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링은 1969년부터 연인 톰 레아 - 이론물리학자로 1989년에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다 -와 공개적으로 동거를 시작하면서 당시 속도를 더해가던 사회혁명에 힘을 보탰다. 에이즈가급속히 확산되자 거액의 기금을 마련하여 던디에 바이러스 연구소를 세웠고, 호스피스 시설의 공동설립자가 되었다. 처음으로 효과적인 치료법이 나오자 특히 아프리카에서 특허기간을 단축하고 가격을 낮추기 위한 운동을 펼쳤다. 1972년부터자신의 사업을 운영한 허사비스와도 협업을 이어갔다. 대중의참여에 점차 인내심을 잃어가던 튜링은 "나의 움츠린 시간에"연구에 집중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의 과거에는 오랜 샌프란시스코 체류, 카터 대통령이 하사한 자유훈장과 연회, 과학기금에 대한 논의를 위해 총리 별장에서 가진 대처 총리와의 오찬, 아마존 보호를 호소하기 위한 브라질 대통령과의 만찬이있었다. 그는 오랜 세월 컴퓨터 혁명의 얼굴, 새 유전학의 목소리로 살아왔고 거의 스티븐 호킹만큼 유명했다.  - P69

현재란 있음직하지 않은 구조물 중에서도 가장 약하다. 
현재는 얼마든지 지금과 다른 모습일 수 있었다. 현재의 어떤 부분이든, 혹은 그 전부가 다를 수 있었다. 가장 사소하거나 가장 중대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내 발톱이 말썽을 일으키지 않은 세계, 내가 벌인 사업 중 하나가 성공해 내가 템스강 북쪽에서 부자로 살고 있는 세계, 셰익스피어가 어릴 때 죽어서 아무도 그를 그리워하지 않고, 미국이 완벽한 실험을 거친 원자폭탄을 일본의 한 도시에 떨어뜨리겠다는 결정을 내린 세계, 포클랜드제도 기동대가 출정하지 않았거나 승리해서 돌아와 온 나라가 애도하지 않는 세계, 아담이 먼 미래의 조립품인 세계, 육천육백만 년 전 지구가 운석과 충돌하기 전에 몇 분 더회전하여 유카탄반도의 햇빛을 차단한 고운 석고 모래가 생기지 않아서 공룡이 멸종하지 않고 영리한 유인원을 포함한 포유류에게 미래를 내주지 않은 세계, 그런 세계들을 떠올리는건 얼마나 쉬운가.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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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맘카페가 제공하는 소속감의 성격이 밝고 긍정적인것만은 아니다. 맘카페에서 활동하고 친목을 다지는 동기는 정서적인 안정감보다는 소외되지 않기 위한 불안감에 더욱 가까운 것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이것이 맘카페에 가입하고 활동하는 더 주된 동기라고 본다.
실제로 내가 운영하는 맘카페에서 신규 회원의 가입 목적에 관해 물었을 때 십중팔구는 ‘정보 공유‘라고 적는다. 이는 정보 시장에서 내가 도태될 것이라는 불안감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것이다. 그 정보의 범주는 육아 관련 지식이 될 수 있고, 학교 관련이나 사교육 관련 내용일 수도 있고, 어느 반찬가게가 괜찮은지 같은 생활 정보까지 포함된다.
아이가 아닌 내 생활에 관련된 건 인터넷 검색으로 광고를 찾아보면 어느 정도 수집할 수 있고 판단이 된다. 그런데 엄마들에게진짜 필요한 정보는 ‘아이‘에 관련된 정보다. 엄마들은 기본적으로아이를 위해 가장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싶어 하면 하지, 결코 내 아이에게 불리한 상황을 일부러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 - P99

이들이 평범한 회원인 척할 때는 이곳의 정보가 생활에 너무큰 도움이 된다며 맘카페에 대한 고마움까지 표현한다. 그러다가이내 진짜 목적을 드러낸다. 본인이 도움받은 만큼 좋은 정보를 주겠다며 광고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속내가 들키면 이들은재빨리 맘카페와 본인의 정체성을 분리해 적의감을 드러내고, ‘아줌마‘들이 본인들 뜻대로 어리숙하게 속아주지 않은 것에 대한 혐오를표출하기도 한다. 나아가 ‘갑질하는 맘카페‘라는 세간의 프레임과 익명성을 이용해 그 공격성을 폭발시킨다. - P122

사교육 정보 공유가 조심스러운 이유는 이 분야의 특성 자체에도 있다. 사교육을 시키는 건 내 자식을 경쟁의 장이 된 우리 공교육현실에서 상대적으로 밀려나지 않게끔 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교육적 본질은 경쟁에 있고, 이 체제에선 다 같이 승리할 수 없으며 필히 승자와 패자가 나뉜다.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은, 필연적인 충돌을 수반한다.
맘카페에서는 그 충돌의 양상이 누군가에게 내 정보를 공유하지 않거나 진솔한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는, 수동적이고 둥글둥글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이곳에는 애초에 ‘나만 이길 수 있는 진짜 정보가 존재할 수 없다. - P151

공부에 아예 흥미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소위 말하는 ‘인서울 대학‘
에 들어갈 수 있는 아이들을 제외한다 치고 이 비율을 최소한으로잡아도 열에 여덟아홉이 그런 좌절을 겪을 것이다. 이게 과연 정상적인 교육 환경인가? 나는 지금의 제도권에서 아무리 입시제도를뜯어고쳐도 이 환경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하지 않으면, 또 자식에게 투영된 부모의 과한 불안감과 어쩌면 비뚤어진 욕망에 대해돌아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본다. - P155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 부성애보다 모성애의 감정이 압도적으로 도드라지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의 남성들이 억압적인가부장적 문화에서 부성애라는 행복을 온전히 경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고, 전통적으로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여성의 역할로만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아이에 대한 감정은 꼭 성별로 나눌 이분법적인 개념은 아니다. 성별과 관계없이 누구나 자식이 관련된 일에는감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 P161

"우리 카페에 있었던 가장 충격적인 ‘음해공작‘은 따로 있다. 놀랍게도 범인은 10대었다. 고등학생 아이가 엄마의 핸드폰으로 우리맘카페에 접속해서 글을 캡처해 <네이트판>에 올린 것이었다. <네이트 판>의 ‘10대 게시판‘에 들어가보니 맘카페와 맘충이라는 욕설이 난무하는 것을 보고 경악스러웠다. (그중 가장 황당했던 내용은 "우리엄마는 맘카페를 안 할 거야. 맘카페를 한다는 생각만 해도 역겹다."라는 글이었다.)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조차 맘카페와 엄마라는 개념이 혐오로 왜곡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사회에 혐오가 얼마나 독버섯처럼퍼져 있는지 알 수 있었고 매우 우려스러웠다. - P200

맘카페만큼 최적의 마케팅대상을 추린 집약체가 없기 때문이다.
요약컨대, 맘카페는 마케팅 대상으로 잘 세분화(segmentation)된 회원의 집합소 (cluster)이다. 일반적인 기업에서 마케팅을 기획할때, 효과를 볼 마케팅 대상을 추려내고 집약시키는 작업조차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다. 그런데 마케팅할 대상을 알아서 모아놓은 집합이 이미 존재한다는 것은 기업 입장에선 광산에서 노다지를 발견하는 것과 같다. 판매해야 할 대상, 타깃(target)을 정확히조준하여 마케팅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 맘카페의 경우,특정 지역 상권을 대상으로 하는 업체라면 마케팅의 정확도는 더욱높아진다. - P211

처음에는 순수한 목적으로 들어온 회원도 맘카페의 구매력을보고 마음이 바뀌어 결국 상업 홍보로 이어지는 경우 역시 빈번했다. 내 눈으로 여러 번 확인한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애초에 ‘엄마라는 집단‘에 대한 동질감이 없는 사람은 맘카페 구성원끼리의 연대의식과 신뢰 관계의 필요성을 잘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이런일이 너무 잦아지다 보니 회원들은 엄마가 아닌 사람이 맘카페를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게 맞는지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엄마들의 정서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여 언행이 거슬리고 불편하다는 신고가 회원들에게서 들어올 때도 있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는 미숙할 수밖에 존재임에도 산만하고 시끄러운 걸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집을 어지르기만 하는 어린아이를 키우며 정리하기 벅찬데 사진 속의 집이 난장판인 것을 구태여 지적하는 글도 있었다. - P220

이건 비단 맘카페나 일부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점점 그런 양상을 띠어가고 있다. 자녀가 있는 사람들과 없는 사람들은 서로의 상황을 점점 이해하지 못한다. 육아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육아휴직을 쓰고 왔다고 하면 집에서 놀다 왔다고 생각하며 전업주부는 집에서 한가롭게 노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 여다. 또는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은 종종자녀가 없는 사람은 철이 나지 않았다는 표현을 쓴다. 육아의 고충도 모르고 대책 없이 현재만 사는 사람이라는 편견을 가지기도 한다. 극단적이고 극히 일부의 사례일 수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아예존재하지 않는 편견이라곤 할 수 없을 것이다. - P224

그 육아 교육 이론들을 몰라서 못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육아서를 보는 건, 내용을 모두 알면서도 도덕 교과서를 펼치는 것처럼, 육아 스트레스로 튀어나올 수 있는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다스리려는 것이다. 그런데 애를 길러본 경험도 없고, 전문적으로공부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까지 나서서 타인의 육아에 대해 쉽게훈수를 둔다.
이미 내면적으로 이런 어려움이 있는데, 이 사회가 요구하는 외재적 가치까지 신경을 쓰면 엄마들의 혼란은 깊어지다 못해 쉽게 고립된 성이라는 수렁으로 빠진다. 즉 기혼 여성들은 워킹맘이든 전업주부든, 자신의 삶에서 행복을 찾기 극히 어려워진다. 여전히 우리 사회의 여성들은 무엇이 진정 내가 되고 싶은 자아인지, 나에게가장 잘 어울리는 정체성은 무엇인지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 P237

가령 애 엄마가 아이를 맡기고 브런치를 즐기는 사례를 생각해보자. 이들도 당연히 어쩌다가 한 번일 뿐, 매일 호사스럽게 밖에서뭘 챙겨 먹진 않는다. 보통 집에서는 혼자 차려 먹기가 부담스러워간단하게 식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이 시간에 쫓겨 점심을 김밥 한 줄로 때울 때도 있지만, 여유가 있을 때는회사 근처의 맛집을 찾아다니고, 회사 비용이 지원될 때 소고기를먹기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애 엄마들은 브런치를 먹지 말아야 할까? 여기엔 두가지 측면의 시각이 반영되어 있다. 경제력이 단절된 여성이 호의호식하는 것에 대한 혐오와 육아와 가사노동에 대한 가치 절하다. 특히여기에는 전업주부를 경제적 무능력자로 간주하는 시선과 그러한무능력함에 대한 혐오가 짙게 깔려 있다. 즉, 그런 여성들은 아이와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편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가사와 육아의 실태를 안다면 결코 그렇게 평가 절하할 수 없다. 아이를 양육하는 여성들이 ‘살아 있는 인형‘과
‘안락한 집‘에서 그림같이 예쁘게 사는 것이 아님을, 육아를 경험해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 P248

출산율이 박살이 난 요즘에야 그 소리가 쏙 들어갔지만, 과거어르신들은 젊은이들에게 ‘결혼하고 애를 낳아야 철이 든다‘는 말을 부지런히 하셨다. 그 말이 옳은 건 아니다. 철이 들고 말고는 개인차다. 결혼하지 않았어도 철이 든 사람이 있고, 결혼하고도 철이들지 않는 사람은 존재한다. 그러나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다. 육아에 대해서 함부로 논하는 사람은 그 일을 제대로 겪어보지 않아서육아가 얼마나 고된 과정인지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저출산의 기조가 이어질수록, 육아를경험하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점점 줄어들수록, 엄마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쉽게 비난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를아는 사람 자체가 줄어들게 되니 말이다. 그렇게 우리 사회에서 엄마라는 존재는 그저 무의미한 일을 하는 사람, 아이 하나 단속 못 해민폐를 끼치는 사람에 불과해졌을 뿐이다. 이런 혐오가 넘쳐나니누가 쉽사리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겠다고 하겠는가? - P250

얼마 전 대형 맘카페 <레몬테라스>에 올라온 "자식 낳지 마세요"라는 글에 댓글이 1,000개가 넘게 달렸다. 그리고 여러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화제가 되었으며 기사화도 될 만큼 폭발적인반응을 보였다. 56 그 내용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이것이다. 그 글에 달린 댓글 중 상당수에는 엄마들이 공감하며 동의한다는 반응을 적은 것이었다.
이렇게 엄마들도 엄마가 되지 않는 게 낫다고 자조한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은 혼자 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 P252

그런데 가게의 사장님은 그럴 수 있다 쳐도,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런 내용이 올라오면 ‘아이가 있다‘는 것이 확연히눈에 들어와서 아이의 부모, 특히 엄마가 비난의 대상이 된다. 자연스럽게 그런 비난은 ‘아이가 있는 모든 여성‘에게 확대되며, 이 내용이 기사화되어 또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재조명된다. 사람들의 반응은 "애 있는 게 무슨 벼슬인가?"로 시작해서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혐오로 끝난다.
이런 자극적인 화젯거리엔 다른 가능성에 대한 의문은 전혀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 그 부모들이 잘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완벽함에 대한 강박, 부모와 엄마에 대한 조리돌림이 엄마들에게, 또 훗날 엄마가 될지도 모르는 젊은 여성들에게 얼마나 커다란공포심으로 다가오는지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 P266

엄마들은 결국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아이는 일단 낳고 키워보라고 하면서 모성에 대한 잣대는 더욱 엄격해지는이 사회의 모순을 말이다. 나도, 우리 아이도 역시 실수를 연발한다.하지만 더 이상 세상은 이해하지 못한다. 앞으로는 더 그럴 것이다.
- P281

맘카페에서 엄마들은 ○○엄마, 스스맘보다 온전히 내 이름 석자로 불려보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맘카페에 독서나 운동, 영어공부와 같은 다양한 취미 모임도 많아졌고, 사회 이슈에 적극적으로참여하며 자존감을 고양하려는 노력도 볼 수 있다. 이들 중에서는이제 엄마는 ‘떼버리고 싶은 굴레‘라고 고백하는 이도 많다. 엄마라는 정체성에 대한 글의 종류는 이제 그 역할에 대한 행복함보단 혼돈과 고민의 성격이 주를 이룬다. - P284

요컨대 우리나라의 가족적 집단의식을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행태는 ‘자녀는 곧 나의 분신‘이고, 나 자체라고 생각하면서 지나치게 몰입하는 동일시 현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사람들이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일 또한 결국에는 나와 자녀를 동일시하는 심리의 연장선에서 파악할 수 있다.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자주 "나의 아이에게 내가 겪었던 이 세상의 고통을 물려주기 싫어서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고통을 벌써자신의 고통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 P297

남성들도 자녀 양육의 기쁨을 함께 느꼈으면 한다. 제도적인개선도 선행되어야겠지만, 문화가 바뀌는 일도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직장에서의 위신을 중시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자녀를둔 아버지가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어도 직장 분위기. 사회 분위기 때문에 망설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 - P311

우리는 이미 외적 가치에 매몰된 현실 세계에 던져져 있다. 돈,성과,명예와 같은 외적 가치를 달성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수단과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런 가치관과 삶의 자세는 우리나라의 빠른 경제 번영을 이뤄낸 동시에 수많은 사회적 병폐의 원인이 되었다. 저출산도 저출산이지만, 특히 전 세계에서 독보적으로 높은 노인자살률은 우리의 비극적인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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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던 운동이 갸우뚱했던 이유를 피터 브룩스를 경유해 알게 되었다.
다음은 그와 관련된 발췌들이다.

소설은 사유의 세속화와 더불어 지배적인 형식이 되었다. 여기서 사유의 세속화란, 영원 속에서 시간을 되찾겠다는 어떤 거창하고 신성한 계획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인간 삶의 의미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말한다.  - P175

사람을 대하는 그릇된 방식과 올바른 방식에 대한 문제는 소설 속어디에나 존재한다. 리처드슨부터 톨스토이와 프루스트, 쿳시와 이시구로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주요 소설가들이 증명하듯이, 소설은 그러한 갈등을 다루는 형식이다. - P180

이는 왜 루소의 소설이 그렇게 긴지도 말해 준다. 인물을 알기 위해서는, 그들의 결점, 미덕, 삶 전체를 알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루소는 백 년이 지난 후 "리얼리즘으로 알려진 장르,
즉 일상생활을 주제로 삼은 소설 장르를 강하게 옹호하는글을 쓴 셈이다. - P185

 이야기는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법은 이야기의사용을 통제하고 제한해야 한다. 실제로 이는 법에서 서사의 중요성을 일부러 못 본 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리처드포스너 판사와 같은 법률 이론가들은 법률에서 이야기가 차지하는 역할을 인정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비판이다. 즉,이야기는 법률가에게 일종의 통제 불가능한 담론이다. - P200

법정에서 서사를 금지한다면 평결은 불가능하다. 범죄와 처벌에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 P201

이야기는 우리가 세상을 상상하고 이해하는 다양한 방식만큼이나 가변적이다. 세상을 상상하고 이해하는 일은 잘짜인 서사에 달려 있다. 그러한 서사가 확신conviction을 낳고유죄판결conviction을 이끌어 낸다. - P209

그러나 반대론자와 외부 운동단체를 위한 스토리텔링은이야기를 너무 좁게 해석하고 전적으로 이야기에 긍정적인가치만을 부여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 과정에서 이야기가모든 면에서 법에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야기가좋은 일도 하지만 나쁜 일도 한다는 사실은 큰 조명을 받지못했다. 본질적으로 가치 있는 서사, 무가치한 서사는 없다.
중요한 것은 서사의 사용법이다. 그리고 이야기에 특정한도덕적 가치를 부여한다면, 정말 필요한 것은 뒷전으로 물러나게 마련이다. 다시 말해, 서사가 법률에서 수행하는 역할이 제대로 분석될 기회가 사라져 버린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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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는 영향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이 하셨던 말씀은 여전히 가슴을 짓누른다. "전 세계 부동산 가격이 다 올라도 한국은 올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2005년 6월 28일). - P89

J물론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나 민주당도 빌미를 제공하지 않은것은 아니다. 집값 급등에 따른 민심 수습책으로 불로소득 환수나 다주택 문제를 너무 강조했던 원죄가 있다. 집값이 오르더라도 불로소득만 제대로 환수하면 공정성과 형평성은 물론이고, 집값도 결국 떨어질것이라는 접근법이 다분히 이념적으로 비쳤던 것이다. 현실 정책이 불로소득의 완전한 환수와는 한참 거리가 멀 수밖에 없는데도, 이상론적 주장들이 결국 공격의 빌미가 되었던 셈이다. - P114

출을 확대하고 주거사다리도 복원해야 한다. 집을 갖고자 하는 욕구 자체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생애주기에 따라 예측가능한 구매 계획이 가능하도록 진정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3기 신도시나 도심 공급 확대 등을조금 더 일찍, 더 과감하게 추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크다. 공급 부족론으로 불안감을 조성해서도 안 되지만, 적극적공급론으로 심리적 진정에 더 나서지 못한 것도 안타깝다. - P132

튤립이 붕괴일본의 1990년을 전후한 부동산 버블에는 금리, 환율 등거시경제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1980년대 초 미국은만성적인 대일본 무역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일본에 엔화 절상을 요구했다. 이에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해 일본의 엔화 가치는 1985년 달러당 240엔에서 1988년 130엔으로 약두 배나 올랐다. 수출에 적신호가 켜진 일본은 금리를 5%에서 1987년 2.5%까지 낮췄는데, 이러한 저금리 정책은 기업의대외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이후 3년간 지속됐다. 결국 저금리 상태에서 막대한 자금이 부동산 부문으로 흘러들어가면서 일본의 부동산 가격은 폭풍을 거듭했다. 그러나 거품이 너무 커지자 이를 방치할 수 없던 일본은행은 1990년부터 금리를 6%까지 올리고 대출 총량 규제까지 실시했다. 당시 미국과 독일은 이미 2~3년전 금리를 올린 상태였지만, 일본은 경쟁력 유지와 경기 부양을 이유로 실기하고 말았다. 결과는 세계 역사상 가장 강하고 오래가는 부동산 버블이었다."
김수현, 주택정책의 원칙과 쟁점, 195쪽. - P157

"중앙은행 책임자들은 전통적으로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서라면 금리 인상을 피하려 들지 않지만, 자산 가격 거품에 대처하기 위한 시도는 극히 꺼려한다. 심지어 사실에 기초해거품이 확인되어도 이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 기간 한국은행이 보인 태도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한다.
찰스 p. 킨들버거. 로버트 Z. 알리버,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김홍식 옮김, 굿모닝북스, 2006, 206~207쪽. - P160

싸고 좋은 집을 많이 공급하자는 공약이나 제안에 반대할 사람들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는 극히 전시적인 수준의 적은 물량이거나, 청약저축 가입자들이 부담하는 돈으로 사업을 하는 것이라면 지극히 모순적이다. 이는 누군가의 로또 당첨을 위해모든 국민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 P204

다수의 1980~1990년대에 출생한 청년층들이 ‘임대로살 수밖에 없는 세대(generation rent)‘가 되었다면, 1960~1970년대에 출생한 세대들은 ‘임대업자 세대(generation landlord)‘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임대업자 세대는 자신의 돈이 아니라 금융을 활용해서 집을 늘리는 중이다. 미국, 일본, 영국,
호주 등에서 "서브프라임이 무너뜨린 잔해 위에서 더 강하고금융화된 민간임대업자 시대"가 출현한 것이다. 결국 고도성장 세대와 저성장 세대가 주택자산을 매개로 세대 간(inter-generation)에 현격한 격차를 보이게 되었다.  - P234

 그렇다면 급진적 대안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것인가? 알버스는 이 대목에서 집의 소유권을 없애거나빈집 점거(squatting) 같은 ‘급진 대안‘을 언급하기는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과도한 자가 소유촉진책 중단, 더 많은 공공임대주택 확대, LTV·DTI 규제 강화 등과 같은 ‘강한 수준의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 - P240

했다. 교육과 부동산이 그 수단이었다. 자녀들에게 인적 자산과 물적 자산을 키워서 넘겨주는 일은 중산층 모두의 숙제였다. 과열된 교육 열풍과 부동산 집착은 이렇게 당연시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주택은 가족주의의 가장 중심에 있게 된다.
서구가 자가 소유촉진정책의 배경 이념으로 ‘자산 소유 민주주의‘를 들었다면, 우리를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자산증식 가족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가계 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세계 최고 수준이 되고 말았다. - P248

아파트가 전체 주택의 반에 이르고 특히 서울은 60%가넘기에, 누가 어느 단지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자산 수준이 노출되는 세상이다. 일주일에 몇 번씩 발표되는 집값 동향은 사실상 전 국민의 재력 중계나 다름없다. 언론들도 "강남 불패,
벼락 거지, 영, 영끌 거지" 등과 같은 공포 언어들을 통해 부동산 불안을 극대화하는 중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국민들의불안, 불만을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국민들이좋아할 만한, 언론이 손뼉 칠 만한 대책들을 내놓기에 급급하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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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한 것은 아닌데, 부동산 문제가 담겨 있는 세 권의 책을 연달아 읽게 되었다. 모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조장훈의 책만 특별히 대출 신청을 하여 수령한 것이고 나머지는 도서관의 여기저기에서 발견되어 읽었다.


조장훈과 김수현의 책은 둘 다 대치동 학원 원장 이력을 가지고 입시컨설턴트 경력을 가진 저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책의 결이 많이 다르다. 하나는 대한민국 사회에 대해 첨예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고 다른 하나는 약간의 문제의식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둥글둥글 살자는 주의이다. 집필 의도를 가지고 장기간 집필에 들어간 책과 브런치 출판프로젝트 결과물이라는 사실이 책의 질적인 면에서도 차이를 만드는 것 같이 느껴졌다.


조장훈의 글은 띠지를 너무 많이 붙여서 밑줄 긋기로 모두 옮기지도 못하겠다. 그런 반면 정성민의 책에는 띠지가 하나도 없다. 조장훈의 책은 도서관의 소장도서가 그것뿐이라 큰글자도서를 빌려서 유독 무겁고 컸는데, 마치 내용도 그런 것처럼 느껴졌다. 정성민의 글은 가볍고 접근하기 쉬우며 현상에 대해 묵직한 고민보다는 적당한 타협과 위안을 준다. 저자가 개인적으로 도운 입시 사례들은 훈훈한 미담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그런데 내 개인적인 입장은 우리나라의 대치동 현상이 그런 어조로 다룰 사안인가 하는 면에서 회의적이다.)


조장훈 책의 서두에서 저자가 보여주는 위트는 SF문학이 주로 사용하는 노붐(인지적 소외)의 훌륭한 사례라고 느꼈다. 고유명사를 라틴어 표기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의 대학입시 풍경을 낯설게 보게 만들었다.  


특히 p.99의 내용은 근래에 만난 주변의 입시생들이 왜 그렇게 하나같이 비대하고 비현실적인 자아상을 가지고 있었는지 이유를 알게 해주었다. 그들이 이상한 게 아니라 입시 제도와 교육 현장 자체가 비틀려 있었던 것이었다. 


p.202부터 이어지는 대치동 엄마들의 이야기를 읽고는 한국 사회의 학벌주의는 강한 가부장제 전통을 주춧돌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이 남에게 무시 당할까 두려워 떨고 그래서 남 위에 서기 위해 뼈와 살과 인생의 낙을 다 갈아넣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이놈의 대한민국이란 땅이 씁쓸했다. 


김수현의 글은 아직 읽고 있는 중인데, 노무현과 문재인 정부, 두 번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만들어낸 분이 쓴 자기 변명서 같은 책이다. 해명서라고 하고 싶지만, 차마 그 말이 안 나온다. 이 책을 왜 빌렸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잠이 안 올 때 읽고 있다. 아마 끝까지 읽지 못하고 반납하거나 대충 속독으로 읽은 뒤에 반납할 것 같다.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은 간혹 일반인들은 '몰라서' 아무 말이나 떠들며 책임론을 외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럴 수도 있지만 대개는 아니다. 대개는 '몰라서'가 아니고 '그 따위는 모르고 싶다.'에 가깝다고 본다. 구성원의 욕망과 상충되는 현상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고, 결국 책임과 비난은 정치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런 책은 자신에게 우호적인 같은 편에게 들려주는 하소연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아마 그런 용도로 소비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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