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글쟁이들 - 대한민국 대표 작가 18인의 ‘나만의 집필 세계’
구본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한국의 글쟁이들


책이 좋다. 까까머리였을 때, 오후 내내 책을 읽다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책만 읽으면서 살면 좋겠어.”

어머니는 무심한 듯, 시큰둥하게.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제 책 그만 읽고 공부하러 가.”



세월이 흘러 결혼을 하고, 아내에게 같은 말을 한다면 어머니와 같은 말을 하겠지.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제 책 그만 읽고 일하러 가.”



책은 나에게 뭘까.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



처음보는 순간부터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 있다. 한국의 글쟁이들을 본 순간 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우리시대 최고의 저술가들의 서재, 책 읽기, 글 짓기에 대해 알고 싶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어떤 책을 읽는지 그들은 책에 대해 어떤 의미를 품고 사는지 궁금했다. 그들이라면 엄마에게 아내에게 자신 있게 난 책 읽으며 공부해. 난 책 읽으며 일해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책을 읽는 내내 머리가 둥둥 울렸다. 책 속에는 저술가들이 소개 해 준 수많은 책들이 빙빙 돌아 다녔다. 그들이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가졌던 독서의 시간들과 집필의 시간들이 수 만분의 일로 압축되어 흘러갔다.

소용돌이 같은 머리 속을 진정시키고 몇 가닥 지푸라기를 잡았다. 그들은 친철하게도 자신만의 영업비밀을 인터뷰에 공개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저술가들이 공개해 놓은 자신만의 비밀은 의외로 간단했다.



하나, 단순명료하게 쓰기.

저술가의 가장 큰 덕목은 바로 독자와 주제를 소통시키는 능력이다. 그래서 글 쓰기에 있어서 단순명료는 가장 중요한 속성이다.

정민 선생은 불필요한 것을 없애는 것을 최고의 문장으로 꼽았다. 또 이원복 교수는 자신의 저술 철학을 단순명료라고 했다. 복잡한 것에서 키워드를 잡아 이를 바탕으로 포장을 벗겨내는 일을 자신의 일이라고 했다. 미술 저술가 이주헌은 절대 뻐기지 않는 글을 쓴다고 했고, 문장에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고 했다. 동양학 저술가 조용헌은 한 문장에 하나의 생각을 기본으로 하여 책을 쓴다고 했다.

다들 형용사와 부사를 꺼려했고 언어의 경제성에 집착했다. 그것만이 그들이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경쟁력이라고 했다. 학문적으로 훨씬 뛰어난 교수 집단과 문장으로 훨씬 뛰어난 문학가 집단의 사이에서 저술가들이 살아 남을 수 있는 것은 독자와의 소통력뿐이다.



둘째, 독자가 원하는 것을 찾는 능력이다.

저술가들은 기존 지식인들이 감추어 둔 새로운 장소를 보여주고 안내해준다. 그리고 그런 분야의 지식들을 독자가 소화하기 좋게 잘라서 먹여준다.

미술저술가 이주헌은 기존 딱딱했던 그림에 대해 새로운 방식의 접근을 시도했고, 과학 저술가 이원식은 과학 분야를 대중들에게 알렸다. 이원복 교수는 편견에 가득 찬 만화라는 형식을 통해 교양을 넓혀주었다.

이처럼 저술가들은 대중이 가려워 하는 분야를 콕 찔러 긁어 주었다.



셋째, 가장 중요한 것은 책에 대한 열정이다.

그들은 자신의 생활을 철두 철미하게 관리하였으며 매일 일정시간 이상 글을 썼다. 책을 쓰고 글을 쓰는 것 이외의 활동을 최대한 절제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저술세계가 신이 되고, 원고를 쓰는 게 신에 대한 경배가 되는 도올 김용옥적인 저술 세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룩한 것이다.



우리나라 저술가의 역사는 짧다. 다들 책이라고 하면 소설이나 시처럼 문학을 먼저 생각하는 단계에서 저술가라는 위치가 생성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의 출판계는 외국의 유명 저술가들의 책을 번역 출판하는 책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국의 글쟁이>의 저술가들처럼 토종 저술가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의 척박한 저술 문화에 씨를 내리고 뿌리를 길러냈다. 그들에 의해 길러진 토양 위에 앞으로 새로운 세대의 저술가들이 등장하리라 기대한다. 그 뿌리 한 모퉁이에 나 또한 위치해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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