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한 달 살기 - 한 권의 책을 한 달 동안 읽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지희 지음 / 엑스북스(xbooks)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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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한 달 살기, 내 삶을 만드는 작업

<책에서 한 달 살기>(하지희, 엑스북스, 2021)

 

 

읽는 도중인데 말하고 싶어 안달복달하게 하는 책이 있다. 하지희의 <책에서 한 달 살기>(엑스북스, 2021)가 그랬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누군가에게 이 책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덕분에 메모지가 옆에서 나의 수다를 들어주느라 고생했다. 나는 왜 이 책을 그리 말하고 싶었던가. <책에서 한 달 살기>는 출간 전부터 궁금했던 책이었다. 출판사 에디터가 출간 전 올린 책 소개를 보고 '제주에서 한 달 살기' '런던에서 한 달 살기' 등 한 도시에서 한 달 살기는 들어봤지만 '책에서 한 달 살기'는 도대체 뭔 소린지 궁금했다.

 

저자가 책에서 한 달 살기를 하게 된 이유는 그녀의 삶의 이력에서 드러난다. 그녀는 모두가 만류하는 프랑스로 요리를 배우겠다며 유학을 간다. 자주 이사를 다녀야 했던 유학 시절에도 이고지고 다녔던 책을, 남편과 2평도 되지 않는 밴에서 살아보기로 결정하면서 책에서 한 달 살기가 비롯되었다고 한다. 외국에서 가진 책도 별로 없고, 책을 자주 살 수 있는 상황도 되지 못했으니 '한 도시에서 한 달 살기'처럼 '한 권의 책에서 한 달 살기'를 실천하기로 한 것이다. 그녀는 아주 작은 책장 하나에 서너 권의 책만 남겨야 하는 상황에서 남편과 각 세 권씩만 선택한다.

 

저자가 한 달 동안 만날 책의 기준은 "첫째, 한국작가의 책일 것, 둘째, 같은 출판사의 책은 피할 것, 셋째, 너무 두껍지 않은 책일 것"(p.12) 이었다. 저자는 "더 많은 한국 작가의 작품을 접해 보고 싶었고,(···) 두꺼운 책은 한 달 동안 여러 번 읽고 정리하기 힘들 것 같다"(p.12~13)는 현실적인 판단에서였다고 밝힌다. 그래서 이 책에 소개되는 책은 모두 한국 저자의 책이며, 300페이지 내외로 두껍지가 않다. 책에서 한 달 살기를 해보고 싶은 독자라면 저자의 책 선정 기준과 목록을 참고해도 좋을 듯하다. 하지만 다양한 책에서 한 달 살기가 궁금한 독자라면 문학(소설)이 한 권도 배치되지 않은 것과 한국 작가에게 한정한 것이 아쉬움으로 자리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책에서 한 달 살기>는 이 모든 것을 차치하는 힘이 있다. 

 

나도 내가 책에서 한 달을 사는 목적에 대해서 고민해 보았다. 나는 이 책의 숲에서 뭘 얻으려고 했던 걸까. 꾸준히 책을 읽었다는 자부심? 한 책을 꿰뚫고 있다는 자신감? 속독 능력? 몇 달째 책에서 살고 있는데 내겐 그 어떤 자부심도 자신감도 능력도 남지 않았다. 그럼 왜 굳이 계속 읽는 걸까. 정말 이 독서를 이어 나가야 할 이유나 목적이 있기는 한 걸까. p.155

 

책은 한 권의 책을 한 달 동안 이렇게 읽어봐 하는 안내서는 아니다. 저자는 자신이 한 달씩 머물렀던 책 11권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중간중간 몇 권의 책이 제목 정도 언급되기도 하지만 11권에 집중한다. 저자는 책 한 권에 오롯이 한 달을 머물면 무엇이 보이는지, 어떠한지를 진솔하게 보여준다. 포장하지도 꾸미지도 않는다. 그녀는 '책 속에 한 달 살아봐 얼마나 좋은지 몰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살아보니 나도 왜 사는지 고민스럽고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라며 솔직하게 말한다. 이 솔직함에 신뢰가 생긴다.


그녀는 한 권을 여러 번 읽으면서 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후루룩 마시듯 읽을 때 느끼지 못했던, 천천히 맺는 관계에서만 보이는 것들 말이다. 달리기를 하면서 놓쳤던 풍경을 천천히 걷기를 할 때 만날 수 있는 것처럼 저자는 느린 책 읽기에서 자신이 지나온 과거도 보고, 현재도 마주하고, 자신의 꿈도 본다. 또 누군가에게는 자신으로 인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도 품어 본다. 이처럼 한 권의 책에 한 달 살이를 하면서 저자는 다른 세계를 만난다. 어쩌면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내 삶을 만드는 작업"(p.85)일 수도.


 

내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여전히 수많은 선택지가 남아 있다. p.86

 

 

책 한 권을 읽는다고 해서, 책에서 한 달 살이를 한다고 해서 내 삶의 지축이 경천동지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도 책에서 한 달 살이를 하면서 내내 고민하지 않던가 말이다. 그 고민을 봤지만 '책에서 한 달 살이'를 해 보고 싶다. 어쩌면 진솔한 그 고민을 봤기에 책에서 한 달 살이를 더 하고 싶어졌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는 도중 말하고 싶어 안달복달했던 이유도 이거였다.

 

 

- 나, 책에서 한 달 살이 해 보고 싶어!

 

 

저자는 자신이 소개한 책을 읽고 싶게 만들고, 읽었던 책은 다시 펼쳐보게 한다. 소개하는 책을 권하는 방식도 세련됐다. 이 책 좋으니 읽어봐가 아니다. 그녀는 "봄을 주고 싶은 사람들. 자신의 슬픔을 꺼내 보이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 이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p.45) 오른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이 읽으면 좋다는 뜻이리. 선물 받는 것처럼 저자가 권하는 책을 읽기 목록에 올린다. 문체가 유려한 것도 아닌데 책을 계속 읽게 한다. 이것이 하지희의 힘인가 보다. 한 권의 책에서 한 달씩 1년 동안 살아 본 자의 힘. 어떤 책으로 한 달을 살아볼까. 

 

내가 만약 책이라면, 한두 번 펼쳐지고 잊히는 것이 아니라 한 달 내내 밑줄 그어지고 더럽혀지고 눈물과 웃음을 받아 내는 책이라면. 꽤 기쁘지 않을까. 책은 사물일 뿐이지만 좋아하는 존재를 존중하고 아껴주고 싶은 마음은 어떤 생명을 대할 때와 다를 바가 없다. (···) 하나의 삶이 온전히 다 담긴 책이라면 더더욱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믿는다. p.156

 

그녀의 책을 존중해 주고 싶다. 한 달 살기의 첫 책으로 그녀의 책, <책에서 한 달 살기>를 선택한다. 아마도 "내 곁에 책이 아니라 사람 하나하나가 더해지는 기분"이 들것이다. "그것도 아주 든든한"(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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