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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스이카
하야시 미키 지음, 김은희 옮김 / 다산책방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집단 따돌림, 왕따'
무거운 현실문제를 다뤘다기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문제의 심각성을 너무도 뚜렷이 알고있는 어른이지만 해결책을 전혀 모르겠기에 부르르 떨리는 두 손을 불끈 쥐었다 놓으며 시선을 피해보리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모르고싶고 피하고싶은 답답한 주제를 과연 14살 소녀는 어떻게 풀어갈까?
나 또한 외롭고 지친 일상으로 상처받고 고통받으며 생을 놓고 싶어했던 학창시절을 경험했다. 친구가 삶의 전부인듯 모든 것을 쏟아부었지만 결국에 남는것은 불신과 버려짐. 그런 암울한 현실에서 그나마 지탱할 수 있었던 힘은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가족이 그리 큰 힘이 되어주진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또래의 대화상대가 없을땐 가족으로도 채울 수 없는 허전함이 늘 나를 괴롭혔다.
각박한 세상이란 말을 흔하게 쓴다. 특히 어른들이...
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인데, 책임은 지려하지 않고. 그래서 결국 책임질 당사자가 등을 돌리고 있기에 더욱 각박해 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중학생 스이카는 반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요우꼬라는 아이들의 무리에서 따돌림을 받지 않으려고 초등학생 시절 친했던 친구 치카를 따돌리는 게임에 동참한다.
마음은 무겁지만 자신을 지키려면 그 방법 밖엔 없는것이다. 그런 양심에 어긋나는 날이 계속되던 어느날 스이카는 용기를 내어 친구 치카를 돕게 된다.
그 일이 화근이 되어 따돌림의 대상은 스이카에게로 옮겨가며 일은 걷잡을 수 없이 험악해진다. 폭력과 폭언, 집단 무시로 이어지는 일상에서 스이카는 도와주는 친구 하나 없이 묵묵히 참아가며 아파한다.
누가 스이카를 만들었을까 보다는 누가 요우꼬를 만들었을까라는 질문에 먼저 고민해봐야하지 않을까? 약자와 강자는 늘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악인과 선인으로 구별되어지기에 14살의 나이는 너무 어리지 않은가? 많은 가능성과 당연한 부족함이 있는 것이다. 그 아이들이 부디 상처주고 상처받는 일만은 없도록 어른들이 돌봐야하는 것인데, 나는 과연 어떤 도움을 주었고 앞으로 줄 수 있을까?
스이카는 외로움을 달래줄 친구로, 사고로 앞을 볼 수 없고 부모를 잃은 유리에를 만난다. 유리에를 통해 힘을 얻고 위안을 받으며 견디어 보지만 아직은 여리고 약하기에 스이카의 고통은 줄어들 줄 모른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이라는 어른들이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상황과 혼자라는 절대고독 속에서 결국 스이카는 2층 교실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모든 상황을 끝낸 것이다.
과연, 그로써 모든 것이 끝이나며 스이카는 편안할까?
작가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고 만 스이카를 통해 결코 죽음이 해결책도 도움도 될 수 없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혼수상태에 빠진 자신의 육체를 빠져 나온 스이카의 영혼은 죽음 후의 주변상황들을 지켜보며 결코 홀가분하거나 편안한 결말이 아님을 깨닫는다. 딸의 죽음 앞에 오열하는 부모, 뒤늦게 후회하는 치카, 많은 만남과 인연을 남긴채 떠난 친구를 안타까워하는 유리에...스이카는 혼자가 아니었음을 알게된다. 다시 돌아가고 싶어한다. 살고싶어한다....그러나, 그러기엔 너무도 멀리 와버린 현실.
그렇게 스이카는 모두를 남긴 채 짧은 생을 마감한다.
스이카는 말한다.
"절대로 자신의 목숨을 버리지 말 것...최고로 비겁한 짓이야.난 너무 늦게 깨달았어...살아서 땅에 두 발을 굳게 딛고 있어야해. 등교거부든 뭐든 살아가는데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용기가 있다면 자신을 '쉬게 할 용기'도 가질 수 있는 법이니까. 죽는다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어. 이것만은 분명해."
이 말은 힘겨워하는 많은 아이들에게 기운을 차리고 다시 한 번 내일을 위해 오늘을 준비하라고 격려해 주는 메시지로 충분할 것이다.
14살 소녀, 하야시 미키의 자전적 이야기인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이 겪은 고통과 그것을 이겨낸 경험으로 같은 처지의 피해 아이들에게 희망과 대안을 전달해주는 근사한 소설이다. 처음 책을 읽으며 우려했던 암담함은 상황을 꿰뚫고 앞을 대다보는 작가의 필력으로 어느새 희망이란 빛을 만나게 되었다.
모두가 읽었으면 좋겠다. 어른도 아이도, 누구라도 읽어야하고, 읽은 후에 변해야 하는 당위성을 느낄 것이다. 따돌리는 아이도,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도 모두 어른들을 보고 자라는 미완의 존재들이다.
두 아이의 엄마인 나는 책을 덮으며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 아이에게 읽혀줄 책을 고마운 책을 만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