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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 브랜딩 - 타인의 마음속에 내 브랜드를 심는 법
에가미 다카오 지음, 최지현 옮김 / 김영사 / 2026년 10월
평점 :

1
솔직히 고백하면, 저는 브랜딩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습니다.
광고를 해본 적도, 로고를 만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제가 한 거라곤 그냥 매일 글을 쓴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덮고 나서, 그게 어쩌면 그 모든 행동들이 저 "란코프"
브랜딩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왜 어떤 가게 앞에는 늘 줄이 서 있을까
저자는 일본 광고업계에서 30년 동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며 그 답을 찾아온 사람입니다.
책은 위의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간판도 없이 골목에 자리한 노포, 오랜시간 기다려야 하는 가게는 왜 사랑받는 브랜드가 됐을까.모든 게 빠르게 소비되고 잊히는 세상에서, 굳이 느리고 비효율적인 길을 택한 브랜드들.
가장 먼저 밑줄 그은 대목은, 브랜드가 신경 써야 할 건 새로 들어오는 고객보다 떠나는 고객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27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M&A와 신사업을 하며 수많은 회사를 봤습니다. 매출 숫자가 화려해도 고객이 조용히 빠져나가는 회사는 결국 무너졌습니다. 반대로 눈에 띄지 않아도 고객이 떠나지 않는 회사는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숫자로 잡히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 그게 진짜 자산이 아닐까합니다.
3.
마케팅은 사게 만들고, 브랜딩은 남게 만든다
이 책은 마케팅과 브랜딩을 분명히 구분합니다. 제가 이해한 대로 말하면, 마케팅이 지금 한 번 사게 만드는 일이라면 브랜딩은 그 사람이 계속 곁에 남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남은 사람들이 입소문을 내는 '에반젤리스트', 즉 열렬한 지지자가 된다고 말합니다.
이 대목에서 제 블로그 댓글창이 떠올랐습니다. 몇 년째 같은 이름으로 찾아와 댓글을 남겨주시는 이웃분들. 저에게는 그분들이 바로 이 책이 말하는 지지자였습니다.
사진 속 만년필 뚜껑에는 ‘Ran corp.’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회사 명함 속 제 직함은 여덟 번 바뀌었지만, 블로그 속 '란코프'라는 이름만큼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쌓인 글이 1,300편을 넘었고, 이웃이 5,800명이 되었고, 책 아홉 권이 되었습니다.
빨리 알려진 적은 없지만, 천천히 기억되고 있었습니다.

4.
베트남 법인장으로 일하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한국에서는 회사 이름만 대면 통하던 일이, 사이공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현지 직원들에게도, 파트너들에게도 저는 그저 낯선 나라에서 온 한 사람이었습니다.
영어로 회의를 하고, 서툰 베트남어로 인사를 건네며 깨달았습니다. 신뢰는 계약서 한 장으로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요. 약속한 날에 약속한 것을 지키고,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 단순한 일을 몇 달, 몇 년 반복하고 나서야 사람들이 마음을 열었습니다.
책은 브랜드가 밖으로 무엇을 말하기 전에, 안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그 브랜드를 믿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고객에게 보여주는 모습과 직원이 느끼는 모습이 같아야 한다는 것이죠.
사이공에서 제가 한 일도 결국 그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화려한 전략이 아니라, 매일 같은 사람으로 그 자리에 서 있는 것.
로고도, 회사 이름도 통하지 않던 곳에서 저는 배웠습니다. 브랜드는 결국 신뢰라는 것을.

5.
책 4장에는 효율 대신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를 먼저 묻는 브랜드들이 나옵니다. 일본의 코코 팜 와이너리, 이탈리아의 브루넬로 쿠치넬리처럼요.
돌아보니 지금 제가 하는 일도 하나같이 비효율적입니다. 서평 한 편에 몇 시간, 1인 출판은 남는 것보다 들어가는 게 많습니다.
그런데 그 비효율이 쌓여서 '란코프'가 됐습니다.

5. 그래서 나는
요즘은 모두가 빨리 뜨고 싶어 합니다. 짧은 영상, 자극적인 제목, 하루 만의 조회수.
이 책은 그 반대편에서 조용히 말합니다.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오히려 그래야 오래 남는다고.
1인 출판사를 운영하는 저에게, 작은 가게나 회사를 꾸리는 분들에게, 그리고 회사 이름 대신 내 이름으로 살아갈 준비를 하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브랜드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이름과 인생도 멋진 브랜드가 되길 응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