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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손가락 ㅣ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외국에 거주하는 탓에 한국어 책을 사보려면 비싼 돈-원가의 약 1.5-2배-을 지불하고 몇 날을 기다려야 하는 나에게는 한국어 책을 대하는 일관된 지침이 있다. 그건, 걸리면 무조건 읽는다, 이다. 그런 내가 요즘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것도 벌써 며칠 째. 근처 공립도서관에서 한국어 책 코너를 발견한 때문이다. 의외로 신간도 많고 구간이라도 읽고 싶었던 책들이 꽤 많이 구비되어 있다. 왜 이제야 알았을까. 이곳에 거주한 지도 십 년이 넘었는데…….
그렇게 빌려온 책 중 하나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붉은 손가락>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아직 보지 못한 책이라 무조건 들고 왔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는데…… 대박!
책 욕심이 많은 나도 스릴러나 추리소설들은 읽고 주로 방출한다. 결말을 읽고 반전을 보고나면 사실 두 번 읽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는 다시 읽고 싶어 소장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 이 목록에 이 책 <붉은 손가락>이 추가되었다. 물론 빌려 읽었으니 먼저 한 권 구매해야 한다. 꼭!
“그냥 평범한 집이네.” 마쓰미야는 불쑥 내뱉었다.
“아니, 이 집 할머니, 인지증인 것 같았어.” 가가가 말했다. “평범한 집이라고는 이 세상에 하나도 없어. 바깥에서 보면 평온한 가족으로 보여도 다들 이래저래 사연을 안고 있는 법이야.” (pg. 137)
도쿄 근교에 아내와 중학생 아들, 그리고 치매기가 있는 어머니와 살고 있는 47세의 평범한 샐러리맨인 마에하라 아키오는 어느 날 아내 야에코로부터 전화를 받고 집으로 급히 돌아온다. 그리고 그의 집 정원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어린 여자아이의 사체를 발견한다. 그리고 진짜 살인범을 보호하기 위해 아키오와 야에코는 밤에 몰래 아이의 사체를 근처 공원에 유기한다. 이튿날 사체가 발견되고 경찰은 범인을 찾아 점점 수사망을 좁혀온다.
이 사건을 맡은 것은 가가 교이치로 형사와 젊은 혈기의 신출내기 경찰인 그의 외사촌 마쓰미야 슈헤이 형사이다. 뛰어난 직관과 능력, 그리고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마음을 가진 가가 형사는 이 가정에서 벌어진 비극과 그 비극이 가져온 또 다른 비극의 진실을 하나둘 파헤쳐 나간다. 그때부터 겉으로는 평범하게만 보이는 이 가정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속사정들이 하나둘 드러난다.
“이제 곧 너도 알게 돼. 하지만 이 말만은 해두지. 형사라는 건 사건의 진상만 해명한다고 해서 다 끝나는 게 아냐. 언제 해명할 것인가, 어떤 식으로 해명할 것인가, 그것도 아주 중요해.”
영문을 몰라 마쓰미야가 미간을 찌푸리고 있자 가가는 그의 눈을 지그시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
“이 집에는 숨겨진 진실이 있어. 이건 경찰서 취조실에서 억지로 실토하게 할 이야기가 아냐. 반드시 이 집에서 그들 스스로 밝히도록 해야 하는 거야.” (pg. 230)
작가는 이 책에서 현대 일본이 맞닥뜨린 사회문제들, 청소년 범죄와 고령화 사회, 가정의 붕괴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모습과도 그리 다르지 않다. 이런 혼란 속에서 살아가던 평범한 이들이 뜻밖의 비극적인 사건을 만나 처참하게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 우리의 사는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회사 일만으로도 이래저래 힘이 들 텐데 집안에 저런 문제를 안고 있다니, 저 아저씨도 참 힘들겠네.”
“저게 요즘 일본 가정의 한 전형이야. 사회가 고령화된다는 얘기는 몇 년 전부터 나왔었어. 하지만 그에 따른 적합한 준비를 하지 못한 국가의 책임을 이제 각 개개인이 떠맡게 된 거야.” (pg. 139)
재미를 위한 오락으로만 끝나지 않는, 생각하게 하는 의미 있는 책 읽기를 원하는 추리소설 독자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2013년 4월 20일 종이책으로 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