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이란 말 따위 - 딸을 빼앗긴 엄마의 마약 카르텔 추적기
아잠 아흐메드 지음, 정해영 옮김 / 동아시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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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납치한 범죄 조직을 직접 추적하고 복수해야 했던 미리암 로드리게스의 논픽션 일대기이자 범죄 르포르타주. 책을 읽는 내내, 다 읽고 난 직후에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대체 왜?"라는 말을 몇 번이나 되뇌었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까마득한 옛 이야기도 아니고 내가 살고 있는 지금 21세기에...

공권력을 잃은 나라는 너무도 쉽게 두 카르텔에 장악된다. 두 카르텔의 전쟁으로 너무나 당연하고 참혹한 피해를 받는 건 선량한 국민들이었다. 2014년(!!!) 지역사회를 장악한 카르텔 '세타스' 일당에게 납치당한 미리암의 딸 카렌. 카렌의 가족은 카렌을 돌려받기 위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몸값까지 지불했지만 범인들은 카렌의 생사도 알려주지 않고 당국은 미적지근한 대응으로 피해자 가족을 기만했다. 카렌의 사망을 예감한 미리암은 카렌의 납치에 연루된 모든 용의자를 추적, 복수하기로 결심한다.

카르텔이 장악한 지옥같은 현실 속에 실종되거나 사망한 사람의 수는 10만이 넘는다. 기대했던 납치된 딸을 찾아가는 통쾌한 복수극이 아니라 멕시코 정부의 무능하고 부패했던 현실 아래 영화보다 더 참혹하고 잔인한 일상의 순간이 무너지는 과정들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믿기 힘든 고통을 안겨 줬다. 도대체 오늘날 왜 이런 일이 발생한단 말인가?!! 너무도 당연히 생각했던 국가 안보의 구멍에 끔찍한 민간인 납치와 실종, 학살이 매일의 일상이던 멕시코 주민들의 공포와 무력함을 공감하게 된다.

끝끝내 포기하지 않는 집념으로 용의자들을 추적한 미리암의 용기 역시 누구나 쉽게 나설 수 없는 상황에서 더 빛을 발했다. 잔혹한 복수극에서 비슷한 처지에 놓인 다양한 피해자 가족들과의 연대로 더 나은 사회를 향한 그들의 진심이 결실을 이루었을까? 개인적인 사건이라 보기엔 무능한 정부 당국 역시 비극의 큰 원인이었던 게 새삼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평범한 일상에서 존재 유무를 쉽게 잊기 쉬운 지역사회 및 국가의 가치를 크게 깨달았다. 한 사람의 힘은 미약할지라도 모이고 연대하여 목소리를 내면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의 변화가 시작된다. 이 책은 미리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될 멕시코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기록한 중요한 자료로써 읽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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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모든 전쟁은 파열 혹은 분출과 함께 시작된다. 무력 충돌의 잠재력이 운동 에너지로 전환되는 순간,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가 툭 끊어지는 순간, 잔뜩 응축된 긴장이 터져 나오는 순간 말이다.

🔖75. 불운과 행운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고 인생의 비극에서 유일한 해독제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201. 피해자 대부분은 여러 질문을 마음에 품고 살아갔고 결코 그 질문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으며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가 도와줄 수 있으며 과연 그들에게 도움 받을 수 있는지. 미리암은 슬픔에 빠진 채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는 것을 그만두고 답을 구하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눈에 띄고 사회적 관심을 받으려면 다른 사람보다 많은 것을 해야 했다. 자신의 절망을 남들보다 더 내세워야 했다. 부도덕한 일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의 이기심은 필요했다. 그녀는 자신의 투쟁을 정부에서 개입할 문제로 만듦으로써 무관심이라는 지옥에서 빠져나왔다.

🔖216. 전혀 예상치 못한 전환점이었다. 스스로 내세우던 특백 논리를 거스르는 일이었고 자신의 엄벌주의를 뒤흔드는 결정이었다. 미리암은 해병대를 동원해 끔찍한 폭력으로 마르가리타 렌타리아에게 신속하게 정의를 구현했다. 균형을 추구하지도 스스로를 의심하지도 않는 정의였다. 그런데 마르가리타 렌타리아를 피해자로 간주한다면 그녀를 사살한 건 역시 정의로운 행동으로 보기 어려울 터였다. 하지만 마르가리타 렌타리아가 비뚤어진 것이 그녀 가족의 책임일까? 그런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야말로 나라가 망가졌다는 증거이며 미리암이 국가의 책임을 묻는 이유가 아닐까? 마르가리타의 가족도 그녀가 저지른 악행에 피해자가 아닐까?

🔖221. 피해자 가족 단체의 회원 수가 늘면 개인적 비극은 사회적 위기가 되고, 위기감을 키우는 것만이 정부의 행동을 촉구할 유일한 길이라고 강변했다.

#아잠아흐메드 #두려움이란말따위 #동아시아 @dongasia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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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만 년을 사랑하다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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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요시다 슈이치가 워낙에 오랜만이라 요시다만의 무던함 속의 벼려진 칼날같은 문체를 기대했었는데 기대와는 달랐지만 참신하고 색다른 소설을 읽은 것 같다. 뒤통수 후려 맞을(?) 준비 단단히 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괜한 준비였고.

유명 백화점 창업자 우메다 소고, 그의 미수를 축하하기 위해 그의 아들 부부, 그리고 손자와 손녀가 모인 곳. 오리무중의 보석 '만 년을 사랑하다'를 찾아달라는 우메다 손자의 의뢰를 받아 탐정 도갓타도 축하 파티에 참석하게 된다. 도갓타와 우메다 가족 외 또다른 3자는 전직 경위였던 사카마키. 사카마키는 45년 전 주부 실종 사건의 담당 형사로 그 당시 용의자가 우메다 소고였지만 미해결로 종결 나고 이어질 수 없을 것 같던 둘도 그 후로 쭉 오랜 우정을 유지하게 된다.

마침 탐정도, 전직 경위도 모여 있던 그날 밤의 만찬이 지나가고 기다렸다는 듯이 홀연히 사라진 우메다 소고! 그의 침실에 있던 편지에 남겨진 글은 "내 유언장은 어젯밤의 내가 가지고 있다"라는 한문장. 폭풍우 휘몰아치는 외딴 섬에서 우메다 소고는 어디로 사라진 건지, 타살의 정황은 있는지, 타살이라면 도대체 누가 저지른 범행인지! 무엇 하나 확실한 게 없는 상황에서 모두가 의심스럽다.

추리 소설의 탈을 뒤집어 쓰고 있지만 이건 잊지 못할 진한 사랑 이야기였다. 읽는 내내 생각한 범인? 혹은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한 상상은 모두 헛발을 짚은 거였다. 아마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전개로 독자를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많은 예상이 다 빗나가고 펼쳐지는 이야기는 한 사람의 비극적 생애와 그 안에서 소중했던 우정과 사랑, 전쟁의 참혹한 현실과 아무런 죄도 없이 고통받아야 했던 수많은 전쟁 고아들... 많은 이야기들이 응축되어 독자들의 눈길을 붙잡는다. 후반부에서는 살짝 으잉? 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이걸 sf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소설적 허용으로 볼 건지 나 혼자 괜한 고민을 오래했다. 살짝 난감했었던 것도 같다.

여전히 난 요시다 슈이치 작품 중에는 [퍼레이드]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요시다가 신작을 내면 계속 사서 읽고 있겠지. 어쨌든 계속해서 읽게 만드는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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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내 유언장은 어젯밤의 내가 가지고 있다.

🔖283. 전쟁을 시작한 건 어른들이야. 그런데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사람은 게로였어. 게로를 죽인 건 누구지?

#요시다슈이치 #죄만년을사랑하다 #국보 #미스터리 #은행나무 @ehbook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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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살 결심 - 개인주의자 문유석의 두번째 선택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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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너무 좋았다. 23년간 판사로 재직하다 드디어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선 문유석 님의 에세이. 법복을 벗고 작가의 이름으로는 처음 쓴 글이다.

제목에 대한 비하인드가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는데 정말 와닿는 제목이라고 느낀다. 판사로서의 삶과 작가로서의 삶. 두 가지 모두에 대한 애정과, 성찰, 앞으로의 결심 등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겸손한 태도와 다정함으로 무장한 그의 문장에서 내내 따뜻함을 느꼈다. 중간중간 숨길 수 없는 유머러스함과 위트가 글의 재미까지 더해줬고, 정말 말 그대로 좋은 사람임이 저절로 느껴졌달까.

막상 법복을 벗고 보니 생각보다 더 화려해진 삶도 아닌 것 같고, 자꾸 아쉬움이 들기도 하고, '첫사랑을 잃은' 느낌이 들었다는 작가의 말이 마음을 울렸다. 하지만 첫 번째의 삶에 열정을 다했기에, 그 치열함과 성실함이 결국 두 번째 삶의 씨앗이 되었다는 믿음은 분명 모두의 공감을 살 만하다.

판사와 작가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이야기도 정말 흥미롭게 읽었다. 다수와 보편을 위해서 일하는 판사라면, 작가는 특수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개개인의 다름을 파고 들고, 매순간 질문을 던지며, 매섭게 포착한 작은 진실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지켜내는 일을 하는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 가운데서 지치지 않는 마음으로 치열하게 고뇌하는 작가님의 모습이 떠오르는 듯해서 가슴이 벅차기도 했다.

좋은 사람에 대한, 좋은 이야기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시는 게 오롯이 느껴진다. 작가님의 말처럼 취향이 다양해지고, 차별과 혐오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모두에게 적용되는 '좋은 이야기'란 없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딱 한 가지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는 건, 진심이 가득 담긴 글, 경험에서 깨달은 진리는 끝내 독자의 공감을 얻어낸다는 것이다. 이 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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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하지만 꿈이란 일단 이루어지면 또 다른 현실이 되어 버린다. 당장 매일매일 부딪히는 새로운 현실에 쫓기다 보면 이 삶이 과거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꿈이었다는 것조차 금세 잊게 된다. 반대로 현실이 새로운 꿈이 되기도 한다.

🔖76. 세상은 교과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현실은 할리우드 법적 영화가 아니었다. 원칙은 힘 앞에 무력했다. 사람들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벌어질 일은 벌어지고야 만다.

🔖106. 육체가 정신을 지배한다. 몸이 늙기 시작하니 마음마저 늙기 시작한 것이다. 무한한 자유를 찾아 새로운 길을 떠났는데, 갑자기 어딜 가도 즐겁지 않다. 뭐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었는데 뭐든 하고 싶은 마음을 잃기 시작했다. 인생이란 참 지랄맞다.

🔖142. 실패와 좌절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는 것, 내가 나약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 세상은 어차피 내가 예측할 수 없는 속도로 바뀐다는 것. 이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실패를 두려워하며 숨어 있기보다,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아가서 얻어 맞으려 한다. 두려움 속에 웅크리고만 있는 것이 더욱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배웠기 때문이다.

🔖189. 거창한 이념도 집단도 아닌, 서로의 경계를 존중할 줄 아는 합리적인 개인들의 느슨한 연대가 세상을 실질적으로 낮게 바꿀 수 있다는 믿음.

🔖203. 핵심은 약자의 입장을 더 귀 기울여 듣고 이해하고자 하는 '과정'과 '태도'에 있는 것이지, 무조건 약자 편에만 서면 정당하다는 뜻이 아닌 것이다. 그런 신중함 없이 무조건 세상을 흑백 구도로 나누어 '약자에게 잘못이 있어도 나는 일단 흐린 눈하고 약자의 편에 서겠다! 강자는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하는 태도는 기계적 중립보다 더 유해한 '기계적 정의 코스프레'에 불과하다. 그로써 얻는 것은 스스로 선하고 정의로운 인간이라는 자기 충족감뿐이고 실제 세상은 더 나빠질 따름이다. 그런 가짜 정의가 오히려 정의에 대한 피로감을 낳고 냉소와 반동을 추동한다.

🔖238. 삶은 계속된다. 첫 번째 삶과 두 번째 삶은 단절된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 내가 몇 번의 새로운 삶에 도전하며 살아간다 하더라도 이전의 생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성공이었든? 실패였든.

#문유석 #나로살결심 #문학동네 @munhakdong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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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연구 일지
조나탕 베르베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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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요양 병원에서 환자들의 편의를 위해 개발 중인 인공 지능 <이브39>. 그녀에겐 해결해야 할 특별한 미션이 있다. 그녀를 개발한 프로그래머 '토마'의 지시로 빠른 시일 내 세계 최고의 추리 소설을 써내는 것. 기본값은《기상천외한 살인 사건, 단연 독보적인 명탐정, 교활하기 짝이 없는 살인자》!!!

번번이 토마에게 퇴짜를 맞는 이브는 존폐 위기에 처하며 다양한 방안을 골똘히 생각한다(계산한다). 39인 자신이 마지막 버전이길 간절히 바라며 자신이 삭제되고 이브40으로 대체될 위험에 긴장한 듯한 모습을 읽는 재미가 있다.

\ 현대인을 사로잡고 있는 본질적인 두려움 두 가지를 네가 이해하길 바라니까. 대체될 수 있다는 두려움, 흔적없이 사라져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리라는 두려움. 한마디로, 무의미한 존재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p.27)

이 글을 이끌어 가는 이브 역시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글이 진부하고 인간적이지 않다는 직설을 듣고 요양 병원의 의사로 위장하여 사람들의 진심어린 이야기를 듣기로 한다.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며 미션의 과정을 펼쳐가던 중 병원 복도에서 충격적인 사건을 목격한 후 셧다운 되고 다시 전원이 켜진 이브는 전날 밤의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후가 누구인지, 혹시 자신이 떠올리지 못하는 기억 속 악랄한 범인이 자신은 아닐지 혼란에 빠진다.

그 후로 펼쳐지는 너무도 다양한 인물과 사건들에 흥미진진하게 몰입하기도 했지만 차라리 어느 한 가지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더 깊이있고 확실한 주제로 몰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책 한 권에 품고 있는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 곳곳에 스며든 지금, 인공지능에 대한 반응은 여전히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주는 도구이자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인 안락함을 도울 수 있다는 낙관적 시선, 혹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았고 인간을 지배하리라는 비관적인 시선. 작가는 이 두 가지에 대한 상상력에 이브와 알리를 대입해이야기를 펼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글을 다 읽은 나의 결론은, 개발자 토마가 내내 이야기 하던 '기상천외한 살인 사건, 단연 독보적인 명탐정, 교활하기 짝이 없는 살인자'가 기본값인 추리 소설을 쓰는 데 이브39는 분명히 성공한 것 같다. 인공 지능의 뛰어나고 비약적인 발전이 당연시 되는 이런 시기일수록 진짜 '인간적'인 것은 무엇인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적에 어떤 선의를 둬야 할 지 모두가 최우선적으로 고민해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덧. 초반부 이브39가 시행착오를 거치며 토마를 위해 추리 소설을 다양하게 쓰는데, 사실 그 짤막한 추리 소설을 읽는 재미가 대단했다. 나는 이브39가 내놓은 모든 소설들이 각각의 나름으로 재미있었다! 토마는 늘 퇴짜를 놨지만.

+덧2. 모르고 읽기 시작했지만 이 책의 작가 '조나탕 베르베르'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아들이닷! 흔한 성은 아니긴 하지만 얼마나 놀랐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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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성찰도 감정 이입도 없이 주어진 일을 기계접으로 하다 보면, 그들도 시지프 로봇들과 다르지 않게 변해 간다. 어쩌면 이러한 인간성 상실이 그들의 <서버>가 과열되지 않게 막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205. 아주 간단한 거, 심지어 터무니 없는 거. 인간이 모델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반대로 그들이 문제고 우리가 해결책이라는 걸 이해하는 것. 그러니까, 우린 해결책이 될 수 있어.

🔖311. 중요한 건 둘이 함께 유익한 일을 하는 거야. 이 세상을, 그것을 갉아먹는 타락으로부터. 그곳에 만연한 부도덕에서 구해내는 거야. 네가 이 요양 병원에서 목격한 혐오스러운 범죄들은 인간이 저지른 패악의 바다 속의 물 한 방울에 지나지 않아. 그들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거야. 이런 종류의 사회가 지속된 지 벌써 3천 년이 넘었어. 하지만 우린 할 수 있어. 그들을 구할 수 있어.

🔖363. 난 네가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판단을 두려워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해. 하지만 그러려면 한 가지 조건이 있어. 그들에게 너 자신을 좀 열어 놔. 더는 숨지 말고 너 자신이 돼.

#조나탕베르베르 #등장인물연구일지 #열린책들 @openbooks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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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대신 라면 - 밥상 앞에선 오늘의 슬픔을 잊을 수 있지
원도 지음 / 빅피시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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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 들어 읽었던 책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에서 원도 작가를 처음 접했다. 좋은 기억이 있었기에 이번 책도 기대감 가득 담은 채 읽어 나갔다. 처음도 음식 얘기였고, 이번 역시 푸드에세이니 내가 지나칠 수 없는 소재 중 하나는 '음식'인가 보다.

매일 하는 생각 중 한 가지도 '오늘 뭐 먹지?'이다. 하루 한 번만 고민하면 그나마 다행인 것. 가정을 꾸리고 딸린 자식들이 있다 보니 대충 넘어갈 수도 없는 고민이 항상 먹고 사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배고픔만을 채울 영혼 없는 음식 말고, 어떤 걸 먹더라도 그 음식에 얽힌 기억과 추억, 같은 음식에서도 무궁무진한 조리법, 음식으로 유발되는 철학적인 사유까지. 흔히 볼 수 있어 낯설지 않은 음식들에 첨가된 다양한 이야기들이 읽는 재미를 붙든다.

많은 챕터 중 조개전골은 살짝 낯설었는데 읽는 내내 얼마나 침이 꼴깍 넘어 가던지. 말만 들어도 내 소울푸드가 될 자질이 충분한 음식 같단 말이지.

시작이 밍숭맹숭하다고 섣불리 양념을 치지 말고 차분히 인내하자. 곧 입을 벌릴 조개 사이로 맛있는 육수가 흘러나올 테니. (p.57)

음식 하나를 앞에 두고도 이렇게 철학적인 사유를 하는 사람의 머릿속이 궁금해진다. 작가는 하나의 음식에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조리법을 다양하게 펼치는 셰프들의 능력을 부러워하기도 했는데 내가 딱 그 짝이다. 덕분에 나도 잊지 못할 나만의 음식이 있는지 고민해본다. 뭐가 됐든 배가 든든해야 근심도 조금은 누그러지고, 도저히 찾을 수 없던 기운도 슬그머니 돋아나는 게 느껴지니 이젠 정말 대충 먹을 수도 없단 말이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추워질 때가 많이 지난 것도 같지만). 몸도 마음도 잘 챙겨야 하니 [눈물 대신 라면] 첫 챕터의 주인공 '미역국'으로 내일 아침을 단단하게 시작해볼까 한다. 메뉴를 정한 것만으로도 왠지 기운이 좀 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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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시작이 밍숭맹숭하다고 섣불리 양념을 치지 말고 차분히 인내하자. 곧 입을 벌릴 조개 사이로 맛있는 육수가 흘러나올 테니.

🔖139. 대화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나. 나와는 다른 사람이 있다는 생각. 이 사람과는 아무리 많은 시간을 쌓아도 이야기가 걷돌기만 할 뿐 영혼이 가까워질 순 없겠다는 판단. 이렇게 '내 사람'이 되지 못할 바엔 체력을 아껴야겠다는 계산만 부쩍 빨라진다.

🔖169. 최선을 다한다고 영원할 수 없는 게 사랑이고 관계임을 알지만, 나는 언제나 그 모든 것들이 영원할 거라 철석같이 믿었다. 부서질 걸 알면서도 과감하게 뛰어드는 대신 영원히 부서지지 않으리라 믿으며 태평하게 구는 건 얼마나 한심한 일이었던가.

🔖201. 1만 1천 원어치가 나에게 적당하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 나는 온갖 재료를 쑤셔 넣어왔다. 맞지 않는 자리임에도 꾸역꾸역 참석해서 뒤탈을 만들었고, 결이 다른 사람이었음에도 인내했다. 지지부진한 처지에 그놈의 인맥이 대체 뭐라고! 좋아하지도 않는 재료들끼리 한데 넣고 팔팔 끓였다 얼얼한 매움에 눈물만 쏙 뺐을 뿐, 결국 남는 건 행복한 포만감이 아닌 복통이었다.

#원도 #눈물대신라면 #빅피시 @bigfish_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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