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하라리 <사피엔스>는 유명한 베스트셀러다. 쇼펜하우어는 베스트셀러가 후대에 이르러 명작인지 잠깐 반짝이고 사라질 작품인지 밝혀지므로 당대의 베스트셀러는 읽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사피엔스가 우리 시대를 통찰하는 꽤 우수한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유발 하라리는 예루살렘의 한 대학에서 역사학 교수를 재직하고 있는 사람이다. 과거의 역사를 바탕으로 호모 사피엔스에 대해 고찰하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러모로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특히 최근 AI로 시끌 시끌한 현 시점에서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 주장하고 있는 부분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2011년에 나온 이 책을 2020년에 읽고 있는 나는 어쩌면 상당히 늦게 읽고 있는 셈이다.
각설하고, 이 책은 1부 인지혁명, 2부 농업혁명, 3부 인류의 통합, 4부 과학혁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포부는 굉장히 큰데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역사 연대표를 적어놓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135억년 우주가 탄생하고, 6백만년전에 인류와 침팬치의 마지막 공통 조상이 등장했으며, 20만년 전 사피엔스가 등장했다.
흔한 설명이긴 하지만, 인류의 등장은 우주의 생애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짧은 시간이며, 약 300년전 시작된 과학혁명은 정말 아주 짧은 시간에 비교할 수 있다. 저자가 말하듯 어쩌면 인류의 생, 한 인간의 삶은 우주의 Logos를 생각해보았을 때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인간의 생은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언어의 우위, 불의 사용, 허구적 신념등을 통해 네안데르탈인을 밀어내고 지구의 지배자가 된 호모 사피엔스는 끝을 모르고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만큼 대학살자는 없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는 과거에도 그러했으며 현재도 그러하다. 과학혁명과 함께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농업혁명과 함께 국가와 제국을 건설하게 된 시기는 1만 2천년부터 시작되었다. 적자생존의 수렵채집민 시기가 막을 내리고, 우수한 자든 열등한 자든 모두 살아남을 수 있게 된 농업의 시대는 세계 곳곳에서 독자적으로 발생했다.
이후 종교에 대한 믿음과 돈을 기반으로한 제국의 탄생은 전 세계를 하나로 만들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는 모든 사회가 하나로 통합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는 하지만 이는 불과 30년 사이의 일이다. 인터넷이 있기 전 우리는 세계 반대편의 일 실시간으로 알 수 없었다.
신에 대한 믿음, 국가에 대한 믿음은 꽤 유용한 것이었다. 사회를 하나로 통합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끔찍한 종교전쟁이나 국가 사회주의(나치즘)과 같은 비극적인 사건들도 있었지만 이것들은 현대 사회의 모습을 갖추게 한 성장에 있어서 일부 요소일 따름이다.
자본주의라는 굴레 속에서 과학혁명을 거쳐 우리는 길가메쉬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아무리 불평등이 극심하더라도 죽음이라는 조건 만큼은 누구에게나 동일했지만, 더 이상 이 주장은 거짓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은 이제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자연선택이라는 다윈의 <진화론>을 넘어, 인간은 이제 스스로 지적설계의 창조주가 될 수 있다. 저자는 생명공학, 사이보그 공학, 비유기물 공학을 들고 있다.
사피엔스는 이제 신이 되려한다. 필멸의 존재가 불멸의 존재가 되려 하는 것이다. 마지막 저자의 말은 섬뜩하기만 하다. "아마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진정한 질문은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p5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