록 북돋아 준다. 이러한 성장이 절대 얄밉게 보이지 않는 것은 그녀의 성장이 자기 자신의 영역에 국한된 성공, 물질 불리기와 같은 수준 낮은 것들이 아니라는 것에서 나온다. 언제나 남을 향한 시선을 가지고 있고, 특히나 그 시선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향하고 있으며,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시선에 도움을 주는 자로서, 도움을 이끌어 내는 자로서의 우월한 위치가 엿보이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한비야의 성장, 성숙이 얄밉지 않게 해주는 그것, 한비야의 고백 따라 그녀를 움직이게 하는 그것, 세상을 향한, 사람을 향한, 그리고 자신을 향한 마음 가장 밑바닥에 있는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사랑을 읽어서 행복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