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티켓
조 R. 랜스데일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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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R. 랜스데일 작가를 처음 알게 된건 북로드 출판사에서 나온 <THE 좀비스>라는 좀비 앤솔러지에서였다. 좀비라고 단정짓기보단 원제인 ‘살아있는 시체들’이 등장하는 단편들을 엮은 소설집이라고 해야겠지만? 랜스데일의 작품은 <시체의 길>이라는 단편인데, 시니컬한 총잡이 목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주인공 개성이 두드러져서 기억에 남았던 작품이었는데, 이번 장편소설인 <빅티켓>도 개성있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천연두가 마을을 휩쓸고 아침에 부모님을 잃은 주인공 잭과 여동생 룰라는 할아버지와 함께 고모할머니네 집으로 향하던 중, 컷스로트 빌을 중심으로 하는 패거리를 맞닥뜨리게 되고 그들로 인해 할아버지는 죽고 룰라는 납치당하게 된다. 잭은 룰라를 구하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과 조우하고 범인들이 향한 ‘빅 티켓’으로의 여정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잭이 처한 상황, 빅 티켓으로 향하는 여정에서 보게 되는 수많은 끔찍한 죽음들, 잭과 동행하거나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듣게 되는 각각의 인물들이 지닌 상처들과 당시 시대 상황이 반영된 사람들의 노골적인 차별들을 읽어가다 보면 순간순간 멈칫하게 만든다. (잔인한 장면도 너무 많았고요ㅠㅠ) 그럼에도 책을 계속 읽어나갈 수 있었던 건 작품 속에 녹아든 유머도 한 몫 했지만 인종, 신체적 특징, 성별이 다른 인물들이 보여주는 유대였다. 암울한 상황에서도 따뜻함을 읽을 수 있었던 소설. 좀 아쉬웠던 부분이라면, 남성 캐릭터에 비해 여성 캐릭터의 다양성은 두드러지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띠지 문구를 보니 영화로 제작 중에 있는 듯하다. 소설이 가지는 매력도 분명 있지만 영상화 되었을 때의 모습이 기대되는 작품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보니 <시체의 길> 단편 읽을 때도 영상화 하면 정말 잘 어울리고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는데ㅎㅎ 19세기 말 서부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배경 자체가 신선하기도 했고,생생하게 그려지는 개성 뚜렷한 인물들을 보는 재미도 있었던 소설이었다. 에드거상 수상작인 작가의 다른 장편소설 <밑바닥>도 꼭 읽어봐야지:)


112 ~ 113p

 나는 완전히 멍한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각자의 삶을 존중하고, 용서하고 잊으라 배웠으나 잊을 수 없었다. 내 안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손에 총을 들고 싶게 만들었다. 그저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이기 위해. 그래서 두려웠다. 이래서야 컷스로트 일당과 다를 게 없단 기분이 들었따. 피 대신 쓴물 가득한 땀투성이의 살덩어리, 뼈 대신 폭탄, 두뇌 대신 말똥. 맘대로 총질하려는 충동에 휘말리지 않게끔 다람쥐 사냥에 탄알을 딱 네 개만 주던 아버지가 생각났다. “총은 도구야.”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리고 계속 총을 쏴대지 않도록 해야지.”


270p

 “… 솔직히 말하면 이젠 못하겠다. 그때처럼 그 버펄로들을 쏠 수가 없어. 총을 맞아야 할 건 인간이고 동물은 그냥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어서. …”


306p

 어느 면에서 죄악은 커피 같았다. 어려서 커피를 처음 맛보았을 때는 쓰고 고약했지만, 나중에는 우유를 조금 넣으니 좋아졌고, 그다음으로는 블랙에 맛을 들였다. 죄악도 바로 그랬다. 처음엔 약간의 거짓으로 달콤하게 하고, 나중에는 길이 들어 곧장 들이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거기까지 가고 싶진 않았다. 계속 우유를 넣어 마시고 싶었다.


※출판사 증정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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