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속도를 늦춰라 - 하버드대 행복학 명강의
장샤오헝 지음, 최인애 옮김 / 다연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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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행복'을 내 삶 안에 들여놓으라고.. 이야기 해주는 친구의 조언 같다.

눈을 뜨면 틀어두는 음악처럼, 잠들기 전에 보는 좋아하는 영상들처럼... 다른 불편한 것들은 내려놓고 행복의 손을 잡으라고 이야기해 준다.

마음이 무거운 날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전세계의 어느 누구하나 가벼운 마음인 사람이 있을까 싶게...

아마...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의 숨에서 뿜어져 나오는 색을 고르자면 인디고 블루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래서, 이 책에 손이 간 것 같다. 제목에서 어쩐지 우울한 내 마음에 위로를 건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 쟝샤오헝이라는 저자 이름은 책이 도착한 뒤에야 눈에 들어왔다. ㅎㅎㅎ

쟝사오헝이 누구지? 검색창에서 찾아봤다.

<마윈처럼 살아라>를 비롯한 다수의 책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정보 말곤는 작가의 전작에 쓰인 저자소개 중 일부를 보고 감을 잡았을 뿐이다.

쟝샤오헝에 대한 소개는 이렇다. "수천 년간 다져진 중국 철학과 인문학의 길을 걷고자 다짐한다. 그러던 중 동양 인문학의 보고, 베이징대학교와 그곳을 스쳐 간 수많은 저명인사의 인생철학과 삶에 대한 통찰에 매료되어 오랜 시간 그들의 글과 발언에 관심을 갖고 자료를 수집했고, 이를 묶어 책으로 펴내기에 이르렀다. 현재는 중국을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풍부한 경험에서 나오는 촌철살인의 거침없는 문체로 중국 대륙뿐만 아니라 홍콩과 대만의 독자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느리게 더 느리게》와 《마윈처럼 생각하라》라는 도서로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또한 베이징 링윈비(凌雲筆) 도서창작센터를 설립하여, 사람들을 격려하고 힘을 북돋아주는 도서 제작에 힘을 쓰고 있다."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라는 제목 아래 하버드대 행복학 명강의라는 부제를 달고있어서, 처음엔 장샤오헝이라는 작가가 하버드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고 오해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전작에선 <베이징대 철학수업>이라는 제목을 쓴 것으로 봐서, 제목을 뽑는 규칙같은 걸... 유명대학명으로 정한 것 같다.

(작가 자신의 아이디어든, 출판사의 아이디어든)

작가는 친절하게 서문에서 그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이 책은 해피어로 유명한 탈 벤 샤하르라는 하버드 교수의 강의를 바탕으로 자신이 갖고 있는 '행복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고 말이다.

덕분에 긍정심리학을 만들어낸 창시자의 홈페이지에도 찾아가 보게 되었다 ㅎㅎㅎ

(긍정심리학은 10년 전에 일하다가 시도해보고 싶어서 사내에서 스터디를 했던 주제라 반가웠다.)

작가에 대한 사전지식을 이렇게 찾아본 건 오래간만이었다. 여러가지 궁금증을 갖게 만든 서문 덕이다. :)

책 속의 목차를 보고, 이게 하버드대에서 강의하는 목차일까? 궁금했다.

왜냐하면 책속의 챕터가 정확하게 카테고리화되어 있지는 않는 것 같아서였다. 개념들이 조금 섞인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미국식의 책들은 카테고리가 딱딱 떨어지는 책들이 많았다. 분명한 걸 좋아하는 아메리칸스타일.

(나도 좀 그런것도 같다) 그래서... 찾아봤다. ㅎㅎㅎ

흐름은 비슷하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카테고리명도 달아놓지 않았구나.... 추측해봤다.

아마도 미국 VS 중국이라는 문화적차이와 작가가 쓰고 싶은 생각의 흐름에 맞게 재구조화된 게 아닐까 싶었다.

책이 만들어진 계기가 어찌되었건, 우리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그리고 행복을 내 안에 자리잡게 만들기에 좋은 조언들이 많이 쓰여 있었다.

내 마음에 와닿았던 내용들을 갈무리 해보았다.


인생이란 참으로 어쩔수 없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인생을 알 수가 없고, 인생이 무엇인지 알 때쯤 되면 더 이성 젊지 않다. ....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 중에서 p.15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 대목을 읽는데, 마음이 저릿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더이상 젊지 않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어느 날은 그 생각이 들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슬펐던 날도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인생이 무엇인지 아직 깨달은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젊지도 않다니. 입이 썼다.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지만 그래도 행복의 조건을 정의한다면,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

"나는 행복한가?"

놀랍게도 우리는 이 중요한 문제를 일부러 외면할 때가 많다. 그러면서 누군가가 자신의 행복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무슨 일이 있느냐며 걱정한다. 사실, 삶의 질은 관심사가 어디에 집중되어 잇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 가끔은 스스로에게 "나는 행복한가?" 하고 자문해 보자. 세상 사람들이 당신을 이상하게 볼지라도 나 자신의 행복에 대해 고민하기를 멈추지 말라!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 중에서 p.16 행복이란 무엇인가?


"나는 행복한가?" 때때로 행복하다. 때때로는 그렇지 않다.

그러고보니, 내 행복은 절반만 채워졌구나.... 좋아하는 일을 이제부터 찾아야겠다.

돈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그들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가 아니다. 물질을 행복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려놓은 그들의 결정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것이다.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 중에서 p.20 행복과 돈의 상관관계

인생을 논하면서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내 욕심의 그릇을 채운 후로는 잠깐 동안 자유롭지만, 희안하게도 그 그릇은 자꾸만 넓어져 간다. ;)

샤하르의 명언 중 이런 말이 있다. '실패하는 법을 배워라, 아니면 배우는 데 실패할 것이다.'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 중에서 p31. 불완전한 사람이 행복하다

나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용기가 나에게는 있을까?

포기가 아닌 인정은 생각보다 어려운 것 같다. 언제나 잘하고 싶은 마음이 저 구석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으니까.

나는 전업주부지만, 요리에는 그다지 소질이 없다.

청소나 정리정돈은 하면서 그럭저럭 재미를 느끼지만, 요리와 설겆이는 할수록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다만 가끔 로또라도 맞은 듯 맛있게 요리가 되면 그날은 기분이 좋다.

샤하르의 말에 따르면 아마도 아직 나는 요리에 있어서는 실패를 덜한 모양이다.

당신이 고액권 지폐가 아닌 이상, 모든 사람이 당신을 좋아할 수는 없다!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 중에서 p50. 모든 이가 좋아하는 사람이란 없다

이 말이 굉장히 와 닿았다. 웃음이 픽 나면서 가슴에 팍 꽂힌 말이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말이었다. ㅎㅎㅎㅎㅎ


스콜틀랜드의 저명한 신학자 윌리엄 바클레이는 저서 <데일리 셀레브레이션>에 이렇게 썼다. '행복한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요건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희망을 갖는 것, 둘째는 할 일이 있는 것, 셋째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행복은 완전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물질이 부족해도 늘 행복하고 누군가는 돈이 넘쳐나도 불행하다. 지금, 자신의 행복관을 점검해보자.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 중에서 p.63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잠시 덮어두고 생각해 봤다.

아침이면 눈을 뜨고 일어나 운동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 침실에서 타박타박 걸어나와 엄마를 찾는 아이들의 얼굴, 나와 얼굴이 마주치면 온 얼굴로 환하게 웃는 가족들의 얼굴,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다며 엄지척을 치켜세우며 금새 식사를 끝내는 가족들의 입가, 집안일을 끝낸 오후 나 자신을 위해 책을 읽는 시간, 퇴근 후 날 위해 가방 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는 남편의 귀여운 뒷모습 같은 것들에서 나는 행복함을 느낀다.

크게 놀라운 행복이나, 큰 돈이 드는 행복은 없다. 그저 내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어주는 작은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늘 같은 하루를 유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마음 가짐에 따라 같은 하루의 일상이 유난히 버겁게 느껴지는 날들도 있다.

더 멀리, 더 오래 걷고 싶다면 발에 맞는 편한 신발을 신어야 한다. 그런데 편한 신발이 꼭 가장 예쁜 신발은 아닐 수도 있다. 무조건 예쁘고 화려한 신발만 탐내고 고집한다면 결국 발을 상하게 만들 것이다.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은 신발이지만 내가 느끼는 것은 발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신발보다는 발이 훨씬 더 중요하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간과한다.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 중에서 p.77 나의 장점으로 행복을 경영하라


내게는 신발과 얽힌 어릴 적의 기억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아빠가 처음으로 사주셨던 구두에 대한 기억이고, 하나는 엄마가 나와 함께 시장의 신발 가게에서 몇번이고 신었다 벗었다하며 골라주셨던 운동화에 대한 기억이다. 두 기억 모두 나에게는 소중한 기억인데 부모님은 모두 내 발이 편한 신을 고르기 위해 고심을 하셨었다. 20대에 대학에 입학하면서 혼자 살게 된 나는 내 눈에 예뻐보이는 신발만 골라 신다가 (10cm씩 되는 힐을 어떻게 신고 다닌 건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발가락이 휘어지고, 무릎이 아파 마음껏 걷지 못한 적이 있었다. 그 시절 내 신발장엔 운동화가 단 한결레도 없었다. 색상별, 소재별 구두만 가득했다. 작은 키가 컴플렉스였던 나는 구두를 통해 키가 커지면 내 안의 어딘가도 자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쇠도 씹어먹을만큼 신체가 튼튼한 20대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금은 힐을 신으라고 하면 발과 무릎이 아파서 엄두도 나지 않는다.

부모님이 내 발을 아꼈던 것만큼만 내가 내 발을 아꼈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이들을 낳아 기르다보니, 손가락 발가락 하나하나까지 사랑하고 아낀다는 게 무엇인지 이제야 진심으로 알게 되었다.)

마음 속 깊은 곳부터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더라면 어땠을까. 이 글을 읽으며 생각했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말했다.

"원래의 자연스러운 즐거움을 잃어버렸을 때, 이를 되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치 늘 즐거웠던 것처럼 일어나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만약 이 방법으로도 다시 즐거워지지 않는다면 다른 방도가 없다. 마찬가지로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정말로 용기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대한 의지를 북돋아라. 그러면 어느 순간 용기가 두려움을 대신할 것이다."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 중에서 p.100 두렵다면 행동하라

'하나의 의자만을 선택'하라는 표현은 한 가지 일에 온전히 전념해야 한다는 진리를 생생하게 드러낸다.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선택하고 추구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고 유한하다. 그럼에도 모든 것을 다 손에 넣고자 욕심을 부린다면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이 이야기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말해왔던 것이라 익숙하지만, 초기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빨리 그 시간이 오지 않아서 답답해하곤 했다. 나는 결국 채우고 싶었던 10년이라는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한 채 내가 서 있던 곳에서 내려와야했지만, 또 다시 걷고 있는 '엄마'라는 직업도 10년이 되어가니 보이는 것들이 있다. 누구의 시간이든 허투루 지나가지 않게 살아낸다면 각자의 인생에서 지혜는 꽃피기 마련인 것 같다.

프랑스 작가 앙드레 모루아(Andr Maurois)도 비슷한 맥락의 충고를 했다.

"우리는 종종 별것 아닌 일로 이성을 잃고 사소한 것에 집착한다. 이 세상에서 겨우 몇십년을 살 뿐이면서 의미 없는 일 때문에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소한 일에 지나치게 매이면 인생은 빛이 바랜다. 현대사회를 살아가기란 그 자체로 신경이 곤두서고 피곤한 일이다. 그 탓에 많은 사람이 작은 일에도 감정적으로 반응하며, 사소한 일에 지나치게 얽매인다. 문제는 어떠한 관점과 시각을 가지고 있느냐가 실질적인 득실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사소한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땅히 누려야 할 즐거움을 빼앗긴다면 그보다 더 큰 손해가 어디 있겠는가?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 중에서 p.187 인생의 우선순위를 잊지 말라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화나는 일이 생긴다 하지만 화가 치밀고 마음의 군형이 깨질 때 자기 자신에게 한번 물어보다. 이 일이 정말로 화를 낼만큼 가치가 있는가? ... 지혜로운 사람은 머리 끝까지 화가 나는 순간에도 자신이 가장 아끼로 필요로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구분한다. ... 어떤 순간에도 우선순위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사소한 일 때문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 중에서 p.189 인생의 우선순위를 잊지 말라

이 두 부분이 마음에 들어온 것을 보면... 내 마음이 요 근래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 마음 속에는 '분노', '상실감', '어이없음', '적대감'과 같은 것들이 한번씩은 자리를 잡고 앉았던 적이 있지 않을까?

이름도 없던 바이러스로부터 속수무책으로 공격당하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이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지난 2월부터 이어진 이 긴 싸움에 모두가 지쳤다. 나 또한 몇 달간 이유없는 분노에 휘둘린 긴 시간들중 대부분은 어디로 어떻게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여러가지 방법으로 지금 상황을 회피하기도 해보고, 나름대로 적응하기 위해 노력도 해온 것 같다.

마스크를 쓰고 문 밖에 나서야만 하는 일상을 평범하게 받아들이기 위해서 말이다.

네 식구가 집 안엔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서로의 마음에 부딪혀 힘들어한 시간도 있었다.

드러내놓고 표현하진 않지만, 예민해진 서로에게 실망하고 화가나는 순간들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 아직 진행 중일 것이다.) 그 와중에 집 안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편안해 질 수 있도록 가족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규칙 같은 것들이 생겨난 것 같다.

종이에 꾹꾹 눌러 적어두진 않지만, 모두가 알아차리게 된 규칙들 말이다.

아마도. 각자의 마음 속에 우선순위가 정렬이 된 후 세워진 규칙이 아닐까 싶다.

나의 경우.....

많은 것들이 집에서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내게로 책임이 전가된 것들(초등1년생의 공부, 4살의 사회화, 그리고 늘어난 밥상, 한눈팔면 쌓여버리는 살림)에 대해 분노하지 않기 위해 내 집안의 뉴노멀을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다.

또한, 나 스스로를 살림&육아의 불쏘시개로 쓰이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을 위한 시간도 꿋꿋이 챙기고 있다!

(몸 건강을 위해 운동, 마음 건강을 위해 글 읽기와 글 쓰기)

이 시간을 지나는 동안에 어쩌면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하르는 언제나 현재를 소중히 여기고 늘 감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를 위해 그는 '감사 노트'를 만들라고 권한다. 매일 저녁 잠들기 전, 그날 하루를 돌아보며 감사함의 대상을 다섯 가지 정도 노트에 적는 것이다. 대상은 공기가 될 수도 있고 맛있는 식사나 가족, 혹은 낯선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마음의 속도를 늦춰라> 중에서 p.222 감사는 표현할 때 진짜 감사가 된다

"고마워요." 만큼 마음을 채워주는 말이 또 있을까?

이 부분을 보면서, 아이들과 가끔 생각이 날때 고마운 마음을 적어보자고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마음을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인지할 수도 있고, 마음을 표현할 용기도 생길 거란 생각이 들었다.

행복을 곁에 둘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들을 알려주어서 고마웠다.

저자 덕에 하버드에 잠시 청강을 하러 다녀온 것만 같았다.

중국사람이 풀어내는 행복이라는 게 뭔가 다를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친숙하게 느껴졌다.

가까운 나라여서 갖게되는 공감대는 있나보다.

때때로 읽기 힘들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뭔가 강의실을 잠깐 일탈하고 싶은.... 그런 기분?)

끝까지 읽고나니, 좋았다!

장샤오헝 작가가 다음번엔 어떤 책을 쓸지 궁금해졌다.


이 글은 다연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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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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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중단편 여러권이 묶인 책이었다.

작가의 작품들 중에 한국사람에게 읽힐만한 것들을 솎아서 묶었다고 하는데,

적어도 '나'라는 한국사람의 취향에는 잘 맞았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SF라는 장르는 현재의 상식을 벗어난 세계관, 또는 소재들을 말이 되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힘이 필요한데, 이 정도의 분량으로 그런 몰입감을 주는 작품은 오래간만에 읽어본 것 같다.


이 이야기가 무엇에 대한 이야기일까? 예전에 읽은 SF작품 중에 어떤 여인이 브라질의 깊은 밀림 속에서 여성의 가임기간을 끊임없이 늘리는 물질을 찾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어서, 나는 그것부터 떠올렸다.

있을법한 이야기 아닌가? 가임기를 늘린다는 건 젊음을 유지한다는 이야기다. <호>라는 작품은 '영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린 날의 실수로 아이를 임신한 주인공은 아이를 낳아 부모에게 맡기고는 홀연히 떠난다. 그리고 시체로 작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일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다가 '죽음'을 멈추는 임상실험에 참가한다. 영원한 사랑을 꿈꿨지만, 함께 실험대상이 된 남편은 유전자 결함으로 자신의 '생'을 단축시키고 만다. '영생'의 약으로 많은 돈을 벌었고 많은 이들의 삶을 무한대로 바꾸어놓았는데, 그녀는 오히려 불행한 시간을 보낸다. 홀로 아이를 낳고 숨어 산다.

그녀가 낳은 그 아이가 사는 세상은 '죽음'이 희귀한 일이 된다.

'무한의 삶'이 당연한 것이 된 삶에는 애착도 우선순위도 없어보인다.

존엄한 죽음이라는 건 우리가 죽음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을 지우려고 만든 미신이예요.

그녀의 두번째 아이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죽음을 삶에서 잘라내 버린 세대는 이런 말을 진심으로 할 수 있는 걸까?

하지만 그들 중에서도, 이런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죽음이야말로 삶이 만들어 낸 가장 멋진 거예요. 나는 날마다, 매 순간마다 내가 죽을 거라는 사실을 되새기고 두려운 일에 도전해요.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고 숨이 거칠어지게 하는 일들 말이에요. 그날 당신한테 다가갔던 것도 내가 언젠가는 늙어서 죽을 거라는 사실을 되새겼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일이에요.

기나긴 시간이 주어지면 우리들은 어떻게 될까? 우리는 점점 더 오랫동안 살아가는 삶을 살고 있다.

불멸을 꿈꾼 옛 제국의 황제처럼 한걸음씩 더 살아가길 바라는 것이 정말 우리들이 원하는 삶일까?

이 책은 아마도, 죽음이 존재하기에 빛나는 우리 삶의 여러가지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사랑, 애틋함, 그리움, 간절함 같은 것들 말이다. 시간의 유한함이 안타깝지만 그럼으로 인해 잠들고 깨어나는 아침이 더 빛나는 게 아닐까?

이 글을 다 읽고도 한 참이 지난 이제야 제목의 의미를 찾아보았다.

제목으로 쓰인 <호>란 원둘레 또는 기타 곡선위의 두 점에 의하여 한정된 부분을 의미한다.

끝이 존재하지 않는 원 안의 사람들은 언젠가는 자신의 삶에 점을 찍고 싶어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좋은 책은 좋은 질문과 고민을 많이 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내게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네 생각은 어때? 지금 이대로 괜찮아?'라고 말이다.

이 책에는 <호> 이외에도 11개의 작품이 더 있다.

하나하나 독특하고 재미있다. 쓴맛을 남기는 작품들이 많은데 그건 어쩌면 사람들이 생각하고 싶어서 덮어버렸지만 꼭 들여다봐야만 하는 것들을 결국에는 끄집어 내게 하는 작가의 영민함 때문인 것 같다.

<심신오행>에는 우리도 꽤 익숙한 오행에 따른 의술이 나온다. 현대의학의 발전에 의해 많은 것을 누리고는 있지만, 한의학 또한 의지하는 나로서는 꽤 반가운 작품이었다. 먼 미래에 우주비행선을 타고 날아다니다가 잘못 정착하게 되면 우리는 어느 시기즈음으로 퇴보하게 될까? 그리고 그 퇴보한 인류는 자신의 지혜를 어떤 방식으로 발전시켜 나갈까? 그런 상상을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이어나간 것 같다. 매우 동양적인 관점으로 말이다. :)

<매듭묶기>에선 입이 비릿했다. 진심으로 감정이 이입되었던 것 같다.

자신의 기술을 노랑머리 톰에게 빼앗긴 채 부족 전체를 빚더미에 앉힌 '소에보'를 보면서 답답하고도 안쓰러웠고, 이 작품에 나오는 구름 위의 마을이 마치 우리나라 같았다. 힘이 없고 기술이 부족했던 민족은 세상이 돌아가는 것에 눈을 감은 몇몇 지도자들에 의해 깎이고 깍여나갔다. 그 구름 위의 마을에 펼쳐질 일들은 뻔했다. 빚을 갚기 위해 자신들의 것을 잃어버리고 또 잊혀질 것이다. 부단히 부지런히 일하지만 그 댓가는 엉뚱한 이들의 주머니를 채울 것이다.

<사랑의 알고리즘>은 기술의 발달이 두렵게 느껴지는 서늘함을 선사했고, 그 후에 배치된 <카르타고의 장미>는 끔찍했다. 자신의 뇌를(내 식대로 표현하자면....) 으깨서복사본을 남긴다는 생각은... 작가의 다른 작품에도 이어지는 한가지 주제를 떠오르게 한다.

'물질'이 우선인가? '정신'이 우선인가?

이 작품을 읽으면서 희안하게도 지난 번에 읽은 조선왕조실록에서 학자들이 설왕설레 해가며 세상의 진리를 논한 성리학의 발전사가 떠올랐다. 그래서.. 성리학의 결말이 무엇이었더라.. ㅎㅎㅎ

<카르타고의 장미>에선 혀끝은 비릿하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결말을 보여주었다.

나는 홍옥을 한입 깨문다. 그 황홀한 신맛이 내 몸을 타고 퍼져 나가도록

<카르타고의 장미> 중에서

나는 아직... 육체가 더 중한가보다. 어쩌면 이제 내 몸이 느끼는 감각 하나하나가 소중하다고 느끼는 나이가 된 것 같다.

카르타고의 장미는 - 싱귤레리티 3부작 중 하나의 작품인데, 이 묶음집에서는 다음 이야기로 바로 건너가지 않고 <만조>를 보여준다. <만조>에선 바다가 되어버린 지구. 모든 것이 물에 잠겨가는 그 때에 인류는 이 땅을 버리고 탈출한다. 왜 다들 고쳐쓸 생각은 하지 않고 버리고 떠나버리는 것일까? 도저히 견딜 수 없을만큼의 지점을 지났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바다에 아내를 잃은 주인공의 아버지는 커져버린 달을 향해 날아간다.

그가 성공하지 못할 거라고.. 나도 주인공도 짐작하는 것 같다. <만조>를 읽으면서 절망감이 차올랐다.

SF를 읽다보면 독특한 전제들 덕분에 언젠가 지금 내가 디디고 서 있는 이 세상이 무너지고 말거라는 불안감을 만드는 작품들이 많은데 <만조>는 그 색채가 어둡고 짙었다. 부모가 된 후로 그런 걱정이 내 안에 겹겹이 쌓였기 떄문에 더 그렇게 느낀 것이리라....

<카르타고의 장미>와 <만조>를 섞어 버무려진 세상이 싱귤레리티 3부작 중 두번째인 <뒤에 남은 사람들>에서 펼쳐졌다. 포화된 땅에서 사람들은 육체를 버린 영생을 선택했다. 남은 사람들은 그들을 '망자'라고 불렀다. 달리 부를 이름이 있을까?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나버린 땅위의 사람들은 <심신오행>에서 등장하는 어느 머나먼 별에 사는 이들처럼 살아간다. 어쩌면 그들보다 더 절망적이다.

개인적으로 <뒤에 남은 사람들>이라는 작품이 전체 작품들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다.

가장 많은 고민과 질문을 내게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애버래스팅사가 북극해의 스발바르제도에 거대한 데이터 선테를 짓는 동안, 세계 각국에서는 그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 살인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위한 소동이 벌어졌다. 업로드된 인간이 한명 생길 때마다 생명을 잃은 육체 한 구가 남기 때문이다. 파괴적 스캔과정을 거친 두뇌가 피투성이 곤죽이 된 채로. 하지만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그 인간에게, 그의 본질에게, 더 잘어울리는 표현이 없어서 굳이 말하자면, 그의 '영혼'에게?

<뒤에 남은 사람들> 중에서

이 작품만 들고 읽었다면, '대체 이게 뭔 일이래?'싶었겠지만, 작가의 작품들이 내 머릿속에서 한켠 한켠 견고한 틀을 쌓아올렸고, 파괴적 스캔을 통한 '영혼' 또는 '본질' 또는 '정신'이 디지털 세계 속에서 마치 <호>에서 처음 등장한 불완전한 '영생'을 드디어 이룩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세상이 온다면 나는 어떤 열차에 올라탈 것인가?

디지털 영생이라니 끝내주는데? 그런데 이미 우리는 영생을 누리는 나를 이 디지털 세상에 마구 흩뿌리며 살고 있지 않은가? 한번 기록되면 삭제하지 않는 한 영원이 남아있는 것들을 말이다. ㅎㅎㅎ

작가는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생각을 드러내 보여준다.

로라 누나는 이메일을 읽으며 엉엉 울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그런식으로 말하지 않았으니까. 우리 진짜 엄마는 삶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이토록 엉망진창인 세상에서도 살아가고자 애쓰는 진솔함이었고,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타인엔게 가까워지고자 하는 갈망이었고, 우리 육체가 겪는 고통과 수난이었다. 엄마는 삶에 끝이 있기 때문이 우리가 인간인 거라고 가르쳐 주었다.

<뒤에 남은 사람들> 중에서

작가 고유의 생각이라고 보여지는 이 문장을 보면서 작가를 느낄 수 있었다.

아침에 창을 열면 느껴지는 공기. 그 안에 닮긴 새로이 시작되는 하루에 대한 기대감. 내 손이 느끼는 직접적인 감들. 그 자체가 바로 생이자 삶이라고.

내가 만진 흙과 내가 공들인 세상의 질감들이 진짜라고 생각하는 사람. 하루를 진한 노동으로 채워 살아가는 어떤 사람이 그려졌다.

그리고 이 책을 통틀어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절이 등장한다.

오로지 이 세상뿐이다. 우리가 살아갈 운명을 타고난 세상, 우리를 붙들어 놓고 우리에게 존재하라고 요구하는 세상은. 컴퓨터가 만들어낸 환상으로 이루어진 상상의 풍경이 아니라.

<뒤에 남은 사람들> 중에서

나의 개인적인 바램과는 상관없이 <뒤에 남은 사람들> 속 사람들은... <카르타고의 장미>에 등장한 인물들의 다음 세대였을 것이라고 추측되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루시가 결국은 '인간이 아닌 상태로는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해'라는 아버지의 절박한 충고를 외면하고 셔틀에 몸을 싣고 말았으니까 말이다. 생명이 살아가는 본래의 방식을 버리고, 쉬지 않고 반복되는, 정신이 아닌 기록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삶을.. 선택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싱귤래리티 3부작의 마지막 편일 것으로 생각되는 이 책의 제목과 같은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 많은 순록 떼가>라는 작품은 기이하다. 앞편의 루시와 같이 고대인으로 불리는 여자의 딸인 '르네'가 등장한다. 고대인이라니..., 나원참. 디지털화된 삶을 선택했지만 3차원의 삶을 고수하는 르네의 엄마. 르네를 데리고 짧지만 긴 여행을 떠난다. 그들에겐 하루지만 남은 이들에겐 몇십년이 지나가버리는 삶.

르네는 그 여행에서 '진짜'세상을 만난다. 3차원의 밋밋한 세상.

막상 '진짜' 마주쳐보니 상상보다 훨씬 멋진 세상을 말이다. 이 작품 속에서 왜 작가가 이 3부작을 그려냈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사는 진짜 '지금'의 모습은 르네와 엄마가 여행하면서 이야기 하는 '오버엔지니어링' 세상인 것이다.

지금은 아무도 엔지니어링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실제 원자로 지은 건물은 비효율적이고, 비유동적이고, 제한적이고,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비한다. 나는 학교에서 엔지니어링이 암흑시대의 기술이라고 배웠다. 사람들이 아직 깨우치기 전의 기술이라고. 그에 비하면 비트와 큐비트는 훨씬 더 문명적이고 상상력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다.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중에서

이 글을 쓰면서 싱귤래리티의 뜻을 검색해봤다. 싱귤래리티란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의 결합이 가져올 미래를 상징하는 용어로 `인공지능이 인간 지능을 넘어서는 기점`을 의미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삶은 설겆이는 식기세척기가 빨래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청소는 로봇청소기가 하고 있다. 우리집은 월패드와 스마트폰이 연결되어 있어서, 어디서나 온도조절이나 조명조절, 방범센서 같은 것들을 조절할 수 있다. 물론 아직도 많은 것들은 몸을 움직여서 직접 해내야 하는 것들이 많지만 수 많은 기계에 둘러싸여 살다보면 내가 기계의 한부분이 된 듯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 집의 수 많은 가전제품과 디지털기기들이 내 팔과 다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싱귤래리티라는 아이디어로 인간자체의 디지털화라는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싱귤래리티 3부작을 읽으면서 대학시절 다니던 대학근처에 무슨 과학관이 있었는데, 아인슈타인의 뇌를 직접 볼 수 있는 전시를 한다고 대형현수막이 걸려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왜 한 사람의 뇌를 꺼내서 보관하며 그걸 돌려가며 보고 있을까? 라는 생각에 그 전시에는 가보지 않았었다.

<모든 맛을 한 그릇에- 군신 관우의 아메리카 정착기>라는 작품을 읽으면서는 미국에서 살고 있는 가깝지 않은 친척들을 떠올렸다. 아마 작가 자신도 낯선 땅에 살아가는 사람이어서인지, 이 작품에선 다른 작품과는 다른 편안한 익숙함이 있었다. 금을 캐던 시절은 아니지만, 작가도 어린시절 이민을 가서 낯선 삶을 살아야 했던 장본인일테니까.

내게도 그런 지인이 있다. 결혼적령기에 한국에 여행을 왔던 미국남자(지금의 이모부)을 만나 미국에 가서 살고 있는 이모는 몇 년에 한 번씩 한국에 오곤 했는데, 긴 비행시간을 차치하고서라도 만나는 순간마다 얼굴에 드리워진 묘한 피곤함을 잊을 수가 없다. 낯선 나라. 낯선 땅에 정착하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단하고 쓸쓸한 일일지... 이 작품을 보며 잠시 이모의 마음을 헤아려볼 수 있었다. 어린 시절엔 별 생각없이 신기하고 즐거운 만남이었지만, 성인이 되어 이모를 만날때마다 '과연 저 사람은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가족을 찾아 떠난 사람'이었고,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모든 맛을 한 그릇에>라는 작품에서 중국남자들은 그들의 축제를 함께 즐기고자 많은 것을 내어준다. 그렇지만 현실의 기록은 참 마음아프게 남아있다. 그들의 결혼을 법으로 금지했고 그들은 그렇게 살다 미국 땅에서 사라져갔다.

책의 머릿말에 저자는 자신은 '도래할 것 같은 미래'를 쓰지 않는다고 했다. 미래예언은 꿈도 꾸지 않는다고... '도래하지 말아야할' 세상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궁금하다.

우리의 내일은, 우리의 진보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바라건데 싱귤래리티 3부작 같은 세상은 제발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작가는 내게 '내가 살아가는 삶의 시간들'에 대해 잠깐의 고찰을 선사해주었다.

내 눈 앞에 있는 것들을 진짜로 실감해가면서 살아가고 싶다고 다짐했다.

좋은 독서였다!


이 글은 황금가지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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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켄 리우 한국판 오리지널 단편집 1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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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한 문장이 있다. ˝오로지 이 세상뿐이다. 우리가 살아갈 운명을 타고난 세상, 우리를 붙들어 놓고 우리에게 존재하라고 요구하는 세상은. 컴퓨터가 만들어낸 환상으로 이루어진 상상의 풍경이 아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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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아무 생각 없이 페달을 밟습니다 - 58일간의 좌충우돌 자전거 미국 횡단기
엘리너 데이비스 지음, 임슬애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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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읽은 책은 엘리너 데이비스의 <오늘도 아무 생각없이 페달을 밟습니다>다.


요즘 주말마다 집근처에서 당일치기 캠핑장에 들고가서 한 컷! :) 


책과 캠핑이 잘 어울린다. 



밝은세상에서 이런책도 나오는구나. 


처음 봤는데, 제목이 흥미로웠다. 나도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이 책 고른 이유 80%는 자전거다!) 


9살에 나만의 자전거가 생긴 후로는 매일을 자전거로 어디든 다녔고, 대학시절엔 구파발에서 임진각까지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과행사가 있어서 매해 참여할만큼 좋아했다. 책 제목을 보는데 그날들이 떠올랐다. 


자전거를 오래탄 (아마도 적어도 8시간 정도?) 날에는 허벅지 근육이 돌처럼 단단해져서 다음날 계단을 오르내리는게 정말 고역이었다. 왜인지 나는 이 책의 저자가 남자일거라고 생각했다. 

놀랍게도 자전거를 타고 미국을 동에서 서로 횡단한 주인공은 여성이었다. 

2,780km를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일이 가능한 일이구나 싶으면서도 그 당사자가 여자라서 더 반가웠다. 


(나도 할 수 있으려나?!) 



책의 도입부에 자전거 여행을 하는 이유를 묻고 답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을 보고 든 생각은 '어떤 일을 실행하는데 완벽한 이유를 가지고 시작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였다.

그녀의 이유들이 어떤 것은 웃음이 나고, 어떤 것은 위로해주고 싶었는데. 

그 중 3번째 이유가 마음에 닿았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고 앞으로도 없으리란 법이 없어서...그런 것 같다. 



과중한 업무로 지쳐가던 20대의 나는 매일의 퇴근길 한남대교를 지나는 버스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한없이 우울해지곤 했었다. 좋지 않은 생각을 아주아주 많이 했었다. 

처음엔 처절하던 그 감정이 익숙해지는 것이 무서웠다. 

그래서 그런 날들을 더 감당하다간 큰 일이 날 것만 같아서 주인공과는 다른 방법이지만 그 길을 벗어났다. 


(참 다행이다!) 



이런 생각들을 떠올리게 해 놓고 다음 페이지엔 무릎을 냉동 콩으로 찜질하는 모습이 나온다 ㅎㅎㅎ 


있었던 생각과 하루를 그려놓은 거겠지만, 완급조절을 잘하는 작가구나 싶었다. 

주인공은 6일이나 달려서 도착한 곳에서 부모님을 다시 만나는데, 그녀가 6일간 달려온 그 길을 자동차는 단 3시간만에 달려간다. 부모님과 만난 장면에서 마음이 뭉클했다. 



홀로 자전거를 타고 긴 길을 떠나는 딸을 걱정하는 엄마와 현실적으로 자전거를 정비해주는 아빠의 모습을 보자 자연스럽게 나의 엄마와 아빠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키우는 나의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하면 "아이를 키우는 게 다 그런거야."라면서도 "네 몸 잘챙겨."라며 걱정을 끝도 없이 늘어놓는 엄마와, 별말없이 그저 듣고만 계시다가 손주들이 놀 수 있게 이런 저런 필요한 것들을 뚝딱뚝딱 만들어주는 아빠가 떠올랐다. 



여행에 대한 소소하고 담담한 것들이 내 안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바람이 옆에서 불어오면 그 방향으로 몸을 기울여야 한다. 바람 때문에 길 한복판이나 길 밖으로 밀려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순풍이 불때는 사위가 완전한 침묵에 휩싸인다. 바람이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게 된다. 엄청나게 빨리 가고 있다는것만 자각할 뿐이고 빨리 가기는 쉽다." 라는 말이 쓰여있었는데 어떤 말이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그 페이지를 보자 문득 삶이란 게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그것도 역풍이) 부는 날들이 있고, 그럴 땐 차라리 그 바람이 나를 데려가는 대로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게 바람에 맞서는 것보다는 낫다(에너지가 덜 든다). 맞서다가는 지치고 또 지치다가 나가 떨어질 수가 있다. 바람떄문에 길 밖으로 밀려나는 자전거 여행처럼 말이다. 



계속 이어진 자전거 타기는 그녀에게 무릎 통증이라는 빌런을 마주하게 한다. 


건강때문에 무언가를 멈춰야 할때 우리는 돌봐야할 자신을 비난하고 나무란다. 그녀는 다행히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 위기를 극복했다. 자전거 가게 주인이 머물곳을 소개해주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절망에 빠져있을 때 주변의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주는 것만큼 고마운 일이 또 있을까? 그래서 나 자신만 보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여 살고 싶다. 우리가 서로에게 손을 내밀지 않으면 홀로 살아갈 수 있을까? 


남은 날들의 여행 일정을 짜다가 패닉에 빠진 그녀의 모습 아래 작게 그려진 그림들이 귀엽고 마음에 들었다. 


그냥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80km 가야지'라고 마음 먹고는 페달을 밟고, 자고 또 일어나는 일들의 반복을 그린 장면. 벗어나고 싶지만 잘 안되는, 특별했던 여행이 어느새 평범한 일상이 된듯한 느낌. 


그저 일어나서 갈 뿐이다. 



요즘 우리가 버텨내는 일상들이 전부 그런 날들이 아닐까?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계산하기도 어려운 날. 그저 일어나서 각자에게 주어진 하루를 묵묵히 살아내는 삶. 

처음 이런 일상이 찾아왔을 때 나는 패닉에 빠졌다. 

지켜야 할 것들이 있으니 더 두려웠고, 어려웠고, 지쳐갔다. 

그럴 수록 일어나서 아이들을 먹이고 (나도 먹고),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 공부를 봐주고, 잠이 들고, 또 눈을 뜨는 단순한 생활들이 안정감과 위로를 줬다. 그녀는 자고 일어나 페달을 밟아 가고자 하는 곳까지 이어갔던 하루하루가 어떤 선물이 되었을까? 알것 같기도 하다. 



그녀는 자전거를 타고 애리조나주 투손에 있는 부모님의 집에서 조지아주 애선스에 있는 본인의 집까지 여행을 떠난다. 여정의 마지막에 남편이 데리러 오길 기다리며 고른 숙소로 특별한 집을 만난다.

하필이면 그 집에서 노부부의 사랑과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는 남편을 더욱 애틋하게 기다릴 수 있지 않았을까? 



금새 후루룩 읽은 첫번째엔 그저 재미있는 만화책이라는 느낌이었다. 

'재밌네. 그런데 좀 아쉬운 걸?' 싶었다. 간간이 마음을 두드린 부분들을 다시 느껴보려고 다시 천천히 그녀의 하루하루를 함께 카운트 해가며 책장을 넘기자, 그녀의 연필스케치에 색감이 덧입혀졌다.

그녀의 여행길에 잠시 지나간 매한마리, 무릎찜질하는 그녀를 맴돌던 비둘기들, 마음씨 넉넉한 국경순찰대, 지평선이 이어진 어느 곳, 그녀를 사로잡아 책속에 남겨진 꽃들. 그리고 미시시피강.

마치 소리 없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장면들이 책 속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자동차가 아닌 자전거로 길을 떠나준 덕에 그리고 그녀의 무릎이 수시로 아팠던 덕에(이제는 잘 치료했기를) 그녀는 58일간 재밌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내게 해주었다. 



몸이 힘겨운 여행 후엔 마음이 후련하고 신선해지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녀가 그린 이 마지막 장만큼. 그녀의 모든 것이 단단해졌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녀가 딛고 일어선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녀 덕에 나도 짧고 선명한 여행을 떠나갔다 돌아와 어딘가 조금 건강해진 기분이다. 


그리고.........

나도 다시 자전거가 타고 싶어졌다. 




이 포스팅은 밝은세상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고마워요 

#밝은세상 #오늘도아무생각없이페달을밟습니다 

#힐링되는책 #오늘의책추천 #자전거타는이야기 

#엘리너데이비스 #재밌는그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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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는 법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서 - 3,500km 미국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걷다
이하늘 지음 / 푸른향기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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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자갈과 흙, 그리고 연식이 제각각인 낙엽과 풀이 뒤섞인 길을 걷는 것 같다.

그냥 여행에세이와는 조금 다르다.

글을 쓰는 전문가의 유려한 글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하던 문장들이 눈 앞에서 덜컥 걸릴 때면 '어. 뭐지?'하며 멈칫했다.

지금껏 읽어본 여행에세이들은 좀 더 감성적이었다고 하면, 이 책의 글은 조금은 거칠고 투박하다.

다 읽고나니, 아마도 이 글의 여정이 그러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AT(애팔래치안 트레일)를 걷는 동안 저자가

그 길에 대해,

자신과 자신의 동반자에 대해,

그리고 길 위에서 떠오른 여러가지 생각들을 타임라인에 따라 한알 한알 정리해 길 위에 내려놓은 조약돌들 같다.

신혼일기같기도 하고, 걷기일기 같기도 한 이 책은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가는 것 같은 느낌이라서

책을 읽는 동안의 나도 산맥을 따라 산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게 된다.

산티아고의 순례길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었어도 미국에 PCT니 AT니 하는 하이킹 트레일이 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

동부와 서부의 산들을 이어 걸을 수 있는 길이 그렇게 유명하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미국 동부에 살고 있는 엉클빌과 내 사촌들이 왜 그렇게 한국에 오면 관광지에 가지 않고 큰이모네 동네 뒷산을 헤메고 다니는 건지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 건 이 책을 읽으며 얻게된 덤이다.)

내가 이 책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페이지다.

나는 험준한 산보다는 이렇게 나무들이 나를 안아주는 것처럼 따뜻한 느낌이 드는 산이 좋다.

그러고보니 중간중간 이렇게 눈이 쉴 수 있는 페이지가 있어서 참 좋았다.

트레일매직, 책에서 종종 등장하는 이 트레일매직이라는 게 참 재밌었다.

과일 몇개, 물, 얼음바스켓에 담긴 음료수, 응급약품 같은 것들을 길을 걷는 사람들을 위해 내어놓는 마음이 따스하고 예쁘게 느껴졌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채 두다리에만 의존한채 걷는 그 길 위에서 만나는 상냥한 마음을 '트레일 엔젤'이라고 부르는 것도 너무나 예쁘지 아니한가!!

길 위에서 만난 예상하지 못한 친절이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큰 행복이 된다는 걸.... 그녀는 투박한 글 위에서 터져나오는 행복감으로 생생하게 알려줬다.

장거리 트레일을 하면서 '소소한 일상의 행복'에 대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장거리하이킹을 한다 해서 나의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하지만 내가 이 길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소소한 행복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하곤 했던 따뜻한 샤워가 이 길 위에서는 아주 소중하다.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TV를 보거나 인테닛을 하는 것이 장거리하이킹에서는 특별한 일이 된다. 한국에서는 밤늦은 시간에도 전화 한 통이면 배달시켜 먹을 수 있는 치킨을 하이킹 내내 떠올리다가 마을에 도착해서 먹었을때의 기분을 생각해보라. .... 이 작은 것들이 이곳에서는 생각하지 못할 만큼 큰 행복으로 다가온다.

행복해지는 법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서,<행복해지는 법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서> 62p

나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다.

아들 둘의 엄마에겐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모습은 매일의 일상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녀의 산행처럼,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텐트에서 발 뻗고 눕는 그녀의 고단함과 비슷하게 양치만 겨우 한채로 아이들 틈에 끼어 잠드는 게 엄마들의 일상이다.

그런 나의 일상에, 큰 아이가 써오는 '엄마. 아깐 미안했어요. 고맙고 사랑해요.'라고 적힌 노란 편지지가 내게는 길 위에서 만난 트레일매직 같은 순간이다. 슬픈 노래를 들으며 그날 하루의 기분때문에 눈물 흘리는 나에게 두 아이가 심각하고 안쓰러운 눈을 하고 다가와서는 눈물을 닦아주고 안아주는 그 순간이 그러하다. 새삼, 내가 가진 행복을 다시 새길 수 있게 해준 그녀의 트레일매직 이야기가 고맙다.

그런 와중에도 행복이라는 건 상대적이다. 두 사람이 같은 길을 걷지만 행복감으로 차오르고 있는 그녀와 세번째 트레일을 완성해가는 그녀의 동행은 그 길에 대한 감흥이 다르니까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길을 걷다보니 배우는 것이 또 생겼다. 행복한 삶이 꼭 100% 만족스러운 환경에서 비롯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조건이 만족감을 주는 삶이라면 바랄 것이 없겠지만, 행복이라는 방향성을 추구하고 있다면 때로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어려움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이 길을 계속 가야할까?, <행복해지는 법을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서> 90p

살다보면 누구나 이런 시간을 맞이하는 것 같다. 그것도 예상보다 빈번하게.

좋았으면 하는 날조차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 또한 흘러가는 우리 삶의 시간 중 하나다.

그녀는 길 위에서 정말 좋은 인생의 지혜를 얻은 것 같다. 몇 일 전 우리 부부에겐 좋은 날이 있었다.

나는 팡팡 뛰며 축하하고 싶은 순간이었는데, 남편은 자기가 처한 상황상 그럴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함께 기뻐하지 못하는 그 순간 나는 조금 서운했다. 다음 날 함께 축하하고 싶었지만 칭얼대는 아이들 덕에 완전 망치고야 말았다. 그런데 그 조차도 우리 넷의 추억 한 장이 된다고 생각하면 그저 웃음이 나오는 날이 된다. 인생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신혼여행 중에 맞이한 결혼기념일, 특별한 이벤트 없이 그저 다시 걷는 그 날의 모습이 참 한결같은 이 두부부의 진짜 모습 같아서 귀여웠다.

그리고 결혼에 대한 그들의 진지한 고민이 마치 몇년은 살아본 부부의 그것 같아서 신기했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에 지쳐 '결혼 이후의 삶'에 대해 충분한 논의 없이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그의 이런 점이 좋았다. 결혼은 결혼식 단 하루가 아니라, 부부가 되어 살아가는 결혼생활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해피 애니버서리 - 결혼에 대한 작은 생각, <행복해지는 법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서> 112p

내게도 '나만의 특별한 결혼식'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우리 부부만의 의미가 있으면 좋겠고, 흔한 결혼식의 모습과는 달라으면 좋겠고, 그러면서도 축하는 진심으로 받았으면 좋겠고... 그런데 결혼식이라는 이벤트를 준비하다보니 지금의 결혼식 형식이 잡히게 된 데에는 한국사회 특유의 문화와 살아가는 모습이 반영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식엔 특별한 사람만 초대하고 싶지만 딱 잘라 너까지는 친한 사람. 너부터는 좀 덜 친한 사람이라고 하는 법을 우리는 못 배웠다.

그래서 중고교 동창부터 직장동료까지 부르다 보면 신랑신부의 지인만해도 100명을 훌쩍 넘긴다.

결혼은 너와 나의 만남이라기 보다는 여자의 집안과 남자의 집안이 유대를 이룬다고 생각하는 가족주의 덕분에... 숙부, 숙모, 이모, 고모, 사촌에 조카까지 참석을 권하게 되니 양가의 8촌이내 가족만 모여도 그 쪽도 몇 십명은 가볍게 넘긴다.

아마도 예전의 마을잔치의 모습이었을 결혼식은 요즘엔 이래저래 200명에 가까운 사람을 모아놓고 할 수 있는 파티가 됐다. 밤에는 술 먹고 참 잘 노는 한국 사람들이 벌건 대낮에 한다리만 건너면 서로 다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서는 못 논다. 그러니 그저 묵묵히 밥을 먹고 교장 선생님의 훈화말씀같은 주례사를 듣고 앉아 있는게 편한 거다.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아이로 자란 우리 부부는 그 '보통','평범'의 테두리를 벗어나질 못했다.

그래도 그 날을 기억하면 행복하다. 축하해주러 온 사람들의 얼굴이, 남편의 이름을 세번이나 잘못 부른 주례선생님의 당황스러운 눈빛이, 축가를 불러주던 친구들의 목소리가, 눈물을 글썽이던 엄마가, 긴장한 채 나와 버진로드를 입장하던 아빠의 손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요즘엔 다양한 방식의 결혼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사회가 건강해지는 길이라고 믿는다.

현실적인 결혼을 한 우리 부부는 살면서 부딪히고 또 부딪히면서 결혼생활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책 속의 두 사람이 매일같이 걸으며 부딪히면서 함께인 삶을 만들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뷰는 산행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인데,

그녀의 글을 따라 산을 오르고 중턱에 올라 함께 풍경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라 그런지. 숨이 차오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길을 걸으며 두 사람은 많은 대화를 나누었나보다. 단 둘이 길을 걸어가는 것의 가장 좋은 점이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점 아닐까.

사실 결혼을 하고도 부부가 대화를 나누는 일이 그렇게 쉽지는 않다. 특히나 우리 부부처럼 허니문 아기가 생긴 경우엔 신혼생활이라고 할만한 시간이 아이를 맞이할 준비와 고민들로 채워지기 때문에 두사람의 이야기보다는 '아이'에 대한 대화를 주로 하게 된다. 그건 그것대로 좋지만, 부부만의 대화도 꼭 필요한 것 같다. 서로를 모른채로 함께 사는 것 만큼 헛헛한 일은 없는 것 같다.


저자는 트레일을 하는 와중에 평창 동계 패럴림픽의 성화봉송주자로 뛰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신혼여행 도중에 생각했을 여행루트를 바꾸면서까지 성화봉송 요청을 수락한걸 보면 그녀가 진정한 경험주의자ㄴ탰라는 걸 알 수 있다. 갈 수록 그녀에게 정이간 건 나와 같은 경험주의자라서였나보다. (나도 '엄마'라는 길을 온전히 전부 직접 경험하고 싶어서 직장을 그만두고 엄마라는 길을 선택했다.ㅎㅎㅎ)

장거리트레일에는 우리가 길을 잃지 않고 갈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표지판들이 있다. AT를 걸으면서 한 가지 재미난 것은 길의 표식과 관련된 것이다. PCT나 CDT는 고유의 트레일 마크를 이용해서 해왔던 반면, 이곳은 나무에 별도의 표시를 해두었다. '화이트 블레이즈'라고 불리는 흰색 표시는 공식적인 AT루트, 하늘색은 우회로, 식수, 쉘터 등으로 가는 공식 트레일 외의 사이드트레일을 표현한다. ....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공식트레일을 나타내는 흰색과 사이드 트레일인 하늘색 모두를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인생은 선택의 연속, <행복해지는 법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서> 174p

같은 생각의 결을 발견해서 너무 기뻤다. 너와 내가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고, 다른 길을 갈 수 있음을 서로가 인정하는 것.

함께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결혼'식' 대신 산위에서의 언약식을 결혼'일'로 정한 사람.

신혼여행 대신 세계여행을 떠난 사람.

보통의 신혼부부가 선택하는 방법이 아닌, 조금은 과감하고 색다른 도전을 한 그녀가 낯설지만 낯익었다.

나의 지인들 중에도 '다수'가 선택하는 방법이 아닌 자신들만의 결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서인가보다.

10년의 결혼생활을 그만두고 멋지게 솔로의 삶을 사는 사람.

아이를 가지려다 이뤄지지 않아서 여행을 즐기며 사는 부부.

아이와 함께 주말마다 캠핑을 하러다니는 가족.

몇 년간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1년간 세계여행을 떠난 부부.

우리 부부처럼 아이를 하나 또는 둘 낳고 기르는 가족도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각자 사는 법과 생각하는 가치관이 제각각이다.

그리고 서로가 각자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며 그 다름에 대해 타박하거나 훈계를 하려는 사람도 없다.

이들 부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들을 따뜻하게 인정해주는 사람들도 많아졌으면 좋겠고.

서로 모자라다고 타박하지 말고, '너는 그렇구나.'하고 인정하며 살아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읽은 이 책은 그냥 여행에세이가 아니라, 행복과 다양성에 대한 외침을 닮은 책인가 보다.


본 포스팅은 푸른향기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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