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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아무 생각 없이 페달을 밟습니다 - 58일간의 좌충우돌 자전거 미국 횡단기
엘리너 데이비스 지음, 임슬애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읽은 책은 엘리너 데이비스의 <오늘도 아무 생각없이 페달을 밟습니다>다.
요즘 주말마다 집근처에서 당일치기 캠핑장에 들고가서 한 컷! :)
책과 캠핑이 잘 어울린다.
밝은세상에서 이런책도 나오는구나.
처음 봤는데, 제목이 흥미로웠다. 나도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이 책 고른 이유 80%는 자전거다!)
9살에 나만의 자전거가 생긴 후로는 매일을 자전거로 어디든 다녔고, 대학시절엔 구파발에서 임진각까지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과행사가 있어서 매해 참여할만큼 좋아했다. 책 제목을 보는데 그날들이 떠올랐다.
자전거를 오래탄 (아마도 적어도 8시간 정도?) 날에는 허벅지 근육이 돌처럼 단단해져서 다음날 계단을 오르내리는게 정말 고역이었다. 왜인지 나는 이 책의 저자가 남자일거라고 생각했다.
놀랍게도 자전거를 타고 미국을 동에서 서로 횡단한 주인공은 여성이었다.
2,780km를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일이 가능한 일이구나 싶으면서도 그 당사자가 여자라서 더 반가웠다.
(나도 할 수 있으려나?!)
책의 도입부에 자전거 여행을 하는 이유를 묻고 답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을 보고 든 생각은 '어떤 일을 실행하는데 완벽한 이유를 가지고 시작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였다.
그녀의 이유들이 어떤 것은 웃음이 나고, 어떤 것은 위로해주고 싶었는데.
그 중 3번째 이유가 마음에 닿았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고 앞으로도 없으리란 법이 없어서...그런 것 같다.
과중한 업무로 지쳐가던 20대의 나는 매일의 퇴근길 한남대교를 지나는 버스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한없이 우울해지곤 했었다. 좋지 않은 생각을 아주아주 많이 했었다.
처음엔 처절하던 그 감정이 익숙해지는 것이 무서웠다.
그래서 그런 날들을 더 감당하다간 큰 일이 날 것만 같아서 주인공과는 다른 방법이지만 그 길을 벗어났다.
(참 다행이다!)
이런 생각들을 떠올리게 해 놓고 다음 페이지엔 무릎을 냉동 콩으로 찜질하는 모습이 나온다 ㅎㅎㅎ
있었던 생각과 하루를 그려놓은 거겠지만, 완급조절을 잘하는 작가구나 싶었다.
주인공은 6일이나 달려서 도착한 곳에서 부모님을 다시 만나는데, 그녀가 6일간 달려온 그 길을 자동차는 단 3시간만에 달려간다. 부모님과 만난 장면에서 마음이 뭉클했다.
홀로 자전거를 타고 긴 길을 떠나는 딸을 걱정하는 엄마와 현실적으로 자전거를 정비해주는 아빠의 모습을 보자 자연스럽게 나의 엄마와 아빠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키우는 나의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하면 "아이를 키우는 게 다 그런거야."라면서도 "네 몸 잘챙겨."라며 걱정을 끝도 없이 늘어놓는 엄마와, 별말없이 그저 듣고만 계시다가 손주들이 놀 수 있게 이런 저런 필요한 것들을 뚝딱뚝딱 만들어주는 아빠가 떠올랐다.
여행에 대한 소소하고 담담한 것들이 내 안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바람이 옆에서 불어오면 그 방향으로 몸을 기울여야 한다. 바람 때문에 길 한복판이나 길 밖으로 밀려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순풍이 불때는 사위가 완전한 침묵에 휩싸인다. 바람이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게 된다. 엄청나게 빨리 가고 있다는것만 자각할 뿐이고 빨리 가기는 쉽다." 라는 말이 쓰여있었는데 어떤 말이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그 페이지를 보자 문득 삶이란 게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그것도 역풍이) 부는 날들이 있고, 그럴 땐 차라리 그 바람이 나를 데려가는 대로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게 바람에 맞서는 것보다는 낫다(에너지가 덜 든다). 맞서다가는 지치고 또 지치다가 나가 떨어질 수가 있다. 바람떄문에 길 밖으로 밀려나는 자전거 여행처럼 말이다.
계속 이어진 자전거 타기는 그녀에게 무릎 통증이라는 빌런을 마주하게 한다.
건강때문에 무언가를 멈춰야 할때 우리는 돌봐야할 자신을 비난하고 나무란다. 그녀는 다행히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 위기를 극복했다. 자전거 가게 주인이 머물곳을 소개해주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절망에 빠져있을 때 주변의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주는 것만큼 고마운 일이 또 있을까? 그래서 나 자신만 보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여 살고 싶다. 우리가 서로에게 손을 내밀지 않으면 홀로 살아갈 수 있을까?
남은 날들의 여행 일정을 짜다가 패닉에 빠진 그녀의 모습 아래 작게 그려진 그림들이 귀엽고 마음에 들었다.
그냥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80km 가야지'라고 마음 먹고는 페달을 밟고, 자고 또 일어나는 일들의 반복을 그린 장면. 벗어나고 싶지만 잘 안되는, 특별했던 여행이 어느새 평범한 일상이 된듯한 느낌.
그저 일어나서 갈 뿐이다.
요즘 우리가 버텨내는 일상들이 전부 그런 날들이 아닐까?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계산하기도 어려운 날. 그저 일어나서 각자에게 주어진 하루를 묵묵히 살아내는 삶.
처음 이런 일상이 찾아왔을 때 나는 패닉에 빠졌다.
지켜야 할 것들이 있으니 더 두려웠고, 어려웠고, 지쳐갔다.
그럴 수록 일어나서 아이들을 먹이고 (나도 먹고),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 공부를 봐주고, 잠이 들고, 또 눈을 뜨는 단순한 생활들이 안정감과 위로를 줬다. 그녀는 자고 일어나 페달을 밟아 가고자 하는 곳까지 이어갔던 하루하루가 어떤 선물이 되었을까? 알것 같기도 하다.
그녀는 자전거를 타고 애리조나주 투손에 있는 부모님의 집에서 조지아주 애선스에 있는 본인의 집까지 여행을 떠난다. 여정의 마지막에 남편이 데리러 오길 기다리며 고른 숙소로 특별한 집을 만난다.
하필이면 그 집에서 노부부의 사랑과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는 남편을 더욱 애틋하게 기다릴 수 있지 않았을까?
금새 후루룩 읽은 첫번째엔 그저 재미있는 만화책이라는 느낌이었다.
'재밌네. 그런데 좀 아쉬운 걸?' 싶었다. 간간이 마음을 두드린 부분들을 다시 느껴보려고 다시 천천히 그녀의 하루하루를 함께 카운트 해가며 책장을 넘기자, 그녀의 연필스케치에 색감이 덧입혀졌다.
그녀의 여행길에 잠시 지나간 매한마리, 무릎찜질하는 그녀를 맴돌던 비둘기들, 마음씨 넉넉한 국경순찰대, 지평선이 이어진 어느 곳, 그녀를 사로잡아 책속에 남겨진 꽃들. 그리고 미시시피강.
마치 소리 없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장면들이 책 속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자동차가 아닌 자전거로 길을 떠나준 덕에 그리고 그녀의 무릎이 수시로 아팠던 덕에(이제는 잘 치료했기를) 그녀는 58일간 재밌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내게 해주었다.
몸이 힘겨운 여행 후엔 마음이 후련하고 신선해지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녀가 그린 이 마지막 장만큼. 그녀의 모든 것이 단단해졌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녀가 딛고 일어선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녀 덕에 나도 짧고 선명한 여행을 떠나갔다 돌아와 어딘가 조금 건강해진 기분이다.
그리고.........
나도 다시 자전거가 타고 싶어졌다.
이 포스팅은 밝은세상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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