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버 드림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조혜진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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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시작되는 거예요.

사만타 슈웨블린 <피버드림> 87p 중

비가 많이 내렸던 작년 여름 어느 날, 도서관을 들러 사만타 슈웨블린의 <피버 드림>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라 망설임 없이 집어들었던 책인데, 읽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빠져들어서 읽었다.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던 책이었는데 이번 창비 환상문학 서평단을 통해 재독도 하게 되고 더불어 사만타 슈웨블린 작가의 다른 저작들도 읽어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사실 처음 읽었을 때의 그 아리송함과 의문점들이 엄청 많이 생겼는데, 이미 일독을 한 상태에서 읽으니 더 보이는 것도 많았고 오히려 작품 내의 빈 공간들이 독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생각하며 읽을 수 있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자신의 딸 니나와 시골 마을로 휴가를 보내러 왔다가 병실에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아만다와 그 마을 소년 다비드의 대화체로만 구성된 아주 독특한 구조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벌레가 생기는 정확한 지점과 아만다의 딸 니나는 어디에 있는가가 이 내용의 중심이지만 작품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큰 그림은 다른 쪽이다. 책의 스포가 될 수 있어서 너무 자세하게 말하지는 못하지만 이 작품에서 풀어내는 비현실적인 요소들을 통해서 우리가 겪는 ‘가장’ 일상적인 공포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일상의 공포를 보여주는 그 어떤 작품보다 인간이 살고 있는 ‘환경’만큼 가까운 것도 없으니까 말이다. 다시 읽어도 마지막 부분은 충격과 동시에 이 짧은 작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겪게 될 공포는 이제 시작이라는 걸 보여주기에 진한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다.

“... ‘집을 잃는 게 최악’일거라고 말하지만 나중에 더 나쁜 일이 생긴 뒤에는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래서 그 빌어먹을 짐승의 고삐를 놓을 수만 있다면 집과 심지어 목숨이라도 내주려고 하겠죠.”

사만타 슈웨블린 <피버드림> 24p 중

읍내에서 차를 멈추지도 않고, 뒤를 돌아보지도 않아. 콩밭도, 메마른 땅을 가로질러 흐르는 개울도, 가축 한 마리 없이 몇킬로미터나 드넓게 펼쳐진 들판도, 별장과 공장도 쳐다보지 않고 도시에 다다르지. 집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수많은 자동차가, 갈수록 더 많은 차들이 아스팔트 위를 덮고 있다는 것도. 교통이 정체되어 몇시간 동안 오도 가도 못한 채 뜨거운 배기가스를 내뿜고 있다는 것도. 그이는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해. 어딘가에서 불붙은 도화선처럼 마침내 느슨해진 실을. 이제 곧 분출되기 일보 직전인, 움직이지 않는 재앙을.

사만타 슈웨블린 <피버드림> 172p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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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의 미친 여자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박오복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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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부터 꼭 읽어보고 싶었던,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는 19세기 여성 문학 비평서인 <다락방의 미친 여자>. 서포터즈 기회를 얻게 되어 9월 한달 동안 읽게 된 책이지만 결국 완독까진 못한 책ㅠ 


124p

 여성의 순종하는 삶, ‘명상적인 순수한’ 삶은 침묵의 삶이요, 이야기도 없고 펜도 갖지 못한 삶인 반면, 반항하는 여성의 삶, ‘의미 있는 행위’의 삶은 침묵을 강요받고 괴물같은 펜으로 끔찍한 이야기를 말하는 삶이다. 어느 쪽이든 여성 예술가가 자신을 찾기 위해 들여다보는 거울 위의 이미지는 여성 예술가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여성 예술가는 누명을 쓰고 함정에 빠진, 고발되고 기소된 ‘영’이라고, 또는 ‘영’이 되어야 한다고.


 가부장적인 문화와 문학사에서 여성이 어떤 존재였는지부터 시작해 19세기에 등장한 굵직한 여성 문인들을 탐색해나간다.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파트는 에밀리 브론테 파트였다. 이 책에서 다루는 여성 작가들의 작품 중 읽어본게 고작 <이성과 감성>과 <폭풍의 언덕> 뿐이라.. 가장 최근에 읽었던 <폭풍의 언덕>에 대한 내용이 가장 인상깊게 다가왔던 것 같다. 광기어린 로맨스로만 읽었던 나에게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와의 관계부터 시작해서 단순히 이야기 전달자로만 느껴졌던 인물인 하녀 넬리에 대한 이야기까지 <폭풍의 언덕>이라는 작품을 새롭게 감상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여기서 다루는 작품들을 내가 좀 더 많이 읽은 상태에서 읽었더라면 더 깊이있는 독서가 됐을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통해 읽어보지 않은 작품들을 앞으로 읽게 될 때, 이 책과 함께 더욱이 설레는 독서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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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티켓
조 R. 랜스데일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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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R. 랜스데일 작가를 처음 알게 된건 북로드 출판사에서 나온 <THE 좀비스>라는 좀비 앤솔러지에서였다. 좀비라고 단정짓기보단 원제인 ‘살아있는 시체들’이 등장하는 단편들을 엮은 소설집이라고 해야겠지만? 랜스데일의 작품은 <시체의 길>이라는 단편인데, 시니컬한 총잡이 목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주인공 개성이 두드러져서 기억에 남았던 작품이었는데, 이번 장편소설인 <빅티켓>도 개성있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천연두가 마을을 휩쓸고 아침에 부모님을 잃은 주인공 잭과 여동생 룰라는 할아버지와 함께 고모할머니네 집으로 향하던 중, 컷스로트 빌을 중심으로 하는 패거리를 맞닥뜨리게 되고 그들로 인해 할아버지는 죽고 룰라는 납치당하게 된다. 잭은 룰라를 구하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과 조우하고 범인들이 향한 ‘빅 티켓’으로의 여정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잭이 처한 상황, 빅 티켓으로 향하는 여정에서 보게 되는 수많은 끔찍한 죽음들, 잭과 동행하거나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듣게 되는 각각의 인물들이 지닌 상처들과 당시 시대 상황이 반영된 사람들의 노골적인 차별들을 읽어가다 보면 순간순간 멈칫하게 만든다. (잔인한 장면도 너무 많았고요ㅠㅠ) 그럼에도 책을 계속 읽어나갈 수 있었던 건 작품 속에 녹아든 유머도 한 몫 했지만 인종, 신체적 특징, 성별이 다른 인물들이 보여주는 유대였다. 암울한 상황에서도 따뜻함을 읽을 수 있었던 소설. 좀 아쉬웠던 부분이라면, 남성 캐릭터에 비해 여성 캐릭터의 다양성은 두드러지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띠지 문구를 보니 영화로 제작 중에 있는 듯하다. 소설이 가지는 매력도 분명 있지만 영상화 되었을 때의 모습이 기대되는 작품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보니 <시체의 길> 단편 읽을 때도 영상화 하면 정말 잘 어울리고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는데ㅎㅎ 19세기 말 서부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배경 자체가 신선하기도 했고,생생하게 그려지는 개성 뚜렷한 인물들을 보는 재미도 있었던 소설이었다. 에드거상 수상작인 작가의 다른 장편소설 <밑바닥>도 꼭 읽어봐야지:)


112 ~ 113p

 나는 완전히 멍한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각자의 삶을 존중하고, 용서하고 잊으라 배웠으나 잊을 수 없었다. 내 안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손에 총을 들고 싶게 만들었다. 그저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이기 위해. 그래서 두려웠다. 이래서야 컷스로트 일당과 다를 게 없단 기분이 들었따. 피 대신 쓴물 가득한 땀투성이의 살덩어리, 뼈 대신 폭탄, 두뇌 대신 말똥. 맘대로 총질하려는 충동에 휘말리지 않게끔 다람쥐 사냥에 탄알을 딱 네 개만 주던 아버지가 생각났다. “총은 도구야.”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리고 계속 총을 쏴대지 않도록 해야지.”


270p

 “… 솔직히 말하면 이젠 못하겠다. 그때처럼 그 버펄로들을 쏠 수가 없어. 총을 맞아야 할 건 인간이고 동물은 그냥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어서. …”


306p

 어느 면에서 죄악은 커피 같았다. 어려서 커피를 처음 맛보았을 때는 쓰고 고약했지만, 나중에는 우유를 조금 넣으니 좋아졌고, 그다음으로는 블랙에 맛을 들였다. 죄악도 바로 그랬다. 처음엔 약간의 거짓으로 달콤하게 하고, 나중에는 길이 들어 곧장 들이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거기까지 가고 싶진 않았다. 계속 우유를 넣어 마시고 싶었다.


※출판사 증정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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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파랑
정이담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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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홀로그램이 너무 예쁘다 ㅎㅎ)

서평단에 선정이 되어서 읽게 된 정이담 작가님의 신작, <불온한 파랑>. 작가님의 전작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이번 신작의 짧은 소개글을 읽고 이끌리듯 신청하게 되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SF소설이라니 신청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책을 받아본 소감은 표지가 너무 예뻤다는 것!!! 푸른색과 보라색이 섞인 우주에 그려진 두 마리의 고래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작품은 첫 부분을 읽는 순간부터 마음을 무겁게 했다. 세월호 참사를 연상케 하는 사건을 시작으로 주인공 은하와 해수가 만나게 된다. 사고의 피해자였던 해수의 친언니를 구하기 위해 잠수사였던 은하의 아버지는 바다로 나가고 목숨을 잃게 된 것. 이런 묘한 인연은 대학교 입학 후 기숙사 룸메이트로 다시 만나게 된다.

 

둘은 항상 고래로 귀결된다. 낙원 프로젝트를 위해 고래 자리로 떠난 해수와, 해양생물과 더불어 고래를 연구하며 스스로 고래가 된 해수. 서로의 존재를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이별과 재회를 중심으로 사랑, SF, 환경문제 등등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감성적이고 은유로 가득한 작가님의 문체도 이야기와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푸른 이미지가 가득했던 아련한 소설. 작가님의 이전 작인 <괴물 장미>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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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외계인 보고서 - SF 우주선부터 인조인간까지
박상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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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의 미래를 다루고 있는 SF소설이나 영화들은 생각을 확장시켜주는 독특한 상상력과 더불어 현재 인류가 보여주고 있는 행보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런 점들은 SF작품에 더더욱 매력을 느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화려한 일러스트가 돋보이는 표지부터 시선을 끌었고, 아직 SF작품을 많이 읽어보지 않은 SF초보(?) 독자는 관련 작품이면 뭐든 관심이 생겼고 그래서 이번 서평단을 신청하게 되었다.

 이 책은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매체에서 등장한 SF의 실현 가능성, 현재 과학적 업적 상태,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책에서는 만화, 소설, 영화 등등 정말 다양한 SF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접하지 못한 작품들이 많아서 다 찾아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슐러 르 귄, 류츠 신 등등 평소 관심만 가지고 있던 작가와 작품 외에도 몰랐던 SF 작품들을 이 책을 통해 접하면서 SF에 더욱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책이 아닐까 싶다. SF의 세계가 정말 깊고 다양하단 생각도 들었고.

 과학에 문외한인 나도 부담감 없이 SF에 흥미를 불러일으키면서 SF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접근 가능한 책이 아닐까 싶다.

 

6p

우리의 미래가 지금보다 더 나아지려면 사회 구성원들의 과학 문해도 수준이 더 올라가야 한다고 믿는다.

 

20세기가 과학적 상상력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윤리적 상상력의 시대다.

 

202p

인간은 과연 스스로의 정체성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는 논쟁을 피할 수 없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생물적 특징인지, 아니면 인간만이 지닌 이성과 사고 능력인지, 혹은 둘 다여야만 하는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248p

인간이 과학 기술을 낳았듯이 다시 과학 기술이 새로운 인간을 낳는 것이다.

 

268p

20세기 과학 기술 문명이 낳은 총체적인 문제들은 결국 과학 기술 그 자체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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