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소년과 그리스도 이 작가를 보라 2
사카구치 안고 지음, 이한정 옮김 / 그린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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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소년과 그리스도>(사카구치 안고 지음, 이한정 옮김, 그린비, 2021)

 

 

또 다른 불량소년, 안고

<불량소년과 그리스도>(사카구치 안고 지음, 이한정 옮김, 그린비, 2021)

 

 

어떤 책은 읽는 중에 다음에 나올 스토리가 궁금해 멈출 수 없는가 하면, 또 어떤 책은 읽을수록 작가가 궁금해지는 경우가 있다. 사카구치 안고의 산문집 <불량소년과 그리스도>(그린비, 2021)가 그랬다. 읽을수록 안고가 궁금했다. 안고가 궁금하다는 말은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이 읽고 싶어졌다와 내가 이 작가의 책을 처음 만났다는 말이기도 하다. 핑계를 대자면, 일본 작가에 대한 개인적인 선호도가 낮은 편이 안고를 이제서야 만나게 한 이유 중 하나이다.

 

안고의 글에서 <인생 따위 엿 먹어라>의 저자 마루야마 겐지가 떠올랐다고 하면 안고가 화를 내겠지. 불량기 철철 넘치는 그가 '내가 왜 겐지와 닮았느냐고, 난 안고다'라며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수도. 그래도 어쩌겠는가. 난 겐지가 떠올랐는걸. 겐지가 떠올랐다는 것은 안고의 글투도 만만치 않게 쎄다는 점이다. 안고는 거침없이 내뱉는다(물론 겐지와 안고의 글 색깔은 다르다). '어른은 교활하다'라는 등 거르지 않는다. 하지만 거침없는 안고의 글투가 이 책을 놓지 못하게 한다. 나쁜 작가이다!

 

                                이미지 출처: 강원도민일보 - 사카구치 안고

 

표제작 '불량소년과 그리스도'는 이 책에 실린 18편의 산문 중 한편으로 <인간 실격>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죽음을 추도하는 글이다. 안고는 다자이와 마찬가지로 '무뢰파' 작가로 알려져 있다. 둘은 친분 있는 동료이다. 친분 있는 동료의 추도 글이 '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불량스럽다. 안고는 다자이가 죽어 슬프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그저 '불량소년'이라 명명하며 '정말 형편없는 녀석'(p.129)이라고 한다. 어쩌면 반골 기질의 또 다른 불량소년 안고의 최대 애정표현이지 않을까.

 

누가 뭐라 해도, 살아가는 시간을 끝까지 사는 거다. 그리고 싸운다. 결코 지지 않는다. 패하지 않는다는 것이 싸운다는 것이다. 그 밖에 승부 따위 있을리 없지. 싸우고 있으면 지지 않지요. 결코, 이길 수 없지요. 인간은, 결코, 이기지 못합니다. 단지, 패배하지 않는 겁니다. (p.131)

 

안고는 다자이를 '자기가 그리스도'(p.130)가 되지 못하고 죽었기에 '불량소년'이라 한다. 안고는 단호하게 말한다. "죽는다거나 자살 같은 건 시시한 짓거리다. 패했기에 죽었다. 이겼다면 안 죽었다."(p.130) 안고는 삶은 살아내는 거라고 한다. 살아 있다는 것은 싸우는 것이고, 패배하지 않는 것. 오늘 내가 살아 있음은 내 삶에 패배하지 않은 것. 불량소년이면 불량소년인 채로 그냥 그렇게 살아가면 될 것을. 하지만 다자이는 "이제 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인간실격>중에서)라며 생의 문을 스스로 닫는다, 끝내 불량소년인 자신의 삶을 긍정하지 못한 채. 다자이 오사무의 죽음을 안고는 자기표현식으로 껴안는다, 반어법의 긍정으로. 비아냥 거리는 말투로 다자이 오사무의 삶을 누구보다도 무한히 긍정하는 안고. 그도 불량소년이었다. 또 다른 불량소년의 시선은 따스했다.

 

청춘이란 그저 나를 살리는 힘, 여러 가지로 미련하지만 나의 생명이 타들어 가는 것을 항상 조금씩 지탱해 주고 있는 것, 나의 생명을 지지해 주는 모든 것이 내 청춘의 대상이고, 말하자면 나의 청춘이다. (25쪽)

 

이 책의 지면을 가장 많이 할애하는 '청춘론'에서도 안고는 할 말이 많다. 그는 '타락'과 '청춘'을 동격으로 본다. 안고가 말하는 타락은 '윤락(淪落)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죄악을 알고, 궁핍한 사람에게는 연민과 동정을 가지며, 말이 아니라 실제로 구조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또 실행"(p.30) 하는 것을 말한다. 즉, 관료로서 권력을 쥐고서는 타락할 수 없다. 그가 말하는 타락의 세계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구원함을 말한다. 청춘이어야 가능하다. 안고가 말하는 청춘은 비단 물리적 나이로 젊은 청춘만을 말하지 않는다. 청춘은 70이 돼도 해당한다. 지금 여기, 나는 소멸이 아닌 생성, 타락의 세계에서 청춘으로 살고 있는가. 나의 생명을 지지해주는 그 무엇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지 안고의 청춘론에서 나의 청춘을 들여다본다.

 

지금 여기, 내 청춘은 안녕한가?

 

나는 안고를 나쁜 작가라고 했다. 결코 아름답게 말하지 않고, 거칠고 마음대로인듯한데 빠져들게 하니 말이다. 심히 불량스러운 안고를 궁금하게 한 <불량소년과 그리스도>. 안고를 만나는 방법은 그의 작품을 통해서다. 더구나 이 세상을 떠난 작가라면 더더욱. 안고가 궁금하다면 <불량소년과 그리스도>로 먼저 불량해져볼까. 그의 불량스러움이 당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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