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은일기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설익은 인생 성장기
작은콩 지음 / 스튜디오오드리 / 2025년 12월
평점 :
"어떤 모습이라도 오늘의 날 사랑하고 싶어."
이 문장을 자연스럽게 내뱉기 위해 작가는 얼마나 수많은 고통과 불안 속에서 일상을 헤맸을까. 노력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뒤처질 것 같아 잠을 줄이고 자신을 갉아 먹으면서도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던 작가는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을 자가 면역 질환을 얻게 된다.
완치라는 단어가 없는 류머티즘성 관절염을 20대에 얻어 10년째 병과 함께 고군분투하는 일상의 모습. 공부만 했던 학창시절, 꿈에 부풀었던 원하는 대학교에서의 생활, 창창할 커리어를 앞두고 모든 게 물거품이 되어 버린 그 상실감을 도대체 누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살고 싶지 않았을 시기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는 과정이 덤덤하게 그려져서 너무 좋았다. 너무 감정에 호소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게 담백한 문체와 솔직한 그림으로 표현한 작가의 내공이 느껴진다. 남들과 비슷한 성공의 정의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공감을 해주는 많은 사람과 일상을 나눈다는 건 정말 기쁨이라는 생각을 한다. 성과와 결과만을 수치로 운운하는 팍팍한 세상에서 이런 책은 정말이지 따스한 위로가 된다.
작가의 처지를 디딤돌 삼아 내 일상을 비교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작은콩 작가의 설익은 서른을, 앞으로 다가 올 수많은 시간들을 조용하지만 열렬히 응원하고 싶다.
⋱⋰ ⋱⋰ ⋱⋰ ⋱⋰ ⋱⋰ ⋱⋰ ⋱⋰ ⋱⋰ ⋱⋰ ⋱⋰ ⋱⋰⋱⋰ ⋱⋰
🔖7. 난, 사람들을 겉모습만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나이가 적든, 많든. 밝게 행동하든, 아니든.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내 병처럼 다들 숨겨진 아픔 하나쯤 갖고 있을 테니까.
🔖105. 그동안 저는 운동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남보다 더 무거운 중량으로, 더 오래해야 한다는 강박은 건강한 자기 관리가 아니라 나 자신을 괴롭히는 또 다른 형태의 학대였습니다.
🔖210. 기다리는 일은 어렵습니다. 때론 선택과 도전보다 더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첫째로는 사랑하는 것이 언젠가 나를 찾아올 거라는 '상대에 대한' 믿음, 둘째로는 설령 아무도 오지 않더라도 혼자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자신에 대한' 믿음 말이죠. 하지만 어렵더라도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더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쉬운 선택' 대신 '옳은 선택'이 필요했으니까요. 기다림은 수동적인 약한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진정으로 믿어야 할 수 있는 강한 일이었습니다.
🔖232. 병을 만나고 깨달았습니다. 삶은 어떤 담보를 걸어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을요. 언젠가 가야지 하던 여행지는 불이 나서 사라졌고, 나중에 먹어야지 하던 식당은 문을 닫았습니다. 언젠가 보려던 전시는 끝나 버렸고요. 미루며 기약했던 그 언젠가가 왔을 때쯤 제 몸은 이미 고장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많지만, 일 등이 되긴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할 일을 미룰 수 없는 이유입니다.
🔖246. 투자의 다른 이름은 선택입니다.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포기할지 인생도 같습니다. 모든 선택엔 대가가 따르고, 그래서 우리는 늘 비교합니다. 그 과정은 정답이 없기에 자신을 모르면 남의 기준에 휘둘릴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의 시선을 따라가면 그들의 인정이 있어야만 나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진짜 자신은 점점 희미해지죠. 하지만 진정으로 날 알아주어야 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입니다.
🔖279. 어쩌면 등산의 목적은 정상에 도달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경쟁자를 제치고 누구보다 더 빨리 제일 높은 곳에 올라간 그 순간은 짜릿하겠지만 결국 그 후에는 그보다 더 높은 오르막을 마주하거나 내리막만 남게 되니까. 그보다는 힘든 시기에도 예쁜 단풍, 까먹은 도시락, 작은 기쁨들을 지렛대 삼아 흑투성이 먼지 길이라도 끝까지 견뎌내는 과정, 그 자체가 이미 목적이자 진짜 의미가 아닐까? 그러다 보면 어떤 고통도 다 지나가고 언젠가 또다시 좋은 순간이 온다.
#작은콩 #설은일기 #스튜디오오드리 #오팬하우스 @ofanhouse.offic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