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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케이크의 특별한 슬픔
에이미 벤더 지음, 황근하 옮김 / 멜라이트 / 2023년 3월
평점 :
요즘 복잡한 일들과 여러가지 감정들로 많이 지쳐있던 상태였다.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깊이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마음이 어지럽던 와중에 접하게 된 이 책은 내게 시끌벅적한 위로로 다가왔다. 섬세한 감정 표현에 넋을 놓고 책을 읽게 되고 마음이 무겁고도 아파왔다가 마지막엔 묘한 희망적인 기운을 내게 주었다. 책을 다 읽고도 여운이 깊어서 내용을 곱씹느라 리뷰를 쓰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주인공 로즈는 아홉 살 생일을 앞둔 어느 삼 월, 따스하고 평온해 보이기만 하던 그때 자신의 신기한 능력을 깨닫게 된다. 엄마가 자신을 위해 만든 레몬 케이크를 맛본 순간, 엄마가 가지고 있는 감정까지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음식을 먹으면 요리하는 사람의 감정까지 강제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 능력일 수도, 재앙일 수도 있는 이 날벼락 같은 상황에서 엄마의 레몬 케이크에서 느껴진 맛은 지금 엄마가 내면으로 소리치고 있을 "부재, 굶주림, 소용돌이, 텅 빔"의 맛이었다.
능력을 깨달은 후 로즈의 시선은 가족에게 닿는다. 로즈의 시선을 따라 로즈가 겪어내는 성장통과 그들 가족의 관계에 오래 머물게 된다. 서로의 민낯을 속속들이 알고 난 후에도 우리는 얼마나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을까? 충격과 고통의 나날들 속에서도 시간은 흐르고 후반부에 가족들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외면하고만 싶었던 마음을 거두고 한걸음 다가가려는 로즈의 마음이 뭉클하다. 피하고 도망쳐 왔던 자신의 감정에도 스스로 손을 내밀어 느끼고자 했을 때의 장면도 눈에 선하다. 자신의 요리를 꼼꼼히, 천천히, 꾹꾹 씹어 넘겼을 로즈에게 다가가 어깨를 끌어안아 주고 싶어진다.
알리고 싶지 않은 내 깊은 마음과 한편으로는 누구든 나를 제발 좀 알아줬으면 하는 양가적인 내 마음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내가 요리하는 음식은 과연 어떤 감정들이 담겨 있을까.
에이미 벤더라는 작가는 나에게 낯설기만 했는데 독창적이고 신비롭고 동화같은 상상력에 현실적인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잘 섞어서 나를 소설속으로 끌어당긴다. 혀를 내두르는 로즈의 심리 상태와 감정이 담긴 음식들에 대한 묘사를 읽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 충만해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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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우유로 말하자면, 지쳐 있었다. 이 모든 재료들이 마치 멀고도 시끌벅적하게, 저 멀리서 들려오는 비행기 소리, 혹은 차가 주차되는 소리처럼, 전부 다 배경에서 떠돌면서 음식 만든 사람의 상태를 앞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모든 음식에 감정이 담겨 있다는 거구나.
🔖137. 노력을 해봐도 전혀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다면 그다음은 입을 꾹 다물어버리기 마련이다.
🔖161. 그래도 오빠가 거기 서 있어서, 머리칼은 눌린 채로 팔짱을 끼고 퉁명스럽고 어색하게 거기 있어서 나는 안ㄷ느감이 밀려왔다. 오빠가 아직 거기 있다는 것, 만질 수 있고, 방으로 들어올 수도 있고, 짜증도 내면서 내 방에 있다는 사실에. 그것은 아무도 집에 없는 것 같은 적막함에 대한 해독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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