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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민트 (양장)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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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의 작가 백온유가 <페퍼민트>로 다시 독자들을 찾아왔다. 시간이 꽤나 흘렀어도 전작의 여운은 아직도 내게 남아 있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펼친다. 그리고 단숨에 다 읽었다!

시안과 시안의 아버지는 붕괴 직전이다. 시안의 엄마는 몇년째 식물인간인 채로 병상에 누워있고, 가족 중에 그런 환자가 있다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시안의 엄마를 쓰러뜨린 것은 몇년 전 세계를 휩쓴 전염병이라는 것, 그 병을 옮겨준 것은 시안의 가장 친한 친구의 엄마라는 것이 드러난다. 소설 속에서는 '다 끝난 일'인지 몰라도 우리는 아직 전염병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니 가슴이 철렁해진다.

작가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 모두에게 힘겨운 시절이라고. 그러니 흔들리고, 무너지고, 서러워하고, 원망하는 당신, 그건 당신 탓이 아니니 부디 자책은 하지 말라고.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한다면.

1. 당신은 누군가를 간병해 본적이 있나요? 혹은 간병을 받아본 적이 있나요? 그 경험을 이야기해 주세요.
2. 코로나로 인해 당신의 삶이 바뀌었나요? 어떤 부분이 바뀌었나요?
3. 나의 불행이 내가 좋아하는 어떤 사람에게서 비롯되었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 같나요?
4. 시안과 해원은 힘겹게 서로에 대한 용서에 도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만나지는 않기로 합니다. 이 결정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나는 두려웠다. 같이 있다 보면 좋은 날들도 많겠지만 나쁜 날들도 있을 것이다. 불행해지면 원망할 사람을 찾게 될 것이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서로의 영혼을 해칠 것이다. 지금은 아니라고 해도,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우리는 서로의 미래를 궁금해하는 유일한 사람들일지도 모르지만, 그 미래에 우리는 함께하지 않는 게 나았다." 264
5. 이 책의 제목은 <페퍼민트>입니다. 제목의 의미를 이야기해 볼까요?


#백온유 #페퍼민트 #창비 #성장소설 #소설페퍼민트
#전염병 #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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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 #책모임 #북클럽

*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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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일 년만 청소하겠습니다 - 오십이 되면 다르게 살고 싶어서
최성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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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에서 피아노를,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연극을 전공한 '고학력' 50대 여성이 청소일을 한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었다. 학력만 놀라운 것이 아니라 그밖의 이력도 놀랍기만 하다.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희곡 작가이면서 연극 배우이고, 쿠바에서 관광가이드를 한 경험도 있다. 학교 연극 수업 강사, 요가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런 사람이 왜? 돈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할 줄 아는 다재다능한 여자 최성연에게는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했다. 학교 연극 수업이나 요가 수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돈은 우리가 미루어 짐작하는 것보다 더 적은 액수인가보다. 아트센터 청소일을 하면 보장되는 수입(퇴직금 포함 월220만원)에 '세상에나! 이런 직업이 있다니!' 하면서 뛰어들었다고 한다. 청소일을 해서 그걸 글로 써서 책을 내야겠다던지, 그 경험을 토대로 연극을 만들어보겠다던지, 그런 것이 절대 아니다. 정말로 돈 때문에 청소일을 시작했다.


연극판에서 산다는 것은 가난을 짊어지고 사는 일인지라 원래도 안해본 알바가 없었다는 저자는, 월220만원이라는 안정적 소득에 낚여 겁도 없이 청소일에 뛰어드는데, 놀랍게도 별 무리 없이 잘 해낸 것 같다. 사명감을 가지고 꼼꼼히, 열심히 청소하고, 자기 일도 아닌 분리수거까지 열심히 한다. 최성연은 생각한다.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은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장차 어떻게 될지에 대한 우주적 상상력을 펼칠 줄 모르는 사람, 그런 사람은 당장 눈에 보이는 세계만 인식하기 때문에 세계가 좁아진다는 것. 이 시대에 진정 필요한 능력인 상상력(창의력)을 키우려면 두뇌 개발에 좋다는 학습지나 체험 학습에 매달리지 말고 분리수거를 하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나는 최성연이 주저 없이 '새로운 세계'에 풍덩 뛰어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부러웠다. 물론 그는 스스로 주장하기를, 어떤 의미를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밥 벌이를 위해서였다고, 절박한 생존의 문제였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다들 알지 않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서 보험 영업에 뛰어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나.


나에겐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다.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 내가 '어떻게 적응할까?'를 걱정하기보다는, 새로운 세계가 나를 '어떻게 이끌어 줄 것인가?'를 기대한다. 어떤 자극과 충격으로 내 안의 잠재된 영역을 깨우고, 내 사고의 지평을 넓혀줄 것인지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로 설렌다. 청소일은 그동안 내가 해 온 일의 성격과 정반대의 일이어서 더욱 기대가 컸다.

실제로 일 년 동안 쓸고 닦는 새로운 일에 매진하고 낯선 사람들과 엮이는 경험을 하면서 내면의 힘이 강해졌다. '이것 때문에 이런 교훈을 얻어 이렇게 변화되었다'라고 공식화할 수는 없지만 자신감이 커졌고, 마음의 폭이 넓어졌으며, 세상을 균형 있게 바라보고 걷는 법을 배웠다. 170-171


청소일을 하면서 만난 새로운 세상, 새롭게 맺게 된 인간 관계, 새로운 깨달음을 글로 써서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다. 그런데 이게 대박이 났다. 오마이뉴스에서 잭팟이라고 부를 정도로 원고료가 들어왔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책이 되어 나오고 이 소식이 못내 반가워서, 50대에 정직한 노동을 선택한 고학력자 최성연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책을 주문했다.


결정적 순간마다 떠올리려고 한다.

[두려움보다 설레임으로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기]

무엇이건 너무 오래 망설이는 것은 모양 빠지는 일이다.


재미있는 발견.  "딱 일 년만"이라는 검색어를 넣었더니 제법 여러권의 책이 뜬다.  

딱 일 년만 _____________________ 하기.

__________________ 에 무엇을 넣어볼까?

딱 일 년만이라고 하면 뛰어들기 수월할 것 같다. 생각해 보니, 나는 지금 딱 일 년만 백수로 살기를 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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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준비의 기술
박재영 지음 / 글항아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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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담 좋은 작가의 책 한 권을 기분 좋게 읽었다. 여행의 기술이 아니라 여행'준비'의 기술이다. 여행을 가는 것은 돈과 시간, 체력과 바이러스가 모두 따라 주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여행 준비는 아무 것도 갖춰져 있지 않아도 가능하다는 것이 작가의 주장이다. 알랭 드 보통이 <여행의 기술>을 쓰고, 김영하가 <여행의 이유>를 썼지만, 다행히 아무도 여행 준비의 기술을 쓰지 않은 덕분에 자신이 이 책을 쓸 수 있었다는 너스레와 함께 작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외국어 공부, 관련된 책 찾아 읽기, 평소에 끌리는 곳을 찾아 구글맵에 표시하기 등,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여행준비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평범한 것들이 작가의 글솜씨 덕분에 어마어마하게 흥미진진하게 보인다. 결국 읽을 만한 책을 쓴다는 것은 대단하고 특별한 글감을 보유하고 있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관점을 가지고 좋은 얼개 속에 이야기를 펼치는 기술에 달려 있는 것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이 중에 가장 와 닿았던 것은 여행 일정을 어떻게 구성하는가와 관련된 것이었다. 모두가 좋다고 하는 여행지가 내게도 좋은 여행지라는 법은 없으니 본인이 좋아하고,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일정을 구성하라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이지만 여행을 떠나면 그 당연한 일을 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진다. 내가 여기 다시 올 일이 없을지도 모르고, 돈과 시간을 쏟아부어 여기까지 왔는데 후회나 미련을 남기면 안된다는 본전 의식이 강력하게 발동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것을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 쏠리는 관심에 비유한다.


이건 근본적으로 '타인의 관심사'이고 몰라도 대세에 전혀 지장이 없는 것들인데, 우리는 습관적으로 이걸 클릭하고 적지 않은 시간을 빼앗긴다. 145


유명한 관광지라고 해서 꼭 가야 한다는 법 있나. 게다가 갈까 말까 망설여지는 그 유명 관광지는 알고 보면 어마어마하게 유명한 곳도 아니다. 평소에는 존재도 몰랐다가 가이드북에서 처음 발견한 장소에 집착할 이유가 있을까. 어차피 가이드북에 별표 다섯개 붙어 있는 곳이라고 다 가는 것도 아니지 않나. 어디 가서 자랑할 수도 없고 사진 말고는 남는 것도 없는, 남들이 좋다고 하는 유명 관광지보다는 내 마음이 왠지 끌리는 곳, 그곳을 선택했을 때 기억에 훨씬 더 오래 남는다. 좋은 곳이 좋은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곳이 좋은 곳이다. 203


어디 여행뿐이겠는가. 우리의 일상에도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베스트셀러를 읽고, 핫스팟을 방문하고, 유행하는 옷을 입는 것도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것이 좋은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라고 바꿔말해도 하나도 틀리지 않는 말이다. 백화점에 걸려 있는 옷들은 편집샵에 걸려 있는 옷들에 비해 별 매력이 없다. 이유는 백화점에는 '최대공약수의 옷'들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대충은 좋아할 만한 것들이라는 의미에서 최대공약수의 옷이다.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서 추천하는 것들도 대체로 비슷하다. 실패하지 않겠지만, 실패를 줄이는 만큼 '내게 더 좋은 것'과 만날 가능성도 함께 줄어든다. 실패는 없겠지만, 매력도 함께 없어진다.


남들이 다들 좋다는 것을 외면하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포기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겠다는,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이 엄청 좋은 것이었다하더라도 다른 것을 선택할 당시의 나를 인정하고 그 순간의 마음을 포용하는 용기.


더 필요한 것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지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기 위해 이것저것 탐색해보고 시도해 보는 노력. 우리의 하루하루는 엄청나게 많은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선택들이 내게 좋은 것들로 수렴되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한다. 그런데 항상 남의 선택, 다수의 선택을 따르다보면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을 찾는 감각 자체가 쇠퇴해버린다. 그러니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의 선택을 믿고 따라가는 것을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


중국집에는 짬짜면이 있지만 인생에는, 그리고 여행에는 짬짜면이 없다. 유명 관광지가 타인의 선택이라면, 왠지 내가 하고 싶고 보고 싶은 프로그램은 나의 선택이다. 내 맘대로 되는 게 별로 없는 인생에서 여행 스케줄 정도는 내 맘대로 짜도 된다. 203


짜장면과 짬뽕 사이에서 망설여질 때 짬짜면을 선택하는 방법도 있지만, 너는 짜장면, 나는 짬뽕, 이렇게 시켜서 나눠 먹는 방법도 있지만, 이제부터는 좀더 분명하게 선택을 해보면 어떨까? 이왕이면 제3의 다른 메뉴를 선택하는 방법도 있고. 그러다 실패하면 어떤가. 고작 한끼일 뿐인 것을.


망설임도 습관이고, 다른 사람에게 결정을 위임하는 것도 습관이라면, 자기에게 제일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도 습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게 의식적인 연습을 통해 가능하다고 믿는다. 다만 주의할 것은, 그게 취향을 위한 취향은 아닌지 되물어보아야 한다는 것. 정말 그게 좋은 것인지, 남들이 좋다고 하니 나도 좋다고 생각하게 된 것인지, 혹시 허세나 보상심리는 아닌지, 촘촘하게 따져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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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 (반양장) - 제13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96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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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느티나무 아카데미 독서클럽이 종강을 했다. 어제 이번 시즌 마지막 독서클럽이 열렸다. 수능이 바로 다음주라서 교사이거나, 집에 수험생이 있거나, 가족 중에 교사가 있는 분들은 모두 불참하겠다는 연락이 왔다고 한다. 그래도 일찍부터 와서 기다려주시는 분들, 감사하다. 아무도 안 오면 간사님이랑 나랑 둘이서 토론해야 하나 생각하던 참이었다.


책이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에, 할 얘기도 많았기 때문에 못 오는 아쉬움이 크다고 하셨다는 얘기를 간사님이 전해주신다. 독서클럽이 열리기 직전 오늘의 책인 <유원>은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으로 세상에 나온 책인데, 여기에 오늘의 작가상까지. 1993년생 젊은 작가에게 쏠린 이 세상의 기대가 크다. 소설의 주인공 유원이 자기를 구해준 아저씨의 무게가 너무 크다고 느끼는 것처럼, 이 작가가 세상의 기대가 너무 무겁다고 느끼지 말고 씩씩하게 글을 써 가기를 바란다.


2. 우리는 <유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2-1.이름에 얽힌 이야기. 유원은 바라고 원한다는 뜻의 '원'이 담겨 있는 이름이다. 당신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달라.

-너무 같은 이름이 많다. 이름도 흔하고 성도 흔하다 보니. 지금도 같은 사무실에 같은 이름이 세 명.

-이름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으면서도 엄청나게 중요하다. 수십년 그 이름으로 호명되면서 이름은 나에게 일정한 세뇌 작용을 할 것이다.


2-2. 유원의 친구 수현과 정현의 캐릭터에 대한 생각을 들려 달라. 수현은 왜 그리 봉사 활동에 열중하고 정현은 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을 연기하고 싶어하는가.

-아버지에 대한 분노, 불만을 건전하게 표출하며 잘 자란 남매

-아버지가 나쁘기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해롭지만 악한 사람은 아니니까.

-유원이 주위의 기대 때문에 힘들 듯이 수현 정현도 힘들었을 것이다.

-정현이 연기하고 싶어하는 인물은 실은 아버지.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어한다. 혹은 이미 거리 두기에 성공했다. 돌에 걸려 넘어진다고 돌을 탓하지 않는다, 는 표현처럼, 아버지를 길가의 돌처럼 생각할 수 있는 거리감을 획득했다. 이미 잘 컸다.


2-3.. 유원은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맞추어 사느라 힘겹다. 유원의 역할과로는 어떻게 해소될 수 있을까?

-왜 사건 직후 이사를 가지 않았을까?

-이사를 간다고 해결이 되었을까? 오히려 그곳에서 정면승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모든 사람들이 내심을 숨기고 착한 사람을 연기한다. 진심이 아닌 관계는 더 큰 스트레스를 부른다. 서로가 너무 배려하고 서로가 너무 역할에 충실하다. 이것은 유원에게 '너도 역할에 충실하고 배려하라'는 메시지로 작용할 수 있다.


2-4. 마지막 장면은 패러글라이딩 장면이다. 왜 패러글라이딩일까?

-좀 상투적인 엔딩이다. 맞다. 하하하.

-아저씨의 무게로 고통 받아왔으니 중력을 거스르거나 부드럽게 연착륙하는 경험이 필요했을 것이다.

-어릴 때 화재를 피해 베란다에서 던져진 것은 타인의 의지였다. 이제 본인의 힘으로 높은 곳에서 지상으로 착지한다.

-언니와의 화해 장면, 상투적이고 뻔하지만 유원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유원은 자신을 짓누르는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재정립한다.


2-5.. 주목받는 삶의 고통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아역 배우들,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기 어려웠던 여러 사례가 있다.

-성폭행 피해자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사회가 기대하는 모습이 아닐 때도 사회는 그들을 비난한다.

-세월호 생존자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사건'은 기억해야 하지만 '개인'을 소환하는 일은 멈춰야 한다.


2-6. 유원이 아저씨를 처음으로 거절하자, 아저씨는 허무할 정도로 쉽게 유원의 인생에서 퇴장한다. 이 장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저씨가 정말 사라졌을까? 이런 사람은 누군가를 갉아먹어야 살 수 있다. 다시 나타날 것이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그때도 유원이 잘 거절하길 바란다.

-부모는 아저씨를 거절할 수 없었지만 유원은 할 수 있었다. 유원은 성장하는 인물이니까.

-아저씨 같은 캐릭터 의외로 많다.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면서 온갖 민폐를 만들어내지만 겁이 많고 유약하다보니 분명한 거절 앞에서는 빠르게 물러선다. 충돌은 회피한다.

-아저씨 같은 사람은 눈치가 없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괜찮다고 말하면 정말 괜찮은 줄 안다. 돌려 말하면 안된다. 유원이 '아저씨가 너무 무거워서 감당하기 힘들어요.'라고 분명하게 말해준 것은 확실히 효과가 있는 방법이다.


3. 재난의 생존자인 유원, 그리고 그렇게 살아남았기에 또 다른 고통을 받는 유원의 이야기를, 또 다른 재난의 시대에 우리가 둘러 앉아 나누고 있으니 각별한 느낌이 생겨난다. 정부 지침에 따라 9시에는 반드시 모임을 끝내야 하는데, 사람들은 이야기를 마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우리는 내년에 다시 모여서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올까? 혹시 이것이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서 책 이야기를 나누는 마지막 기회라면 어쩌지? 이런 생각이 넘실대고 있어서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쉽게 끊을 수도 없다.


4. 책 이야기가 끝났다. 수고하셨다. 건강하시라, 덕담을 나누고 헤어지려는데 누군가가 우리 사진이라도 함께 찍자고 한다. 우리는 모두 모여 사진을 찍었다. 나와 투샷으로 사진을 찍기를 원하는 참가자들과도 차례차례 사진을 찍었다. 애틋한 마음이 된다. 이 책 이야기의 밤을 오래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 그나 저나 내년 봄, 우리는 다시 모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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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반려병 - '또 아파?'라는 말을 들었다, 오늘도 아무튼 시리즈 35
강이람 지음 / 제철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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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눈여겨 본 이유는 아무튼 시리즈에서 유독 도드라지는 아무튼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은 자기가 사랑하거나 성취했거나 성취 중인 어떤 일들을 가지고 아무튼을 썼다. 말하자면 그 아무튼에는 주체의 적극적인 선택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튼, 반려병]이라니. 반려병이라는 말도 낯설지만, 병이란 그냥 나를 찾아온 것이지 내가 적극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지 않나.


'아무튼 시리즈'가 표방하는 '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는 대개 '내가' 좋아서, '내가' 선택한 취미, 관심사,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내 인생을 돌아보면 각종 잔병들이 '나를' 선택해 왔다. 재작년에도 골골거렸는데, 작년에도, 올해도 비슷비슷하게 계속 아팠습니다, 라는 경험치가 나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내가 좋아서 혹은 의도해서 만든 능동적인 세계가 아닌, 잔병에 의해 만들어진 수동태의 세계가 내 안에 있는 것이다. 나는 감히 인생의 '아무튼'을 논하자면 이 수동태의 세계를 빼놓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7-8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별로 골골거리지 않고 잘 살아왔던 저자는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나이를 먹어가는 과정에서 각종 잔병들을 달고 사는 사람이 된다. 감기로 죽도록 앓다가 겨우 나을만해졌는데 다시 감기가 심해져서 병원에 갔더니 이 감기는 앞의 감기와 다른 감기라는 의사의 이야기를 듣는 식이다. 한 시즌에, 휴지기 없이 두 개의 감기를 연달아 앓는 사람이라니. 감기 뿐이겠나. 치열(치질과 비슷한 질환이라고 한다)에 비염에, 위장장애에, 변비에, 근골격계 질환에,... 여기에 일일이 다 나열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병들을 달고 산다. 어느 하나도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질병은 없지만, 어느 하나도 무시할 수 없는 정도의 고통과 불편을 수반하는 병들이다.


이렇게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으로 살아간다면 그 병들은 어떤 식으로는 나의 인생에 강력하게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작가는 담담하게 그 이야기를 한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질병을 극복하고 이제는 건강한 몸이 되었습니다, 하는 얘기가 아니다. 그냥 그 병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스스로는 큰 깨달음을 얻지도 못했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다. 그는 건강하지 않은 자기 몸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안다. '반려병'이라는 용어를 생각해 낸 것에서부터 작가의 혜안이 엿보이지 않나.


몸이 아픈 이유는 다양하지만, 모든 사람의 몸은 어떻게든 회복을 하려고 발버둥 친다. 심장은 뛰고, 교감 부교감 신경이 들썩거리며, 간이 최대치로 가동되면서 백혈구가 시동을 건다. 이 모든 일들은 내 의식과 상관 없이 저절로 일어난다. 의사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몸의 회복은 내가 알 수 없는 자동적인 신체 기제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런 내 몸을 신뢰하고 응원하는 것은 같은 편인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합당한 반응인 것 같다. 아픈 몸과 팀워크를 이루는 것이 병을 대처하는 기본자세임을 몇 년간의 골골이 생활을 통해 배운 것이다. 그 이후로 어딘가 아프면 주문을 외워본다. 고생이 많아, 잘하고 있어, 고마워. 74-75


필라테스를 할 때, 원하는 만큼 고관절이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복근이 제대로 작동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와 유사한 정도의 이유들로 내 몸을 원망한 순간들을 되돌아본다. 내가 이렇게 노력하는데, 왜 내 몸은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단 말인가, 한탄했던 순간들은 얼마나 많았던가. 이런 원망과 한탄에는 나의 오만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 몸이 그 동안 나를 위해 해 왔고, 지금도 나를 위해 해주고 있는 일들에 대해 내가 감사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 일을 해줄 것인가.


일찍이 신일숙이 [아르미안의 네 딸들]에서 말한 바, 생은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가진다. 지금 건강하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해 온 어떤 일에 대한 대가가 아니며, 지금 아프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저지른 어떤 일에 대한 응보가 아니지 않나. 내가 지금까지 건강한 몸으로 살아온 행운에 감사하고, 건강하지 못한 날들이 닥쳤을 때도 그건 그것대로 받아들이는 자세, 내가 배워야 할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나는 계속 나이들어갈 것이고, 나이든다는 것은 그만큼 건강과 멀어지는 일일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될 것이고, 이왕이면 씩씩하고 명랑하게 살아남아야할테니까.


적극적으로 자기 세계를 만들어가는 일도 훌륭하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세계를 긍정하고 그 세계에서 어떻게든 살아남는 일은 더 높게 평가해야 한다는 것. [아무튼, 반려병]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읽은 그 어떤 [아무튼]보다도 마음에 오래 오래 남는 [아무튼]이다.


우리 모두는 코로나라는 새로운 계절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 힘든 계절을 견디는 방법은 수많은 나와 네가 하나의 큰 몸이라는 것을 겸허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치료할 길이 없다고 해서 아픔이 부정될 수 없고, 지금 내가 당장 아픔을 느끼지 않는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도 아닌 것처럼, 어느 한쪽이 고통을 호소한다면, 내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해도 함께 아파해주는 새로운 의미의 면역력이 절실한 시대인 것 같다.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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