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를렌 하우스호퍼 지음, 박광자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날 갑자기, 이 세상에 유일하게 살아있는 사람이 '나'뿐이라면?

자...생각을 해보자. 이런 어처구니없고 황당하며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의외로 답은 간단할 수 있다. '살아가는 것'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 과정을 추리해보기는 쉽지 않다.

몇 일도 아닌 몇 년의 시간을 상상력만으로 그려내기엔 지나치게 경험밖의 일이다.

그래서, 소설을 읽기 전 기대하고 설레였었던 것은 당연한 것이리라.

 

40대의 여주인공은 사촌부부를 따라 주말여행을 떠나 산장에 머물던 어느날 엄청난 일을 겪게 된다.

산장 주변에 투명하고 딱딱한 벽과도 같은 장애물이 세워진 것이다. 만질 순 있지만 보이진 않는 존재.

그 존재 너머로 보이는 세계엔 움직이는 생명체라곤 없다. 모두 화석처럼 굳어버린 것이다. 죽은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의외로 담담하다. 그녀는 강했다. 주변을 이해하고 정리하며 차분히 계획을 세운다.

누군가 자신을 구하러 올때까지. 어쩌면,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는 상황일지도 모를 사태를.

다행히 그녀에겐 친구가 있다. 어미소와 개와 고양이. 그녀가 돌봐야하는 부담인 동시에 외로움과 두려움을 나눌 친구들이다.

'동물과 사람 사이의 벽은 쉽게 헐린다. 우리 모두는 결국 커다란 가족의 일원이며,

외롭고 불행해지면 아주 먼 친척들 사이에도 우정이 생기는 법이다.'

벽이 생기기 이전의 그녀는 삶이 주는 무게로 벅차고 힘들었다. 오히려 혼자인 지금이 더 편한지도 모르겠다며 그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만큼.

그녀의 지난 날의 삶은 지금 '나'의 삶과도 많이 닮아있다. 이땅의 평범한 주부들의 모습과 닮은 것이다.

가정과 자식이 주는 버거운 의무감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바람. 그래서, 그녀가 처한 고독을 경험하고 싶다.

하지만, 그 안엔 해결해야할 생계문제가 있었다. 계절이 바뀌고, 식량이 줄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과 같은 풀기 어려운 문제들.

그녀와 함께 밭을 일구고, 소를 돌보고, 개와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며 반복적인 시간들을 살다보니 어느새 지루하기 시작했다.

'내가' 중심이 되어 사는 삶이지만 그 또한 내마음에 쏙 드는 상황은 아니다. 어느 것도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없다.

산속에서 홀로 지낸 2년 여의 세월을 그녀는 잘 꾸려 나간다.

감자와 콩은 제 때에 수확을 했고, 어미소는 수소를 낳았고, 여전히 발랄한 개는 졸졸 따라 다니고, 고양이는 세 번이나 출산을 했으니

이들의 세상은 평화롭다. 그런데, 그런 가족의 평화를 짓밟는 인간, 남자가 등장한다. 느닷없이 나타나 그녀의 개와 송아지를 죽인 한 남자.

벽이 생기고 2년이 넘는 시간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상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다른 생존자가 아니던가. 어쩌면 안정적인 그녀의 삶에 파란을 일으킬 존재 이상은 아니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자신의 세상에 들어와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을 헤치는 인간은 이제 '적'일뿐이다. 남자에 대한 미련도 아쉬움도 궁금함도 없다.

이미 그녀의 세상에선 필요하지 않기에...

 

2년 반 동안 홀로 산속에서 지낸 일들을 기록한 이 일기는 경험할 수 없는 범주의 공포와 암담함을 차분하게 풀어가며 동참하게 해주었다.

그녀와 함께 벽의 존재를 궁금해하고, 동물들을 걱정하며, 밭을 일구고 풀을 베고, 매서운 날씨를 견뎌내며 어느새 강인한 여자가 된 것 같다.

책을 읽는 동안 보다는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감동이 밀려드는 소설이었다. 다시 곱씹어 볼 수록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이런 책 때문에 책을 읽는 행위를 멈출 수 없다, 하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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