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 다치바나 식 독서론, 독서술, 서재론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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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1일에 종이책으로 읽다.

    

저널리스트이자 평론가인 다치바나 씨는 일본에서 대단한 독서가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이 분의 직업을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탐사 저널리스트나 리서치 저널리스트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의 책읽기와 공부는 자신의 일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고 그 영역이 정치, 사회, 첨단과학을 넘나든다. 그는 이 책에서 독서를 통한 지식과 정보의 습득을 위한 방법론에 대해 주로 이야기 한다. 많은 독서에세이들이 주로 교양을 위한 책읽기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반해 이런 면에서 이 책은 꽤 특이하고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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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나의 지적 호기심

 

다시 말씀 드리면, 저는 공부하는 것이 정말 좋습니다. 젊었을 때는 왠지 창피하기도 해서 이런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0대까지만 해도 영화를 보러 가거나 파칭코를 하러 가거나 친구들과 만나 잡담을 하며 지내기도 했지만 지금은 거의 그런 일이 없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즐거움으로 삼고 있는 일들이 이제는 더 이상 재미있지 않습니다. 공부를 하고 있을 때가 가장 즐겁습니다. 놀고 싶은 욕구보다도 알고 싶고 공부하고 싶은 욕구가 훨씬 강한 것이지요. (pg. 18-19)

 

이 장에서 저자는 자신의 일과 그 배경이 되는 본인의 지적 호기심과 동기에 대한 이야기하고 그 화제를 인류의 일반적인 지적 욕구에 대한 것으로 확대시켜 나간다. 그 과정에서 여러 인류학적, 뇌과학적인 근거들을 가져와 설명하고 결론적으로 모두에게 평생 공부, 탐구를 권고한다.

 

그런데 지적 욕구의 수준이 낮은 사람은 자신의 오토마톤 현상에 만족하여 곧 학습에 대한 의욕을 상실합니다. 새로운 것은 이제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으며, 자신이 지금까지 배운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는 오직 여러 가지 육체적 쾌락을 즐기거나 맛있는 음식에 탐닉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TV를 보면서 실없이 웃으며 살아가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사람에 따라 크게 차이는 나지만, 30대 정도가 되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훨씬 많아집니다. 반면, 지적 욕구의 수준이 높은 사람은 어떤 것이 오토마톤화 되고 나면 자신의 의식을 새로운 곳으로 이끌어, 다음에는 이것을, 그 다음에는 저것을 학습하려고 찾아 나섭니다. (pg. 35-36)

 

II 나의 독서론

 

두 번째 장에서 저자는 인류의 지의 총체를 향한 도전으로서의 자신의 독서와 본인인 경험을 통해 습득한 독특한 독학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 가지 주제가 정해진 후, 서점 순례를 통해 여러 종류의 책을 구입해 기본적인 내용을 파악하는 방법, 그 분야의 최첨단 정보를 얻기 위한 저자만의 방법론 등이 서술되어 있다.

 

자연과학뿐만이 아니라 본래 고전에는 인류의 지가 가장 원시적인 단계에 있을 대 탄생한 작품만이 포함됩니다. 저는 현대인에게 필요한 과거의 지의 총체라는 것은, 인간의 지의 운용을 하나하나 계통수로 그렸을 때 막다른 골목으로 접어든 것은 제거하고, 현대의 지와 직접 관련되어 있는 주류만을 선별하여 그것에 대한 최신 보고서를 읽어야만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무의미하게 고전만을 고집하게 되면 현대의 지와 직접 관련된 주류를 간과할 우려가 무엇보다도 크기 때문입니다. (pg. 56)

 

III 나의 서재·작업실론

 

이 장은 저자의 일과 관련된 소소한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묶어 놓은 것이다. 원하는 책상을 찾기 위해 쏟은 노력들, 매일의 작업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끌기 위한 서고 안의 책장들과 책들의 배치 등. 하나, 재미있게 읽은 글은 나의 비서 공모기였다.

일을 도와줄 새로운 비서를 찾기 위해 저자는 신문에 연령, 학력 불문, 주부도 가능이라는 광고를 낸다. 생각보다도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응모를 하고 저자는 적임자를 찾기 위해 몇 가지 테스트를 하게 된다. 그의 일 자체가 워낙 다양한 분야를 다루기 때문에 다치바나 씨는 인문과 시사, 과학, 즉 문과와 이공계 모두에 기본 소양을 갖추고 흥미를 가진 사람을 찾으려 한다. 그런데 두 가지 분야의 기본 테스트를 실시한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쪽 방면에 뛰어나면 다른 쪽 방면에는 완전히 무지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인류의 지적 자산이 양적으로 늘어날수록 점점 분야가 세분화되면서 개인들의 지식이 지나치게 편중된다는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결과였다.

 

IV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이 장의 대부분은 책 이야기라는 잡지의 19957월 창간호 기사를 대폭 가필한 내용이다. 인터뷰를 통한 질문과 답변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고 수년에 걸친 저자의 리서치 저널리스트로서의 일에 대한 전반적인 회고가 대부분을 이룬다. 매스컴을 통해 여러 차례 소개된 다치바나 씨의 작업실인 고양이 건물의 안과 밖의 모습도 나와 있다. 지하 일층에서부터 지상 삼층까지 모두 책들로 꽉 들어찬 작은 건물은 책을 좋하하는 이들의 꿈의 실현 같다. 부럽다.

 

다치바나 씨는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성공한 사례인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일, 부러우면서도 결코 쉽지 않은 이 일을 위해 다치바나 씨는 한 번의 퇴직을 하고 대학으로 돌아갔었다. 4장에 실려 있는 퇴사의 변이 그가 첫 직장을 그만두면서 사내 회보에 기고했던 글이라고 한다. 이 글에서는 책과 배움에 대한 그의 열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러나 저널리즘의 세계에서 내가 느낀 것은, 사유와의 피드백 과정이 빠진 관찰은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것을 보더라도, 만약 그것이 충분한 사고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해로운 것일지도 모른다. 초인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고 초인적으로 보는 일에 익숙해지는 것은, 초인적으로 본 것을 평범한 것으로 판단하여 그것으로 정신적인 처리를 끝냈다고 결론짓는 것이며, 이미 본 것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보다 많은 것을 보려고만 하게 되어, 초인적인 눈으로 보았다고 여기지만 결국 평범한 눈으로 본 것에 불과한 결과로 나타나고 만다. (pg. 185-186)

 

V 우주·인류·

 

이 장은 원래 나의 독서일기라는 잡지 연재분 부분을 가져왔다고 한다. 원래 있던 장에 소개된 책들 대부분이 한국에는 알려지지 않은 전문적인 내용이라는 이유로 저자가 특별히 요청을 했다고 한다.

이 장의 뒷부분에 있는 출판에 관한 글이 재미있었다. 전자책과 종이책의 미래에 대한 저자의 예견(?)은 사실 지금으로부터 십 년도 전에 기술된 것이다. 그의 예측이 얼마나 현실적으로 맞았는지 살펴보며 흥미롭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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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그다지 접해 보지 못한 정보 습득을 위한 독서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무척 흥미로웠다. 한두 가지 주제를 두고 직접 실험해 볼 기회도 곧 있을 것 같다. 배웠으면 해보는 거다. ^^

고전에 대한 저자의 주장에는 완전히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고, 지식의 총체가 커지므로 해서 개인의 지식의 편중화에 대한 이야기에는 전적으로 공감했다.

 

위에서 길게 각 단락별로 내용을 정리해 보았지만 평생 독서와 공부를 취미이자 업으로 삼아 살아온 저자의 독학에는 왕도가 없습니다라는 한 마디가 가장 기억에 남고 가슴에 와 닿는다.

이 한 권에 기술된 독서론, 독학 방법은 모두 저자가 평생을 거쳐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스스로 쌓아오고 다듬어온 자신만의 방법이다. 앞서간 사람의 경험을 귀담아 들을 수는 있지만 결국 우리 각자는 자신만의 방법론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왕도가 아닌 각자만의 좁을 길을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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