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 작가
알렉산드라 앤드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3월
평점 :
절판


"유니버셜 픽쳐스 영상화 결정"
"출간 전 세계 20개국 이상 판권 계약"
"뉴욕타임스, 뉴욕포스트 올해의 책 선정"
이런 문구들은 이미 책을 읽기 시작하기도 전에 기대를 잔뜩 하게 만든다. 책에 대한 만족감은 기대한 만큼을 충족시키느냐에 있다. 어마어마한 문구들로 기대감을 안고 시작했음에도!!!! 완전 재미있다. 저 간만에 별 다섯 개 드리고 갑니다.

사실 제목과 부제목만 봐도 얼추 연상되는 그림들이 있었다. [익명작가 : 당신의 소설을 훔치겠습니다] 이미 흥미진진한 소재다. 주인공 플로렌스는 작가 지망생으로 별 볼 일 없는 삶을 살아오며 나름 최선의 직장으로 선택한 회사에서마저 상사와의 스캔들로 해고를 당한다. 갈 곳도 없어지고 딱히 뭔가를 해볼 시도조자 못하던 그때 우연의 일치인지 기막힌 제안이 들어온다.

바로 첫 소설 《미시시피 폭스트롯》으로 대박을 터뜨린 작가 모드 딕슨의 조수 자리! 모드 딕슨은 필명으로 그 작가의 정체는 철저히 비밀에 싸여 있는데 그의 옆에서 조수로 일 하면서 여러가지를 배우다 보면 플로렌스 자신도 분명 모드 딕슨에 버금가는 작가가 될 수 있으리란 희망을 품게 된다. 제안을 승낙하고 모드 딕슨의 정체를 바로 옆에서 볼 수 있게 되는데... 자신과 체구도 비슷하고 눈동자 색과 금발의 머리까지 비슷한 작가의 정체는 헬렌 윌콕스!

경외심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의 모든 것을 배우고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말투, 행동까지 따라하고 있는 플로렌스! 그 둘의 만남부터 소설의 속도는 급진적이다. 언제쯤 플로렌스가 헬렌의 소설을 훔치는 것일까를 기다리며 집중하다가 뒷통수 몇 번을 얻어맞았는지! 예상치 못한 반전과 반전에 소름이!! 스포를 할 수는 없으니 이쯤에서 리뷰는 마무리한다.

누구나 타인의 인생을 꿈꿔 볼 수는 있다. 현실가능한 소재, 탄탄한 구성에 재미까지.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이 소설 강력추천한다. 영상화로 제작되면 또 얼마나 재미있을까. 벌써 기대감으로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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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플로렌스는 시대가 요구하는 분노에 공감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다른 이들과 함께 분노할 수 없으니 무슨 일에서든 소외될 때가 많았다. 이 분노란 것은 사람들을 한데 붙여주는 접착제 같았다.

61. 상실과 결핍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플로렌스는 아버지 없이 자랐다고 해서 동정을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그 사실이 동정받을 자격이 없는 결점처럼 느껴졌다.

102. 내 말이 맞아요. 진짜 힘은 아웃사이더한테 있거든요. 세상을 좀 더 또렷이 볼 수 있달까.

108. 사람틀은 진실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진실을 알고 나면 실망하는 법이거든요. 진실은 미스터리보다ㅇ재미없는 법이니까.

185. 민주주의가 '공정'하긴 하죠. 하지만 왜 공정함이 항상 목표가 되어야 하죠? 위대함은요? 둘은 동시에 갖는 게 불가능할 때도 있어요.

185. 하지만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면, 서로 바뀌어도 아무 상관 없어지는 거예요. 그냥 세상이 납작해지는 거죠.

246. 오해하지 말아요. 모든 사람이 그걸 인생의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에요. 당신이 그런 고민을 하고, 열정을 쏟아부을 대상을 찾은 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단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떤 길이 다른 길보다 더 낫거나 더 나쁜 건 아니라는 거죠.

250. 그녀에게 크나큰 매력과 힘을 상징하는 다른 이름으로 스스로를 부르기만 했을 뿐인데 인생행로 자체가 다시 조율되었다. 마치...변신이라도 한 듯한 기분이었다.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 헬렌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심지어는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의 뒷좌석에 혼자 앉아 있을 때도, 헬렌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니, 모든 면에서 더 당당하고, 더 흥미롭고,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묘하게도 지금의 그녀가 본래의 자신처럼 느껴졌다. 그녀 안의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늘 생각해왔던 여자.


#알렉산드라앤드루스 #익명작가 #인플루엔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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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피, 열
단시엘 W. 모니즈 지음, 박경선 옮김 / 모모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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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은 소감을 말하라면 경악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다. 좋고 나쁨의 뜻을 떠나서 확실히 뜨악스럽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성 작가의 놀라운 데뷔작"이라는 책 띠지와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보스턴글로브] 격찬!!이라는문구에 나도 들뜬 마음으로 한껏 기대를 품으며 책을 시작했다.

열한 편의 단편들로 구성된 책. 그리고 처음 시작되는 단편이 바로 표제작 "우유, 피, 열"이다. 이 조합들은 도대체 무언가 상상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사춘기 소녀들의 우정을 다룬 이 글의 소재로 마구 이용이 된 우유와 피, 열... 다 읽은 후의 느낌이 "????!!!!" 이랬다. 격찬 속의 소설인데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지 이해를 못하는 건지 잠시 의문의 구렁텅이에 있다가 다음편을 연이어 읽었다. 그렇게 한 편, 한 편 끝이 왔는데도 사실 아직 잘 모르겠다.

첫 단편부터 비릿하고 메스꺼운데 이게 또 멈출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계속 읽어나갈 수밖에 없는 책이다. 매 편은 모두 다른 내용의, 다른 화자들로 이야기를 구성해 나가지만 정도의 차이지 불편함과 비릿함, 얼굴을 찌푸리게 되는 약간의 충격들을 늘 담고 있다. 글을 읽을 뿐인데도 그 생생한 색감과 냄새, 그리고 숨이 막히는 듯한 촉감까지 그대로 전달이 된다. 화자는 대부분 약하고,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분노하고 열을 내면서도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그 답답한 심정들이 내게도 온전히 느껴진다.

벨벳 코팅으로 계속 만져보고픈 촉감의 책인데다가 표지까지 강렬한 색감의 디자인으로 너무 예쁘다고 만지작거렸는데 다 읽고 난 지금은 표지 디자인들이 다시 보인다. 뒷 표지의 뼈까지... 작가는 열한 편의 단편들 순서도 정교하게 배열했다고 하니 조용히 작가의 흐름의 몸을 맡겨 집중해 보는 것도 좋겠다.

'만일 여자들에게 궁금해할 자유가 더 많이 허락되었더라면 세상은 지금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라는 뒷표지 구절이 가슴에 깊이 박히지만, 아마 그랬더라면 이런 글은 탄생할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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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열세 살이 되기 전까지는 공허가 짊어질 만한 무언가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 공허는 대체 누가 거기에 넣은 것일까? 때로는 공허로부터 기어이, 언젠가는 벗어날 수 있을지 궁금해하면서도 때로는 그것을 절대 반납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공허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니까.

🔖72. 혐오는 대부분 자신이 심리적으로 인지한 위험, 그러니까 우리의 죄책감이나 고통을 은폐하는 거예요. 두려움인 거죠. 우리는 두려운 대상을 어떤 식으로 다루나요?

🔖79. 제이 자신은 이류二流가 아니며 아담의 갈비뼈도 아니라는 것, 그리고 자신의 존재 자체가 신이라는 것도 이제 안다. 목사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계속해서 연단에서 소리를 지르며 동생 더크와 같은 소년들을 혐오와 공포에 가득 찬 인간으로 키워내고 있다는 것도.

🔖303. 그런데 우리가 뭘 할 수 있지? 그들의 은식기가 방. 안을 음악으로 채웠다. 하나님 맙소사, 카나리아가 양손으로 입을 가리며 양에게 말하는 걸 우리는 들었다. 우리는 알았다. 그들은 먹을 수만 있다면 그분까지 먹어치울 사람들이라는 것을.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주차장에서 각자 차에 올라타며 서로 시선을 피한 채 어깨만 으쓱였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양해를 구했다. 이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늘 어린 것을 먹어오지 않았던가?

🔖329. 집에서 길들여진다는 건 짐승들한테나 해당되는 얘기야. 그리고 사실, 짐승들도 그럴 필요 없어. 모든 건 순리대로란다. 네 자신으로 있는 법을 배우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너 아닌 다른 누군가로 살다 죽는 거고. 간단해.

🔖331. 100년이 지나면 고고학자들이나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나를 땅에서 파내 쪼개진 내 대퇴골에서 흙을 털어내고 농담의 실마리를 찾으려 내 상완골을 찬찬히 살펴보겠지. 그들은 절대 알아내지 못할 거다. 전체를 볼 수는 없으니까. 내 척추를 감쌌던 맹렬한 기이함이라든가 안절부절하지못하던 흐름 같은 것을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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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되는 공간 - 서울 직장인 강릉에서 에어비앤비로 제2의 연봉 만들다
최인욱 지음 / 파지트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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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마케팅과 IT 서비스 기획일을 하고 있는 3형제의 아빠가 직장 말고 또다른 연봉을 만들어 내고 있는 일이 있다는데...누구나 혹 할만한 이야기다. 그 비법은 바로 에어비앤비!

코로나 시절에 강릉에서 촌집을 하나 사서 리모델링을 하고 마당을 꾸며 가족끼리 별장처럼 쓰다가 방을 쓰지 않을 때는 에어비앤비를 돌려 초기에 들었던 자본금을 회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직장인 평균 연봉을 조금 웃도는 수익까지 내게 되면서 땅을 사고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에어비앤비 시스템을 이용해서 쌓아온 노하우를 고스란히 이 책에 담았다. 어려운 부분은 없고 풀어서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책이라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사실 관심이 많은 분야였기에 이 책을 읽으려고 시작을 했던 만큼 대부분은 아는 내용이 많았지만 에어비앤비 시스템에 대한 부분은 새로운 점을 많이 알게 됐다.

에어비앤비에서 수수료를 챙기는 만큼 호스트가 악성 게스트로 인한 공간이나 숙박 예약에 차질이 생기는 경우 '에어커버'라는 시스템으로 보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는 호스트에게는 꽤 좋은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는 게스트(손님)의 점수도 호스트(주인)가 매길 수 있다는 점!은 놀랐다. 난 몰랐다ㅋㅋㅋ 호스트들끼리도 공유할 수 있는 다양한 세계가 있었구나.

누구나 제 2의 집,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우리 가족만의 탁 트인 공간을 갖고 싶어한다. 그와중에 수익까지 덤으로 따라온다면 두 말할 나위 없이 좋겠다. 에어비앤비 세계의 Q&A를 정확히 짚어 주고 독자들(새로운 호스트)들을 응원하는 책이지만 사실 결단이 제일 어렵다.

직장도 손에 쥐고 얼마든지 에어비앤비로 제 2의 연봉을 꿈꿀 수 있다라는 건 분명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매력적인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다. '나도 한번?'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을 권한다. 에어비앤비 공식 1:1 무료 코칭 시스템도 있다하니 적극 활용해 보아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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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결국 우리 가족이 원하는 것이 게스트에게도 좋겠다는 결론에 닿았습니다. 안전, 마당, 프라이버시가 강릉 마당집을 꾸밀 때의 콘셉트입니다. 집을 알아볼 때 자신의 콘셉트를 가지고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90. 목적지로서의 스테이 자체 특성을 살리면 '일부러 찾아오는' 게스트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입지가 좋지 않은 곳에 있는 스테이는 반드시 특징이 있어야 한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92. 에어비앤비를 잘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저는 '실행력' '모르는 것을 학습하려는 자세' '다른 사람의 의견과 생각에 공감하는 태도' 이 세 가지를 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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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니시드
김도윤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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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BIFF 부산스토리마켓 IP 선정작"으로 이름을 올린 소설! 영상화로의 가능성을 이미 입증한 소설이다. 화제의 소설인 만큼 역시나 재미있다. 꽤 묵직한 책인데도 빨리 읽어낼 수밖에 없다. 오랜만에 느끼는 페이지 터너 소설. 서사도 탄탄하고 인물묘사도 섬세해서 빨려 들어간다 그냥.

남편의 비밀스러운 순간을 우연히 보게 된 아내는 못 본 일로 덮어두기로 한다. 오로지 나를 위해, 내 아이들을 위해. 그 일 이후 갑작스레 사라진 남편, 10년 후 아들마저 사라지게 되는데... 순간의 선택이 얼마나 많은 일의 연결고리가 되는지 머리가 복잡하다. 하지만 소설 마지막에는 내가 했던 그 선택들이 누군가의 교묘한 설계속에 '그렇게 되어질 수밖에 없었던 일'이었던 것도 같다.

극중 화자는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연정하"다. 평수가 다양하게 존재하는 아파트에 살면서 겪게 되는 불편감, 이웃들과의 소통 부재, 자존감 따위는 한 방울도 없는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남편, 그리고 타인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실감나서 속이 시원하기도 하면서 가슴이 답답하기도 했다. 연정하가 사는 현실은 얼마나 외롭고 고독하고 감옥 같았을까.

애정 없는 결혼 생활,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살아야만 했던 현실들이 이미 지옥같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고통만 안겨줬던 현실 속에서 나를 지켜줘야 할 마땅한 보호자가 없이 컸던 정하는, 자식에게 자신과 같은 삶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애쓰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가족에게 필요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배려라고 생각해서 표현하지 않았던, 표현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쌓여서 그 작은 틈이 영원히 메워지지 않았던 건 아닐까? 하긴 소통의 부재만으로 설명 되기에는 정하의 첫 번째 남편 오원우가 너무 무책임하고 이기적이고 찌질한 새끼이긴 하다. 마지막까지도 인간말종이었던 정하의 전 남편 오원우.

사실 완독을 하고 나서도 마음이 복잡한 소설. 너무나 재미있고 빨리 읽히지만 끝무렵엔 읭? 하게 되는 여운이 자꾸 남는다. 정하는 자신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애정과 표현이 넘치는 새로운 남편을 만나게 되는데 이게 그렇게 해피엔딩 같지는 않아 보이는 게 내 찜찜함의 원인. 원우는 원우대로 파렴치하지만 우성은 우성대로...무섭다 나는. 한 놈은 무책임함의 극치고 한 놈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잘 포장되었지만 집착과 광기의 수준으로밖에 안보인다. 어디까지가 사랑인지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왠지 속편이 나온다고 해도 재미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정하와 우성의 뒷 이야기, 사라진 아들과 전남편의 행방, 나머지 자식들의 더 자세한 이야기들, 카메오로 자영이 엄마의 이야기까지. 나혼자 너무 깊게 가나?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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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남편이 밖에서 무슨 일을 저지렀든 위험이 나와 아이들에게까지 미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차올랐다. 고민은 불과 몇 초였다. 난 그 몇 초의 마지막 초침이 채 움직이기도 전에 결심했다. 모르는 척을 하기로. 내가 모르고 아이들이 모르면 아무도 모르는 거다. 무슨 일이 있었든지 간에 그건 남편 혼자만의 일이었다.

95. 이런 모임을 만들어서 모이는 사람들은 뭘까. 영어 공부를 핑계로 연애를 하고 싶은 걸까. 단합을 핑계로 술을 마시고 싶은 걸까. 자기만족을 위해서 만드는 연극과 죽을 맞춰주러 온 사람들. 초등학교 학예회만도 못한 공연을 선보이고도 무대에 섰다는 것만으로 스타가 된 것처럼 착각하면서 들뜨는 사람들. 축하를 하면서 자기들도 무대 위의 '특별한' 사람들과 일행이라는 것을 은근히 드러내고 우쭐함에 취하는 사람들.

103. 문학도라는 것은 낭만적이지 않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우수에 젖은 남자는 현실에서는 절대로 남자 주인공 역할을 꿰찰 수 없다. 자격 미달이니까. 당장 먹고살 게 걱정인데 앵무새처럼 시를 읊어대는 남자를 두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할 여자는 없다.

206. 모르는 척하고 물었다. 잘난 척 떠드는 사람 앞에서 바보인 척 연기하기. 그러면 상대방은 적선하듯이 말을 풀어놓는다.

214. 완벽하게 맞아서 꽉 채워진 퍼즐의 판 같은 가정이 세상에 있기는 한 것일까. 그런 가정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결국 외부에서 볼 때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가정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은 아무도 모른다.

218. 몹시, 몹시도 슬펐다. 앞 동 남자의 호의를 받으면서 나는 그제야 깨달았던 것이다. 남편은 나와 아이들을 위해서 간식 한 번을 사 온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제 아빠에게 불평 한마디 없었다. 혹자는 아이들이 잘 교육되었다고 여기겠지만 그건 아니다. 아이들은 제 아빠의 무관심에 익숙했을 뿐이다.

267. 돈을 많이 쓴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새 남편과 백화점을 걷는 동안 긴 시간 마음에 담아두었던 억하심정도, 억울함도, 언젠가 꼭 되갚아 주겠다고 곱씹고 곱씹던 악한 감정들도, 미처 깨닫기도 전에 나의 마음속에서 지워져 버렸다. 돈이 있으면 사람이 착해진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329. 나는 너무 오랫동안 아물지 않은 상처를 숨겨왔다. 상처를 좀 더 일찍 드러냈어야 했다. 실질적 보호자가 없는 나를 보호해 줄 존재는 오로지 나였는데 방어하기 위한 방법으로 나를 학대하는 쪽을 택했다. 어리석었다. 결국 비뚤어지고 모나게 된 것은 나였다.



#김도윤 #배니시드 #팩토리나인 #쌤앤파커스
#소설책 #소설추천 #스릴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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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인간
구희 지음, 이유진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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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사람 모두가 필독해야 할 책이다. 기후와 환경에는 항상 관심이 많아서 관련 서적을 종종 읽긴 했는데 가장 가독성이 좋아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고 내용도 알차다.

최근에 계속 대두되는 기후위기에 대해서 귀엽고 아기자기한 웹툰으로 '구희'의 일상을 그린다.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된 주인공은 이제 더이상 이전의 상태로 살 수는 없다. 그렇다고 또 환경에 해악을 끼치지 않는 완벽한 삶을 살 수도 없다. 우리는 이미 존재만으로도 탄소를 뿜어내고 있다.

소비를 부추기는 사회 문화, 친환경이라는 말로 눈가림만 할 뿐인 거대 기업들, 조경이나 미학을 위한 불필요한 거리 설치물들, 육식 문화.. 사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환경을 해치고 있다. 일회용품을 쓰게 될 때는 항상 찜찜하고 불편한 마음은 들지만 어떤 식으로, 어떻게 환경에 도움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 제대로 몰랐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작가는 이야기한다. 너무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나 알고 실행하는 것과 여전히 모른 채 사는 것과는 분명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재활용을 잘 하는 것, 그것만으로 환경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재활용을 해야 하는 물건들을 애초에 소비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배달 음식 한 번에 무수히 사용되고 쉽게 버려지는(재활용되는) 물건들을 보면서 마음의 불편함을 느끼고 소비 자체를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육식을 줄이고 전기와 물도 아끼고 쓰레기를 만들어내지 않는 삶을 위해 개개인의 목소리가 쌓이고 쌓여 결국 정부와 거대 기업에서부터 서서히 바뀌어 나가야 한다.

친환경을 위해 텀블러를 십수 개 사는 것, 환경을 위한 에코백이 수없이 만들어지고 쓰임 없이 버려지는 행태는 대체 어떤 환경을 위한 일인지 모르겠다. 우리 개개인 모두 제대로 알고 더 '잘' 살기 위해 더이상의 노력을 늦추지 않아야겠다. 개개인이 계속 목소리를 내고 전 세계적인 움직임을 만들어 나가야 할 때이다.정말 모두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기후위기는 우리 모두의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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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조만간 계절의 아름다움은 동화책에서나 존재하게 될지도 몰라요. 우리가 알던 봄의 모습은 변했고 심지어 봄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봄바람의 따뜻함이 달갑지만은 않습니다. 올해 여름은 또 얼마나 더울까? 다가올 날씨를 걱정하는 나 비정상인가요?

80. '기후위기', '환경보호' 사람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단어다. 멀쩡하게 잘만 사는 내게 현실을 들이민다. 솔직히 모른 척하고 싶다. 살던 대로 사는 게 편하니까. 그러나 모르던 시절의 나로 살 수도 없다. 나는 어디까지 외면할 수 있을까? 기후위기 시대, 나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내가 살던 그대로 사느냐. 알게 된 만큼 변화하며 사느냐.

118. 대멸종 시기에는 언제나 급격한 '기후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지금, 지구는 이산화탄소 증가로 급격한 기후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그럼 요새 지구에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탄소량이 늘었나요? 바로,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와 산업의 발전 때문입니다. 자연 상태에서는 재해가 일어나지 않는 한 이산화탄소가 크게 발생하지 않는데 인간이 그 재해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게 들으면, 산업혁명 시기부터 지구온난화가 시작됐다고 생각하겠지만 배출된 탄소 중 절반 이상이 불과 30년 사이에 배출되었다고 합니다.

185. 고기와 생선을 먹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라 생각하는 게 야생동물들도 동물을 사냥해 먹고 예전 조상들도 수렵해서 먹었으니까. 지금 다만 우리는..너무 많이 먹고 있지. 그러니까 싸고 쉽게 많-이 고기를 얻기 위해 이루어지는 공장식 축산이 제일 문제라는 거지? 저렴해지니 온갖 음식, 가공식품에 들어가고...흔하고 간편한데 심지어 맛있다고 생각하는 걸 어떻게 자제하지?

280. 욕망에 따라 사회는 더 빨리, 더 많이 생산했다. 욕망과 탄소 배출량은 비례했다. 수단을 가리지 않는 욕망은 자연을 고갈시켰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풍요롭게! 더 '잘' 살아보려는 우리 인간들의 오랜 욕망은 어쩌면 '기후위기'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324.쓸데없는 자원 낭비보다 더 걱정인 건 계절마다 갈대숲을 밀어버리는 일이다. 다큐멘터리 속 뱁새는 분명 갈대숲에 둥지를 틀었다. 지저분하다며 밀어버리는 갈대숲은 뱁새의 서식지이다. 서식지가 사라지면 새들이 사라질 것이고, 오히려 모기와 날벌레가 늘어날 것이다. 벌레가 많아지니 이번엔 살충제를 뿌린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조경 관리일까?

354.고기뿐일까요. 사실 제 일상은 이런 타협과 후회의 연속입니다. 전 모순적입니다. 과성장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트렌드에 가슴이 설레고 급할 땐 택시를 타기도 하고 보상심리로 소비를 하기도 합니다. 환경을 파괴한다는 아보카도, 아몬드, 커피를 포기하지 못합니다.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신념대로 '완벽하게' 살 수는 없다는 걸요. 그럼에도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기후 문제는 단지 환경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모순덩어리입니다. 존재 자체로 탄소를 배출하고, 쓰레기를 만듭니다. 그 사실이 저를 괴롭게 합니다. 하지만 그러므로 더, 덜 부끄러운 삶을 살고 싶습니다.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인간의 삶에서 모순을 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그렇다면 '최선을 다하는 자'가 가장 아름다울 테니까요. 허무주의는 세상을 바꿀 수 없어요. 삶은 어쨌든 계속되니까요. 그러니 환경에 대해 말하는 것을 눈치보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모두 모순적이고 서로를 헐뜯기엔 남은 시간이 아까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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