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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살 결심 - 개인주의자 문유석의 두번째 선택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평점 :
아, 너무 좋았다. 23년간 판사로 재직하다 드디어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선 문유석 님의 에세이. 법복을 벗고 작가의 이름으로는 처음 쓴 글이다.
제목에 대한 비하인드가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는데 정말 와닿는 제목이라고 느낀다. 판사로서의 삶과 작가로서의 삶. 두 가지 모두에 대한 애정과, 성찰, 앞으로의 결심 등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겸손한 태도와 다정함으로 무장한 그의 문장에서 내내 따뜻함을 느꼈다. 중간중간 숨길 수 없는 유머러스함과 위트가 글의 재미까지 더해줬고, 정말 말 그대로 좋은 사람임이 저절로 느껴졌달까.
막상 법복을 벗고 보니 생각보다 더 화려해진 삶도 아닌 것 같고, 자꾸 아쉬움이 들기도 하고, '첫사랑을 잃은' 느낌이 들었다는 작가의 말이 마음을 울렸다. 하지만 첫 번째의 삶에 열정을 다했기에, 그 치열함과 성실함이 결국 두 번째 삶의 씨앗이 되었다는 믿음은 분명 모두의 공감을 살 만하다.
판사와 작가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이야기도 정말 흥미롭게 읽었다. 다수와 보편을 위해서 일하는 판사라면, 작가는 특수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개개인의 다름을 파고 들고, 매순간 질문을 던지며, 매섭게 포착한 작은 진실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지켜내는 일을 하는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 가운데서 지치지 않는 마음으로 치열하게 고뇌하는 작가님의 모습이 떠오르는 듯해서 가슴이 벅차기도 했다.
좋은 사람에 대한, 좋은 이야기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시는 게 오롯이 느껴진다. 작가님의 말처럼 취향이 다양해지고, 차별과 혐오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모두에게 적용되는 '좋은 이야기'란 없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딱 한 가지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는 건, 진심이 가득 담긴 글, 경험에서 깨달은 진리는 끝내 독자의 공감을 얻어낸다는 것이다. 이 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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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하지만 꿈이란 일단 이루어지면 또 다른 현실이 되어 버린다. 당장 매일매일 부딪히는 새로운 현실에 쫓기다 보면 이 삶이 과거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꿈이었다는 것조차 금세 잊게 된다. 반대로 현실이 새로운 꿈이 되기도 한다.
🔖76. 세상은 교과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현실은 할리우드 법적 영화가 아니었다. 원칙은 힘 앞에 무력했다. 사람들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벌어질 일은 벌어지고야 만다.
🔖106. 육체가 정신을 지배한다. 몸이 늙기 시작하니 마음마저 늙기 시작한 것이다. 무한한 자유를 찾아 새로운 길을 떠났는데, 갑자기 어딜 가도 즐겁지 않다. 뭐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었는데 뭐든 하고 싶은 마음을 잃기 시작했다. 인생이란 참 지랄맞다.
🔖142. 실패와 좌절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는 것, 내가 나약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 세상은 어차피 내가 예측할 수 없는 속도로 바뀐다는 것. 이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실패를 두려워하며 숨어 있기보다,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아가서 얻어 맞으려 한다. 두려움 속에 웅크리고만 있는 것이 더욱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배웠기 때문이다.
🔖189. 거창한 이념도 집단도 아닌, 서로의 경계를 존중할 줄 아는 합리적인 개인들의 느슨한 연대가 세상을 실질적으로 낮게 바꿀 수 있다는 믿음.
🔖203. 핵심은 약자의 입장을 더 귀 기울여 듣고 이해하고자 하는 '과정'과 '태도'에 있는 것이지, 무조건 약자 편에만 서면 정당하다는 뜻이 아닌 것이다. 그런 신중함 없이 무조건 세상을 흑백 구도로 나누어 '약자에게 잘못이 있어도 나는 일단 흐린 눈하고 약자의 편에 서겠다! 강자는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하는 태도는 기계적 중립보다 더 유해한 '기계적 정의 코스프레'에 불과하다. 그로써 얻는 것은 스스로 선하고 정의로운 인간이라는 자기 충족감뿐이고 실제 세상은 더 나빠질 따름이다. 그런 가짜 정의가 오히려 정의에 대한 피로감을 낳고 냉소와 반동을 추동한다.
🔖238. 삶은 계속된다. 첫 번째 삶과 두 번째 삶은 단절된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 내가 몇 번의 새로운 삶에 도전하며 살아간다 하더라도 이전의 생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성공이었든? 실패였든.
#문유석 #나로살결심 #문학동네 @munhakdong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