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온 너에게 비룡소의 그림동화 283
소피 블랙올 지음, 정회성 옮김 / 비룡소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룡소는 아이들 책으로 유명한 출판사죠.

이 곳에서 나오는 그림동화 시리즈의 책들은 권수가 어마어마해서 집에 들이면 책 육아하는 엄마들의 마음 곳간 두둑해지죠. (저는 그 권수에 차마 엄두를 못내고 한 권씩 아이가 좋아하는 것만 사서 읽히고 있어요)

계속해서 신간이 나온다는 점도 특이하고도 기특한 일이죠. 이 책이 283권이니 말해 뭐하나요?!

이번에 칼데콧에서 2번이나 수상한 동화책 작가인 소피 블랙올| Sophie Blackal 이 쓴

<지구에 온 너에게>라는 신간이 나왔대서 손 들었어요!

책이 도착해서 바깥편이 전달해주는데 책이 묵직해요.

와. 뭐지?

책 커버에 별빛이 반짝이네요. 우주 여행을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책이에요. 예쁘기도 해라. :) 개인적으로 작고 반짝이는 거 좋아합니다.

(바깥편, 보고 있나?)

이 두께가 보이시나요?

종이 한 장 한 장에서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책이에요.

가끔 아이들 동화책 보다보면 종이에서 애정없음이 느껴지는 책들이 있어요.

"이건... 읽고 버려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경우엔 스토리가 좋아도 그 책에 대한 출판사의 애정이 얼마만큼이었는지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종이의 질은 곧 비용이었을테니까요. 이 책에선 애정이 듬뿍 느껴지네요. 칭찬해요. 비룡소!


커버를 벗겨내니 보이는 괴생명체들.

이 책을 선물하고 싶은 생명체들인가 봐요. ㅎㅎㅎ 우리 아이들에게 이 외계인들 이름을 붙여보자고 해야겠어요.

잠깐 거실에서 놀고 있는 2호를 불러서 이름짓기 놀이를 해봤어요.

우리집 2호가 지은 외계인들 이름입니다. 평소에 BEN10이라는 만화를 보면서 외계인들을 많이 본 아이들이거든요. 알려달라고 하니 1호가 줄줄 외우네요.

업척, 빅칠, 스팅크플라이, 업그레이드 같은 이름이 나올까 싶었는데 귀여운 이름들을 지어줬어요 ㅎㅎㅎ

왼쪽부터 문어너, 공추, 민트초코외계인, 오징어외계인, 애벌레, 뾰족코로나!

겉표지를 넘기자!

언덕 위의 집에서 뭔가 날아 오르네요~!

처음엔 ' 저게 뭘까?' 싶었는데 그 다음 한 장을 넘기니까.

처음 표지에 나왔던 긴 띠가 나왔어요.

예쁘다~! 긴 파피루스 띠가 하늘을 나풀거리는 것 같은 그림이네요.

그런 걸 의도하고 그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이야기가 시작되었는데요. 주인공 아이가 하는 이야기가 편지처럼 띠 위에 적혀있어요.

그러니까 집에서 출발하는 편지였네요!

지구에 대한 소개를 해주는 책일까요?


내 친구 과학공룡 시리즈 중에 <삐로롱 왕자의 친구 찾기>라는 책을 우리집 1호가 무척 좋아해서 같이 몇번이나 읽은 적이 있어요. 이 장면을 보니 그 책이 떠오르더라구요. 삐로링 왕자는 지구별에 와서 여기 저기 탐험을 하고 돌아다녔는데, 이 책은 그런 외계에서 온 손님을 위한 안내서잖아요.

'비슷한 내용이려나?' 싶었어요.

이 장면이 재밌어요.

아이들에게 세상의 모습을 옆면에서 보이는 모습으로 그림책에서 많이 보여주는데.

항공촬영을 한 듯한 장면을 보는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싶었어요.

우리가 사는 곳의 모습이라는 걸 아이들은 직관적으로 이해할까요?

무엇보다 그림이 예뻤네요.

자그마한 마을에 표현된 초록 풀밭들이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농촌의 논밭인 것 같기도 해서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했네요. :)

사람들이 사는 여러가지 형태의 집을 보여주는 이 장면도 예뻤어요.

아이들이랑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 이야기도 해보고 그림도 그려볼 수 있을 것 같은 장면이에요.

세계 곳곳의 집의 모습들이 담겨 있어서 좋은 거 같아요.

동양의 기와로 된 집이 눈에 쏘옥 들어와서 2호랑 민속촌에 갔던 기억을 짚어보기도 했어요.

외계에 있는 친구에게 지구를 소개하는 책 답게 지구촌의 여러가지 모습을 소개해주고 있어요.

한 두 가지가 아니에요.

가족의 형태와 세상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도,

우리가 입는 옷과 계절의 모습도,

우리가 타고 다니는 여러 수단들과,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도 소개해주고 있어요.

그런데 한 장면 한 장면이 정말 작가의 마음이 담긴 것 같았어요.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 말이죠.

성별, 나이, 피부색이 달라도 모두 같은 의미로 담고 싶어하는 것 같이 느껴졌어요.

그리고 장면들 속에서 첫 장면에 등장한 '빨간 모자를 쓴 아이'를 찾아내는 재미도 있어요.

어른들의 여러가지 직업에 따른 모습도, 쉬고 노는 모습도 어느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모습으로 소개하고 있어요.

함께 놀 수도, 혼자 놀 수도 있고, 텔레비전을 볼 수도 있고, 책을 볼 수도 있는 여러 모습의 활동들을 보니 이번 주말에 뭐하고 놀지... 골라보는 것도 좋겠네요.

(아.. 벌써 내일이 주말 ;ㅁ;)

그리고 이 장면이 저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는데요.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바다 속에
이렇게나 많은 바다 생물들이 복닥복닥 지내고 있는 장면 말이에요.

신기한 물고기가 많아서 한참이나 들여다 보았어요.

우리 지구도 그렇잖아요.

멀리서 보면 그저 초록-파랑색의 예쁜 구슬같아 보이지만 가까이서 들여다 보면 70억이나 되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이 책의 주제와도 정말 잘 어울리는 장면 같아요.

그리고 동물들과 새들에 대한 장면도 있죠.

여러 새들을 합쳐 커다란 새가 한마리 나타나는 마법같은 장면!

사람만 소개하는 게 아니라 지구에 살고 있는 생물들도 소개하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느껴져요.

그런데 뒤로 가면.. '아, 주인공이 소개하고 싶은 건 생물 만이 아니구나?' 깨닫게 된답니다.

우리가 사는 이 곳의 문화와 문명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싶었구나!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은 정말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이 아니라 지구라는 별에 대한 보물상자 같다는 생각이 이 즈음 들었거든요.

그렇다고 좋은 것만 소개하진 않아요. 꺼내어 이야기 하기 부끄러운 좋지 않은 면들도 소개하고 있어요.

아픈 사람들과,

서로 싸우는 모습까지도 숨김없이 이야기 해줘요.

우리가 태어나고 자라는 시간들에 대해서도,

우리 별의 이야기가 전달되고 이어지는 모습에 대해서는 이야기 해주고 있죠. 그리고 이 아름다운 장면으로 끝이나요.

이 장면에 실린 글이 마음에 찡 와 닿았어요.

아이들의 마음에 콕 저장이 될만한 문장이 아닐까 싶어요.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태어나기 전에 어디 있었는지,

또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몰라.

하지만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지구라는 아름다운 행성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어.


다 읽고 책장을 덮기 전 왠 긴 글이 있길래 뭔가 했어요.

그런데 작가가 쓴... 긴긴 편지가 있었어요.

이 글을 읽자 이 책이 더 소중해 졌어요.

그래서 이 책은 아이들 책장이 아닌 제 책장에 소중하게 꽂아두려구요.

아이들과 자주 꺼내어 보면서 말이죠.

엄마가 내려놓은 책을 잽싸게 들고가 읽어본 1호에게 이 책을 읽은 소감을 물었더니,

"지구에 대해 아주 자세히 알 수 있는 책이었어요."라고 이야기 하더군요.

정말 맞는 말이에요.

지구에 대해 정말 자세히 알 수 있었어요.

내가 알고는 있었지만 미처 놓쳤을 것들까지 하나하나 바로 지금 함께 이 지구를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 말이에요. 참 좋은 책이라. 놓치고 싶지 않네요! :)


이 글은 비룡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저희 솔직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흔네 개의 돌 - 사진이 있는 수필
이대성 지음 / 바른북스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을과 겨울 사이.

집 안으로 안으로 들이고 들이는 계절.

밖을 향해 열렸던 눈과 마음을 조금씩 닫아가는 시간이 왔다.

늘 바라보던 창가에는 잎사귀를 떨구고 서 있는 나무들과 어느새 슬금슬금 하늘을 채운 미세먼지가 가득해서

이르게 지는 햇살처럼 빠르게 거실 블라인드를 내리고 책을 집어 들게 된다.

책을 읽기에 좋은 계절. 겨울이 오고 있다.

이런 계절에는 수필이 읽기에 딱 좋다. (개인적인 취향이다)

이대성 작가님의 인생을 담은 수필집이 나왔다기에 손을 들었다.


어떤 사진과 어떤 글이 들었을지 궁금!

출판사 이름이 '바른북스'여서인지 몰라도 어딘가 모르게 책이 반듯해 보인다. ㅎㅎㅎ

그리고 이 책 안에 들어 있는 마흔 네 개의 돌이라고 표현된 글들이 단단하고 바른 마음을 담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목차가 담백하다.

책을 여는 마음이 가벼웠던 어느 늦은 가을의 주말이었다.

연날리기

첫 글이 '연날리기'여서인지... 아빠 생각이 났다.

첫째의 겨울방학에 아이들과 함께 놀러간 아빠의 은퇴후 장만한 시골집에서 손주들을 위해 연을 만드시던 아빠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의 내게 그랬던 것처럼 아빠는 정말이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연을 만들어 주셨었다.

어릴때 공원 관사에서 잠시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추운 겨울이면 아빠와 공원을 뛰어다니며 연을 날리곤 했다. 이 글을 보니 그 시절과 지난 겨울의 추억이 영화처럼 머릿 속을 맴돌았다.

게다가 이 부분은 아빠가 어린 시절의 나와 동생을 보며 하시던 이야기와 똑같아서 웃음이 났다.


겨울이면 친구들과 어울려 연날리기, 팽이치기, 썰매 타기, 자치기 등 다양한 놀이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 누가 멀리 띄우는지를 시합하며 정원 초하루부터 대보름 사이에 주로 즐겼었다.


첫 글부터 어딘지 친근한 느낌이 퐁퐁 솟아올랐다. ㅎㅎㅎ

그리고 몇장 더 책장을 넘기는데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 떡 하니 실려 있어서 깜짝 놀랐다.

응? 여긴 월류봉?

영동군 황간면 원촌리에서 시작되는 월류봉 둘레길은 완만한 석천 계곡의 물길을 따라 산허리로 이어진다. 굽이진 길은 논두렁을 지나고 다리를 건너고 산허리를 돌아간다.

둘레길을 걸으며 <마흔 네 개의 돌> 중에서 p.25


부모님이 지내시는 곳 지명이 나와서 반갑기도 했지만, 두분이 산책하러 자주 다니시는 월류봉 근처의 산책길을 작가가 걸었다고 생각하니 친근한 느낌은 더더욱 진해졌다.

어린 시절 우리집 거실에 왁자지껄 모여 주말이나 저녁시간을 즐기시던 아빠와 친구분들이 떠올랐다.

그 분들 중의 한 사람인 듯이 어느 새 작가는 책 속에서 걸어나와 책을 읽는 나의 옆 자리 소파에 앉아 내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건네 주는 이웃집 삼촌 또는 아저씨가 되어 있었다.

등단한 작가분이라 그런지 글이 잔잔한 듯 하면서도 깔끔하다.


젓가락 데이

아이디어가 신박해서 좋았다. 빼빼로를 좋아해서 빼빼로 데이에 바깥편이 사주는 빼빼로 먹는 걸 즐기는 편이었지만, 그 의미에 대해 늘 생각은 하는 편이어서 가래떡 데이로 바꾸자는 이야기에 가래떡을 먹어볼까 생각도 해봤다.

(알고보니 귀가 얇은 편인가? ㅋㅋㅋㅋ)

그런데 11월 11일이라는 날을 젓가락 데이로 삼자니... 이렇게 신박할 수가!

이런 생각은 해본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데 정말 좋은 생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젓가락 쓰는 3국 중에 우리나라가 제일 똑똑한 것만 같은 느낌을 살려 이런 날을 지정해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후원하는 업계가 없으려나? 제철업계에서 좀 밀어보면 되려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여행을 못다니고 있는 시절에 이런 글을 보니 괜히 반갑고 마음이 들뜨고 그랬다.

동해고속도로를 여행하다 보면 시원하게 탁 트인 바다가 있고,

영동고속도로나 당진~영덕선 고속도로를 달리면 수려한 산세가 아름다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요즘은 고속도로가 사방으로 뚫려 지역간 이동 거리가 짧아져 전국 어디를 가든지 한나절이면 다 갈 수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마흔 네 개의 돌> 중에서 p.145

어딘가 산이든 바다든 옆에 끼고 달리는 도로가 눈 앞에 펼쳐지는 기분이 잠시 들었다.

한나절이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상상을 해보니 눈을 감은 검은 색 도화지 위에 강릉의 어느 해변이, 경주의 야경이 멋진 첨성대 앞 공원이, 지리산의 어느 사찰 가는 길이, 부산의 인적 드문 해변이, 남해의 구불거리는 해안도로가 펼쳐지는 것 같았다. (상상여행이지만 잠시 행복했다!)

물론 글의 내용 그 자체는 고속도로 휴게소 내부의 비위생적 상태에 대한 글이었지만....

이 한 두 줄에 잠시 힐링 한 것으로 만족. 생각의 흐름이야 작가의 것인만큼 독자가 어찌할 수는 없는 거니까.

자판 두드리는 소리

이 글은 참. 사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팔순의 어머니가 글을 쓰는 열정을 바라보는 환갑의 아들의 시선이지만 내가 그 어머니라면 어떨까.... 싶었다.

팔순의 나이여도 쓰고 싶은 글이 떠오르고 컴퓨터를 다룰 줄 알아서 힘들더라도 뭔가 노력해 볼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게 얼마나 즐거울까? 회갑에 찾은 즐거움을 25년이나 이어갈 수 있다는 게 그 분에겐 정말이지 다행이었겠다. 누군가의 인생을 그것도 나의 곱절이나 되는 시간을 살아온 분의 인생을 짐작할 수는 없겠지만 어쩐지 하루의 잠깐씩은 진심으로 진지하고도 즐거운 시간으로 보내고 계실 것만 같다.

이 문장에 어머니를 보며 느낀 인생의 진리를 작가는 문장으로 거두어 적어두었다.

그 문장이 무겁고도 뜨거워서 참 좋았다.

어떤 새도 날개를 펴지 않고는 날 수 없듯이 사람도 자기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는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없으며 행복해질 수 없다고 한다. 내가 나를 묶어 놓고 있으면 영영 행복해질 수 없고, 날개가 있어도 창공으로 훨훨 오를 수 없다.

자판 두드리는 소리 <마흔 네 개의 돌> 중에서 p. 155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사는 아이들의 모습이... 비단 그 아이들의 모습 그 자체로만 멈추진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속이 상했다. 그래서 이 독립영화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쓰레기-환경오염'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어린 시절부터 무시무시한 경고를 들어왔으니....

몇 십 년은 족히 넘은 이슈인데도 아직 뾰족한 해답은 누구도 내놓지 않았다.

누구 하나가 내놓을 답도 아닐 것이고, 분리수거를 열심히 하거나 플라스틱용기가 아닌 다른 방법의 소비를 할 수 있는 길을 찾는 내가 하는 작은 노력들이 어마어마한 쓰레기 생산의 속도에 과연 비할바가 있을까 싶다.

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급적 쓰고 있는 물건들을 오래쓰고자 노력하고, 이미 생산된 쓰레기를 소비해야만 하는 우리로서는 사라지지 않는 쓰레기로 포장을 만들어내는 기업에게 조금 다른 방법을 찾아달라고 한 번 더 호소할 수 있는 용기와 애씀은 우리가 갖춰볼 수 있지 않을까?

작가가 곱게 하나하나 고르고 고른 글 들 중에 이런 글이 있어서 고마웠다.

굳이 좋은 이야기만 하지도, 어려운 이야기만 늘어놓지도 않았지만 지금 우리가 발 붙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느껴졌다.

그러고보니 그런 글들이었다.

하나씩 고르고 골랐을 글들이었겠구나 싶었다.

자신과 자신의 삶을 드러낼 조약돌들을 하나씩 찬찬히 내려놓았을 것이다.

연날리기, 위대한 손길, 둘레길을 걸으며, 나의 보약(커피 ㅋㅋ), 혼자라는 것, 슬프고도 아픈 과거, 새벽을 깨우는 아침 풍경, 담배, 아멜리아 카렌, 사랑하는 만큼, 테러, 풍금이 있던 자리, 결혼 청첩장, 제주에 가던 날, 나의 인사, 젓가락 데이, 입대하던 날, 연습, T여인, 폐지줍는 할머니, 내 인생의 블랙박스, 토끼와 물고기, 냄새 그리고 향기, 요리하는 남자, 탈북 청소년, 1,000 감사 노트,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자판 두드리는 소리, 선거, 가련한 말티즈, 신체발부 수지부모, 코로나19를 겪으며, 누가 뽀롱이를 죽였나, 두 이야기, 케이팝, 삶의 날씨, 어느 고양이의 죽음, 헬조선, 마지막 여행, 아빠 용돈, 방천에서, 플라스틱 차이나, 염원, 어느 가을날의 일기

목차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니 어떤 남자가 떠오른다. 훈훈하고 마음 따뜻한 남자가.

삶의 철학을 닮는 게 수필이라던 인트로의 그 한문장처럼 아마도 작가는 이 글들에 자신의 파편들을 담아뒀을 거니까. 어느 친한 먼 친척 아저씨 같은 반가움이 생겨서.. 알고 지내는 사람이 하나 더 생긴 거 같아 좋다.

덤덤하니 따뜻한 글을 이 겨울의 초입에 선물 받았다.


※ 이 글은 바른북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
오강남.성소은 지음, 최진영 그림 / 판미동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처음에 제목이 심상치 않아서 마음에 들었다. 뭔가 묘하게 무슨 책인지 종류를 쉽게 가늠할 수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으로 제목만으로 책을 고르는 편이다.

나는 매 순간 완성되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띠지에 적힌 저 글귀가 마음에 꽂혀서 꼭 읽고 싶었다고나 할까..!? 이 책을 읽고나면, 나를 완성하기 위한 방법론을 배울 수 있는 것인가?

(게다가 책을 읽겠다고 마음 먹을 당시 이 즈음의 일정은 매우 한가했고, 마감일이 하필 또 생일이어서 운명같은 느낌이었다! 이번 주가 이토록 끊임없이 바쁠 줄은 꿈에도 몰랐다 ;ㅁ;)

책을 읽는데... 초등시절 읽어보던 구약성서처럼 어려웠다. 요즘 성서는 읽기 편하게 되어있는데... 개정을 몇 번 거치기 전의 성서는 꼭 무슨 갓 번역한 외국서적처럼(그것도 시집!)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한국어인데 한국어가 아닌 느낌. (그 당시의 내가 어려서 더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겠다고 괜히 손을 들었나... 후회도 살짝 밀려왔다.

어느 책이든 우직하게 읽어나가는 나로서는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좀처럼 책장이 쉬이 넘어가질 않았다.

이런... 낭패가 있나!

검은건 글이고, 하얀건 종이인 건 알겠고. 저 글씨가 어떤 발음이고 어떻게 이어지는 문장인줄은 알겠는데... 눈과 머리는 알겠으나 가슴으로 꽂히지를 않았다.

그래서 잠시 책을 내려두었는데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다시 주말일정이 시작되기 전 마음을 가라앉히고 책을 잡았다.

그런데, 책을 처음 읽을때 보지 못했던 한장의 글 귀가 보였다.

나답게 살고자. 애쓴다. 라.... 나에게 '너는 소신있는 사람이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지금에서야 이 책은 아마도 출판사 편집자가 독자를 유혹하기 위해 넣어둔 한 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저 마음씨 고와보이는 문장은 이 책의 정체성을 참 잘 드러낸다.

이 책이 어떤책인지 궁금하다면.. 지은이들이 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소개하는 글에서 살짝 맛을 볼 수 있다. 잠깐 읽어보면 알겠지만. 동서양을 막론한 '나'를 향한 탐구서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이 왜...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졌는지 다른 사람들도 단박에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존재론, 서양철학사(소크라테스, 플라톤, 칸트까지...!), 동양철학(아마 윤리시간에나 마지막으로 들었었을 법한!), 동학사상, 씨알사상(어디선가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기억이 잘;;;)을 망라하려는 작가들의 큰 계획이 엿보인다.

'문학, 예술, 심리, 과학.....을 아우르리라!'는 포부가 드러나있다.


사실, 개인적으로 '십우도'가 뭔지 몰랐다. 책을 읽다가.. 이 책이 왜 이렇게 눈에 안 들어오나 싶었더니 이 책의 전체적인 컨셉인 십우도에 대한 감이 없었던 게 가장 큰 것 같다.

절반쯤 읽다가 안되겠어서 십우도에 대해 찾아봤다. 그러니까 조금은... 이해가 갈랑 말랑했다.

(이 책은 그냥 편하게 읽는 책으로 쉽게 접근하면 안된다는 경고를.... 하고 싶다.) 나름 철학에도 관심이 있었고, 상담공부도 깊게는 아니지만 대학에서 개론을 살짝 넘어서는 만큼은 해봤고, 오랜시간 신앙생활을 하면서 종교특유의 추상적인 표현에 대해서도 익숙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건 뭐.... 이해하고 넘어갈 것 같으면 이건 뭔가 싶은 말이 연속으로 폭탄처럼 계속 터져나왔다.

이 책은 '나'를 향한 시선을 가능한한 많은 곳에서 찾아볼 수 있게 소개한 편집숍같은 책이다.

십우도에 대한 이해도 없어서 그랬겠지만, 알았다 하더라도 열가지 단계(또는 그림?)에 대한 비유나 설명을 위해 소개하는 책자들의 종류나 장르가 워낙 폭 넓어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어느새 '검은 것은 글자요, 흰 것은 종이구나.'의 상태가 되어버리고 마는 책이었다.

가끔씩 번개처럼 마음에 꽂히는 부분을 찾아내는 묘미가 있는 책이었다. 이번 리뷰는 그런 부분들을 집어서 소개해 볼까 한다.


산티아고의 보물은 무엇이었을까? 여기와 동떨어진 저기 어딘가에 있는 특별한 무엇일까? 그럴 수 없다. 산티아고가 일궈낸 보물은 자연과 세계를 하나로 보게 된 '자아의 신화'이자 그것을 알아차리기까지 두려움없이 나선 매순간이었다.

성찰 시작 | 혼란, 헤매다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 중에서 p.43


이 부분까지는 그럭저럭 잘 읽혀져나갔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1단계 심우 | 소를 찾아나섬에 대한 설명에 대한 예시로 들며 소개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잘 이해가 갔던건 <연금술사>를 읽었봤기 때문이리라. 내가 전쳋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책을 통해 소개하는 개념은 작가와 내가 보는 개념에 대한 시각이 같을 수 있어서 쉬웠겠지.


이 부분이 마음에 든 건, 이 문장때문이다. 산티아고의 보물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리기까지 두려움없이 나선 매순간'이라는 것 말이다. 목적이 있건 없건 간에 또한 그에 대한 보상이 있건 없건 간에 알 수 없는 곳으로 발을 내딛는다는 건 많은 두려움이 있기 마련인데, 그 길을 걸어내는 한 걸음 한걸음 그 자체가 보물이 된다는 말이 얼마나 귀한 말인가 싶었다. 아이를 키우며 맞는 매일이. 익숙한 듯 싶다가도 도통 모르겠는 육아라는 길이. 내가 어떤 이유에도 불구하고 발을 내딛어야 하는 시간들이라는 점에서 결국에는 내게 보물이 되기를 잠시 바래봤다.

(육아 이외에도 내가 도전하고 있는 작고 하찮아 보이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말이다.)


극심한 고통이 느껴진다면 달리기를 멈추고, 숨을 골라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정직한 물음을 묻자.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며,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지금 내게 가장 큰 고통은 무엇인가?

견적 | 자취를 봄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 중에서 p.67

이 내용은 특별히 저자의 코멘트가 없이 유상강설이 잘려진채 적힌 것인지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책의 내용을 넣어둔 것인지 모르겠다. 유상강설 편집부에서 낸 <수행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라는 책의 내용인 듯 보인다.


사실 이 쯤부터 이 책의 구성이 복잡하다고 느껴서 책을 든 손이 점점 무겁게 느껴졌다. 대체 뭐가 저자의 생각이고 무엇이 인용구이고 이 책을 이 카테고리에 왜 적어둔 것인지 충분한 설명이 없어보였다.

그저 의식이 흘러가는 대로 우선은 책에서 보이는 내 의식의 성장에 필요한 원석들을 주워담는 수 밖에 없었다.

길을 나섰으니, 무엇을 찾으려고 나섰는지 깨우치라는 시퀀스인건가 싶었다. 어쨌든 누구에게나 잠시 멈추어서 나를 돌아보게 되는 순간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순간이 아직은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살다보면 덜컥. 하는 순간이 있다. 특별히 내게만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내게는 그런 순간이 조금 이르게 자주 찾아왔었다. 어린 시절 얼른 어른이 되고 싶어한 마음에 대한 벌인지. 그에 대한 답인지는 몰라도 쓴맛을 너무 빨리 봐버린 나는 이미 20대에 나에 대해,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내가 가고 싶은 길에 대해, 그리고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었다. (오히려 하루하루가 바쁜 지금은 그런 생각을 접어둔 걸 보면, 어쩌면 그땐 몸이 참 편했나보다 싶기도 하다 ㅎㅎ)


그리고 이 부분을 보니, 그 시절의 나는 아마도 나도 모르게 수행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나 싶다.

더 나은 삶을 원하고, 더 나은 내가 되고자 마음을 내었다면 이미 수행을 시작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견적, 얼핏 '진짜 나'의 흔적을 본 사람은 이미 수행자다.

견적 | 자취를 봄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 중에서 p.71


나는 그 수행의 시간을 통해 지금은 마음의 행복을 얻었을까? 아직은 때때로 마음이 괴로운 나날이 있는 것을 보면, 아직은 가야할 길이 멀었는지 모르겠다.


무지가 일어나면, 반응이 일어난다.

반응이 일어나면, 의식이 일어난다.

의식이 일어나면, 마음과 물질이 일어난다.

마음과 물질이 일어나면, 여섯가지 감각기관이 일어난다.

여섯가지 감각기관이 일어나면, 접촉이 일어난다. 접촉이 일어나면 감각이 일어난다.

감각이 일어나면, 되어감의 과정이 일어난다.

되어감의 과정이 시작되면, 태어남이 일어난다.

태어남이 일어나면, 늙음과 죽음이 일어난다.

슬픔, 애통함, 육체적.정신적 고통 그리고 고난과 함께.

이런 식으로 이 모든 과정이 일어난다.

견우 | 소를 봄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 중에서, p.88


십우도의 세번째 단계인 '견우| 소를 봄'에 대한 설명을 윌리엄 하트의 위빳사나 명상이라는 책으로 하고 있다. 책 속에서 견우는 수행자가 멀리 있는 소를 발견하는 장면이 뜬 구름을 잡는 것이 아니라 오감을 통해 직접 체험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3단계가 처음들어보는 책이고 개념이었어도 친숙하게 느껴졌는데 그건 내가 요즘 매일 요가를 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인 것 같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무실 근처의 요가원에서 처음 접했다.

그 때의 나는 무슨 생각으로 요가를 시작했을까? 짚어보니 요가복을 입은 채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요가선생님의 유연한 기교과 몸매를 닮고 싶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한동안 시간을 쪼개 다니던 요가원은 주근무하는 사무실이 옮겨지는 바람에 그만뒀다. 그 당시의 요가수업은 몸의 수련은 했으나 마음의 수련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 다음으로는 아이들을 키우고 동네 문화센터에서 접한 수업이었는데, 오피스 근처의 요가원과는 다르게 문화센터의 요가선생님은 뭔가 수업도 철학적이고 마음을 짚어주는 부분이 있었다. 몸으로 알고 있던 것들이 명상으로 한걸음 나아갔다. 둘째 출산으로 그마저도 접고 운동이라고는 산책과 숨쉬기가 전부였다가 요즘 다시 혼자서 하루에 한번씩 짧은 시간이나마 요가를 하고 있다.

그때마다 어떤 생각들이 비워지다가 채워지다가 하는 나를 마주하고 있는데, 저 문장을 보자 그런 내가 떠올랐다.

내 안에서는 어떤 것들이 얼마만큼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그런 질문들이 이 책속의 글을 보자 정리가 되었다.


특별한 바람이나 기대 없이, 초조함 없이, 심지어 '수행을 한다.'거나 '명상을 한다.'는 생각도 없이 그냥 하는 것. 옷이 안개에 젖는 것처럼 알 듯 모를 듯 오직 반복을 통해 이루어지는 확실한 변화다. 선은 그렇듯 '함 없는 함'이다. ... 제약들 아래서 자기의 길을 내려는 의지. 그 자체가 이미 수행이자, 선심이다. 매일 하는 일이지만 늘 처음 하듯이, 매일 앉지만 마치 오늘 처음 앉듯이 마음을 앉히는 자세가 초심이다.

스즈키 순류의 선심초심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 중에서 p.101


내가 틈날때마다 하고 있는 요가가 이 책에서 말하는 명상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을지라도 책에서 말한대로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도 '작은 나'를 넘어서는 역동적 활동이 되기를 바란다. 매일 하는 일이지만 늘 처음 하듯이. (매일 안하는데 그래서인지 정말로 늘 처음 같은 나의 요가동작들처럼 말이다)


우리는 하나의 장면을 보고도 각각 다른 생각을 한다. 그것은 여러가지 요인에 의해 달리 결정되겠지만 개개인의 의식수준이 그 생각이나 관점을 결정하는 척도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의 의식에 단계가 있다는 생각은. 독특한 발상이다. 물론 당연히 그런 레벨이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짐작은 해봤지만 그걸 정말 학문적으로 나누어보고 심지어 점수를 매겨놓은 사람도 있구나!


처음엔 이 아이디어 자체가 조금은 껄끄러웠지만, 이런 생각에는 동의가 가는 바가 있었다.


사람은 의식이다. 그리고 의식은 빛이다. 한 사람이 달성한 의식의 고양은 자신뿐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는 힘(power)으로 세상을 감싸 안는다. 나는 누구이고자 하는가? 세상에 빚지는 자, 세상에 부정성을 더하는 자로 살다 갈 것인가, 아니면 긍정의 빛으로 살다가 세상에 사랑의 흔적을 남기고 갈 것인가.

오늘, 지금, 이 순간 나의 자각과 의식적인 선택에 달렸다.

"보다 의식적으로 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세상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혁명',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 중에서,p.101


높은 의식수준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질 수록 우리가 함께 몸 담고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이 아름다워질 것이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그를 위해 각자가 의식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책임있는 자유가 아닌 방임으로, 방만으로 사는 삶은 낮은 의식 속에 머물게 한다. 내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점 하나가 바로 하나의 인격체로서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점이었다.

그래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쏙 들었다.

"어차피 내려올 건데 왜 오르지?"

힘들게 산에 오르는 사람을 타박하는 이들의 변이다.

'왜 오르는가?'는 '왜 사는가?'와 맞닿아 있는 물음이다. 얼핏 무상해 보이는 오름은 산 그자체를 만나기 위함이요. 산이 주는 예측할 수 없는 선물을 받기 위함이다. 오르면서는 산에 기대어 살아가는 무수한 생명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오를 때마다 달라지는 풍광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낯선 시선을 배우며, 내려올 때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오를 때 보지 못했던 그 꽃을 보기 위함이다. ... 결국 모두 제자리로 돌아오지만, 산을 만나거나 여행을 하고 온 '나'는 이미 다른 사람이다.

머리 스타인의 '융의 영혼의 지도'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 중에서 p.153

십우도의 6단계는 기우귀가로 소를 찾기 위해 떠난 내가 소를 타고 돌아오는 장면이라고 한다.

소를 찾아 돌아올 건데 왜 떠나는가? 하는 질문이 저 글 속에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산을 오르는 것은 산에 오르며 만난 경험들로 새로운 나를 찾아온다는 것이 아닐까? 산에 오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주로 그런 이야기는 어르신들이 많이 해주시곤 했는데..) '등산이 인생과 많이 닮았다.'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나는 어린시절에 부모님과 산을 자주 다닌 편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산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린 나이에 즐겁지 않은 산행을 무리하게 한 기억들이 있어서인것 같다. 내려올 건데 뭐하러 올라가라는 말은 내가 산에 가자는 지인들에게 종종하는 말이었다. 요즘은 그 말의 의미를 조금씩 알 것도 같다. 그 길 위에서 무념인채로 걷다가 만나는 나를. 걷고 난 후의 나를 만나기 위해 산에 가곤 한다.

그랬구나. 산에 다녀온 나는 이미 다른 내가 되어 있었던 거였구나.

다른 나는 조금은 의식적인 내가 된 거였겠지.

그랬기를 바란다.

요즘 내가 읽은 책들과는 다르게 읽기에 쉽지는 않은 책이었다.

친절하고자 했으나 친절하지만은 않았다.

술술 읽히는 박장대소하는 책도 아니고, 가볍게 후루룩 읽히는 책도 아니었지만.

꼭꼭 씹어먹고 싶은 까끌한 잡곡밥처럼 영양가 있는 책이었다.

아마도 나는 이 책을 조만간 다시 읽게 될 것 같다.

그리고 리뷰를 다시 고쳐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십우도에 맞춰 소개한 책들은 어디선가 지나치면 스윽 손을 뻗어 집어들게 될 것 같다.

그 역시 쉽게 읽히지는 않겠으나 기대감을 갖고 보게 되지 않을까?

내가 나를 만나러 가는데에 이런 방법들이 있다는 것을 최대한 여러 경로로 알려준 작가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느끼며 무거운 책장을 덮었다.




이 글은 판미동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나를찾아가는십우도여행 #십우도가뭐야?

#선불교입문서인가? #어려운책 #쉽지는않다

#오강남 #성소은 #판미동 #좋은책 #잘읽었습니다

#다시읽고싶은책 #다음엔이해가잘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들이 속아온 거짓말
수지 K 퀸 지음, 홍선영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표지를 보고는 솔직히.. '엣지가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사람들 눈이 얼마나 높은데.. 표지디자인에 너무 힘을 빼버린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처음 들어보는 영국인 작가의 이야기를 어깨에 힘을 빼고 편안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영국 특유의 블랙코미디가 담긴 진정한 부모 교과서다! ㅋㅋㅋㅋ

자유로운 영혼의 프리랜서 작가가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이 육아에세이를 읽으며 처음에는

영국이라는 나라에서도 육아는 우리와 별다를바 없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전세계 어딜가든 아마도 우리 세대 (80년대생)가 엄마가 되는 모습이 이와 비슷한 모습으로 관통하지 않을까 싶었다. 전세대에 비해 고등교육을 많이 받았고 자신의 꿈과 커리어를 이루고 싶은 마음이 남성들과 다를바 없이 자랐지만, 부모가 되는 과정에서 여성들의 많은 것들이 (때로는 그간 이룬 모든 것을 포기한 채로)

변해버리는 삶의 모습 말이다.

책의 내용은 한결같이 재밌다.

그녀의 필력이 정말 좋다는 증거인 것 같다.

처음에 목차를 읽으면서 "우리가 흔히 듣는 엄마들의 이야기잖아!" 싶었는데, 그 앞의 (거짓말)이라는 단어가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거짓말과 함께 읽는 목차는 나를 빵터지게 만들었다.

예를들어 거짓말5 호흡만 잘하면 된다!라거나 거짓말 10 무엇이 필요한지 아이가 알려줄 것이다.와 같은 목차들말이다. ㅎㅎㅎㅎ

나또한 사내커플로 결혼에 골인하고 바로 허니문 베이비로 1호를 임신하게 되어서 직장에 다니면서 임신기간을 보냈는데, 그야말로 육아무식자로 엄마로서의 삶에 진입했다.

일은 그럭저럭 해냈지만 출산은... ㅎㅎㅎ 호흡법 따위로 될 일이 아니었다.

남편과 함께 산부인과에서 운영하는 강좌에서 라마즈 호흡법을 들은게 전부인 나는... 출산 당일 호흡은 커녕 내 배를 눌러대는 간호사들 덕에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수술실로 직행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아이가 무엇이 필요한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녀가 아이를 병원에서 낳은지 몇일 되지도 않은채로 집으로 돌아간 것과는 달리 나는 조리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산후도우미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그 도움이 손길이 끊기자마자 나와 남편은 패닉에 빠지고 말았다.

이 책에는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중간중간 그녀의 남편이 한마디씩 코멘트를 한 걸 같이 적어두었는데, 그 부분이 꼭 내 남편의 속마음 같아서 재미있었다.

(우리집 바깥편은 말이 거의 없다. 결혼 초에는 더더욱 그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말뿐이었다.)

가장 먼저 내 폭풍웃음을 자아낸 건 수면교육법 책을 읽은 의견을 써내려간 부분이었다.

데미: 당신이 하도 권해서 나도 이 책 읽어 봤잖아. 이 책은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어. '이 여잔 제정신이 아니다.'

40주면 늦은 것이다. <엄마들이 속아온 거짓말> p 50

임신과 출산 전의 그녀를 보며 9년 전의 내가 새록새록 기억났다.

나도 주변에 조언을 구할 사람이 그다지 없어서 (직장 상사들이 해주는 조언도 물론 있기는 했지만 우리는 일로만난 사이였기에 그다지 상세하게 엄마의 삶을 이야기 해주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저 그녀들의 퀭한 눈이 엄마로서의 삶을 짐작하게 해주었다.) 책으로 임신과 출산에 대해 '공부'를 했다.

할 수 있는게 뭐겠는가... 책이라도 봐야지.

책으로 배운 육아의 단점을 그녀도 그대로 복기하는 걸 보고 내 일기를 보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책과 현실의 괴리는 읽으면 읽을 수록 자괴감을 절로 불러 일으킨다.

책보며 육아를 해본 엄마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첫 아이 수유는 출산만큼이나 힘든 일이어서 조리원에서 만난 엄마들은 군대동기만큼 끈끈하다고들 말한다. 나는 그런 조리원 동기들과 1호가 신생아이던 시절 매일 젖소가 된 것 같다며 자조하면서 하루를 보냈었다. 잊고 있던 기억들이 떠오르다가 말다가 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바깥편에게 "여보 내가 이때 어땠는지 기억나?"라고 물어댔다.

초보 엄마의 신생아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마무리 될 즈음 그녀가 건네는 조언이 딱 내 스타일이었다.

그 시절은 정말이지.. 암흑같은 시절이다. 그런 시절을 견디는 방법은 안타깝게도 각자가 찾아야 한다.

초콜릿에 기댄 그녀처럼. 무언가에 기대어 버틸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좋다.

먹고 마시고 사라. 이것이 초보 엄마가 불안하고 슬프고 힘겨운 감정에 대처하는 방법이었다. 나는 핫 초콜릿을 (앞서 말했듯) 무지막지하게 마시고 아기용품을 미친듯이 주문하고 크리스마스 쿠키 한 통을 그 자리에서 모조리 먹어 치웠다.

슬픔의 첫 번재 단계는 부정이라 했던가. 나는 슬퍼하고 있었다. 틀림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울었으니까.

거짓말 11 산후우울증은 며칠 안 간다 <엄마들이 속아온 거짓말> 중에서 p. 110

산후우울증이라는 무거운 단어를 초콜릿 중독이라는 발랄한 에피소드로 풀어낼 수 있다니. 이 작가 정말 천재같다! 갓난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서로 상호작용을 할 수 없는 갓난 아이를 키우며 스트레스가 쌓여간다.

내게 해결할 거리면 주고, 나의 사정이나 이야기는 듣지 않는다. 아니지. 듣지 못한다. 보지도 못한다.

그 가냘픈 존재를 지키는 대단한 존재가 나라는 게 벅차면서도 버거운데. 뭘 알아야 잘 하기라도 하지. 우리 세대는 대부분 핵가족이라 불리는 부모-자식세대만으로 이루어진 가정에서 자라왔고, 다른 이의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지 못한다. 관심도 그다지 없다.

그러니... 갓난아이를 키우는 사정을 우리가 어찌 알겠는가?!

보지 못했으니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니 어렵기만 한 시기가... 첫 출산 후 1년인 것 같다. 그 어려운 시기를 무언가에 기대어서 지낸다. 나도 초반에는 쇼핑중독 (필요한 게 많았으므로)이었고, 무언가에 빠져 지냈던 것 같은데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아마.. SNS 중독이었던 것 같다. 카톡에 하루종일 눈을 꽂아놓고 있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이 책을 예비부부에게 꼭 나라에서 지급해 읽게 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산부인과에서 산모수첩을 주면서 함께 나눠주면 어떨까? ㅎㅎㅎㅎㅎ

아기의 수면교육은 어찌하고, 수유는 어찌하고, 분만호흡법이 어쩌고도 중요하지만...

부모의 삶 그자체에 대해 이만한 엄마&아빠의 삶 교과서는 없을 것 같다.

영국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의 초보 부모도 딱 똑같다! 게다가 재밌다!

2부. 변하거나 죽거나. 다른 선택지는 없다에서는 아이의 수면과 수유에 대한건 정말 중요하고도 참 어려운 과제를 다룬다. 사실 신생아인 아이에게 먹는 것과 자는 것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아! 싸는게 남는구나!)그녀가 재밌게 써줘서 정말 흡입하듯 읽어내려갔다.

나도 초보엄마이던 시절 우리집 1호가 잘 먹는다며 먹이고 또 먹였고, (아마도 가스가 차서 잠들기 힘들었을) 아이가 예민해서 안잔다며 재우려고 몇시간씩 아기띠에 싸매 새벽 아파트 복도를 서성이곤 했다. 아이가 자라는 과정에 대해 이해하고 있던 2호를 키우는 시절은 그런 면에서는 수월했었다. 2호는 잘 잤고, 또 잘 먹었다.

2부의 이야기들 중에 가슴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둘다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어리석었다.

이제 분명해졌다. 아이를 낳는 것은 저절로 '삶 속에 끼워맟춰지는' 일이 아니었다. 아이는 삶에 끼워 맞춰지지 않는다. 아이들은 부모의 삶을 산산조각 낸다. 우리가 아이에게 맞춰서 삶을 다시 세워야 한다.

모든 것이 바뀌어야 했다.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배운 점이라면 이것이리라.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성장을 거부하면, 과거에 매달리면 삶은 고통스러워질 것이다. 머지않아 그 고통은 더욱 옥죄어 올 것이고, 결국 더 이상 버틸 힘이 남지 않아 변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겪어본 사람들은 이 심오한 말들을 몇 번이고 강조하고 싶을 것이다.)

1년만 지나면 육아를 좀 더 즐기게 될 것이다 <엄마들이 속아온 거짓말> 중에서 P.194

진심으로 그렇다. 아이가 생긴 뒤에 누구도 이런 말을 해주지 않는다. 그저 두루뭉술하게 웃으며 축하를 건넨다. 그때 그 웃음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들어봤어야 하는데!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라. 이 이야기는... 그렇게 참혹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녀가 삶을 바꿀 (거주지를 바꿀) 결심을 하는데 결정적인 이유가 내가 아이를 위해 큰 결단을 내린 이유가 같아서 더더욱 이 이야기가 와닿았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아이도 어떤 이유로 수술을 해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생겼고 그래서 그녀는 삶을 바꾸기로 결심한다.

나 또한 직장으로 복직을 준비하던 중에 아이가 아팠고, 일을 하는 엄마로서의 삶을 포기하는 선택을 했다.

가끔 아주 많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 선택에 있어서 후회는 단 한 번도 해본적이 없다.

엄마의 삶을 살면서 그 후로 조금씩 엄마로서의 모습에 맞게 아주 조금씩. 바뀌어 온 것 같다.

오랫동안 내 몸은 레깅스와 데미의 헐렁한 운동복, 군용 재킷 안에 숨겨져 있었다.

나는 마치 두 세계 사이에 낀 사람 같았다. 나는 삶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사람, 혼돈의 세계에서 내적인 위기를 맞은 사람이었다.

더 이상 그런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지 않았다.

거짓말 22 튼살은 결국 사라진다. 코코아 버터를 써보라! <엄마들이 속아온 거짓말> 중에서 p.219

작가처럼 극적이지는 않지만. 비슷하긴 하다. 나도 신혼집에서 주환이와 함께 첫 이사를 하면서..

결혼전의 내 물건들을 거의 몽땅 처분했었다.

허리둘레 24인치짜리 바지들과 미니스커드를 비롯한 대부분의 치마들

(뱃살때문에 어차피 못 입을. 첫 출산후 7년이 지났지만 마지막 5kg은 사라지지 않는다.)

형형색색의 화장품들 (아이를 위해 3년간은 썬크림 이상의 것을 발라본 적이 없다.)

44반의 재킷들 (진짜! 내가 그런 사이즈를 입었었다.)

그러고보니.... 1호가 어린 시절 대체 내가 뭘 입고 지낸거지? 기억이 안난다. 희한하게.

그리고 딱! 지금의 내 이야기 같은 이야기도 있어서 공감이 됐다.

길을 걸어가는데 렉시가 언젠가 내 품을 영영 떠나리라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오늘이 아니라 언젠가 말이다. 렉시에게 더 이상 엄마가 필요하지 않을 때가 오겠지. 생각만 해도 너무 슬펐다. 아이가 내 삶에 찾아와준 것만으로도 지극히 고마웠다.

우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학교 정문 앞에서 렉시를 꼭 끌어안았다. 나는 눈물을 꾹 삼켰다.

거짓말 32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기만 하면 예전 삶을 되찾을 것이다, <엄마들이 속아온 거짓말> 중에서 p. 340

2020년에 초등학교를 입학시켜야 했던 모든 부모들의 마음이 나와 같았을 것이다.

코로나라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만연하던 때에 입학은 미뤄지고 하루하루 피를 말리다가 드디어 등교를 하게 된 그 날. 온 가족이 함께 손을 잡고 학교 정문까지 가서는 마스크를 쓴 선생님의 매서운 감시(?) 하에 아이를 홀로 교문 안으로 들여보내야했다. 아이의 교실을 들여다보는 건 불가능 했고 교문 안으로 들어가는 일도 언제가 될지 요원한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이런 등교를 시키는 게 맞는가에 대해 몇일이고 밤잠을 설쳐가며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결정한 일이었기에. 아이와 헤어지는 그 순간의 감정은 복잡했다.

나 또한 답답한 가슴 안에서 올라오는 눈물을 삼켰다.

그리고 마지막 챕터에서 그녀와 나는 100% 정확하게 생각이 일치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나는 예전 삶의 마지막 흔적까지 말끔히 없애 버리기로 결심했다. 감히 쫓아낼 엄두도 못 냈던 그 모든 싸구려 물건들, 학생때 쓰던 것들, 파티용품들을 내다 버릴 생각이었다. 전에는 이것들을 다시 쓸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 나는 아이가 없던 예전 삶의 마지막 흔적들이 거대한 쓰레기 더미에 파묻히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것들을 떠나보내니 안심이 됐다. 해가 뜰 때까지 클럽에 죽치고 있던 때, 오전 11시에 아이없이 즐기던 브런치, 휴가 때마다 떠난 기차 여행과 아시아 배낭여행 등등, 모두 멋진 시간이었지만 그때의 우리는 더 이상 지금의 우리가 아니었다.

그립지 않았다.

지금이 훨씬 더 행복했다.

진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엄마들이 속아온 거짓말>중에서 p.360

결혼 전에는 몇살로 돌아간다면.. 하는 상상같은 것들을 해보곤 했다.

하지만 내 보물들이 내게 온 후로는 그런 상상은 하지 않는다.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겠냐는 질문에는 단호히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 아이들을 다시 만날 수 없을테니까 말이다.

나도 내가 이렇게 아이들을 사랑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못했었다. 그녀또한 나와 같은 생각이겠지.

책의 마무리가 아름다워서 다행이다.

이 책을 통해 모두가 육아의 진실을 마주하고 그 아름다움을 천천히 깨닫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작가가 책의 마지막에 남긴 감사의 말이 독특했다.

영국에 사는 그녀가 한국의 내가 한국어로 남긴 감상평을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토록 진실되고 재밌는 육아에세이를 남겨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조리원동기를 만난듯이 반가웠고 유쾌한 시간이 되었다.

수지. 기회가 된다면 만나서 안아주고 싶네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간이 멈춘 방 - 유품정리인이 미니어처로 전하는 삶의 마지막 이야기들
고지마 미유 지음, 정문주 옮김, 가토 하지메 사진 / 더숲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신없는 시간 속에 책을 들여다 볼 여유가 가끔씩 생겨서 좋다.

비가 오는 날이면, 책 보기에 더 좋다.

작은 거실에서 아이들이 복작복작 놀고 있는 오후.

잠깐 들고 읽기에 딱 좋았던 책을 소개할까 한다.

소재를 생각하면 내용은 분명 무겁고 진지해야 하는데, 의외로 간결하고 담담한 그러면서도 사실적이었던 책.

이 표현을 꼭 적어두고 싶었다. 왠일로 내가 읽어보라며 건네자 그 자리에 앉아 읽어내려간 바깥편이 어땠냐는 내 물음에 "카르페 디엠"이라 답했다.

당신의 그 대답이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이해하 가.

사실, 처음 <시간이 멈춘 방>이라는 제목을 보고 우리의 시간도 지금 멈추어 있는게 아닌가 싶어서 더 눈길이 갔다. 작게 쓰인 부제를 보고 어떤 내용을 다룬 책일지 짐작이 되었다.

이 책을 읽고 싶어서 손을 든 이유는.....

읽고나면 시간이 멈추었던 그 방을 잘 정리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지금 멈춰있는 우리들의 시간이 다시 잘 시작될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책을 쓴 사람은 고지마 미유라는 유품정리인이자, 특수청소일을 하는 한 여성이다.

책의 내용은 그녀가 일본의 '엔딩산업전'에 출품하기 위해 만든 고독사현장의 미니어처들을 다룬다.

그녀가 미니어처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은 이유는 고독사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걸,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가까운 일들이라는 걸 알리고 싶어서라고 한다.

책에는 미니어처 8점을 통해 고독사 현장을 소개한다.

1장 ― 아버지의 소식불통

2장 ― 쓰레기 집, 그 각각의 사정

3장 ― 집 안의 밀실

4장 ― 유품이 많은 방

5장 ― 벽에 남긴 한마디, '미안해'

6장 ― 남겨진 반려동물들

7장 ― 마지막 쉴 곳

목차를 통해 어떤 현장들이 다루어질지 미리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실사가 아니라 미니어처라서 그냥 만화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첫 번째 미니어처 장면을 보고 처음엔 그냥 아무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그 장면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첫번째 미니어처는 그녀가 주로 접하는 현장의 특징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

50~60대 남성.

발견 시점은 사후 3~6개월.

발견자는 늘어난 해충과 고약한 냄새 등을 통해 변고를 눈치챈 아파트 집주인 또는 수도 계량기 검침원이나 신문 배달원.

이것이 내가 방문한 고독사 현장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유형이다.

아버지의 소식불통, <시간이 멈춘 방> 중에서 p. 19

그녀가 요약해둔 가장많은 유형의 고독사의 모습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은 건,

하나 둘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유형의 죽음이 늘어가고 있고, 이런 짧은 문구로 축약된 이야기들을 꽤 접해봤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일하는 현장을 표현한 이 한 장은. 가까운 듯 멀게 느껴졌다.

집 안은 정돈이라는 말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광고 전단지와 먹다 남긴 도시락, 빵 봉지, 빈 캔과 뭉쳐 버린 휴지, 비닐봉투와 약 따위가 곳곳에 어질러져 있고 빨래 건조대에는 속옷이 널린, 생활의 흔적이 역력한 방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갈색으로 변색되고 사람 모양의 주름이 잡힌 이불이 보였다. 그곳에서 임종을 맞이했다는 뜻이다. 이불 주위에는 남은 음식쓰레기와 잡지, 약과 주삿바늘이 잔뜩 뒹굴고, 베개에는 피를 토한 흔적이 있었다. 당뇨병을 앓았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소식불통, <시간이 멈춘 방> 중에서 p.23


작가가 표현한 이 장면은 처음 현장에서 접하는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표현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시신이 남겨져있던 현장을 정리하는 모습을 세세하게 그렇지만 무표정하게 (왠지 표정이 있어서는 안될 것만 같다) 적어두었다.

시신이 있던 장소를 치우는 작업에 대한 묘사는 놀랍도록 차분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강렬하게 기억되었다. 하지만 굳이 옮겨적고 싶지는 않은 건, 왜인지 모르겠다.

작가의 글 중에 '고독사 특유의 냄새가 사라진 후에야 고인의 유족이 집 안으로 들어섰다.'는 표현에서

그 작업을 직접 손으로 옮겨적고 싶지 않은 나의 마음도 같지 않을까... 생각해볼 뿐이다.

미니어처들 모두가 충격적이긴 하지만, 두번째 미니어처가 가장 충격적이다.

쓰레기로 가득한 집의 이야기.

천장까지 쓰레기가 가득한 집에서 '산다'는 게 가능할까?

'나는 안 그럴거야.'라고 대부분 생각할 것 같다. 재밌게도 이 장의 시작에 나와 똑같은 속엣말을 내뱉는 여성이 등장한다.

재밌게도 요즘 <남자 가정부가 필요해?>라는 일본드라마를 즐겨보고 있는데, 그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인공도 자신의 일에서는 프로지만 집안일에는 전혀 소질이 없어서, 짐들에 점령당해 살아가는 모습이 초반에 등장했었다.

일에 전력을 다하느라 집안 일에는 신경을 쓸 여력이 없는 사람이 그녀뿐은 아닐 것이다. 책속에도 작가가 소개하는 집안 정리가 잘 안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사람은 내가 가진 에너지보다 많은 것을 요구하는 상황이 닥치면 살아가는 공간이나 자신이 먹는 것들에 대해 신경을 쓰지 못한다. 당장 나만해도 아이가 어릴 때는 아이가 먹을 것을 매끼니 고민해가며 만들고, 아이가 지내는 공간은 하루에도 몇 번씩 쓸고 닦지만 그러느라 내가 입는 옷, 내가 가진 물건들은 어느 한쪽 방안에 가득 쌓아두고 정리하거나 잘 꾸밀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충격적인 쓰레기집의 고독사 현장은. 그 안에 쌓인 쓰레기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그 쓰레기들이 정리된 만큼 그 곳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도 가벼워지고 평안해졌길 바래본다.

쓰레기집 이후로 등장한 미니어처는 집안의 밀실편이었다. 욕실과 화장실에서의 고독사를 다뤘는데. 사실 이 미니어처가 시각적으로는 쓰레기집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고령의 경우 겨울철 히트쇼크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 자신은 아직 젊기때문에 (젊다고 믿고 살아간다 ㅎㅎ)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사망사유였다. 흔히 말하는 겨울철 심장마비가 욕실에서 씻기 위해 옷을 갈아입다가, 볼일을 보기 위해 차가운 변기 위에 앉았다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4장과 5장에선 유품이 많은 집 VS 정돈되어 있는 집이 연달아 다루어진다.

두 죽음의 현장을 붙여서 소개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유품이 많다는 건 (쓰레기집과는 다르다) 그만큼 살아온 세월에 대한 애정이 많다는 뜻일 거다.

그 유품을 대하는 마음이 어떨까....

재밌게도, 유품을 정리하는 현장에 나타나는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의 이야기는 불쾌한듯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남겨진 물건들이 누군가에게 의미있게 쓰인다면 오히려 그 물건의 입장에선 좋은 일인지 모른다.

다만, 아무 준비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경우엔 그 물건의 소유권이 불분명하고 그걸 노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쓰게 웃겼다.

다다미를 뜯어가겠다는 사람. 피규어를 가져가겠다는 사람. 발견되지도 않은 돈뭉치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들까지. 각양각색으로... 보이는 그들의 욕심에 희한하게 웃음이 났다.

죽음을 다루는 책에서 이토록 뻔뻔한 좀도둑 이야기라니. 웃기지 않은가?

먼저 돌아가신 어른들의 사진, 상장 그리고 벽장 속 전통 인형. 자식과 손자들이 놀러 오면 덮을 엄청난 이불들. 언젠가 다시 읽겠지 싶어 꽂아 둔 선반의 책들. 어느 것 하나 쉽게 버릴 수 없는 물건들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소중히 포장한다.

유품이 많은 방, <시간이 멈춘 방> 중에서 p.70

언제일지 모르는 죽음의 시간. 내가 떠난 후의 내 공간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어떤 인상을 받을까?

그 질문은 지금의 내게 '너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5장에선 자살자들의 현장을 다룬다.

유품이 많은 집과 자살자의 집을 연달아 배치한건, 유품이 많은 죽음과 달리 자살자의 경우 집안을 정돈해두는 경우들이 많다고 한다.

어느 책에선가 죽음을 예견한 사람들이 자신의 주변을 정돈한다는 이야기를 본적이 있는데, 갑작스러운 죽음이 아니고 죽음을 예견한다면 아마도 내가 속한 공간을 스스로 정리하려는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삶이 버틸 수 없어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의 심정을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하기란 어렵지만, 누구나 한번은 그런 생각을 해본적은 있을 것이다.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늘 평탄하게 행복하기만한 사람은 없으니까.

책에서는 자살 그 자체를 평하기보다는 그 후에 대해 이야기 한다.

순간 먹먹해졌다.

아무래도 다른 죽음의 현장보다는 훨씬 '죽음'이라는 단어가 짙게 묻어나는 유형이라서 그런 것 같다.

주위에 마음 아파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번쯤은 손 내밀어봐야겠다고 생각하게끔 만들어주었다.

괜히. 지인들에게 잘 지내냐는 연락도 해보고 말이다.

그런 작은 불꽃들이 우리 삶을 차가워지지 않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책을 읽으며 이런 온기들을 찾아내는 순간을 좋아한다. 그 온기가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죽음 이후의 공간을 다룬다는 게, 어떤 걸까..?

뉴스나 <그것이 알고싶다>, 추리드라마나 영화같은 컨텐츠들을 통해 살인사건이나 자살현장의 이미지 같은 건 본적이 많다. 그 이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책을 보면서, 내 기억 속에 숨어 있던 죽음 이 후의 장면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주로 산 사람들이 차지한 장면들이긴 하지만 말이다.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있지 않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고,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린 시절 외갓집 조부모와 애틋한 사람들과는 다르게 나는 외가쪽 친척들과는 그다지 살갑게 지내지 못했다.

외사촌들을 돌보느라 바쁘셨던 외할머니와는 그저 명절이면 얼굴을 보는 친척 정도의 거리감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몇년 전에는 할머니와 꽤 가깝게 지내기도 했던 것 같다. 아픈 할머니께 드린다고 꽃다발을 사들고 가던 버스 안에서 맡았던 후리지아 꽃향기와 뒤섞인 그 시골 동네의 향기가 아직 생각이 난다.

그래서 마지막 몇년은 자주 찾아뵙고 안부를 물으며 지냈었는데.

그때 할머니댁에서 봤던 한장면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지인과 통화를 하면서 백발의 할머니가 전화기를 붙들고 울며 어떤 이야기를 하셨던 그 날의 기억.

그 후로 일하다가 받은 할머니의 부고에 나는 정신없이 사무실 바깥 복도에서 엉엉 울었었다.

그리고 장례식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린 사촌동생들을 돌보느라 그리고 연이어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하느라 정신없게 몇일이 지나가 버려서. 할머니가 돌아가신게 사실인지 거짓말인지 잘 모르겠는 지경이었다.

책을 덮는데,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아마 내 인생에 처음으로 맞았던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아직 내 안에는 할머니의 기억이 남았있구나.' 그 사실이 새삼 신기하고 애틋했다.

태어난 존재는 모두 죽는다.

그 당연한 진실을 우리는 그다지 생각하지 않고 지낸다. 그래서 삶이 그렇게 가벼워지고, 하찮아지고, 불편한 감정으로 가득해지는지도 모른다.

겨우 몇십년. 불운한 이들에게는 그보다 짧은 시간이 주어진 삶이라는 여행을.

우리가 '늘 죽음을 머리맡에 두고 산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의 하루를 허무하게 채우는 죽음이 아닌,

나의 삶을 아름답게 채우기 위한 이유가 되어줄 죽음으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집어들던 처음의 마음대로 오늘을 더 잘 살 수 있게 된 것 같다.

청소현장에서 꽃다발을 들고 간다는 그녀가 어떤 이유에선지 모르게 고마웠다.

이런 좋은 책을 읽어볼 수 있게

당신의 일을 소개해 줘서 고맙습니다.


* 이 글은 더숲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