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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 별사
정길연 지음 / 파람북 / 2025년 1월
평점 :

<열하일기>, <양반전>, <허생전> 등의 작품을 쓴 작가이자 박제가, 홍대용과 더불어 18세기를 대표하는 북학파 실학자, 바로 연암 박지원입니다. 교과서나 역사책에서 자주 접하는 인물이지만, 그의 삶에 대해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안의, 별사>는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소설이기는 하지만, 역사적 사실과 인물들이 등장하여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과 재미를 더합니다.
연암 박지원이라면 가장 먼저 실학파를 떠올리고, 이어 당대 최고의 문사이자 저 놀라운 <열하일기>의 저자로 기억하고, 나아가 꽤 알려진 특유의 호방한 기질과 처세와 풍모를 언급한다. 안의 현감으로 4년 2개월을 재직한 사실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고 있지 못하거나, 알고 있더라도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다. 연암의 글이나 그곳에서 벗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제외하면, 오늘날의 함양군 안의면에 실체적 궤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까닭도 있겠다. <안의, 별사>에서 그 시간과 공간을 구현해보고 싶었다. '작가의 말' 중~
안의, 별사(安義, 別辭)는 안의에서 이별하는 이야기(직역하면, 안의에서 이별의 인사)라는 뜻으로 연암 박지원과 한 여인과의 만남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장편 역사소설입니다. 1792년부터 4년 동안 안의현 현감으로 재직할 당시에 있었던 실제 역사 이야기에 은용이라는 가상의 여인과의 만남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가미하여 몰입감을 선사하는데요. 2층으로 된 창고를 헐어 연못을 만들었다든가 아전들의 비위를 감독하여 횡령한 곡식을 환수하였다든다 송사 문제를 해결하였다든가 흉년이 들 때면 백성들과 함께 죽을 먹으며 동고동락했다는 이야기는 잘 모르고 있던 연암 박지원의 삶과 더불어 현재를 살아가는 권력자들이 갖추어야할 덕목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연암 박지원과 안의현 과수(寡守 남편을 잃고 혼자 사는 여자) 연주가 은용이 번갈아 화자로 등장하여 들려주는 이야기는 안의현 현감 박지원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자, 재가 대신 자결을 선택하여 열녀가 되기를 바라던 시대를 살아야했기에 연모의 정으로만 끝내야했던 한 여인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대중없지는 않습니다. 제집에서 건너간 매화목이 아닌가요. 그리고........ 오늘이 어떤 날인가요. 되돌아온 매화라, 이처럼 확실한 언명이 또 어디 있겠는지요. p.23
이야기는 체직으로 안의현을 떠나는 박지원이 보낸 매화목과 편지를 받은 은용이 이별에 대한 슬픔을 견디어낼 것임을 드러내며 시작합니다. 어쩌면 두 사람의 인연은 은용의 당호 '인연 없는 집'처럼 맺어질 수 없는 인연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서녀로서 받는 차별, 혼인한 지 두 해 만에 남편을 잃은 과수, 열녀가 되어 가문을 빛내주기를 바라는 아버지와의 인연을 끓어낸 딸이라는 아픔을 지닌 은용, 그렇게 내려온 외할아버지 댁에서 운명처럼 만난 이가 바로 현감으로 내려온 박지원입니다. 가족과 백성을 향한 애민과 연민의 마음이 컸던 박지원이었기에 비록 허구의 이야기일지라도 두 사람은 맺어질 수 없는 인연이었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아내는 쉰한 살에 들어서자마자, 그리고 내가 막 선공감 감역으로 첫 음직을 얻어 겨우 양식 근심이나마 덜게 되자마자, 마치 평생의 과업을 마친 사람처럼 급히 시들었다. 백 약첩이 무효했고, 하늘이 무심했다. 아니다. 무심하기로는 지아비인 나를 첫손에 꼽아야 할 터인즉, 회한이 가슴을 친다. p.53
고생만 하다가 세상을 떠난 아내를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형, 맏딸 그리고 큰 며느리까지 잃은 그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처참하고 낙담한 표정을 감추어야 하는 상황", 슬픔조차도 애써 참아야 하는 시대의 아픔이 드러나는 듯합니다. 남편과 사별해도 재가가 금지되고 자결로 열녀가 되기를 강요하던 시대, 재가로 낳은 자식은 관직에 나갈 수 없었던 시대를 살아간 여인들의 아픔 또한 마찬가지겠지요?
'이용'이란 무엇인가. 이롭게 쓴다는 뜻이다. 백성들이 도구나 재화를 사용하여 그들의 일상생활을 편리하도록 꾸리는 것이다. '후생'이란 무엇인가. 넉넉하고 윤택한 삶이다. 의복이나 음식이 부족하지 않게 되면 백성들은 저절로 행복하여 콧노래를 부를 것이다. '정덕'이란 무엇인가. 바른 마음이다. 백성들에게 아름다운 도덕을 가르치면 말하지 않아도 바르게 살리라. p.128
박지원은 안의현 현감으로 재직 당시 "이용한 뒤라야 후생할 수 있고, 후생한 뒤라야 정덕을 할 수 있다"며 백성들의 구휼에 힘쓰고, 물레방아를 설치하는 등 이용후생 사상을 실천하려 했습니다. 무엇보다 아전들이 백성들의 구제를 위한 관의 재물을 횡령한 범죄를 드러내어 벌하는 것이 아닌, 녹봉이 없어 겪어야만 하는 아전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횡령한 곡식을 환수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은 백성들을 향한 애민과 연민의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관인이든 관속이든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그 본래의 임무는 백성의 삶이 나아지도록 권고하는 것(p.145)"이라며, 사사로이 관속을 동원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고 하니, 이런 애민의 마음이야말로 관직에 있는 이들이 가져야할 기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은용은 장악원 악사였던 외할아버지로 인해 현감이었던 박지원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일가친척 없는 픙진세상에 외손녀를 혼자 두고 떠날 수 없었던 할아버지는 박지원과 인연을 맺기를 바라기도 했지만, 두 사람은 끝내 인연을 맺지 못하였습니다. 이야기는 은용이 박지원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후, "인연이 다하였으니, 세초하려 하네.(p.558)"라며 박지원과 인연이 된 것들을 떠나보내며 끝이 납니다.
안의, 별사(安義, 別辭)는 안의에서 이별하는 이야기(직역하면, 안의에서 이별의 인사)라는 뜻으로 연암 박지원과 한 여인과의 만남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장편 역사소설입니다. 1792년부터 4년 동안 안의현 현감으로 재직할 당시에 있었던 실제 역사 이야기에 은용이라는 가상의 여인과의 만남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가미하여 몰입감을 선사하는데요. 2층으로 된 창고를 헐어 연못을 만들었다든가 아전들의 비위를 감독하여 횡령한 곡식을 환수하였다든다 송사 문제를 해결하였다든가 흉년이 들 때면 백성들과 함께 죽을 먹으며 동고동락했다는 이야기는 잘 모르고 있던 연암 박지원의 삶과 더불어 현재를 살아가는 권력자들이 갖추어야할 덕목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꿈오리 한줄평 :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가미한 이야기를 통해 가족과 백성들을 애민하고 연민한 박지원의 삶을 들여다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