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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딩 - 그곳에 회색고래가 있다
도린 커닝햄 지음, 조은아 옮김 / 멀리깊이 / 2025년 7월
평점 :
BBC 기후 전문기자로 일했던 작가 도린 커닝햄은 아이를 낳고 모든 걸 잃는다. 전 남자친구와의 양육권 문제로 모아놓은 돈을 다 써버리고, 직장까지 잃고, 친구들과도 멀어지며 완벽하게 혼자가 되어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한다.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곳보다 더한 상황이 내게 들이닥칠 때,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상상만으로도 숨통을 조여오는 악재들 속에서 도린은 주저앉아 낙담하기보다 일어나 움직이려 한다. 도린을 강하게 사로잡은 목표는 두 살배기 아들 맥스와 회색고래의 여정을 따라 가보는 것.
돈도, 직장도 다 잃은 그녀는 실직을 숨기고 은행에서 최대치로 대출을 받아 북극으로 떠난다. 책 초반부 그녀의 움직임을 보고 너무 무모한 행위가 아닌가 지레 겁부터 먹었던 나. 미래에 대한 어떤 준비도 없이 저렇게 무작정, 게다가 어린 아들까지 둔 사람의 행동으로 올바른가 나혼자 별별 생각을 다했다. 세상의 눈이 두렵고 겁이 많은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녀의 도전에 새삼 의아하고 두려우면서도 막연히 설레기도 했던 것 같다.
도린은 기자로 일하던 7년 전에도 고래를 쫓는 이들과 함께 나눈 경험을 가지고 있었으며 아마 바닥을 치는 힘든 상황 속의 무의식이 그녀를 고래에게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들까지 함께 한 고래와의 여정에서 만난 원주민들, 눈으로 보고 느낀 기후위기의 적나라한 순간, 여성으로 마주하는 고난과 역경, 놓지 못할 모성까지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들을 그저 묵묵하고 담담하게 늘어 놓는다. 목놓아 소리치지도 않고 강요하지도 않으며 차분하고 잔잔하게. 16000km의 여정을 떠난 도린의 하루하루를 옆에서 지켜보며 묵직하게 다가오는 메시지들을 느낀다. 자연, 모성, 기후위기를 멋지게 묶고 엮어서 한 편의 아름답고 찬란한 이야기로 만들어낸 작가가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역경이 몰아쳐 멀리 어딘가로 내던져질 것만 같은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도린의 여정을 떠올리면 마음 한 켠이 뜨끈하게 아려오는 것 같다. 무엇을 두려워 했나, 뭐가 그렇게 겁이 났던가 되새기게 되는 시간이었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힘든 순간에 분명한 위로가 되어주는 책.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는 어디로든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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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맥스는 내가 실패라고 여기는 것에 동요하지 않고 나보다 더 나를 믿는다. 그리고 나는 그 기대에 맞춰 성장하고 있다. 도대체 실패라는 게 무엇인가? 그것은 나 혼자만의 판단일 뿐이다.
🔖349. 내 기억에 고래들은 희망이나 절망에 흔들리지 않고,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는다. 그들은 삶과 매 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끊임없이 움직인다. 혼자의 힘으로 어린 자식을 데리고 세상 끝까지 헤엄쳐 간다.
#도린커닝햄 #사운딩 #멀리깊이 @murly_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