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게
정영욱 지음 / 부크럼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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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나쁜 책은 없다'고 생각한다. 책으로 나오기까지의 숱한 시간과 노력, 수많은 영감과 고뇌의 흔적들을 독자라는 이유로 이러쿵 저러쿵 점수 매기고 폄하하는 게 왠지 모르게 도리(?)에 맞지 않다고 느껴진다. 개인적인 주관이라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하고 논쟁을 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취향의 차이는 있다고 생각한다. 나쁜 책은 없지만 내 취향이 아닐 수는 있는 것.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다. 작가의 전작을 보고 아무런 정보 없이 희망을 주는 밝은 책일 거라 예상했다. 이 책은 작가의 에세이며 자신을 지금에 이르게 한 과거 사랑을 낱낱이 파헤치는 비밀스런 일기 같기도 했다. 그래서 읽기 어려웠던 것이다. 나와는 자라온 환경과 처해 있는 상황, 만난 사람들의 성향도 모든 게 달랐기 때문에 처음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있다고?', '이렇게 된다고?'

하지만 결국 책을 읽는 건 나와 같은 성향만을 옹호하고자 함이 아니니 읽으면서 점차 '이런 상황도, 이런 사랑도 있을 수 있겠구나'라고 느꼈다.(어쩌면 체념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심정이었을까 헤아려 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새로운 감정을 품어볼 수도 있는 거니까.

밝은 글을 많이 쓰셔서 이런 예상치 못한 과거의 사랑(모두가 사랑이다)이 있을 거라 상상도 못했다. 어쩌면 작가의 밝음을 향하는 글들은, 다양한 시간을 쌓아온 작가의 경험들이 내보인 결실 같기도 했다. 모든 순간과 시간들은 그냥 지나가는 게 없다. 끝끝내 현재의 내 모습 곳곳에 뿌리 내리고 살아있다. 상처 나고 찢긴 과거의 시간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어냈다고 말하는 것 같은 책이었다. 그래서 과거의 시간들이 아프고 어둡지만은 않았다고 역설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책이었다.

⋱⋰ ⋱⋰ ⋱⋰ ⋱⋰ ⋱⋰ ⋱⋰ ⋱⋰ ⋱⋰ ⋱⋰ ⋱⋰ ⋱⋰⋱⋰ ⋱⋰

🔖20. 인간은 누구나 너덜너덜한 마음을 속옷처럼 숨기고 산다. 입은 한없이 더럽고 생각은 탁하다.

🔖22. 그랬던 사람만 보이는 것이다. 공감의 구조는 경험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언젠가의 나도 그랬다는 것이 증명된다. 그 말은, 아파보지 않고는 그 절뚝거림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성공을 겪어보지 않았다면 누군가의 해냄을 온전히 축하할 수도 없다. 그러니 진정으로 위로할 줄 아는 이는 그 고통을 이겨낸 적이 있는 사람이고 축복할 수 있는 이는 그만큼 누려본 적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 세상에 대한 모든 염새는 나의 악한 행보를 증명하는 셈이 된다. 진정으로 염세를 느낀다면 그것은 내 본연이 추악하기 때문이다.

🔖40. 과거는 빚과 같아 청산하지 못하면 내 삶의 부채가 되고, 빛과 같아 잊지 않고 품는다면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된다.

🔖51. 나는 결국 긍정적인 삶으로 향하기 위해 긴긴밤 속 별을 찾아 헤매었고, 누군가는 부정적인 삶에 면역하기 위해 그늘 속에서 지내는 법을 익히고 있었다.

#정영욱 #구원에게 #부크럼 @bookrum.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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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문장 쓰지 마세요 허블청소년 4
케빈 윌슨 지음, 박중서 옮김 / 허블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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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비평가의 전화를 받는 프랭키. "나는 니가 지난날 한 일을 알고 있다." 프랭키는 예상치 못한 전화로 순식간에 과거로 빨려든다. 어디에도 얘기한 적 없지만 단 한 번도 잊을 수 없던 인생의 경험. 이렇게 이 책은 첫 장부터 순식간에 몰입하게 만든다.

아빠에게 버림 받고 엄마와 쌍둥이 세 오빠와 평범해 보이는 나날을 지내고 있는 프랭키. 어느 날 우연히 마을로 이사 온 지크를 만나고 급격히 친해진다. 지크 역시 아빠의 외도로 엄마와 둘이 과거 할머니가 살던 마을로 잠시 내려왔던 것. 열여섯, 그 둘은 아빠라는 존재의 결핍과 어른이 되기 직전 소용돌이 치는 감정의 혼란 속 자기들의 인생이 지루해지지 않도록 특별한 뭔가를 반드시 만들어 내고 싶다.

글을 쓰고 싶었던 프랭키와 그림을 그리길 원했던 지크가 만나 끝내주는 포스터를 만들게 된다. 뜻도 없는 무의미한 단어들의 나열이었지만 괜히 그럴싸해 보이는 문구를 만들어 냈고 지크 역시 그 글에 어울리는 으스스한 그림까지 완성. 고장난 줄 알았던 복사기를 고쳐 포스터를 무한으로 찍어내고 작은 마을 콜필드 온 곳곳에 몰래 붙이기 시작한다.

포스터가 어떤 영향을 미칠 지 모르지만 자신들을 특별한 곳에 데려다 주길 바라는, 혹은 자신들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크와 프랭키는 멈추지 않는다. 어느 날 우연으로 시작해 포스터가 주목받기 시작하고 걷잡을 수 없이 순식간에 집단 공포가 조성되면서 청년 한 명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한다. 겁에 질린 프랭키와 지크는 결국 서로의 견해를 좁히지 못하고 서서히 멀어지는데...

사춘기 시절의 강렬한 열망, 특별해지고 싶으면서도 막상 멀리 벗어나긴 두려운 감정, 그 시기 무엇보다 제일 소중한 우정과 사랑에 달뜬 마음, 무의식에서도 결핍을 메우려는 시도, 그 모든 게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길고 긴 여정 아닐까.

매 장면마다 사춘기 시절의 날 것 같은 감정을 마주하게 되는 느낌을 받았다. 포스터로 인한 집단적인 공포와 원인 모를 선동으로 혼란스러웠던 외부 상황 역시 사춘기 시절의 복잡한 감정을 이중으로 표현한 것 같아 묵직한 재미를 안겨줬다. 그 모든 시간들이 결국 온전한 '나'를 만들어내는 끝없는 과정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소설의 결과보다는 매 순간, 매 장면 그 자체로 소중하고 귀한 이야기로 내게 남는다. 누가 프랭키와 지크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나. 그 포스터와 문장은 그 시간, 그들을 지킬 수 있는 마법 그 자체였다. 지금도 수없이 흔들릴 많은 청춘들 모두 가슴에 마법같은 문장 하나쯤 품고 살길 바라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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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나는 결연한 기분이었다. 우리가 뭔가 중요한 것을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뭔가를 통제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내가 선택을 하는 한에는 괜찮았다.

🔖50. 우리는 열여섯 살이었다. 어떻게 해야 우리의 삶이 아무도 알고 싶어하지 않을 만큼 지루한 것이 되지 않도록 막을 수 있었을까? 어떻게 해야 스스로를 특별하게 만들 수 있었을까?

🔖166. 내 생각에 지금 나는 이걸 만들면서도 동시에 좋은 사람도 남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려 하는 것 같아. 뭐랄까? 내 의도는 좋았잖아. 안 그래? 우리가 만든 것은 좋았단 말이야. 지금까지 나온 것 중에서도 최고였어.

#케빈윌슨 #내문장 #내가만든문장쓰지마세요 #허블 @hubble_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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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플
글라피라 스미스 지음, 권가람 옮김 / 바람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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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자꾸 손이 갈 책. 자주 찾아 읽을 책이다. 잔잔하고 담담한 이야기엔 스펙타클한 상황이라든지 극적인 감정 변화랄 게 딱히 없다. 그래서 처음 읽을 땐 크게 와닿는 느낌도 없이 무던하고 빠르게 읽힌다. 그런데 묘하게 다시 한 번 더 읽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 무덤덤하고도 맹맹한 듯한 이야기가. 빨리 읽었으면서도 리뷰를 쓰려니 자꾸 멈칫하게 되는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나이 든 반려견의 안락사를 앞두고 마지막 순간을 알려주려는 딸의 전화를 받은 늙은 남자는 그 상황을 피하고 싶다. 그러면서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하는 그의 가슴은 알록달록한 색채로 번져 나간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부부, 커가는 아이, 병을 얻은 아내와 잦은 출장으로 바쁜 남편, 곁에서 함께 한 반려견의 시선. 이 모든 게 어우러져 독자인 나는, 모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단조로운 일상 속에 놓인다.

처음 읽을 땐 아무 맛도 못 느끼겠다가 두 번, 세 번 읽으니 선명히 눈에 들어오는 게 있다. 대화만으로 표현되지 않았을 그들의 속마음과 그들을 항상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던 반려견 트러플. 흘린 듯 섬세한 일러스트, 화려하고도 먹먹한 색채의 대비가 마음을 한참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기쁜 일도 잠시, 어쩌면 슬픈 일도 찰나고 그런 특별한 순간들이 지나고 나면 길고도 지루한 일상이 남는다. 그 일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지나가야 하는지 반려견 트러플의 시선으로 좀 더 명확히 깨닫게 되는 것 같았다.

긴 문장이 아닌 하나의 이미지로 더 선명히 전달되는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그 이미지에 담긴 일상의 고난함과 권태감, 그럼에도 온기를 잃지 않는 관계를 지켜나가기 위한 서로의 노력, 표현의 의미 등을 읽었다. 이미지에 대한 해석은 책을 접할 때마다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고 정답 역시 없을 것 같다. 정답을 찾는 느낌이 아닌, 그때 그때의 내 마음을 두고 흐르듯 시간을 보낼 수 있을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그래서 여러 번 우려 읽어야 할 멋진 그래픽노블이었다.



#글라피라스미스 #트러플 #바람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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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예찬 - 문구인 김규림이 선택한 궁극의 물건들
김규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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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는 다르게 이 책은 절대 소비를 조장하는 책이 아니다. 문구인으로 유명한 김규림 작가의 내밀한 취향을 목청껏 공개하는 책이랄까.

그러고 보니 나 역시 물건들에 둘러싸여 산다. 큼지막한 가구들을 비롯해 잔잔바리(?) 다양한 생필품들이며 또 크게 쓸모없어 보이지만 내 취향을 간직한 예쁜 물건들. 모두가 물건에 둘러싸여 산다. 크게 의식하지 않을 뿐. 여기 이 책의 저자는 둘러싸인 공간의 갖가지 물건들을 크게 의식하고 사는 사람이다. 평소 내가 큰 관심을 두지 않고 흘려 지낸 물건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새삼 깨달았다.

난생 처음 보는 기능을 가진 물건들부터, 늘상 사용하고 있지만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물건들까지 보는 재미와 읽는 재미를 모두 사로잡았다. 챕터마다 궁금한 사이트를 검색해 보며 조용히 내 장바구니에 추가한 물건도 있다는 사실은 안 비밀!

모든 물건에 취향을 담을 필요는 없겠지만 독자로 만나본 김규림의 일상은 너무 너무 행복하고 평온해 보였다. 하나 하나 이야기가 담긴 물건들에 대한 애정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야기를 기다리는 것만이 아닌 두 발 벗고 찾아나서는 모습에 '이렇게 까지 한다고?' 싶기도 했지만 끝내 간절히 바라던 물건을 손에 넣은 작가의 기쁨을 보는 건 내게도 왠지 기쁨으로 다가왔다고!

일상 곳곳에 좋아하는 게 많은 사람은 자주 행복하다. 하등 쓸모없어 보이는 물건일지라도 내가 의미를 두고,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하고 즐거워지는 물건이라면 그 충족감을 주는 것만으로 그 물건은 자신의 쓸모를 다하는 것이다. 그건 절대 무용한 게 아니지! 게다가 쓸모로만 인생을 논한다면 그 역시 얼마나 재미없는 인생이란 말이냐고. 귀엽고 유용한 책. 소장가치 백 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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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실용주의적으로만 접근하기에는 세상에 너무 아름다운 물건이 많아, 그것들을 몽땅 삶에 끌어들이고 싶다.

🔖116. 기술은 늘 그렇게 어제의 놀라움을 오늘의 평범함으로 바꿔놓지만, 그 변화의 속도를 곁눈질이라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이 시대를 사는 게 재밌고 짜릿하지 않은가.

🔖130. 이렇게 글로 써 놓으니 여간 까다로운 사람처럼 느껴지는데. 나는 '기왕이면'이 아니라 '곧 죽어도' 예쁘고 좋은 물건을 쓰고 싶은 사람이다. 까탈스러운 성격 때문이 아니라 좋은 물건을 쓰고 좋은 소비를 하고 싶은 마음은 곧 좋은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과도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에서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라도 한 번씩 더 생각해 본다. '이 정도로 만족해도 될까?'

🔖133. 매일 시선이 닿는 물건에 신경을 쓰는 것은 일상의 작은 디테일을 챙겨가면서.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으로 닿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163. 앞서 말했듯 내 소비 패턴은 늘 비슷하다. ¹. 무언가에 빠진다. ². 관련 도구를 끝없이 탐색한다. ³. '종착역'이라 부를 만한 궁극의 도구를 만나 업그레이드를 멈춘다.

🔖178. 이렇게 나만의 조합을 실험하며 찾아가는 과정은 평생의 취미이자 즐거움이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도 써보고, 발품 팔아 발견한 것도 써보면서 내 생활에 맞는 필승의 조합을 찾는다. 이렇게 쌓아가는 1인분의 도구들은 내 삶을 조금 더 나답게,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든다.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조금씩 최적화를 해나가며 나만의 패턴을 찾아나가고 싶다.

🔖254. 무언가를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이 아직까지도 살아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김규림 #소비예찬 #위즈덤하우스 @wisdomhouse_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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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나가
김진영 지음 / 반타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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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통수에까지 소름이 돋고 머리가 쭈뼛쭈뼛 서는 경험!! 4장 마지막 부분에서 !! 으악 무서워라. 잘 만들어진 K-오컬트의 정수.

첫째 아들을 먼저 보낸 상조는 아들의 죽음이 영 탐탁지 않다. 악몽을 꾸기를 반복하며 우울증에 빠진 그에게 아내 순화는 남은 자식들을 불러 살아 생전에 땅의 명의를 물려주려 한다. 배 다른 자식을 데려 왔던 첫째 며느리와 그 아이에겐 절대 재산을 물려줄 수 없었기 때문에 미리 손 써두려던 것. 둘째 아들 형용과 막내 성희. 그 과정에 형용은 자신의 형, 형진이 엄마의 이름으로 대신 사 둔 군산 청사동의 한 땅을 알게 된다. 대기업에 다니다 희망퇴직을 당한 형용은 스물스물 욕심이 생기는데.

형진의 소유였으나 형진은 이미 죽었고 함께 오래 살지 않았던 형수는 땅의 존재도 모르는 것 같으니 전재산에 빚까지 털어넣어 꿈의 집이라는 뜻의 '유메야'라는 이름으로 적산가옥 형태의 카페를 차려보려는 형용. 죽은 형진과 공동으로 사업을 하려했다는 필석의 등장으로 어려움을 넘겨 가며 카페를 오픈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동네 주민들이 땅에 얽힌 흉흉한 과거를 언급하고, 형용의 아내 유화는 계속 흰 얼굴의 남자 귀신을 마주하며 심신이 불안해지는데다 음식은 하루만에 다 썩어버린다. 이 땅의 진실은 무엇일까. 진실에 다가갈수록 옴짝달싹 할 수 없는 나. 등장인물 모두가 얽혀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한 발 떨어져서 주인공들을 바라보니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여러 번 탄식했지만 과연 내가 그들의 입장이 된다면? 나는 욕망에 잠식되지 않고 현실을 바르게 볼 수 있을까? 내 것이라고 생각한 순간, 이전의 집념을 내려놓고 소박한 만족에만 집중할 수 있을까? 더 욕심내지 않을 수 있을까? 수없이 질문을 던지게 된 시간이었다.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지는 한국인의 삶, 광복 후 쫓겨 나야했지만 가진 것을 놓지 못한 일본인의 집착, 재산 상속의 문제, 인간의 소유욕을 이렇게 매력적인 이야기로 탄생 시키다니. 많이들 언급한 <파묘>가 생각나는 이야기엿다. 집착과 탐욕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 것일까? 욕심에 사로잡힌 사람은 무언가를 봐도 제대로 볼 수 없고, 뭘 들어도 제대로 듣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 단디 챙기고 살자. 이 험난한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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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형용에게 땅은 단순히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수단이어야 했다. 건물을 세우고 임대를 놓아 매달 안정적인 수익을 만들고, 그 돈이 다시 돈을 불러들이는 구조를 짜내는 것. 원룸 몇 채, 상가 한 동이 더해지면서 고정 수입이 불어나고, 그 기반 위에서 새로운 기회를 마련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땅이 가진 진짜 힘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마련한 돈으로 집을 넓히고, 가족들과 해외 여행을 다니고, 아이들에게 더 나은 교육을 시키고, 자신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현재를 즐기는 것, 그게 형용에게 중요했다. 하지만 부모는 평생 땅을 늘리는 데만 골몰했을 뿐 그 땅에서 어떤 생산적인 구조도 만들지 못했다. 은행 예금처럼 땅을 묶어둔 채, 마치 그것만으로도 후손에게 유산을 남긴 셈이라 안도했다. 목숨처럼 붙잡은 땅이 정작 가족을 풍요롭게 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형용에게 아이러니이자 불합리로만 다가왔다.

🔖322. 강한 염원을 품은 이들은 작은 자극에도 크게 흔들린다고. '저주'라는 행위만으로도 사람들은 스스로 무덤을 파기 시작한다고 필석은 말했다.

#김진영 #여기서나가 #반타 #오팬하우스 @ofanhouse.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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