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음부 을유세계문학전집 8
마누엘 푸익 지음, 송병선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누엘 푸익(1932~1990)은 ‘거미여인의 키스’ ‘조그만 입술’ 등으로 꽤 알려진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다. 젊어서 영화를 공부해 시나리오를 썼지만 빛을 못 보고, 훗날 소설을 통해 영화를 ‘배후조종’한 이력으로 유명하다. 특히, 대중문화를 변형시켜 재생산과정을 통해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작가로도 이름이 높다. 이 소설 ‘천사의 음부’는 그의 다섯번째 소설로 1979년에 출간된 작품이다. 평론가들로 부터 작가의 창작력과 기교가 정점에 달했던 시기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역작이다.



멕시코의 한 병원. 아르헨티나 여성 '아니타'는 암투병 중이다. 수술 뒤 호전될 기미가 없는 투병생활에 지친 그녀는 어느 날 백일몽을 꾼다. 등장인물은 ‘여주인’과 함께 또 하나의 여성인 'W218'이다. 'w218'은 미래의 전체주의 사회에 살고 있으며, 정부의 지시에 따라 익명의 남자들과 성관계를 갖는 일을 하고 있다. 그 백일몽으로부터 아니타는 30년대 누아르와 몽환적인 환상으로 빠져든다. ‘여주인’과 ‘W218'은 여성으로서 기억과 경험을 공유하며, '아니타'의 욕망과 무의식의 불안을 표현하는 대리물인 것이다. 아니타와 그녀의 페미니스트 친구인 베아트리스, 그리고 좌익 페론주의자인 포지가 등장해 성(性)뿐 아니라 페론 정권 아래의 아르헨티나 사회와 정치상황도 재구성한다. 그리고 ‘여주인’에서 아니타, 그리고 ‘W218', 그 셋은 시공을 떠나 하나의 캐릭터, 바로 여성으로 귀결된다. 작가는 여주인공을 통해 여자가된다는것의 의미를 '아니타'를 통해 남성에 의해 지배하는 사회의 산물을 'W218'을 통해 비관적인 미래사회의 성에 대해 작가의 느낌을 전하고 있다.



여자들이 만든 세상은 「코지 판 투테」에 나오는 피오르딜리지와 도라벨라의 이중창처럼, 모든 게 매력적이고 우아하며 가벼운 세상일 것이다. 조화로운 세상을 연상하기 위해서는 모차르트의 음악처럼 좋은 것은 없다. 우리가 살아 있는 매 순간을 즐길 수 있도록 필요한 세상이 바로 그런 조화로운 세상이다. 만일 남자들이 그들 마음속에 조금만 더 음악을 지니고 있다면, 그러니까 조금 더 모차르트 음악을 가지고 있다면, 이 세상은 지금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예쁘고 아름다운 것은 우리 여자들이 모두 독점하고 있고, 남자들은 추한 것만 가지고 있다. 우리 여자들이 남자들에게서 예쁘고 좋은 것을 모두 빼앗아 버렸다. 그리고 남자들은 자기들이 지닌 그 쓰레기들에 매료되어 있다. ( p.328)


소설을 읽고난 후의 느낌은 이 작가가 남성작가이면서 여성이라는 성에 대해 이토록 심오한 통찰이 빛나는 작가는 없는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대중문화와 페미니즘, 정신분석학에 정치적 분야까지 포함하는, 라틴아메리카 현대 소설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정치적인 것들이 결코 무엇을 위한 것이고, 무엇이 최우선이어야 하는지와 별개로 인간에 대한 사랑이 그 동기고 목적이어야 할것이다. 복잡하고 뒤섞인 서술방법과 형식에 비해, 내용은 그의 여느 소설에 비해 평범하기 그지 없으며 가장 현실에 가깝다. 작가는 독특한 구성력을 발휘, 작품속에는 불행하고 배신당한 사랑, 그런 사랑을 위해 온몸을 바치는 여자들, 그리고 이런 주제에 맞물려 죽음, 모성애, 섹스 대상으로서의 여성, 그래도 집착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 등 기본적인 여성의 정체성이 그 속에 녹아든다.

여성들, 매맞는 여성, 벌레 만도 못한 여성, 지배하는 남성, 폭력적이고 변태적이고 탐욕스러운 남성, 그들의 이야기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도 있었다. 사람에겐 누구나 자신과 맞는, 자신을 알아주는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고픈 욕구가 있다. 사랑이야 말로 세상을 움직이는 동기이고, 인류를 지탱해 온 힘이다. 좌파건 우파건, 과거든 미래든, 여자의 음부는 남성의 지배로부터 완전히 자유를 쟁취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속에서 작가는 여성이 억압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거나 혹은 여성 억압은 여성의 열등성 때문에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 즉 '여성 의식의 일깨움'을 말하려 했던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