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돈 써야지. 둘째, 시간 낭비지. 셋째, 헤어지면 상처받지. 그러니 도대체 여자를 왜 사귀는 거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어깨 좁은 림보맨의 중얼거림에 동화되어버린 걸까요. 아아. <경기도 무주에 번지점프가 새로 생겼던데, 가 볼까?> 하던 오리의 권유에 저는 귀찮다고 말했고, 해파리가 외국여행에 가자고 할 때에도 저는 중얼거렸습니다. <에이, 귀찮아. 제대로 못 해 봤으면서, 국내 여행도, 무슨 여행이야, 해외 말이야.> 그리고 한 달 전쯤이었나, 스쳐지나간 한 일본인의 헤어스타일을 가리키며 해파리가 말했을 때에도 제 대답은 똑같았습니다. <저런 머리 싫어해.> <쪽팔려서 그러는 거지?> <아니라니까.> 또 다시 수세적 입장에 몰리는 상황에서 왜, 라고 묻는 오리새끼의 공세에 저는 그만 흥분하고 말았습니다. <어, 진짜인가 보네?> <아냐!> <진짜잖아.>


천만에, 이번만큼은 달랐습니다. 왜 그들은 제가 절대로 호일펌을 하지 못할 것이라 여겼을까요? 왜! 왜! 왜! 왜 그렇게 여겼던 걸까요? 크악, 크악. 저의 변신은 상당히 성공적이었습니다. 이튿날 여러 동료들이 던진 한 마디 한 마디가 제게 자신감을 넣어주었으니까요. <그다지 잘 어울리진 않네.> <별로야.> 이 말을 듣고 저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적어도 최악의 평가는 피했기에, 복도를 왔다 갔다 하는 사이 눈에 뛸 정도로 땀을 많이 흘리고 있었는지 지나가던 몇몇 동기가 그것을 지적해 주었을 때·에도 저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온 몸이 다 젖었어. 괜찮아?> <아, 더워서, 그래, 날씨가, 말이야.> 저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그녀가 나타나기만을 숨어 기다리다가, 우연을 가장해 그녀와 부딪힐 기회를 엿보면서 도서관과 학생회관 사이를 조심조심 돌아다녔으나 평소 애용하던 카페에도 그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과 사무실에서 이 사회를 좀 더 아름답게 변화시키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나 보다 여겼었는데 맞더군요. 크악, 크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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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병들의 말마따나 영원히 군대와는 빠이빠이, 라고 여겼던 제가 어리석었던 걸까요? 오히려 이상해진 건 전역을 하고 난 후였습니다. ‘빵꾸’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발 냄새 때문이 아니라 제가 더 이상 발 냄새를 맡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불안해지고 만 겁니다. 크악, 크악. 타 대학 여학생들과의 미팅자리에서 해파리가 저의 귀에다 속삭인 이후로 말입니다. <대가리, 너 발 냄새 졸라 장난 아냐. 토할 것 같아.> <진짜?> <열라 심해.> O양의 얼굴이 제 머릿속을 흐물흐물 스쳐지나가는 순간, 여자들의 찌뿌드드한 인상이 벼락같이 망막에 박혀들었습니다. 모두가 식탁 위에 올려진 된장에다 눈빛의 초점을 맞추는 가운데 저는 막혀오더군요, 숨이 말입니다. 크악, 크악. 그날부터 저는 아침저녁으로, 가능하다면 점심시간에도 발을 씻기 시작했고, 이틀에 한 번씩 신발에다 발 냄새 먹는 솜뭉치를 갈아 끼워 주었고,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이면 양말을 벗어 두 발을 바싹 말려주었습니다. 세수도 하루에 세 번씩 하기 시작했으며, 겨드랑이에 뿌리는 데오도란트까지 구입했고, 무엇보다도 머리가 작아지는 얼굴 마사지를 일주일에 두 번씩 해 주었는데, 물론 이 모든 노력은 미미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미미의 작은 얼굴을 항균 깔창을 갈아주는 아침마다 떠올렸습니다. 샤워를 할 때에도, 코털을 뽑을 때에도, 제 머릿속은 미미로 꽈 차 있었습니다. 크악, 크악.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마음의 혼란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미미에게 말을 걸 수 있을까요. 오오. 이토록 순수하고도 정열적인 헌신을 로테는, 아니 미미는 알고 있을까요. 아마, 아니 틀림없이 모를 것인데, 당연한 일이지요. 크악, 크악. 항상 저는 이렇게 말하곤 했으니까요. <귀찮잖아> 중간시험이 끝난 삼일 전 술자리에서 오리가 장난으로 중얼거렸을 때에도 저의 반응은 한결같았습니다. <신발 벗어봐> <안나, 냄새, 지금은.> <어디 보여줘.> <괜찮아, 정말> <벗어봐.> <귀찮아.> <까 봐. 까 보라니깐.> <에이, 귀찮다니까.> <까 봐!> <안, 까!> <까 봐!> <안, 까!> <까!> <안, 까!> <까!> <안, 까! 귀찮다니까! 에이!
>

<귀찮아, 귀찮아, 귀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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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야구장은 그대로 있었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얀 눈이 지붕마다 올라와 있었다. 습관적으로 주위에 아무도 없는지 둘러본 후에 나는 삐걱거리는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섰다. 파카를 벗었다. 눈이 묻은 방망이를 털고 거스름돈으로 받은 500원을 집어넣자 위잉 거리면서 기계장치가 작동하는 소리가 나자마자 공이 튀어나왔다. 나는 방망이를 휘둘렀다 공은 맞지 않았다. 아무도 없었으니 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두 번째로 공이 나왔을 때에도 헛스윙이었다. 예전에 공을 하나도 맞히지 못해 얼굴이 빨개진 이후로 한 번도 야구장에 들어선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너무나 화가 나서였다. 유니폼을 입었는데도 왜 이렇게 공이 맞지 않는 것인가? 환전기로 돈을 바꾼 다음 다시 동전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30번을 휘두를 동안 내가 맞힌 건 딱 하나 뿐이었다. 그것도 방망이의 가장자리에 가까스로 스쳐간 볼이었다. 밖으로 나와 다시 동전으로 환전하고 있는데 연인들로 보이는 남녀가 왔다. 절묘한 타이밍에 나는 안도했다. 여자는 뒤에 남겨두고 남자는 방망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깡, 하는 소리가 휘두를 때마다 울려 퍼졌다. 팔짱을 낀 채로 여자가 나를 흘끔거리는 시선에 나는 약간 수치심을 느꼈다. 홀로 서 있는 건 어딘가 우스꽝스러웠다.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돌려 그곳에서 벗어나 문 닫힌 상가들이 즐비한 재래시장으로 들어섰다. 을씨년스러운 내부는 음식물의 공급이 끊어져 텅 비어버린 위장 같았다. 꼬르륵 소리처럼 몰아치는 바람이 거무칙칙한 셔터들을 덜컹덜컹 뒤흔들었다. 목적지까지 당도했다는 생각이 들자 입사면접을 보러 가는 것처럼 심장이 고동쳤다. 시장 끝에 위치한 허름한 자판기에서 카푸치노 대신 뜨거운 맹물을 홀짝이면서 나는 다시금 주위를 둘러보았다. 버려진 자판기와 코를 킁킁거리는 검은 개 한 마리, 그리고 종이컵을 든 나만이 시장 안의 쓸쓸한 풍경이었다. 자판기 옆의 좁고 가파른 계단에 걸터앉아 나는 담배를 물었다. 왜 이렇게 시간을 질질 끄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답답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발걸음을 되돌리고픈 충동이 생길 때마다 빵집과 야구장만큼의 거리 사이에서 나는 대뇌었다. 그렇다면 왜 여기까지 온 것인가. 또 다시 동창과의 우연한 만남을 기대하고서? 그것도 얼마간은 사실이겠지만 이제는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나? 해가 짧아 이미 주위는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았다. 온 몸에서 시커먼 피가 몸속에 도는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날 힘조차도 사라져서 시멘트 바닥에다 담배를 비벼 끄고 나서도 의식을 텅 비운 채로 나는 한참이나 꼼짝없이 앉아 있었다. 털보과장의 얼굴이 뇌리를 스쳐간 건 그런 와중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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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정리중인 주인은 50대 중반의 머리가 희끗한 사내였다. 그를 따라 나도 고개 숙여 인사했다. 실내의 라디오 소리처럼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가죽장갑을 벗어 주머니에 넣고 빵의 진열대를 훑어보는 사이 주인의 뒷모습을 몇번이나 흘끔거렸으나 그때의 주인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사실, 클라인구티라는 독특한 이름만을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곧 이어 부인으로 보이는 뚱뚱한 중년여성이 아기를 업은 채 들어섰다. 피자조각처럼 판매되는 고구마쇼트케이크를 하나 집어 계산대에 올려놓은 후 빵이 봉지에 담겨지는 걸 바라보면서 나는 입을 열었다.
“여기, 주인 안 바뀌신 거죠?”
“예. 예. 그대롭니다. 여기 500원 있습니다.”
나에게 거스름돈으로 건네주며 두 손을 맞잡은 주인이 공손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3년 전에 이 근처에 살았었거든요. 이사한지가 벌써 3년이 되었네. 근처에 볼일이 있어 잠깐 들렀는데 아직 있네요.”
“아, 그러셨군요. 하하. 3년 전이라······.”
나도 모르게 불쑥 3년 전이란 거짓말이 나왔다. 10년 전이라고 했다가 ‘오픈’한지가 5년 전인데 무슨 말이냐고 묻는다면. 등 뒤에서 서성이던 부인이 그때 끼어들었다.
“우리는 여기, 20년이 훨씬 넘었어요······.”
잠시 추억에 빠져든 중년 부부를 뒤로 하고 밖을 나오자 나에게로 어떤 확신이 찾아들었다. 기둥처럼 이곳을 지키는 빵 가게 주인처럼 그 또한 마찬가지일 거라는. 찢어질듯 펄럭이는 광고현수막처럼 나의 머릿속은 온갖 상념으로 뒤척이기 시작했다. 주방에서 치킨을 튀기면서 주문 전화를 받는 아주머니를 가운데 두고 좌우로 우리들은 항상 바빴다. 감색 추리닝에 항상 검은 고무장화를 신고 배달을 다녔고, 오토바이로 내리막길을 달리다 넘어졌으나 기적적으로 부상을 당하지 않은 일과 배달주소를 확인하고 골목을 빠져나왔을 때 배달상자 안의 치킨이 감쪽같이 사라진 황당한 사건을, 조금 늦었을 뿐인데도 불같이 화를 내던 괴상한 아주머니의 불퉁한 얼굴과 망치바람을 맞으며 나와 혼연일체가 되었던 오토바이의 떨림이 두서없이 떠올라 엇갈렸다. 그물망처럼 얽힌 기억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이십이요. ‘이십’ 번지라는 뜻인지 ‘이십이’라는 뜻인지 몰라 두 군대 다 다녀와야 했던 경험, 주인아주머니가 매일 입던 비닐바지, 치킨을 배달하다 말고 붕어빵을 사 먹으러 멀리까지 원정을 갔던 일, 그리고 치킨을 배달한 수백 개의 가정들. 살갗을 도려내는 한 겨울의 추위 속에서 집집마다 배달을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현관문을 열어젖힐 때 콧속으로 훅 끼쳐 들어오는 집안의 냄새를. 달짝지근한, 새콤한, 비릿한, 눅눅한, 뾰족한, 차가운, 서늘한, 매캐함과 함께 나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명멸하던 주인아저씨가 구체적인 형상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이상한 들뜸 때문이었을까. 나의 기분이 조금 전의 들뜬 상태와는 달리 저하되어 있었다. 10대였던 그 당시 나는 어떠했던가. 개업 4개월째인 어수선한 분위기와 주인아저씨의 착한 심성을 이용해 저지른 고약한 짓들 중 전단지를 도맡았던 1주일의 기간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전단지 대부분을 하수구에 처박고서 남아도는 시간의 반은 책방의 무협지에 반납하고, 나머지 시간엔 여기저기 관광 삼아 돌아다닌 뒤 아저씨에게서 하루 일당으로 7만원을 꼬박꼬박 받아갔고, 그럴 때마다 죄책감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지만 곧 잊어버렸다. 우연히 설날이 포함된 지극히 짧았던 2개월의 근무 기간 동안에 주인아저씨는 나의 표면적인 성실함을 믿었다. 시장 야채 배달, 편의점, 자장면과 신문 배달, 노래방, 당구장의 비누, 칫솔, 치약, 샴푸 와 린스로 구성된 선물 세트처럼 수많은 일을 거치면서 명절에 종이가방에 선물세트를 넣어 준 사장으로써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럼에도 나는 핸드폰을 꺼버리는 것으로 보답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만둔다는 자각도 없이 나는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5년 전의 오해를 풀기 위해서라는 생각도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아니면, 지금 그곳으로 일하러 가는 중인가. 파카 안에다 야광조끼를 껴입은 건 지하철 화장실에 들렀을 때였다. 가방에서 꺼내 입은 95사이즈의 조끼는 정확히 내 몸의 크기에 일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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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 중에 착용하는 야광조끼를 그날 집으로 가져온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 무표정하게 코미디 프로에 빠진 누나를 뒤로하고 동네 가게에서 빌려온 비디오를 소파 위에 올려다놓고, 화장실 거울과 마주선 후에야 나는 깨달았다. 그런 일이 간혹 있었다. 여름이라면 모를까, 조끼 위에 두툼한 파카를 껴입어버리는 겨울에는 실수를 확인할 도리가 없었으니까.
싸움의 발단은 나였다. 당장 비디오를 봐야겠다고 다짜고짜 우겼다. 언성을 높이며 얼굴이 붉어진 누나에게 나는 기다렸다는 듯 찬물처럼 달려들었다. 재생과 정지가 각각 반복되는 동안 점차 높아진 언성은 서로에게 무차별적 비난을 가하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어느 새 나는 어둠으로 한적한 대로변을 달리고 있었다. 뛰면 뛸수록 가로등의 불빛과 그 사이로 흘러가는 건물 간판의 글자들이 뿌옇게 어룽져갔다.
가출이라고 해봐야 겨우 하루였다. 기분 내키는 지점을 버스에서 내려 게임방과 찜질방을 전전한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불안이 엄습한 데에는 누나에 대한 미안함보다 무단결근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 더 컸던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튿날 어둑해진 사위 같은 검은 비닐봉지를 나는 양 손에 쥐고 있었다. 찐만두와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오징어 덮밥이 점차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식을까봐서이기도 했지만 누나가 나서기 전 서둘러 집에 도착하기 위해서였다. 발걸음은 가위질처럼 점차 빨라지고 있었다.

사당역에 도착 할 즈음에야 나는 멈춰 서서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호흡을 길게 가다듬었다. 갑갑함이 완전 연소될 정도로 충분히 뛴 것 같았다.
원래 하차해야 할 정거장에서 세 코스나 앞선 서초역에서 내렸던 것이다. 낯설었던 거리도 이제 사당역의 사거리의 구름다리를 배경으로 완전히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예전의 건물들도 그대로였고, 간간이 배달을 갔던 모텔. 신호등 앞의 뽀끌레 미용실도 거기에 있었다. 직진하여 건물들의 간판이 모조리 눈에 익었다. 새로 들어선 곳도 꽤 있었다. 이동통신 대리점이 커다란 바람에 따라 입구에 놓인 거대한 사람 모양의 풍선이 신이 난 듯 춤추고 있었다. 그토록 많은 해가 지났어도 이 모든 광경들이 기억 속에 보존되어 있었다. 익숙함의 중심에 놓인 클라인구티 앞에서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눈을 탁탁 털고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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