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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 조선과 미국 선교사
류대영 지음 /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 2004년 5월
평점 :
450여쪽의 내용을 어느 것 하나 낭비되는 글 없이 꽉꽉 채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읽는이로 하여금 쉽지 않는 길을 걷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길은, 참고 걸어가서 그 종국에 이르렀을 때 쓰여진 내용을 꽉 채우고도 넘치도록 부어지는 듯한 깨달음, 통찰, 배움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가능한 것일게다. 이 책은 그렇게 꽉 채워져 있고, 또 채워지도록 한다. 마지막 결론 부분을 읽는 것은 딱딱한 역사로도 가슴이 설레이게 만들 수 있구나 하는 느낌을 안겨주었다. 참 잘 읽었다. 이 모든 내용을 머리 속에 다 기억하고 언제든 꺼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구한말 문명개화를 꾀하고자했던 조선 조정, 고종과 그를 둘러싼 여러 정치 세력들의 움직임과 조선을 향하고 있는 세계 열강들, 그런 것과는 아랑곳이 종교적 열심을 최우선에 안고 영혼구령의 열정으로 기독교 선교의 기치를 올렸던 미국의 선교사들, 이들의 역학관계가 보여주는 제국주의적 힘의 구도. 미국 선교사들이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보여준 서구 문명의 영향력과 그것을 받아들인 조선의 지식인들의 다른 꿈, 조선의 미래를 향했던 그들의 노력과 선교사들의 종교적 희망이 빚어내는 또 다른 갈등 양상. 이것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면서 개화기의 역사가 총체적으로 드러난다. 때로는 거대한 담론으로 그러나 때로는 한 개개인의 세세한 이야기들을 통해서. 이렇게 적어가면서도 한숨이 나오는 것은 이것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꽉찬 알맹이들 때문이다.
USA 라는 나라에 대한 아련한 동경이 만들어낸 미국이라는 이름을 보더라도 한국에게 있어 미국은 뭔가 아름다움의 대상, 추구의 대상이 되어온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것이 가깝게는 6.25를 겪으면서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통해 극단적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생산되고 고착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실상 그러한 이미지, 실제적 영향력은 그 오래전부터 역사의 흔적 가운데 지울 수 없는 커다란 유산처럼 쌓여진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개화기 조선에 들어온 미국 선교사들과 그들이 행한 인도적 차원, 종교적 차원의 여러 가지 일들이 양산한 긍정적 이미지들과, 철저히 상업적 자본주의의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가운데 정치적 제국주의의 침략을 피해가며 정교분리의 허울을 통해 선한 나라의 이미지를 쌓아간 미국 국무부와 한국 주재 공사관의 노력은 이미 조선 조정에게 미국에 대한 환상을 낳기에 충분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반 조선 민중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100여년지 훌쩍 지난 지금도 여전히 미국을 외치고 미국을 따라가기에 여념이 없는 한국의 현실은 개화기에서부터 이미 그 역사적 노정을 암시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환상은 너무나 순진해 보인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쩌면 인간은 알면서도 애써 그 앎을 무시하면서 환상을 추구하며 사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앎 자체가 없을 경우도 허다하겠지만. 그래서 앎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알아버리는 순간, 환상의 묘약은 사라져 버리니. 현실을 마주하기에는 내가 감당해야할 책임이 너무나 커 보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