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한 위험 - 글쓰기에 대하여 철학의 정원 40
미셸 푸코 지음, 허경 옮김 / 그린비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쓰기, 죽어버린 진실을 드러내는 일

<상당한 위험-글쓰기에 대하여>(미셀 푸코, 허경 옮김, 그린비, 2021)

                            

말하기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곳에서,

우리는 글쓰기라는 비밀스럽고 어려우며 조금은 위험한 매력을 발견하게 됩니다.

p.19

상당한 위험, 무엇이 위험하다는 건가. 그것도 상당하다니, 글쓰기를 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건가. 제목에서 오는 궁금증을 해갈하기 위해서라도 얼른 책장을 넘겨야 했다. <상당한 위험>은 1968년 철학자 미셀 푸코와 문학 비평가 클로드 본푸아의 대담을 통해 푸코가 생각하는 글쓰기에 대해 말한다. 푸코는 말하기와 글쓰기의 양립 불가능성, 즉 말하기의 즐거움을 안다면 글쓰기는 존재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말을 글로 옮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비추기도 한다. 이 책 제목, <상당한 위험>은 여기서 발화한다.

글쓰기란 본질적으로, 그것을 통해 그리고 그 결과로서, 내가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무엇인가를 찾을 수 있게 해 줄 어떤 작업을 감행함으로써 실현됩니다. 내가 하나의 연구, 한 권의 책, 또는 또 다른 무엇이든, 어떤 것을 쓰기 시작할 때, 나는 그 글이 어디로 갈지, 어떤 곳에 다다르게 될지, 내가 무엇을 증명하게 될지, 정말 알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바로 그 움직임 자체 안에서만, 내가 증명해야 할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p.33

푸코는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을 알기 위해, 글을 쓰는 행위 안에서 자신이 증명해야 할 것을 발견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독자는 자신의 글쓰기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무엇을 위해 글이라는 것을 끄적일까. 글쓰기를 하면서 나조차 몰랐던 내 안의 나, 진실을 만났다고 하면 될까. 푸코가 말하는 죽어버린 진실을 드러내는 일, 내게 글쓰기도 그러했다.

나는 진단을 내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의 작업은 글쓰기라는 절개切開 자체를 통해, 죽어 버린 것의 진실일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내 글쓰기는 죽음으로부터 삶으로 또는 삶으로부터 죽음으로의 옮겨 가는 축이 아닌, 죽음으로부터 진실로 또는 진실로부터 죽음으로 옮겨 가는 축 속에 존재합니다.

p.32

푸코는 우리가 되찾아야 하는 것은 삶의 잃어버린 기미가 아니라,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라고 한다. 내 삶의 진실이 무엇인지, 그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글쓰기는 진실의 세심한 펼쳐짐. 글쓰기는 그러한 장이어야 하고, 도구여야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글쓰기는 내 삶의 미세한 흔적들을 종이 위에 쌓아 놓는 일, "소란스러운 삶을 문자들로 이루어진 불변의 소란스러움 속으로 서서히 흡수"(p.53) 시키려는 시도이지만 삶은 결코 종잇장 위에서 조용하지 않다는 것도 진실이다. 문자화된 삶은 종잇장 위에 머무르지 않고 세상 밖으로 펼쳐지고 증식된다. 이에 푸코는 글쓰기는 남겨지고 숨겨질 무엇인가를 묘사하고 보여주며 드러내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글쓰기의 환희'라고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코 삼삼한 놀이가 아니다. 고통스러운 작업이 될 수도 있는 게 글쓰기이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이들은 이 고통스러움을 기꺼이 즐긴다. 글쓰기의 의무에서 따르는 고통에 복종하는 것, 그것이 '글쓰기의 즐거움'(p.55)이다. 나는 글을 쓰면서 내가 지닌 나 자신의 고유의 얼굴을 얼마나 잃고 있을까. 아니 고유가 아닌 나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던 그 진부함을 얼마나 깨고 있는 것일까. 내 고유의 실존을 잃어버리고자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 것일까. 낯선 것으로 이행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내 안의 진실을 깨우기 위해서라도, 나의 실존, 본질이라 믿고 있던 그 허구를 깨기 위해서라도 글을 써야 한다. 진실이라 믿고 있는 죽어버린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상당한 위험이 나를 잠식할 수도 있다. 잠식 당하기 전, 푸코가 전하는 <상당한 위험>을 먼저 만나보길 권한다. 죽어버린 내 안의 진실을 만날 수도.

※ 아주 사적인 책 읽기였습니다. <상당한 위험>이 궁금한 분들은 꼭 책으로 만나보길 권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량소년과 그리스도 이 작가를 보라 2
사카구치 안고 지음, 이한정 옮김 / 그린비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량소년과 그리스도>(사카구치 안고 지음, 이한정 옮김, 그린비, 2021)

 

 

또 다른 불량소년, 안고

<불량소년과 그리스도>(사카구치 안고 지음, 이한정 옮김, 그린비, 2021)

 

 

어떤 책은 읽는 중에 다음에 나올 스토리가 궁금해 멈출 수 없는가 하면, 또 어떤 책은 읽을수록 작가가 궁금해지는 경우가 있다. 사카구치 안고의 산문집 <불량소년과 그리스도>(그린비, 2021)가 그랬다. 읽을수록 안고가 궁금했다. 안고가 궁금하다는 말은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이 읽고 싶어졌다와 내가 이 작가의 책을 처음 만났다는 말이기도 하다. 핑계를 대자면, 일본 작가에 대한 개인적인 선호도가 낮은 편이 안고를 이제서야 만나게 한 이유 중 하나이다.

 

안고의 글에서 <인생 따위 엿 먹어라>의 저자 마루야마 겐지가 떠올랐다고 하면 안고가 화를 내겠지. 불량기 철철 넘치는 그가 '내가 왜 겐지와 닮았느냐고, 난 안고다'라며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수도. 그래도 어쩌겠는가. 난 겐지가 떠올랐는걸. 겐지가 떠올랐다는 것은 안고의 글투도 만만치 않게 쎄다는 점이다. 안고는 거침없이 내뱉는다(물론 겐지와 안고의 글 색깔은 다르다). '어른은 교활하다'라는 등 거르지 않는다. 하지만 거침없는 안고의 글투가 이 책을 놓지 못하게 한다. 나쁜 작가이다!

 

                                이미지 출처: 강원도민일보 - 사카구치 안고

 

표제작 '불량소년과 그리스도'는 이 책에 실린 18편의 산문 중 한편으로 <인간 실격>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죽음을 추도하는 글이다. 안고는 다자이와 마찬가지로 '무뢰파' 작가로 알려져 있다. 둘은 친분 있는 동료이다. 친분 있는 동료의 추도 글이 '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불량스럽다. 안고는 다자이가 죽어 슬프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그저 '불량소년'이라 명명하며 '정말 형편없는 녀석'(p.129)이라고 한다. 어쩌면 반골 기질의 또 다른 불량소년 안고의 최대 애정표현이지 않을까.

 

누가 뭐라 해도, 살아가는 시간을 끝까지 사는 거다. 그리고 싸운다. 결코 지지 않는다. 패하지 않는다는 것이 싸운다는 것이다. 그 밖에 승부 따위 있을리 없지. 싸우고 있으면 지지 않지요. 결코, 이길 수 없지요. 인간은, 결코, 이기지 못합니다. 단지, 패배하지 않는 겁니다. (p.131)

 

안고는 다자이를 '자기가 그리스도'(p.130)가 되지 못하고 죽었기에 '불량소년'이라 한다. 안고는 단호하게 말한다. "죽는다거나 자살 같은 건 시시한 짓거리다. 패했기에 죽었다. 이겼다면 안 죽었다."(p.130) 안고는 삶은 살아내는 거라고 한다. 살아 있다는 것은 싸우는 것이고, 패배하지 않는 것. 오늘 내가 살아 있음은 내 삶에 패배하지 않은 것. 불량소년이면 불량소년인 채로 그냥 그렇게 살아가면 될 것을. 하지만 다자이는 "이제 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인간실격>중에서)라며 생의 문을 스스로 닫는다, 끝내 불량소년인 자신의 삶을 긍정하지 못한 채. 다자이 오사무의 죽음을 안고는 자기표현식으로 껴안는다, 반어법의 긍정으로. 비아냥 거리는 말투로 다자이 오사무의 삶을 누구보다도 무한히 긍정하는 안고. 그도 불량소년이었다. 또 다른 불량소년의 시선은 따스했다.

 

청춘이란 그저 나를 살리는 힘, 여러 가지로 미련하지만 나의 생명이 타들어 가는 것을 항상 조금씩 지탱해 주고 있는 것, 나의 생명을 지지해 주는 모든 것이 내 청춘의 대상이고, 말하자면 나의 청춘이다. (25쪽)

 

이 책의 지면을 가장 많이 할애하는 '청춘론'에서도 안고는 할 말이 많다. 그는 '타락'과 '청춘'을 동격으로 본다. 안고가 말하는 타락은 '윤락(淪落)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죄악을 알고, 궁핍한 사람에게는 연민과 동정을 가지며, 말이 아니라 실제로 구조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또 실행"(p.30) 하는 것을 말한다. 즉, 관료로서 권력을 쥐고서는 타락할 수 없다. 그가 말하는 타락의 세계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구원함을 말한다. 청춘이어야 가능하다. 안고가 말하는 청춘은 비단 물리적 나이로 젊은 청춘만을 말하지 않는다. 청춘은 70이 돼도 해당한다. 지금 여기, 나는 소멸이 아닌 생성, 타락의 세계에서 청춘으로 살고 있는가. 나의 생명을 지지해주는 그 무엇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지 안고의 청춘론에서 나의 청춘을 들여다본다.

 

지금 여기, 내 청춘은 안녕한가?

 

나는 안고를 나쁜 작가라고 했다. 결코 아름답게 말하지 않고, 거칠고 마음대로인듯한데 빠져들게 하니 말이다. 심히 불량스러운 안고를 궁금하게 한 <불량소년과 그리스도>. 안고를 만나는 방법은 그의 작품을 통해서다. 더구나 이 세상을 떠난 작가라면 더더욱. 안고가 궁금하다면 <불량소년과 그리스도>로 먼저 불량해져볼까. 그의 불량스러움이 당길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에서 한 달 살기 - 한 권의 책을 한 달 동안 읽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지희 지음 / 엑스북스(xbooks)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에서 한 달 살기, 내 삶을 만드는 작업

<책에서 한 달 살기>(하지희, 엑스북스, 2021)

 

 

읽는 도중인데 말하고 싶어 안달복달하게 하는 책이 있다. 하지희의 <책에서 한 달 살기>(엑스북스, 2021)가 그랬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누군가에게 이 책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덕분에 메모지가 옆에서 나의 수다를 들어주느라 고생했다. 나는 왜 이 책을 그리 말하고 싶었던가. <책에서 한 달 살기>는 출간 전부터 궁금했던 책이었다. 출판사 에디터가 출간 전 올린 책 소개를 보고 '제주에서 한 달 살기' '런던에서 한 달 살기' 등 한 도시에서 한 달 살기는 들어봤지만 '책에서 한 달 살기'는 도대체 뭔 소린지 궁금했다.

 

저자가 책에서 한 달 살기를 하게 된 이유는 그녀의 삶의 이력에서 드러난다. 그녀는 모두가 만류하는 프랑스로 요리를 배우겠다며 유학을 간다. 자주 이사를 다녀야 했던 유학 시절에도 이고지고 다녔던 책을, 남편과 2평도 되지 않는 밴에서 살아보기로 결정하면서 책에서 한 달 살기가 비롯되었다고 한다. 외국에서 가진 책도 별로 없고, 책을 자주 살 수 있는 상황도 되지 못했으니 '한 도시에서 한 달 살기'처럼 '한 권의 책에서 한 달 살기'를 실천하기로 한 것이다. 그녀는 아주 작은 책장 하나에 서너 권의 책만 남겨야 하는 상황에서 남편과 각 세 권씩만 선택한다.

 

저자가 한 달 동안 만날 책의 기준은 "첫째, 한국작가의 책일 것, 둘째, 같은 출판사의 책은 피할 것, 셋째, 너무 두껍지 않은 책일 것"(p.12) 이었다. 저자는 "더 많은 한국 작가의 작품을 접해 보고 싶었고,(···) 두꺼운 책은 한 달 동안 여러 번 읽고 정리하기 힘들 것 같다"(p.12~13)는 현실적인 판단에서였다고 밝힌다. 그래서 이 책에 소개되는 책은 모두 한국 저자의 책이며, 300페이지 내외로 두껍지가 않다. 책에서 한 달 살기를 해보고 싶은 독자라면 저자의 책 선정 기준과 목록을 참고해도 좋을 듯하다. 하지만 다양한 책에서 한 달 살기가 궁금한 독자라면 문학(소설)이 한 권도 배치되지 않은 것과 한국 작가에게 한정한 것이 아쉬움으로 자리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책에서 한 달 살기>는 이 모든 것을 차치하는 힘이 있다. 

 

나도 내가 책에서 한 달을 사는 목적에 대해서 고민해 보았다. 나는 이 책의 숲에서 뭘 얻으려고 했던 걸까. 꾸준히 책을 읽었다는 자부심? 한 책을 꿰뚫고 있다는 자신감? 속독 능력? 몇 달째 책에서 살고 있는데 내겐 그 어떤 자부심도 자신감도 능력도 남지 않았다. 그럼 왜 굳이 계속 읽는 걸까. 정말 이 독서를 이어 나가야 할 이유나 목적이 있기는 한 걸까. p.155

 

책은 한 권의 책을 한 달 동안 이렇게 읽어봐 하는 안내서는 아니다. 저자는 자신이 한 달씩 머물렀던 책 11권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중간중간 몇 권의 책이 제목 정도 언급되기도 하지만 11권에 집중한다. 저자는 책 한 권에 오롯이 한 달을 머물면 무엇이 보이는지, 어떠한지를 진솔하게 보여준다. 포장하지도 꾸미지도 않는다. 그녀는 '책 속에 한 달 살아봐 얼마나 좋은지 몰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살아보니 나도 왜 사는지 고민스럽고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라며 솔직하게 말한다. 이 솔직함에 신뢰가 생긴다.


그녀는 한 권을 여러 번 읽으면서 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후루룩 마시듯 읽을 때 느끼지 못했던, 천천히 맺는 관계에서만 보이는 것들 말이다. 달리기를 하면서 놓쳤던 풍경을 천천히 걷기를 할 때 만날 수 있는 것처럼 저자는 느린 책 읽기에서 자신이 지나온 과거도 보고, 현재도 마주하고, 자신의 꿈도 본다. 또 누군가에게는 자신으로 인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도 품어 본다. 이처럼 한 권의 책에 한 달 살이를 하면서 저자는 다른 세계를 만난다. 어쩌면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내 삶을 만드는 작업"(p.85)일 수도.


 

내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여전히 수많은 선택지가 남아 있다. p.86

 

 

책 한 권을 읽는다고 해서, 책에서 한 달 살이를 한다고 해서 내 삶의 지축이 경천동지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도 책에서 한 달 살이를 하면서 내내 고민하지 않던가 말이다. 그 고민을 봤지만 '책에서 한 달 살이'를 해 보고 싶다. 어쩌면 진솔한 그 고민을 봤기에 책에서 한 달 살이를 더 하고 싶어졌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는 도중 말하고 싶어 안달복달했던 이유도 이거였다.

 

 

- 나, 책에서 한 달 살이 해 보고 싶어!

 

 

저자는 자신이 소개한 책을 읽고 싶게 만들고, 읽었던 책은 다시 펼쳐보게 한다. 소개하는 책을 권하는 방식도 세련됐다. 이 책 좋으니 읽어봐가 아니다. 그녀는 "봄을 주고 싶은 사람들. 자신의 슬픔을 꺼내 보이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 이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p.45) 오른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이 읽으면 좋다는 뜻이리. 선물 받는 것처럼 저자가 권하는 책을 읽기 목록에 올린다. 문체가 유려한 것도 아닌데 책을 계속 읽게 한다. 이것이 하지희의 힘인가 보다. 한 권의 책에서 한 달씩 1년 동안 살아 본 자의 힘. 어떤 책으로 한 달을 살아볼까. 

 

내가 만약 책이라면, 한두 번 펼쳐지고 잊히는 것이 아니라 한 달 내내 밑줄 그어지고 더럽혀지고 눈물과 웃음을 받아 내는 책이라면. 꽤 기쁘지 않을까. 책은 사물일 뿐이지만 좋아하는 존재를 존중하고 아껴주고 싶은 마음은 어떤 생명을 대할 때와 다를 바가 없다. (···) 하나의 삶이 온전히 다 담긴 책이라면 더더욱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믿는다. p.156

 

그녀의 책을 존중해 주고 싶다. 한 달 살기의 첫 책으로 그녀의 책, <책에서 한 달 살기>를 선택한다. 아마도 "내 곁에 책이 아니라 사람 하나하나가 더해지는 기분"이 들것이다. "그것도 아주 든든한"(p.1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탁 소동 네버랜드 우리 걸작 그림책 66
김지안 지음 / 시공주니어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해가 마무리되는 시점입니다.

이때 즈음이면 밀린 빨래며, 온 가족이 새해가 되기 전 의식처럼 단체 목욕탕을 가기도 했었지요.

'깨끗하곰 세탁소'가 없을 시절에 말이지요.

자 그럼 김지안 작가의 <세탁 소동>, 어떤 소동이 벌어지는지 들어가볼까요.

 

 

곰은 '깨끗하곰 세탁소'를 운영하는데요.

더러워진 옷이 있다면 언제든 맡기면 반짝반짝 새 옷처럼 만들어 준다고 해요.

아 그런데 오늘은 중요한 볼일이 있다며 옆집에 이사 온 생쥐한테 잠시 세탁소를 부탁하고 어디를 가는데요.

곰은 어디를 갈까요?

그림을 잘 살펴보면 알 수 있답니다. 

 

 

 

곰은 어디를 가는지 가면서도 계속 걱정을 해요.

그 사이에 아무도 안 오겠지?

(···)

만약 손님이 오더라도 딱히 바쁠 일은 없을거야.

(···)

생쥐는 지금쯤 소파에 누워 편하게 쉬고 있을 거라고.

 

과연 생쥐는 소파에 누워 편하게 쉬고 있을까요?

머피의 법칙이라고 해야 할까요.

곰이 잠시 세탁소를 쥐에게 부탁하고 나간 뒤 손님이 줄줄이 찾아왔어요.

어떡하죠?

눈물 찍, 생쥐 얼굴 보셨나요?

생쥐는 어떻게 할까요?

 

 

오~ 세탁기가 위잉 돌아가는군요.

산더미 같은 빨래 바구니 아래에서 눈물 보였던 생쥐가 잘 해결했나 봐요.

어머 그런데 저기 세탁기 속에 빨간 옷이...

곰은 양손에 빵을 한가득 사들고 돌아왔습니다.

아무 일 없겠지?

 

글쎄요.

곰이 말한 것처럼 아무 일 없을까요?

 

 

이 그림책은 색감이 참 따뜻하고 맑아요.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귀엽습니다.

동글동글 마음도 예쁜데요.

현실에서라면 불만 폭주에 보상 문제를 들먹이는 상황이 벌어지지만

실수를 탓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아름답기도 해요.

현실감이 떨어질 수 있지만 그럼에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를

평소에 너무 몰아세우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합니다.

이 그림책은 곰이 자신의 세탁소를 나가면서 그 안의 풍경을 이야기해주는 방식을 취하는데요.

세탁소 안에 없는 곰이 자신의 생각에 의지해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세탁소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정반대라는 거지요.

독자들은 곰의 이야기와 다르게 진행되는 그림을 보면서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긴장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요. 이 그림책의 또 다른 재미 요소이지요.

깨끗하게 세탁하고 싶은가요?

한 해가 가는 시점에 마음도 맑게 빨고 싶지는 않은지요?

그렇다면 '깨끗하곰 세탁소'를 찾아가 보세요.

맑고 깨끗하게, 때로는 다른 색깔로 기분전환하게 빨래를 해줄 수도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나기가 내렸어 네버랜드 우리 걸작 그림책 68
윤정미 지음 / 시공주니어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림책은 면지부터가 회색입니다.

면지를 넘기면 먹구름이 무겁게 내리누르는 듯한 그림으로 시작하는데요.

그림책 한 쪽 귀퉁이에 있는 받아쓰기 공책은 민호 것인가 봅니다.

민호의 받아쓰기 공책에도 소나기가 내렸네요.

 

 

 

받아쓰기 0점을 맞은 민호는 소나기가 그친 후에도 마음이 먹구름입니다.

소나기가 그치고 물웅덩이에 떠 있는 조각구름조차 마땅치 않아 자꾸만 흩뜨리는데요.

그러는 사이 동생 민지가 기다리는 민호에게로 다가옵니다.

그림책은 민지와 민호의 마음을 색깔로 표현하는데요.

민지를 노랑과 빨강으로 표현하는 반면 민호는 내내 흑백입니다.

그림책이 마무리될 즈음에는 민호도 색깔 옷을 입을까요.

 

가뜩이나 우울한데 머피의 법칙인가요.

지나가는 자전거가 물웅덩이를 첨벙, 민호 옷이 다 젖었습니다.

 

 

 

민호는 집이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소나기가 내린 자신의 받아쓰기 공책을 보고 엄마는 뭐라고 할까요.

민호는 민지한테 잠시 쉬었다 가자고 합니다.

갑자기 어디선가 바람이 휘이익 불어옵니다.

앗! 차가워!

 

 

 

 

민지는 물방울이 떨어진 곳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오빠, 저것 좀 봐. 하늘이 하트 모양이야.

 

민지는 참으로 긍정 아이콘입니다.

머리가 젖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하트 하늘을 집에 가져가

엄마 원피스에도 달아 주고, 할머니 집에 갈 때 하트 하늘을 생생 타고 갈 궁리까지 하는 걸 보면요.

 

 

 

집에 도착한 민지와 민호.

큰 소리로 학교 다녀왔다고 외치며 들어가는 민지와 달리 민호는 계속 우울합니다.

휴, 한바탕 소나기가 내렸네.

 

엄마는 민호의 시험지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소나기요?

소나기가 내리면 우산을 쓰고 신나게 놀면 되죠!

 

옆에서 듣고 있던 민지가 소나기가 내릴 때면 어떻게 하라고 처방을 내려주네요.

 

************

그림책은 민지와 민호의 마음을 대조해서 보여줍니다.

우울한 민호의 마음은 긍정의 화신인 민지로 인해 밝아지는데요.

그림책은 이를 색깔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밝은 노랑과 빨강을 주 색깔로 민지를 표현한다면, 민호는 내내 흑백이지요.

그리고 민지의 긍정의 영향을 받는 시점에 민호의 옷 색깔도 컬러로 바뀌는데요.

 

우리 삶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때로는 민호처럼 소나기가 내릴 때도 있지요.

소나기가 내리면 우울합니다.

왜 내 삶에만 이렇게 굵은 빗줄기가 내리는 거야 생각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소나기가 쏟아진다고 마냥 한탄하고 우울해할 수는 없잖아요.

 

소나기는 세차게 쏟아지다가 그치는 비에요.

몇 날 며칠 내내 내리는 비가 아니라는 거죠.

민지가 말한 것처럼 소나기가 내리면 우산을 쓰고 놀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봐요.

내 삶의 소나기를 만났을 때 우산을 쓰고 놀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어차피 맞아야 할 소나기라면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게 답일 수도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