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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사랑은 블랙 - 바람이 지나간 자리마다 꽃은 피어나고
이광희 지음 / 파람북 / 2021년 12월
평점 :
절판

깜깜한 밤 깊은 숲속에 신비한 빛이 마치 눈처럼 흩날립니다. 아름다운 표지 그림을 보자마자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떠올랐는데요. 별처럼 반짝이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빛들 사이로 누군가가 있습니다. 표지 속 인물은 누구일까요? 표지 속 인물은 저자이며, 신비하고 아름다운 빛은 어머니에게서 전해지는 사랑과 희망, 지혜와 성찰의 메시지인 것일까요?

내게 날개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어요.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날 수 있는 날개가 있음을 기억하고, 세찬 바람을 가르며 나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아야겠어요.
'아마도 사랑은 블랙' 중~
이 책은 패션디자이너인 저자가 어머니에게 띄우는 편지 형식으로 집필된 에세이로 146편의 글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삶에 대한 성찰,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지혜를 찾아가는 여정이 담겨 있습니다. 앙드레김과 함께 우리나라의 '오트 쿠튀르'를 대표하는 정상급 디자이너인 저자 이광희, 하지만 그녀의 삶은 명성만큼 화려하지는 않았습니다. 디자이너로서 겪는 이런저런 사정이나 갈등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성품이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저자의 어머니는 고아나 걸인, 나환자들에게 진심을 다해 사랑을 나누어 주시며, 평생을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랑을 실천하신 분인데요. 희망고(희망의 망고나무) 재단을 이끌며 아프리카 톤즈에서 마마리로 불리는 저자 또한 어머니와 같은 삶을 실천하고 계신 분입니다.

늘 든든한 삶의 뿌리였으며 길을 잃지 않도록 이정표가 되어준 어머니, 그 어머니에게 전하는 편지 형식의 에세이 '아마도 사랑은 블랙'은 첫 번째 편지 꾸러미 '깨달음', 두 번째 편지 꾸러미 '마음', 세 번째 편지 꾸러미 '말', 네 번째 편지 꾸러미 '고통', 다섯 번째 편지 꾸러미 '용기', 여섯 번째 편지 꾸러미 '희망고',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글 '꽃사람, 김수덕'을 에필로그로 담았습니다.
책을 읽다가 남산 산책로를 걷는다는 이야기에, 혹시 그곳? 하며 떠오르는 곳이 있었습니다. 책 내용과는 상관없을 수도 있지만, 일주일에 적어도 두 세 번은 지나다니던 그곳에 저자의 부띠끄가 있었다는 걸 몰랐다는 것, 그저 무심히 지나가던 그곳이 한 눈에 들어왔다는 것, 고급 맞춤복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던 것, 그래서 더 관심을 두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관심과 무관심의 차이가 단숨에 들어났답니다. 그래서 남산야외식물원으로 운동 겸 산책을 가면서 슬쩍 사진을 찍어봤습니다.

아마도 사랑은 블랙
어머니,
사랑의 색깔은 무엇일까요?
이 세상에 주어진 모든 의미가 합쳐진 게 사랑이 아닐까요? 사랑은 자유라고 생각할 때 그것만으론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기쁨이라고 생각해보아도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사랑은 기쁨, 행복, 슬픔, 불행, 고통, 환희, 자유, 빛과 그림자..., 이 세상의 모든 의미를 하나로 모을 때 비로소 사랑이 되는 것 같습니다.
(중략)
사랑하는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 갑니다. 아니, 까맣게 타들어 간 마음은 사랑 때문입니다. 진정한 모든 의미가 합해진 깜깜한 암흑에서 사랑의 환한 빛이 나옵니다.
모든 색을 합하면 검정이 됩니다.
그래서
사랑은
아마도
블랙이 아닐까요?
'아마도 사랑은 블랙' p.36~37
어떤 사람에게 사랑은 열정적인 빨강색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 사랑은 두근두근 분홍색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 사랑은 질투의 노랑색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 사랑은 봄빛처럼 싱그럽고 눈부신 초록색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저자의 말처럼 기쁨과 행복, 슬픔과 불행, 고통과 환희, 빛과 그림자...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그 모든 것이 하나가 되고, 모든 의미가 합해진 색 블랙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깜깜한 암흑에서 사랑의 환한 빛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버리기 훈련
언젠가는 쓰겠지, 다들 소중한 건데, 어떻게 해서 갖게 된 건데, 하며 부둥켜안고 사는 게 어디 옷뿐일까요? 제 마음속도 이렇지 않을까요.
문득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니 머리와 마음속에 케케묵은 잡동사니가 그득그득 채워져 있습니다. 분노, 화, 억울함, 후회, 자존심, 쓸데없는 미련, 쓸데없는 일로 낭비되는 에너지, 감정들..., 매일 그런 생각을 붙잡고 삽니다.
'아마도 사랑은 블랙' p.56
계절이 지날 때마다, 매년 연말 즈음에 집에 쌓인 물건들 중 필요 없는 것들을 정리하여 버립니다. 하지만 정말 이상한 건 버리고 정리를 했음에도 여전히 무언가 잔뜩 쌓여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언젠가 쓸 수도 있으니까, 이건 아이들이 만든 것이니까, 이건 우리 가족의 추억이 깃든 것이니까..., 이런저런 이유로 꺼냈다가 도로 원래 자리로 집어넣고 마는데요. 물건을 버리는 것도 이렇게 쉽지 않은데,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것들을 버리는 것은 얼마나 어려울까요. 이만큼 털어버리고 저만큼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또다시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저자의 말처럼 모두 훌훌 털어 분리수거함에 넣을 때가 오겠죠?

침묵이 미덕일까
평생 침묵을 과묵함, 신중함으로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돌이켜보면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미덕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말을 해야 할 때 침묵했고, 침묵해야 할 때 오히려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함으로써 오해는 증폭되고 복잡하게 얽히게 되곤 한 것 같아요.
말해야 할 때 입을 열고, 침묵해야 할 때 입을 다무는 것, 그런 지혜가 제게 필요했습니다.
'아마도 사랑은 블랙' p. 89
정말 사소한 것에 분노하여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내뱉고 후회하지는 않았나요? 굳이 꼬집어 내어 한 마디 툭 던진 말로 누군가를 곤란하게 만든 적은 없나요? 정작 분노하고 저항해야 할 때에는 모른 척하고 숨어 있지는 않았나요? 침묵해야 할 때는 말을 하고, 정작 말해야 할 때는 침묵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아는 지혜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나눔과 소통
나눔은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으로, 상대에게 맞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세심함이 무척 필요하더라고요. 상대를 세심하게 이해하고 관찰해서, 배려하는 마음으로 나눔을 실행해야 하더군요.
나눔은 기회를 주는 것이고, 또 그 기회를 누리는 것이기도 하다고 봐요. 누군가를 도울 기회, 돕는 기쁨을 누릴 기회!
(중략)
그리고 그 나눔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낄 거예요.
'아마도 사랑은 블랙' p.168~169
나눔과 배려라는 말이 흔한 요즘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나눔과 배려는 '나'가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배려하고 필요한 것을 나누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상대방을 위한다고 생각하며 나누고 베푼 것이 혹시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는지, 그것이 오히려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때로는 배려한다고 한 것이 지나쳐 무관심으로 대응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등수 매기기
"누구라도 그들의 공연이나 작품에 등수를 매기는 일을 하면 안 된다. 모두가 잘한 거다"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저는 등수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 그들의 문화에 놀라고 감동했습니다. 항상 등수를 매기면서 남과 비교하며 살았던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고 부끄럽기도 했고요.
'아마도 사랑은 블랙' p.174~175
서로 짓밟고 짓밟히면서 보이지도 않는 꼭대기를 향해 올라가고 있는, 내가 올라가기 위해서 때로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하는, 우리는 '꽃들에게 희망을'에 나오는 애벌레들처럼 보이지 않는 그 세계를 향해 끝없이 경쟁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톤즈 마을의 엘더들은 등수를 정해 상을 주자는 제안에 일제히 손을 젓습니다. 누가 잘하고 누가 덜 잘하는 것이 아닌 모두가 잘한 것이라는 그들의 모습에,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학력, 빈부, 외모..., 그 어떤 것으로든 서열을 나누고 있는 건 아닌지...,

엄마라고 불러봅니다
지금쯤 지옥에서도 바쁘실 엄마께.
작은 오빠는 엄마가 돌아가시면 지옥에 가실 거라고 했어요. 지옥에 가야 돌봐야 할 사람이 많을 거니까요.
보고 싶고 수다 떨고 싶은 엄마,
다 늦은 이제야 스스럼없이 엄마라고 불러봅니다.
(중략)
'아마도 사랑은 블랙' p.232
저자는 마지막 편지에서 어머니가 아닌 '엄마'라고 부르며, 그동안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못하고 흘려보낸 세월이 야속함을,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힘든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셨는지, 딸에게 어떤 말씀을 해 주고 싶으신지, 엄마를 이해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 때 엄마는 딸의 질문을 들을 수 없었음을,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딸의 이야기를 들으실 수 있을 것임을, 그래서 다음에 또 편지를 드릴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딸의 편지에 답장을 보내는 엄마의 마음을 담은 편지 글로 끝을 맺습니다.
마치 어머니와 대화하듯 자신의 일상을 꾸밈없이 풀어낸 '아마도 사랑은 블랙', '한 사람의 마음을 잃는 건, 우주를 잃는 거다."라는 말이 지금 유독 더 뭉클하게 다가옵니다. 사람이 온 우주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귀하다는 말씀, 마음에 깊이 새겨둡니다. 지금까지 어머니에게 띄우는 성찰과 희망, 감동 어린 위로의 메시지, '아마도 사랑을 블랙'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사랑은 색깔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