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구혜영 옮김 / 창해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2013년 2월 4일에 종이책으로 읽다.

 

다 읽고 책의 앞뒤를 뒤적거렸다. 그리고 이 글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데뷔작이란 걸 알았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고 할까, 그제야 내가 이 글을 읽고 느낀 의아함에 답을 찾은 것 같았다.

 

작년부터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여러 권 읽었다. 다작하는 작가인데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있어서 꽤 많은 책들이 한국어로 번역 출간 되어있다. 내가 읽은 것만도 열권이 넘는 것 같다. 그런데 이 글은 그중에서도 참 의외였다.

 

느낌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음, 잘 짜인 추리소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미리 만들어 놓은 공식 속에 끼워 맞춘 듯 어딘가 딱딱하고 단면적이다. <악의>나 <용의자 X의 헌신>, <성녀의 구제> 등에서 보았던 의외성과 반전, 그러면서도 트릭이나 알리바이 이상의 그 무엇-인간들의 본성과 그들의 관계를 한 꺼풀 벗겨 보이는 것 같은-이 없었다.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의 배경은 학교다. 일인칭 시점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마에시마는 세이카 사립 여자고등학교의 수학교사이자 양궁부 고문이다. 특별히 교육에 뜻이 있어 교사를 희망했던 것이 아닌 그는 오년 전에 적당한 직업을 찾다가 우연히 교사가 되었다. 그는 적령기가 되자 적당한 여자를 만나 결혼도 했다. 매사에 귀찮게 얽히는 것을 피하고 무미건조한 그를 학생들은 꽤 괜찮은 선생이라고 여기고-잔소리를 하거나 귀찮게 하지 않으니까-기계라고 부른다.

 

그런 마에시마의 평범한 일상에 어느 날부터인가 변화가 생긴다. 그의 주변에서 이상한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마에시마는 누군가 자신의 생명을 노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동아리 탈의실에서 죽어있는 동료 교사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탈의실은 문이 모두 잠긴 밀실이다. 학교는 곧 사건 현장이 되고 형사들이 조사를 시작한다. 마에시마는 이 사건이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여러 일들을 통해 밀실 트릭의 비밀은 풀리는 듯하지만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하지만 곧 이어 또 다른 사람이 학교에서 살해를 당한다.

 

이 모든 일들이 고등학교라는 배경에서 학생들과 교사들이 중심인물이 되어 펼쳐진다. 학교 장면들에 대한 묘사가 정교하고 사실적이다. 내가 다녔던 때와 그리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면 음, 한국교육과 일본교육이 너무 유사하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일까.

 

이야기에 등장하는 밀실 트릭이 꽤 치밀하고 잘 만들어졌다. 이야기 전반에 깔려 있는 복선도 좋았다.  

  

나가타니와 헤어진 후 요코의 오기에 찬 얼굴을 떠올렸다. 순수하기 때문에 절망했을 때의 반항도 그만큼 큰 것이다. (pg. 28)

 

“글쎄요……. 저도 딱히 이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애들한테 제일 중요한 건 아름다운 것, 순수한 것, 거짓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우정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죠. 자기 몸이나 얼굴일 수도 있고……. 좀더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추억이나 꿈을 제일 소중하게 여기는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런 것들을 부수려고 하는 사람, 빼앗으려고 하는 사람을 가장 증오한다는 뜻도 되겠지요.” (pg. 359)

 

이 말들이 의미하는 바를 알기 위해서는 이 글을 한 번 읽어보시기를……. 

 

나의 객관적인 기대와 어긋났을 뿐, 이 글만 놓고 보면 잘 쓰인 추리소설이다. 이를 증명하듯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글로 제31회 에도가와 란포 상을 수상했다. 

 

주인공 마에시마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더 이상 자신의 삶을 적당히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본 스스로와 자신의 삶의 적나라한 모습을 향해 그가 내뱉은 말들이 인상적이었다.

 

“시시해.”

소리내어 말해보았다. 내 삶을 향해 뱉고 싶은 말이다. 갑자기 졸음이 쏟아져 견딜 수 없었다. 눈을 감으니 머리가 아프고 가슴속에선 화가 치밀어올랐다. 최악이다. (pg. 424)

 

이 후,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달라졌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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