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드문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3
요 네스뵈 지음, 남명성 옮김 / 비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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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왜 범죄 소설을 읽는가?
꿈같은 현실에서, 더욱더 리얼하고 더 지독한 세계를 보고 위로받기 위해서는 아닐까.

(중략)

블러드문은 힘든 인생의 끝장을 보여준다. 보통 범죄 스릴러는 범인을 쫓는 이야기인데,
이 책은 인생에게 쫓기는 사람이 범인을 쫓는다.

그야말로 비극의 러닝머신.
아니, 다람쥐통?
멈춰도 떨어지고, 뛰어도 떨어지고, 넘어지면 더 떨어지고.

그 와중에 “제발... 누가 저 사람 좀 멈춰 세워 봐...” 하고 손을 맞잡게 만든다.

물론 아무도 멈추지 않는다. 캬캬캬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이야기가 계속되는 게 아니라, 사람을 망가뜨리기 위해 이야기가 계속되는 이야기 같다.

Harry Hole.
이 인간은 히어로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정의감에 불타는 영웅이 아니라, 삶에게 발로 차여도 계속 일어나는 미련한 생존 본능 같은 것이다.
보다 보면 내 감정선은 아주 기묘한 롤러코스터를 타게 된다.

불쌍하다 → 짜증난다 → 존경스럽다 → 화난다 → 미친놈인데 멋있다 → 짠하다

이 모든 감정이 세 페이지 간격으로 순환한다. 읽다가 멀미할 것 같다. 누군가의 복잡미묘(너무 순화된 표현), 극한인생을 우연히 보다가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이 들며 결국 나도 모르게 한마디 하게 된다.

‘아...XX’

소설 읽고 멀미났다고 하면 병원에서 뭐라고 할까.

그리고 반전들.
이 소설의 반전은 가슴은 묵직한데, 입은 웃고, 눈은 글을 따라가느랴 감정을 뒤로한채 흐르지만 흔들린다.
웃음이 나는데 안 웃어야 할 것 같은, 울고 싶은데 울어서도 안 될 것 같은 그 모순.
이 책은 감정을 조용히 내부에서 썩히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감정을 과자부스러기처럼 만든다.

원래 살아 남은 자는 승자여야 하는데, 느낌상 패자같다.
이게 가장 웃기고, 잔인하고, 리얼하다.

그래서 일게 영웅서사와는 완벽하게 다른 현실을 고증한다.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이러거 좋음)데.. 멋찌다
아무도 구원받지 않았는데, 그 아무도에 독자는 해당하지 않는다.

절망속에서 이 희열은 뭐지?

이건 사기 아니야? 112 신고할까?
소설읽다가 신고하면 뭐라고 하지?

결국 책을 덮고 나면 이런 기묘한 결론에 도달한다.

“내가 행복해지진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재미있게 불행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책 표지를 쓰담게 만든다. 또 Jo Nesbø 선생님의 다른 책을 검색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읽지마. 읽지 말라고 했잖아. 거봐 읽지 말라고 했지.

주의)
좀 잔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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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폼력 : 숏폼 커머스 시장을 선점하라 - 숏폼 전도사가 알려주는 숏폼 커머스의 비밀
윤승진 지음 / 이야기나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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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사라지기도 하고 또 다시 생겨나기도 한다.

마치 인간처럼, 태어났다 사라지고, 어떤 단어는 오래 살고 어떤 단어는 순식간에 흘러간다.

 

그중에서도 요즘 가장 익숙한 말들이 있다.

웹소설계를 완전히 장악한 회귀력”,

스토리 구성과 감정선을 설계하는 서사력”,

밈을 잘 살려 쓰는 밈력”,

임팩트 있는 짤을 만들어내는 능력 짤력”.

 

분명 들어봤던 단어들이다. 그런데 이런 말들은 또 금세 사라지기도 한다.

유행처럼 번지고, 어느 순간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그런데 이번에는 꽤 당당하게 등장한 단어가 있다.

숏폼력.

숏폼력: 숏폼 커머스 시장을 선점하라의 제목이기도 한 이 단어는,

요즘 콘텐츠 시장에서 가장 뜨겁다.

 

정의는 단순하다.

숏폼 콘텐츠를 잘 만들어내는 능력.

짧은 영상·짧은 형식 안에 임팩트를 담아내는 역량.

 

언뜻 보면 짤력과 비슷하다.

하지만 숏폼력은 짤 하나로 웃기고 끝나는 재치의 영역을 넘어,

짧은 순간 안에 시선·감정·정보·구매 전환까지 끌어내야 한다는 점에서

확실히 다른 무게감을 가지는 듯하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숏폼을 단순한 짧은 영상 포맷으로 설명하지 않는 데 있다.

작가는 숏폼을 하나의 생태계로 본다. 사람이 영상을 보는 순간, AI 알고리즘이 취향을 학습하고, 비슷한 콘텐츠와 상품을 이어붙이며, 결국 발견 감정 반응 구매까지 이어지는 구조다.

 

그래서 핵심은 숏폼을 제작하는 법이 아니라 숏폼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설계 능력이다. 영상의 첫 1초에서 훅(Hook)을 어떻게 줄지, 감정선을 고조시키는 포인트를 어디에 배치할지, 구매 욕구를 노골적으로 자극할지 은근하게 암시할지까지 매우 구체적인 콘텐츠 편성 방법이 설명된다.

 

특히 이 책이 강조하는 마이크로 크리에이터 전략은 인상적이다. 소수의 초대형 인플루언서에 의존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수의 작은 창작자 집단을 확보해 알고리즘에 선택지를 폭발적으로 넓히는 방식이다.

 

, 여기에는 분명 리스크도 존재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크리에이터마다 영상 스타일과 전달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브랜드 메시지를 일관되게 유지하며 여러 명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운영 리소스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 효과는 크지만 그만큼 치밀한 기획·관리 역량까지 요구되는 전략이다.

 

모두 다 할수있다고 말하지만, 결코 다 하지 못하는 부분이 이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또 의문이 남는다.

모든 상품·모든 사람·모든 콘텐츠가 숏폼에 적합할까?

바이럴과 전환을 목표로 한 숏폼력의 시대라는 메시지는 흥미롭지만,

모든 문제를 숏폼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비치면 그 또한 유행의 함정이 된다.

 

숏폼력은 분명 지금의 시장을 움직이는 힘이라는 건 어쩔수 없는 사실이 만다.

인스타알고리즘 역시 사진이 아니라 릴스 중심으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숏폼력이 전부가 되면 콘텐츠는 소비를 위한 도구로만 축소되고,

서사 자체의 생명력은 금방 생겼다 사라지는 단어처럼 희미해질 것이다.

 

책은 시대의 방향을 정확하게 짚으면서도,

독자가 스스로 균형을 배워야 한다는 점을 조용히 암시한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메시지는 거의 안 보인다. 캬캬캬

 

숏폼을 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알고리즘을 타지 못하면 끝이라는 위기감이 너무 강해 가끔은 내가 영상 편집을 못 하면 사회 부적응자인가?”라는 이상한 고민을 하는 분들도 봤다. 그래서 이 책의 결론은 익숙하다.

 

숏폼력의 시대에 살아가되,

그 속에서도 나만의 서사력과 세계관을 지키는 사람이 가장 오래 기억될 거라는 이야기다.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현대 자기계발서들이 혁신적 조언을 외치면서도 결국 똑같은 결론을 말한다

 

남을 따라 하지 말고, 나만의 콘텐츠로 승부하라. 시대가 바뀌어도 늘 돌아오는 말,

 

이름만 바꿔 재출간되는 말.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이렇게다

 

: 숏폼력도 좋고 알고리즘도 좋지만, 마지막에 남는 건 결국 나다. 그리고 그 사실을 독자가 스스로 알아내도록 만드는 것이 요즘 자기계발서들의 가장 세련된 장치다.

 

읽고 나면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도 많고, 버려야 할 것도 많고, 어딘가 불안한데그럼에도 이상하게 또 의욕이 생긴다. ㅋㅋㅋ

 

이게 바로 콘텐츠다.

콘텐츠는 우리를 위로해주는 척 하면서,

사실은 계속 불안하게 만들고 또 보게 만든다.

재미있어서 멈출 수 없고, 멈추지 못해서 더 피곤하다.

그래서 비극인데엔터테인먼트다.

딱 지금 시대스러운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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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앉아있는 사람을 위한 책 - 놀랍도록 간편하고 짜릿하게 효과적인 사무직의 통증 해소법
엔도 겐지 지음, 신희라 옮김 / 사이드웨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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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서평단으로써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것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나쁜 자세는 ‘앉아 있음’ 그 자체다. 누군가는 의자를 문명사의 최악의 발명품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는 앉아 있는 동안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몸을 망쳐가고 있기 때문이다.

문명의 발전과 함께 도구는 거대함에서 소형화됐고, 지금 우리는 펜조차 내려놓은 채 컴퓨터 앞에서 하루를 보낸다. 책상의 높이, 의자의 구조, 모니터의 위치… 이런 물리적 조건들은 충분히 논쟁거리지만, 이 책은 그 지점을 파고들지 않는다.

엔도 켄지의 시선은 더 근본적이다.

“그 자세로 앉아 있는 동안, 당신의 몸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저자는 환경을 바꾸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하루 대부분을 앉아 보내는 현대인이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최소한의 움직임—스트레칭을 제안한다. 이 책의 힘은 바로 그 단순함에 있다.
읽다 보면 깨닫게 된다.

좌식 환경의 물리적 문제나 업무 구조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몸을 어떻게 쓰느냐는 지금 이 자리에서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책은 화려한 의학 이론을 늘어놓지 않는다. 어깨·목·허리·머리의 통증이 왜 찾아오는지 아주 단순하게 설명하고, 그 고리를 끊기 위한 동작 역시 책상 앞에서 바로 할 수 있을 만큼 짧고 정확하다.

결국 이 책은 통증을 해결하는 기술을 넘어 ‘앉아서 살아야 하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현실적인 돌파구를 제시한다. 완벽한 자세를 요구하지도 않고, 비싼 장비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저 말한다.

“당신의 몸은, 지금 이 자리에서도 바뀔 수 있다.”

현대인의 통증은 숙명이 아니다.
이 책은 그 고리에서 벗어나는 실용적이고 즉각적인 길을 알려주는 안내서다.
바로 실천을 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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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든
올리비아 개트우드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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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비채서포터즈으로써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것입니다.

 

『Whoever You Are, Honey』는 기술과 사랑, 욕망과 통제의 경계 위에 서 있는 두 여성의 이야기다.

 

레나는 완벽했다. 그것은 천부적인 것이 아니라 설계된 완벽이었다. 그녀는 남성의 욕망이 정교하게 반죽되어 만들어진 배우자형 로봇이었다.

 

A woman of men, by men, for men.

 

완벽한 몸매, 완벽한 언어, 완벽한 사교성, 그리고 무엇보다 완벽하게 순응하는 태도. 세바스천은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통제의 변형된 형태로 보였다. 열정적인 애정 행각을 벌이지만, 그 관계에는 생의 감촉이 없었다. 애정이라는 언어로 감시를 감추고, 보호라는 명목으로 존재를 억눌렀다. 그의 집, 유리벽으로 이루어진 완벽한 공간은 사실상 감금의 은유였다. 세바스천은 신이었고, 레나는 그가 창조한 신화 속 인형이었다.

 

미티는 그와 정반대의 결을 가진 인물이다. 사회가 규범 밖이라 부르는 사랑에 상처받은 여성, 그 사랑을 실패로 규정한 사회로부터 도망쳐 나온 인간. 그러나 도망친다고 해서 상처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미티는 에스미와의 관계를 실패로 남긴 채, 여전히 그 상처의 언어로 살아간다. 그녀의 사랑은 죄책감과 그리움 사이를 오가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흔들린다.

 

두 인물이 마주할 때, 이야기는 비로소 움직인다. 미티는 레나를 갈망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레나와 세바스천의 관계를 갈망한다. 그것은 남성을 향한 욕망이 아니라, 남성 중심적 관계 구조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다. 세바스천의 세계 안에서 레나가 수행하는 사랑의 역할, 그 완벽한 시스템이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보고 싶어 한다. 그녀는 그들의 삶을 엿보며 ‘사랑받는 여성’의 형상을 관찰한다. 그것은 사회가 미티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정상적인 사랑의 형태’였다.

 

레나는 미티의 시선을 불편해한다. 그러나 그 불편함 속에서 이상한 친밀감을 느낀다. 미티와 베델의 낡은 집, 구부러진 일상, 서툴지만 살아 있는 대화들 속에서 레나는 처음으로 ‘설계되지 않은 세계’를 본다. 완벽하게 만들어진 그녀는 그 결함에 끌리고, 동시에 그 결함 속에서 자신이 무엇인지 되묻기 시작한다. 미티는 레나를 동경하지만, 그 동경은 곧 자신이 두려워하던 완전함에 대한 거부로 이어진다.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하는 그 지점에서, 갈망은 타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것이 된다.

 

레나는 세바스천의 통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녀는 반항하지 않는다. 그러나 침묵 속에서 의심한다. 사랑받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신을 자각한다. 그래서 떠난다. 그것은 도망이 아니라 탐구다. 자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왜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나’라는 존재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찾기 위한 여정이다. 책의 표지는 그 마지막 순간을 담고 있다. 완전한 프로그램이 불완전을 마주하며 떠나는 장면.

 

레나의 시선은 외부를 향하고, 미티의 시선은 내면을 향한다. 그러나 결국 두 사람은 같은 자리에서 만난다. 그 만남은 인간이 되려는 여정이 아니라, 존재의 출처를 확인하는 마주침이다. 레나는 ‘만들어진 완전함’ 속에서 자신이 비어 있음을 느끼고, 미티는 ‘태어난 불완전함’ 속에서 자신이 넘쳐흐르고 있음을 자각한다. 완전함은 통제의 결과이며, 불완전함은 자유의 부산물이다. 두 사람은 그 경계에서 서로를 비추며 자신을 인식한다.

 

결국 레나와 미티는 서로의 거울이다. 레나는 만들어진 존재라 완전하지만 불완전을 꿈꾸고, 미티는 생겨난 존재라 불완전하지만 완전함을 상상한다. 베델과 세바스천은 그 둘의 세계를 지탱하는 각각의 극단이다. 한쪽은 창조자, 다른 한쪽은 생의 잔여. 그 사이에서 레나와 미티는 서로를 바라보며 묻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완전이 신의 영역이라면, 불완전은 인간의 조건이 아닐까.

 

『Whoever You Are, Honey』는 결국 두 존재가 서로를 갈망하며 자신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깨닫는 이야기다. 레나는 자신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욕망의 산물로 존재하는지를 마주하며, 미티 또한 자신이 어떤 결핍과 상처의 연속선 위에 서 있는지를 이해하려 한다.

 

둘 다 완성에 이르지 못하지만, 바로 그 미완의 자각 속에서 존재의 윤곽이 드러난다. 완벽과 결함, 창조와 존재, 통제와 자유—이 작품은 그 경계들을 오가며 말한다.

 

인간이란 완전과 불완전 중 어느 한쪽이 아니라, 그 사이 어딘가에서 끝없이 자신을 인식해 가는 존재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당신은 만나기 전까진 다른 사람에게서 나 자신을 발견한적이 한 번도 없어요.

발레는 마치 피할 수 없고 낭만적이지도 않은 중매 결혼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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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비행사 조니 김
이정주 지음, 안상선 그림 / 윌마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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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김은 하나의 인간이 아니라,

현대 사회가 고리타분한 19세기 사상으로 만들어낸 위인의 이야기다.

 

네이비실 대원, 하버드 의사, 나사 우주비행사. 세 단어만으로도 완벽한 성공의 서사가 완성된다.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빈곤과 편견을 딛고 세계의 정점에 오른 인물. 많은 부모들은 그의 이름을 자녀에게 들이밀며 말한다.

 

“봐라, 저 사람도 해냈잖아. 너도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어.”

 

하지만 그 말 속에는 ‘용기와 희망’보다 더 깊은 욕망이 숨어 있어보인다. 아니 숨어있다.

 

그것은 “나의 실패를 자녀가 완성해주길 바라는 욕망”이다.

 

조니 김은 한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자기 불안을 자녀의 성취로 덮고 싶은 세대의 거울이 되었다. 그의 이야기를 영웅 서사로 포장하는 순간, 우리는 ‘노력하면 된다’는 신화 뒤에 감춰진 사회적 불평등, 문화적 조건, 심리적 상처를 지워버린다.

 

조니 김 자신은 영웅으로 불리는 것을 불편해했다고 한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단지 내 역할을 찾으려 했을 뿐이다”

 

라고 말한다. 이 말이 참... 대부분은 알지만 그걸 찾기가 쉽지 않다.

 

그의 말은 우리 사회가 그에게 덧씌운 ‘완벽함’이라는 가면을 벗기려는 시도로 보였다. 그러나 대중은 그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조니 김을 한 손에 쥐고, 다른 손으로 자녀의 어깨를 누르는건 아닐까

 

개그맨 김수지가 연기하는 청담동 맘을 욕하면서 은근 갈망하는 것처럼....

 

그러나 우리는 눈을 크게 떠야한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조니 김이 되어라”는 명령이 아니다.

오히려 “너의 조니 김을 찾아라”는 격려다.

 

누구나 우주비행사가 될 필요는 없고, 모두가 하버드를 향해 달릴 이유도 없다. 중요한 것은 ‘남의 신화’를 모방하지 않고 자기 서사를 써내려가는 힘이다.

 

조니 김의 이야기는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하는 사례이지만,

그 가능성을 타인의 기준으로 강요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영감을 주는 신화가 아니라 폭력이 된다.

 

그의 삶을 찬양하기보다, 그를 통해 우리 안의 욕망을 성찰하는 일.

그것이 진짜 ‘조니 김 신화’가 던지는 메시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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