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링은 1969년부터 연인 톰 레아 - 이론물리학자로 1989년에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다 -와 공개적으로 동거를 시작하면서 당시 속도를 더해가던 사회혁명에 힘을 보탰다. 에이즈가급속히 확산되자 거액의 기금을 마련하여 던디에 바이러스 연구소를 세웠고, 호스피스 시설의 공동설립자가 되었다. 처음으로 효과적인 치료법이 나오자 특히 아프리카에서 특허기간을 단축하고 가격을 낮추기 위한 운동을 펼쳤다. 1972년부터자신의 사업을 운영한 허사비스와도 협업을 이어갔다. 대중의참여에 점차 인내심을 잃어가던 튜링은 "나의 움츠린 시간에"연구에 집중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의 과거에는 오랜 샌프란시스코 체류, 카터 대통령이 하사한 자유훈장과 연회, 과학기금에 대한 논의를 위해 총리 별장에서 가진 대처 총리와의 오찬, 아마존 보호를 호소하기 위한 브라질 대통령과의 만찬이있었다. 그는 오랜 세월 컴퓨터 혁명의 얼굴, 새 유전학의 목소리로 살아왔고 거의 스티븐 호킹만큼 유명했다.  - P69

현재란 있음직하지 않은 구조물 중에서도 가장 약하다. 
현재는 얼마든지 지금과 다른 모습일 수 있었다. 현재의 어떤 부분이든, 혹은 그 전부가 다를 수 있었다. 가장 사소하거나 가장 중대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내 발톱이 말썽을 일으키지 않은 세계, 내가 벌인 사업 중 하나가 성공해 내가 템스강 북쪽에서 부자로 살고 있는 세계, 셰익스피어가 어릴 때 죽어서 아무도 그를 그리워하지 않고, 미국이 완벽한 실험을 거친 원자폭탄을 일본의 한 도시에 떨어뜨리겠다는 결정을 내린 세계, 포클랜드제도 기동대가 출정하지 않았거나 승리해서 돌아와 온 나라가 애도하지 않는 세계, 아담이 먼 미래의 조립품인 세계, 육천육백만 년 전 지구가 운석과 충돌하기 전에 몇 분 더회전하여 유카탄반도의 햇빛을 차단한 고운 석고 모래가 생기지 않아서 공룡이 멸종하지 않고 영리한 유인원을 포함한 포유류에게 미래를 내주지 않은 세계, 그런 세계들을 떠올리는건 얼마나 쉬운가. - P1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