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반려병 - '또 아파?'라는 말을 들었다, 오늘도 아무튼 시리즈 35
강이람 지음 / 제철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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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눈여겨 본 이유는 아무튼 시리즈에서 유독 도드라지는 아무튼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은 자기가 사랑하거나 성취했거나 성취 중인 어떤 일들을 가지고 아무튼을 썼다. 말하자면 그 아무튼에는 주체의 적극적인 선택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튼, 반려병]이라니. 반려병이라는 말도 낯설지만, 병이란 그냥 나를 찾아온 것이지 내가 적극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지 않나.


'아무튼 시리즈'가 표방하는 '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는 대개 '내가' 좋아서, '내가' 선택한 취미, 관심사,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내 인생을 돌아보면 각종 잔병들이 '나를' 선택해 왔다. 재작년에도 골골거렸는데, 작년에도, 올해도 비슷비슷하게 계속 아팠습니다, 라는 경험치가 나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내가 좋아서 혹은 의도해서 만든 능동적인 세계가 아닌, 잔병에 의해 만들어진 수동태의 세계가 내 안에 있는 것이다. 나는 감히 인생의 '아무튼'을 논하자면 이 수동태의 세계를 빼놓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7-8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별로 골골거리지 않고 잘 살아왔던 저자는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나이를 먹어가는 과정에서 각종 잔병들을 달고 사는 사람이 된다. 감기로 죽도록 앓다가 겨우 나을만해졌는데 다시 감기가 심해져서 병원에 갔더니 이 감기는 앞의 감기와 다른 감기라는 의사의 이야기를 듣는 식이다. 한 시즌에, 휴지기 없이 두 개의 감기를 연달아 앓는 사람이라니. 감기 뿐이겠나. 치열(치질과 비슷한 질환이라고 한다)에 비염에, 위장장애에, 변비에, 근골격계 질환에,... 여기에 일일이 다 나열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병들을 달고 산다. 어느 하나도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질병은 없지만, 어느 하나도 무시할 수 없는 정도의 고통과 불편을 수반하는 병들이다.


이렇게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으로 살아간다면 그 병들은 어떤 식으로는 나의 인생에 강력하게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작가는 담담하게 그 이야기를 한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질병을 극복하고 이제는 건강한 몸이 되었습니다, 하는 얘기가 아니다. 그냥 그 병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스스로는 큰 깨달음을 얻지도 못했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다. 그는 건강하지 않은 자기 몸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안다. '반려병'이라는 용어를 생각해 낸 것에서부터 작가의 혜안이 엿보이지 않나.


몸이 아픈 이유는 다양하지만, 모든 사람의 몸은 어떻게든 회복을 하려고 발버둥 친다. 심장은 뛰고, 교감 부교감 신경이 들썩거리며, 간이 최대치로 가동되면서 백혈구가 시동을 건다. 이 모든 일들은 내 의식과 상관 없이 저절로 일어난다. 의사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몸의 회복은 내가 알 수 없는 자동적인 신체 기제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런 내 몸을 신뢰하고 응원하는 것은 같은 편인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합당한 반응인 것 같다. 아픈 몸과 팀워크를 이루는 것이 병을 대처하는 기본자세임을 몇 년간의 골골이 생활을 통해 배운 것이다. 그 이후로 어딘가 아프면 주문을 외워본다. 고생이 많아, 잘하고 있어, 고마워. 74-75


필라테스를 할 때, 원하는 만큼 고관절이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복근이 제대로 작동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와 유사한 정도의 이유들로 내 몸을 원망한 순간들을 되돌아본다. 내가 이렇게 노력하는데, 왜 내 몸은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단 말인가, 한탄했던 순간들은 얼마나 많았던가. 이런 원망과 한탄에는 나의 오만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 몸이 그 동안 나를 위해 해 왔고, 지금도 나를 위해 해주고 있는 일들에 대해 내가 감사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 일을 해줄 것인가.


일찍이 신일숙이 [아르미안의 네 딸들]에서 말한 바, 생은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가진다. 지금 건강하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해 온 어떤 일에 대한 대가가 아니며, 지금 아프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저지른 어떤 일에 대한 응보가 아니지 않나. 내가 지금까지 건강한 몸으로 살아온 행운에 감사하고, 건강하지 못한 날들이 닥쳤을 때도 그건 그것대로 받아들이는 자세, 내가 배워야 할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나는 계속 나이들어갈 것이고, 나이든다는 것은 그만큼 건강과 멀어지는 일일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될 것이고, 이왕이면 씩씩하고 명랑하게 살아남아야할테니까.


적극적으로 자기 세계를 만들어가는 일도 훌륭하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세계를 긍정하고 그 세계에서 어떻게든 살아남는 일은 더 높게 평가해야 한다는 것. [아무튼, 반려병]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읽은 그 어떤 [아무튼]보다도 마음에 오래 오래 남는 [아무튼]이다.


우리 모두는 코로나라는 새로운 계절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 힘든 계절을 견디는 방법은 수많은 나와 네가 하나의 큰 몸이라는 것을 겸허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치료할 길이 없다고 해서 아픔이 부정될 수 없고, 지금 내가 당장 아픔을 느끼지 않는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도 아닌 것처럼, 어느 한쪽이 고통을 호소한다면, 내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해도 함께 아파해주는 새로운 의미의 면역력이 절실한 시대인 것 같다.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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