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프린스 1호점은 실현 가능한 꿈인가?>>

공부를 하는 사람은 비정규직이 되지 않고서도 비정규직의 삶의 처지를 알 수 있다. 이주노동자로 살아보지 않아도 이주노동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위대한 능력을 발현하는 일이다. 자신의 삶의 지평을 넘어서 다른 사람의 삶의 지평에서, 더 큰 세계의 지평에서 사고할 수 있는 능력. 이 능력이 오늘의 인간을 만들었다. 교육은 이같은 인간의 능력을 발현해주도록 돕는 일이다. 진정한 공부는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경제를 가르친다. 포스트 포디즘의 세계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다품종 소량 생산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창의성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내가 가르친 아이들이 만나는 경제 현실은 이렇다. 이렇게 배운 아이들은 대학에 진학했건, 아니건 상관없이 알바를 찾는다. 이들이 얻을 수 있는 알바는 대부분 시간당 3000여원의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일들이다. 그래서 나는 편의점에서, 주차장에서, 프렌차이징 커피숍에서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제자들을 만난다.

이렇게 번 돈으로 핸드폰 요금을 내고 나이키의 운동화를 사 신으며,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신다.(스타벅스에서 커피 한잔이면 1시간 분의 시급으로도 모자란다.) 이 20대들의 주머니에서 빠져나간 돈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거대 과점 기업으로, 다국적 기업으로 흘러들어간다. 이 돈의 흐름 속에서는 이 아이들을 위한 괜찮은 일자리가 창출될 기회가 생겨나지 않는다. 이동 통신 회사는 빈약한 성과급을 지급하는 ‘알바’를 동원하여 가입자 수를 늘린다. 나이키는 제3세계 국가의 어린이들을 동원하여 운동화를 만들게 한다. 하루 종일 고무와 가죽을 다루는 유해한 노동을 하고, 말레이시아의 어린이는 일당으로 1달러 내외의 돈을 받는다. 나이키가 매출이 신장하면서 한국에서 생겨나는 일자리는 하루 종일 매장에서 손님들에게 웃음 머금은 얼굴로 신발을 신겨주며 시간당 최저 임금을 받는 알바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타벅스 커피를 마실 때, 꿈을 안고 차린 까페들이 문을 닫는다. 남은 일자리는 여전히 시급 3000여원이 불안정한 알바일 뿐이다. 비정규직이 전체 고용의 통상 30% 수준이던 ‘평상시’를 지나 빠른 속도로 50% 선을 넘어선 오늘, 많은 학자들은 지금의 10대가 직장을 찾는 시기가 되면 정규직의 괜찮은 일자리는 전체 고용의 10% 수준에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내가 학교에서 경제를 가르치는 일이 ‘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자신의 선택이 갖는 의미를 깨닫도록 하는 힘을 길러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자영업이 급속히 몰락하고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있는 이유가 반드시 대한민국 경제의 구조조정 때문은 아니다. 더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유명 브랜드와 프렌차이징을 선호하는 소비 취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지금의 10대, 20대에게는 이 선호가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 문제 상황을 만들어 낸다. 어려서부터 대기업의 마케팅이 만들어낸 각종 문화에 효과적으로 길들여져 온 아이들은 대기업의 유명 브랜드와 프렌차이징이 아니면 돌아보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와 같은 문화가 새로운 세대의 삶을 지배하는 한, 이들 새로운 세대를 위한 괜찮은 일자리는 자꾸 자꾸 줄어들게 될 것이다. “공부하기 싫으면 다 관두고 장사나 배워!”하며 야단을 치시던 부모님의 이야기는 이제 철 지나간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공부를 해도 괜찮은 직장을 잡기 어렵지만, 장사를 한다 해도 거대 유통 기업과 프렌차이징이 판치는 구조 속에서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성공은 드라마 속에서만 가능한 얘기이다.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문화와 경제의 이 무서운 연쇄 작용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육을 생각하는 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스타벅스, 이마트로 향하도록 만드는 문화의 힘은 너무나 세다. 이 큰 힘에 떠밀려 아이들은 오늘도 시간당 최저 임금의 비정규직 알바를 뛰고, 남은 시간에는 그나마 남은 괜찮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토익 문제집을 붙든다.




1) 운이 좋아 학생 알바에게 법정 최저 임금을 지급하는 업소에서 일하게 된다면 얼마의 시급을 받을까? 2007년 기준 법정 최저 임금은 시간당 3,48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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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7-11-27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타벅스 커피 한잔이 시간당 법정 최저 임금보다 비싸다는 거, 탁 와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