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와 날개 - 시조새부터 비행기까지
스니드 콜라드 3세 지음, 윤소영 옮김, 로빈 브릭먼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뛰어 내리고, 달려가고...아이들은 종일 가만히 있을 줄 모른다.

여기서 저기로 어느새 이동하는 민첩함에 잠시도 한 눈을 팔 수가 없다.

이런 녀석들이 왜 제게는 날개가 없느냐며 자신들에게 온통 집중하고 있는 엄마를 애먹일 소리를 한다.

'날개까지 있었으면 엄만 어쩌겠냐?'

아이들을 앉혀놓고 날개가 생긴다면 어떤 것이 좋을지 진지하게 고르기로 했다.

아이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날개라면 우선 깃털이 달린 새의 그것이 떠오른다. 새 말고는 나비?

아이들의 생각은 여기서 그치고 말았다. 책을 넘겨가며 대충 훑어본 날개는 생각보다 많다.

비늘가루로 덮인 날개, 피부로 덮인 날개, 색깔이 화려한 날개, 무색의 날개, 두 쌍의 날개, 한 쌍의 날개등.

날개를 이렇게 분류하고 보니 색다르다. 날개의 다양함만큼 그 주인공들도 다양하다.

새들은 날개로 무엇을 할까? 먹이와 살 곳을 찾아 이동하고 도망을 치기도 하네.

아이들은 자신들의 발과 제법 비교도 해가며 열심이다.

 

어떤 곤충은 날개 없이 살다가 날개가 생겨나는데, 얼마후 다시 떼고 산다는 말에 호기심이 충만해진다.

어떤 새는 날개가 작아 날 수 없다고 하니 불쌍하다고 울상을 짓는다.

 

실물같은 그림에 만져보겠다고 아웅다웅한다.

원색의 깃털과 나비와 박쥐의 날개는 책 위에 실물이 얹혀져 있는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여러 날개들을 보며 날고싶은 욕망을 마음껏 펼쳐보았다.

인간에게도 날개가 있다며 비행기를 보여주고 끝맺음하는 덕분에

비행기를 타러 가자고 아이들이 졸라댄다.

 

언젠가는 하늘을 마음껏 날개될 아이들.

그림책은 한동안 이 아이들의 마음을 달래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를렌 하우스호퍼 지음, 박광자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날 갑자기, 이 세상에 유일하게 살아있는 사람이 '나'뿐이라면?

자...생각을 해보자. 이런 어처구니없고 황당하며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의외로 답은 간단할 수 있다. '살아가는 것'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 과정을 추리해보기는 쉽지 않다.

몇 일도 아닌 몇 년의 시간을 상상력만으로 그려내기엔 지나치게 경험밖의 일이다.

그래서, 소설을 읽기 전 기대하고 설레였었던 것은 당연한 것이리라.

 

40대의 여주인공은 사촌부부를 따라 주말여행을 떠나 산장에 머물던 어느날 엄청난 일을 겪게 된다.

산장 주변에 투명하고 딱딱한 벽과도 같은 장애물이 세워진 것이다. 만질 순 있지만 보이진 않는 존재.

그 존재 너머로 보이는 세계엔 움직이는 생명체라곤 없다. 모두 화석처럼 굳어버린 것이다. 죽은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의외로 담담하다. 그녀는 강했다. 주변을 이해하고 정리하며 차분히 계획을 세운다.

누군가 자신을 구하러 올때까지. 어쩌면,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는 상황일지도 모를 사태를.

다행히 그녀에겐 친구가 있다. 어미소와 개와 고양이. 그녀가 돌봐야하는 부담인 동시에 외로움과 두려움을 나눌 친구들이다.

'동물과 사람 사이의 벽은 쉽게 헐린다. 우리 모두는 결국 커다란 가족의 일원이며,

외롭고 불행해지면 아주 먼 친척들 사이에도 우정이 생기는 법이다.'

벽이 생기기 이전의 그녀는 삶이 주는 무게로 벅차고 힘들었다. 오히려 혼자인 지금이 더 편한지도 모르겠다며 그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만큼.

그녀의 지난 날의 삶은 지금 '나'의 삶과도 많이 닮아있다. 이땅의 평범한 주부들의 모습과 닮은 것이다.

가정과 자식이 주는 버거운 의무감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바람. 그래서, 그녀가 처한 고독을 경험하고 싶다.

하지만, 그 안엔 해결해야할 생계문제가 있었다. 계절이 바뀌고, 식량이 줄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과 같은 풀기 어려운 문제들.

그녀와 함께 밭을 일구고, 소를 돌보고, 개와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며 반복적인 시간들을 살다보니 어느새 지루하기 시작했다.

'내가' 중심이 되어 사는 삶이지만 그 또한 내마음에 쏙 드는 상황은 아니다. 어느 것도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없다.

산속에서 홀로 지낸 2년 여의 세월을 그녀는 잘 꾸려 나간다.

감자와 콩은 제 때에 수확을 했고, 어미소는 수소를 낳았고, 여전히 발랄한 개는 졸졸 따라 다니고, 고양이는 세 번이나 출산을 했으니

이들의 세상은 평화롭다. 그런데, 그런 가족의 평화를 짓밟는 인간, 남자가 등장한다. 느닷없이 나타나 그녀의 개와 송아지를 죽인 한 남자.

벽이 생기고 2년이 넘는 시간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상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다른 생존자가 아니던가. 어쩌면 안정적인 그녀의 삶에 파란을 일으킬 존재 이상은 아니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자신의 세상에 들어와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을 헤치는 인간은 이제 '적'일뿐이다. 남자에 대한 미련도 아쉬움도 궁금함도 없다.

이미 그녀의 세상에선 필요하지 않기에...

 

2년 반 동안 홀로 산속에서 지낸 일들을 기록한 이 일기는 경험할 수 없는 범주의 공포와 암담함을 차분하게 풀어가며 동참하게 해주었다.

그녀와 함께 벽의 존재를 궁금해하고, 동물들을 걱정하며, 밭을 일구고 풀을 베고, 매서운 날씨를 견뎌내며 어느새 강인한 여자가 된 것 같다.

책을 읽는 동안 보다는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감동이 밀려드는 소설이었다. 다시 곱씹어 볼 수록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이런 책 때문에 책을 읽는 행위를 멈출 수 없다, 하루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84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나는 유토피아를 꿈꾼다. 고통없이, 어려움없이, 마냥 편하고, 마냥 자유로운 행복이 주어지길 바라본다. 하지만 그런 유토피아는 만날 수 없는 것 같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꿈꾸는 헛됨으로 현실이 조금은 절망적이게 된다. 현실이 때론 디스토피아처럼 느껴진다. 힘들고, 불행하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역경이 목을 조르고 있으니 이곳이 바로 디스토피아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럴때면 진정 디스토피아란 무언인가를 잘 보여주는 이런 책 한 권이 상황을 반전시켜줄 것이다.

'자~, 봐라! 이것이 바로 디스토피아다. 네가 살고있는 세계가 이와 같은가? 넌 지금 유토피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걸 깨닫지 못했을 뿐!'

 

당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엇이나 진실인 거고, 당의 눈을 통하지 않고는 진실을 볼 수 없음이 더이상 윈스턴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텔레스크린을 통해 생활을 감시당하고 날조된 과거를 통해 거짓 역사를 주입 받지만 윈스턴은 따르고 싶지 않다. 표정을 읽히지 않으려 평정을 가장하고 남몰래 일기를 쓰며 권력을 잡은 자들을 향해 작은 반란을 진행중인 것이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굴종

 무식은 힘'

이라는 슬로건 아래 당은 인간을 철저히 통제하고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아군이 된다면 과거는 새로이 씌어진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그래서 그들은 사실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윈스턴은 뼛속에 박힌 무언의 반항, 즉 우리가 처한 상황이 참을 수 없다든가 옛날에는 필경 지금과는 달랐으리라는 본능적인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그는 당이 금하는 것들을 범하며 조금씩 무서운 결말로 다가가고있다.

과거에는 존재했으나, 지금은 금지된 물건들을 찾던 윈스턴은 혁명전에 사용되었던 '방다운 방'을 발견한다. 사랑도 금지되어있다.

사랑은 사회구성원을 낳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줄리아가 그에게 사랑인지 확신은 없으나 그녀를 향한 각별한 마음이 그들을 비밀스런 '방'으로 안내한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그의 반항과 그들의 밀회와 비밀스런 방은 결국엔 발각되리라는 것을.

 

'윈스턴, 자네는 이럴 줄 알고 있었어. 쓸데없는 희망은 걸지 말게. 자네는 이럴 줄 알고 있었어. 이럴 줄 늘 알고 있었다고.'

진실은 들통이 나고 감옥에 갇혀 감당하기 힘든 고문을 당한다. 이럴 줄 알았지만, 그는 멈출 수 없었던 것이다. 자유를 향한 갈망과 알고자 하는 욕구는 본능인 것이다. 이제 당은 윈스턴의 이런 '본능'을 개조할 것이다. 그것이 당을 유지하는 힘이다.

'우리에게 반항하는 한 우리는 절대 처형하지 않아. 우리는 그를 개조하고, 그의 속마음을 움켜쥐고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세상에서 육체적 고통보다 더 못된 것은 없었다. 고통 앞에서는 영웅도 없다. 당의 거듭되는 개조와 끝없는 심연으로 떨어지는듯한 공포가 결국엔 그를 개조하고 속마음을 잡히도록 만들었다.

'목숨을 구하려면 딴 방법이 없고 단지 그 방법으로 목숨을 구하려 들어요. 그런 고문이 다른 사람에게 옮아가길 바라게 되지요. 다른 사람이 아무리 고통을 당해도 상관없어요. 자기만 모면하면 되는 거예요'

자신만 괜찮다면 자신만 안전하다면, 누가 어떻게 되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그만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당이 인간을 통제하는 결정적 힘이었던 것이다.

 

평화롭게 자유를 누리며 오늘도 공부하는 나는 행복하다. 행복한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세계는 그래서 유토피아인 것이다. 그걸 깨닫게 해준 조지오웰에게 고마움을 표하고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6인의 용의자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조영학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영화나 책을 보기 전, 지나친 기대는 금물'

많은 경우 기대치 이상의 실망을 안겨주었고, 기대감 없이 보았을 때라면 하지 않을 비난까지 하게 만들었다.

여기 이 책! 그러나, 그 규칙을 보기 좋게 깨주었다.

작가는 이미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크게 흥행한 영화의 원작[Q&A]를 썼으니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제목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사건은 벌어졌고 6명의 용의자가 있는데 진짜 범인을 누구일까?'라는 미끼를 던지고 있으니 이만하면 기대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3번의 반전'을 기대하라고까지 했으니 이쯤되면 읽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죽음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살인에도 카스트제도가 적용된다. 가난한 인력거꾼의 피살 사건은 하나의 통계 수치에 불과하며 신문 한 귀퉁이에 묻혀버릴 뿐이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건 유명 인사의 피살 사건이다. 왜냐하면 살해된 부자와 유명 인사 이야기는 희귀 상품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그 희귀 상품을 누가 만들었는지를 찾는 것이다.

내무 장관의 오만 방자하고 파렴치한 32세의 아들 비키 라이가 피살되었다. 그 용의자는 모두 6명.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부패와 추문의 달인 전 수석 차관 모한 쿠마르.

펜팔로 결혼을 약속한 여인을 찾아 먼길을 떠나온 어리숙한 순정파 미국인.

유명하지만 정작 외로운 여배우 샤브남 삭세나.

마을의 안녕을 위해 잃어버린 신성한 돌을 되찾겠다고 나선 150센티미터의 검둥이 원주민.

휴대폰이나 훔치며 살다 신분의 차이를 넘어선 사랑에 빠진 문나.

그리고 피살자의 아버지 내무 장관 자간나트 라이.

어쩌다 그들이 한 자리에 모였는지 부터가 의문이며 호기심 거리이다.

익숙치 않은 인도의 이름들을 암기해가며 그들의 행적 쫓기에 바빴다. 아니, 즐겼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 6명의 용의자들은 각자의 시간과 공간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그 정점을 향해 바쁘게 내달린다. 읽는 이로 하여금 잠시도 틈을 주지 않고 빠져들게 만드는 속도감이 특히나 좋았다.

마치 미로를 헤치고 찾아가면 가운데에 목적지가 나오는 것처럼, 구심점을 찾아 6방향에서 이야기가 달려오는 것이다. 게다가 용의자에 따라선 화자의 시점도 달라진다. 그러니 적잖이 헷갈리는 것은 감수해야했다.

 

반전은 곳곳에 있었다. 아마 그 반전의 개수는 읽는 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감탄을 하며 놀랐던 부분이 내겐 3군데였다. 작가의 의도와 맞아 떨어졌을지는 모르겠지만 내용에는 만족한다.

그렇다면 범인은 용의자 중, 누구일까? ^^

어쩌면 제목에서 부터 반전이 계산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신저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생은 수많은 고비를 넘기며 고통 끝에 낙이 온다는 진리를 경험하고, 희망을 붙들며 다가올 행복을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힘겨운 고비를 넘을 때 마다 포기하고 싶어질 만큼 지치고 절망적인 순간들이 있다. 그럴때 누군가 다가와 손을 내밀며 기운내라고, 한 발만 더 내딛으면 희망을 만날 수 있다고 전해준다면 차마 떨어지지 않던 발걸음이 쉬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자, 이제 당신이 그 희망을 전하는 '메신저'다. 임무는 은밀하고도 위협적으로 전달되며 결코 도망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다.'
스무살 택시 기사 에드에게 전해진 카드는 이런 의미를 담고 있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카드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미래에 대한 욕심도 없는 태평한 청춘 에드에게 누군가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명령의 카드가 그의 인생도 함께 바꿔 놓는다.

때론, 어린 소녀와 함께 달리고, 때론 폭력적인 가장을 총으로 위협하고, 때론 기억력도 희미해진 할머니의 옛애인 역할도 하며 에드는 고비를 넘고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게 된다. 물론, 에드에게도 고비는 있다. 사랑하지만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여자친구 '소피',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아온 엄마와 그 아버지를 닮은 에드의 풀지 못한 숙제 등 에드 자신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작가는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누군가를 돕는 일은 결코 완벽한 인생을 사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도,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도, 모두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작은 영웅이라고. 그러니 제발 주위에 눈을 돌려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마지못해 해야했던 카드 속 명령들을 어느샌가 에드는 보람을 느끼며 수행하게 된다. 누군가를 돕기 위해 시작한 일이 결국엔 자신을 돕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에드에게 이런 일들을 시키고 깨달음을 주려 했던 사람은 누구일까? 그 '누구'가 밝혀지는 순간 '헉~'하고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첫장부터 읽기 시작했다.  

작가의 치밀한 계산에 맞춰져 잘 짜여진 스토리는 읽는 내내 재미와 긴장감을 주었다. 재치 넘치는 대사, 정이 가는 캐릭터, 감각적인 문체등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소설이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 밤에 펼쳐들었던 것은 큰 실수였다. 동이 틀 무렵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을만큼 정신없이 빠져 들었다.

'너 같은 녀석이 일어서서 그 모든 사람들을 위해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모두 할 수 있을 거 아냐. 모두가 자신의 능력 이상의 일을 하며 살 수 있을 거 아냐. '  그 순간 깨닫는다. 모든 것이 분명해지는 달콤하고, 잔인하고, 아름다운 순간이다.
......나는 결코 메신저가 아니다. 나는 메시지다.  _____ p.472

 

책을 덮으며 나도 조용히 되뇐다.
'내 인생도 이만하면 희망의 메시지가 아닐까.' 

나는 특히나, 지난 시절의 내가 그랬듯이 방황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청소년들에게 나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지금의 시간이 절망적이라 희망은 없을 것 같겠지만, 조금만 기운내 이겨낸다면 분명히 밝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될 거라고. 그땐, 지금의 역경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전해주고싶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청소년들을 일일이 찾아다닐 수 없으니 이 책을 메신저로 대신할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