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지 엄마
강인숙.전승배 지음 / 창비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그림책!!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건전지 엄마] 제목부터 내 마음을 이끌었다. 엄마가 되고 보니 "엄마"라는 존재는 어지간한 체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강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처음부터 강한 사람만이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엄마이기 때문에 갈수록 강해지는 신비로운 일이다.

책에서도 건전지 엄마의 활약상이 펼쳐진다. 아이와 함께 놀아 주고, 요리도 하며, 건강까지 관리해야 하는 건전지 엄마! 위급한 상황이 생겼을 때도 빛나는 활약상을 보여준다.

꽉 찬 하루 일과로 지칠 법도 한데 건전지 엄마는 아이들의 사랑을 받아 스르르 충전이 된다. 지치는 날도 있겠지만 가족의 사랑과 함께 있음으로 충전되는 건전지 엄마의 모습에 내 모습이 겹쳐진다.

양모 펠트로 일일이 만들어진 캐릭터들도 너무나 사랑스럽다🩷 보는 내내 감탄! 한 권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이 쌓였다는 게 바로 느껴진다. 2022 대한민국 콘텐츠 애니메이션 부문 대상을 받은 [건전지 아빠]와 함께 소장가치 완벽한 그림책이다.

참!! 책 첫 장에 큐알코드로 수록된 [건전지 엄마]의 움직이는 애니메이션까지 볼 수 있어서 나도 아이들도 재미 2배!! 종이책과는 또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덧. 위급 상황에서 건전지 엄마가 달려가 뽁뽁이 조끼를 입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비닐 뽁뽁이 조끼 정말 취향저격!!!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 블랙 쇼맨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 이름 자체로 장르가 된 지 오래다. 1985년 [방과 후]로 데뷔 후 무려 40년 가까이의 시간을 수많은 베스트셀러와 다작을 해낸 작가로 유명하다. 더이상의 설명은 입만 아플 뿐. 추리소설을 읽는 건 꽤나 좋아하지만 선뜻 구매는 안하는 편인 나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집에 꽤나 많이 쌓여 있다!

한참 재미있게 읽을 당시에는 신간 나오는 족족 구매를 하며 소장욕을 채웠으나 어느 순간 조금 멀어졌던 내게 이번 책으로 히가시노 작품을 꽤나 오랜만에 접했다.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이라는 작품으로 새로운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그는 블랙 쇼맨의 두 번째 이야기, 바로 이번 신간 [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를 전세계에서 한국에 최초로 공개했다고 한다. 이런 책은 무조건 발빠르게 읽어줘야 승자라고 생각하는 나란 인간. 나는 첫 시리즈는 아직 읽지 못했고 이번 책으로 블랙 쇼맨을 접했다!

단편 3개가 실려 있는 책으로 일단 가독성이 끝장나는 책이며 앉은 자리에서 책을 편 순간 다 읽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아무 정보 없이 만난 블랙 쇼맨은 다정다감하나 날카롭고 무뚝뜩하면서 관찰력이 넘치는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인다. 배경은 블랙 쇼맨이 운영하는 바(bar) "트랩핸드(함정의 손)"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로 블랙 쇼맨, 다케시의 특출난 추리력으로 사건을 꿰뚫어보는 매섭지만 따뜻한 눈길을 느낄 수 있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들은 많이 읽지 못해서인지 여러 장편들 보다는 아쉬운 느낌이었다. 3편에 담겨 있는 각각의 이야기들도 빠르게 읽혀지지만 긴장감이나 스릴은 크게 느끼지 못했다. 히가시노의 매력은 역시 장편에서 발휘되는가?! 책의 만듦새도 탄탄하고, 양장에 매력적인 표지, 가름끈까지 있어 소장 가치가 가득하지만 한 장 한 장의 글자수가 많이 적다. 지금 읽고 있는 다른 책에 비하면 절반 정도의 내용이 한 장에 담겨 있다. 그래서 순식간에 읽히는지도?!

그래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새로운 추리 시리즈를 접한 거로도 만족! 다음에는 더 탄탄하고 짜임새 있는 장편 소설로 블랙 쇼맨을 만나보길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를 키우니 팬클럽이 생겼습니다 - 오늘도 반짝이는 엄마들에게
정소령 지음 / 파지트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생각보다 더 많이 괜찮았던 책. 사실 시중에 널린 그렇고 그런 책이 아닐까 잠시 착각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마땅한 일을 가지지 않은 엄마들을 위로하는 책. 단순히 "그렇게 살아도 괜찮아!" 이렇게 외치는 책들이 많은 요즘이지 않은가. 내 착각에도 이유는 있었다.

내 게으름을 덮어줄 어떤 핑계가 필요했다. 나도 결혼 전 나의 직업을 가진 나름 멋진 여성이라고 자부했던 시기가 있었다.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 직업과는 거리가 멀어진 전업주부로의 삶을 벌써 11년째 이어오고 있다. 작가는 결혼해서 첫 아이를 2013년에 낳았다고 했으니 나랑 같다. 그래서 더 공감이 많이 되고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결혼 전 잘나가던 커리어 우먼에서 육아를 위해 당당하게 퇴사를 하고서도 왜인지 작아지던 자신의 모습에 위기감도 들었겠지만 새로운 '시작'의 시작들로 변해가는 자신의 상황을 마주한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넘쳐서 육아를 선택했음에도 어느 순간 나 자신의 존재가 없어지는 듯한 느낌은 전업주부라면 누구나 알 듯. 작가는 이야기한다. 무언가 대단하고 완벽한 성공을 위해 시작을 하려고 하면 마음부터 무겁고 힘든 거라고. 대단한 성공을 위한 게 아니더라도 나만의 작고 소중한 '시작'을 다정하게 어필한다.

초반에는 우당탕쿵탕 아이들과의 육아 일상을 보게 되어 '나도 빛나던 내 아이와의 순간을 짧은 글으로나마 기록해둘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가 후반부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는 또 나도 '큰 것이 아니더라도 지금 할 수 있는 걸 꾸준히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저래 나를 흔든 에세이다. 나 자신을 찾기 위해, 아니면 육아를 잘 하기 위해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하고, 저렇게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책은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이 책은 어느 누구도 무언가를 해야만 하고 무언가는 피해야 한다는 걸 명시하지 않으면서도 독자 스스로 마음의 열정 씨앗 하나를 틔우게 하는 느낌이었다.

지금 나 자체로서도 빛나고 소중하다는 걸 물론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새로운 시작에 앞서 움츠러들지 않을 수 있는 작은 용기를 얻었다!

➰️➰️➰️➰️➰️➰️➰️

28. 우리 아이들이 대단한 행복을 얻는다면 물론 좋겠지만, 소소한 행복 역시 중요하다는 걸 아는 어른이 되었으면 더 좋겠다. 지금 손에 쥔 사탕 한 알의 행복을 잊지 않고 매일매일 그날의 행복을 놓치지 않고 흠뻑 누리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87. 사랑하는 마음은 상대를 향한 관심을 통해 표현된다.

120. 행복을 말하기엔 너무팍팍한 세상이었고 결과물을 내기 위해 달리는 동안 중요한 건 스피드였지 행복 따위가 아니었다. 지금 내가 행복한 것인가 자문하는 순간 느려지는 게 뻔할 터. 애써 행복을 미뤄두어야 했다. 그래야만 그 세상의 기준을 맞출 수 있었다. 숨 차게 뛰는 나 역시 금방 그 세상에 편승했다.

130. 외부의 목소리에 연연할수록 내 목소리는 작아진다.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상관없다며, 내 마음에만 귀 기울이는 아이가 부럽다. 이 아이도 어른이 되면 외부의 목소리에 마음을 빽기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웃을 바꿔 입었을 뿐이다.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다. 아이가 잠옷을 입었을 때, 쫄바지에짧은 티셔츠를 입었을 때, 멋진 옷을 입었을 때, 똑같이 사랑스러운 것처럼.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내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뿐 울타리가 달라졌다고 해서 내가 달라지진 않았다. 위치가 달라졌다고 해서 내 가치를 평가절하할 이유는 없는 것. 예전의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었다면 지금 나도 그렇다.

131.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일뿐이라는 걸알면서도 나는 왜 우리가 특별하다고 생각했을까?

132. 그러니 나의 가치를 누구보다 먼저 기억해야 하는 건 나 자신이다. 타인은 나만큼 나를 알 수 없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를 판단하는 세상의 시선에 휘둘릴 이유는 없다. 세상보다 먼저 내 편이 되어야 하는 건 나 자신이고 적어도 나만은 나를 인정해 줘야 한다. 세상은 울타리가 달라진 나를 조금 다르게 본다 해도 나는 잊지 않기로 했다. 빛난다고 믿었던 날에 내가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도 분명 가지고 있을 내 가치를. 나의 꿈과 가능성을. 내 안의 온기를. 지금 그대로 아름다운 나라는 존재를.

135. 나 역시 몰라서 마음이 좁은 사람이었다. 내가 모르는 줄도 몰랐던 무지렁이였다.

145. 하루는 24시간. 우리는 모두 같은 시간 속을 산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가 시간 활용을 잘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빠듯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잘하는 스타일이다. '선택과 집중'이라고 말하니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사실 이걸 다른 말로 하면 '미루기'다. 선택한 것에 집중하고, 선택받지 못한 것은 미뤄두기.

147. 아이들을 위한 시간에 충실한 것과 살림을 잘하는 건 별개의 것이다. 살림을 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구멍이 생겨도 괜찮다.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만, 구태여 그 이상으로 잘하려고 노력하지 말자.

169. 각자가 가진 경험과 생각은 모두 소중하다. 소중한 이야기들이 휘발되어 버리면 아깝지 않은가. 기억은 휘발되지만 기록은 남는 것. 쓰기는 여러모로 쓸모 있다. 책을 썼기 때문에 블로그에 연재를 하게 됐고 글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도 있게 됐다. 시작이 시작을 부르는 마법이었다. 할 수 있을까? 해도 될까? 고민만 하다가 실행하지 못한 것들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고, 실행한 일들만 여기에 남았다. 다음 계단을 여는 문이 되어.

#정소령 #아이를키우니팬클럽이생겼습니다 #파지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혼 엔딩
이진영 지음 / 파지트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혼 엔딩! 제목부터 시선을 끌었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기대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한 자리에서 완독을 했다. 작가가 일단 재미있게 흥미를 유발하면서 글을 이어나가서 쉬어 가고 싶다는 생각이 일절 들지 않았다.

초반 알콩달콩한 신혼 생활의 에피소드를 읽으며 나도 한때 나의 신혼 생활을 떠올리며 마음이 간질간질 미소가 배어 나왔다.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에세이구나, 라고 느낄 때쯤에 나름의 반격을 준다. 그래 결혼 생활이 누군가의 로망처럼 간지럽고 달콤하고 사랑스럽기만 하겠냐고. 물론 달달하고 사랑으로 충만한 시간들도 분명 있지만 결혼 생활은 100프로 현실이다.

신혼의 단꿈에서 벗어나게 되는 계기가 있든지 없든지 간에 어쨋든 신혼의 로망은 반드시 끝이 난다. 프롤로그에서 작가도 언급했듯이 누구에게나 쉽게 말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한테도 말 못 할 것도 없는 결혼 생활의 에피소드를 담았다. 달콤함과 비극이 동시에 존재했다. 작가의 신혼이 엔딩으로 끝을 맺은 사건을 언급할 때에는 나도 함께 숨이 막혔다. 정글에 내던져진 기분.

이걸 어떻게 감당하냐 싶을 정도의 사건에 뒷 이야기가 궁금해 책장을 넘기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는 그래도 스스로에게, 그들 부부에게 건투를 빌며 희망적으로 마무리를 했다. 부부란 이런 모습 아닐까. 서로 만들어온 시간들을 단칼에 내칠 수도 없다. 절대 용납 안되는 사건들이 있다면 단칼도 받아들이겠지만 함께 겪어낼 수 있다면 서로의 노력으로, 연인 때의 설레던 마음 보다는 좀더 단단하고 강한 그 무엇으로 이겨내 보는 게 결혼 생활의 하루하루가 아닐까.

함께 기쁠 때를 기다리며, 오늘 하루도 수고했듯이, 서로에게 다가올 내일도 희망적으로 맞이해보자는 의지로 살아간다. 현실을 마구 짓밟겠다는 소설은 아니지만 로망 만으로만 마음을 가득 채운 채로 신혼 생활을 시작하는 신혼 부부들에게 필독서로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결혼은 현실이며, 정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혼을 추천한다. 설렘이 편안함이 되고 익숙해지며 그렇게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의 소중함은 겪지 않으면 쉽게 알 수 없다. 대신 진정성과 서로에 대한 신뢰는 아주 기본적인 밑바탕이어야 한다!^^

➰️➰️➰️➰️➰️➰️➰️

🔖68. 스테이크에 와인을 마시는데, 두둠칫 두둠칫 음악이 흥겹다. 자연스럽게 한 명이 일어나 음악에 몸을 맡긴다. 그러자 한 명, 또 한 명이 일어나며 원이 만들어졌다. 대단한 춤을 추는 건 아니었다. 그저 '나는 지금 몹시 신이 난다'는 느낌을 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나도 내적 댄스 본능이 폭발했다. 술 때문일 수도, 익명성이 보장되는 낯선 곳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와 남편은 용기를 내어 그 원에 합류했다. 식당 안의 러시아 사람들이 동양에서 온 커플을 환영해주었다. 우리는 흥에 겨웠고, 신이 났고, 그 순간을 즐겼다,

🔖69. 여보, 올 한 해 고생했어. 내년에도 잘해보자.

🔖127. 문득 앞날이 격정되었다. 둘 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상태다.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는 나이다. 그래도 공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모아놓은 논과 남편의 퇴직금으로 몇 달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잘 놀자. 지금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으니까.

🔖156. 그는 부족함 없이 돈을 썼다고 한다. 돈이 부족하면 시엄니니에게 전화를 했고, 시어머니는 그럴 때마다 돈을 보내주셨다. 시어머니는 다른 데는 악착같이 아끼시면서 아들에게는 한없이 약하셨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남편에게 마르지 않는 샘물이었고, 덕분에 남편은 대학 시절 부잣집 막내아들처럼 살았다.

🔖174. sns에서는 행복해 보였던 친구들도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는 저마다의 시간이 있었다. 각자의 상처를 꺼내 놓으면서 서로의 진짜 얼굴을 알게 되었다. 나만 힘든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불행을 극복하고 행복해지는 것은 오롯이 나의 선택이라는 것도. 나는 내게 닥친 빚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진영 #신혼엔딩 #파지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몬 케이크의 특별한 슬픔
에이미 벤더 지음, 황근하 옮김 / 멜라이트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복잡한 일들과 여러가지 감정들로 많이 지쳐있던 상태였다.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깊이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마음이 어지럽던 와중에 접하게 된 이 책은 내게 시끌벅적한 위로로 다가왔다. 섬세한 감정 표현에 넋을 놓고 책을 읽게 되고 마음이 무겁고도 아파왔다가 마지막엔 묘한 희망적인 기운을 내게 주었다. 책을 다 읽고도 여운이 깊어서 내용을 곱씹느라 리뷰를 쓰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주인공 로즈는 아홉 살 생일을 앞둔 어느 삼 월, 따스하고 평온해 보이기만 하던 그때 자신의 신기한 능력을 깨닫게 된다. 엄마가 자신을 위해 만든 레몬 케이크를 맛본 순간, 엄마가 가지고 있는 감정까지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음식을 먹으면 요리하는 사람의 감정까지 강제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 능력일 수도, 재앙일 수도 있는 이 날벼락 같은 상황에서 엄마의 레몬 케이크에서 느껴진 맛은 지금 엄마가 내면으로 소리치고 있을 "부재, 굶주림, 소용돌이, 텅 빔"의 맛이었다.

능력을 깨달은 후 로즈의 시선은 가족에게 닿는다. 로즈의 시선을 따라 로즈가 겪어내는 성장통과 그들 가족의 관계에 오래 머물게 된다. 서로의 민낯을 속속들이 알고 난 후에도 우리는 얼마나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을까? 충격과 고통의 나날들 속에서도 시간은 흐르고 후반부에 가족들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외면하고만 싶었던 마음을 거두고 한걸음 다가가려는 로즈의 마음이 뭉클하다. 피하고 도망쳐 왔던 자신의 감정에도 스스로 손을 내밀어 느끼고자 했을 때의 장면도 눈에 선하다. 자신의 요리를 꼼꼼히, 천천히, 꾹꾹 씹어 넘겼을 로즈에게 다가가 어깨를 끌어안아 주고 싶어진다.

알리고 싶지 않은 내 깊은 마음과 한편으로는 누구든 나를 제발 좀 알아줬으면 하는 양가적인 내 마음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내가 요리하는 음식은 과연 어떤 감정들이 담겨 있을까.

에이미 벤더라는 작가는 나에게 낯설기만 했는데 독창적이고 신비롭고 동화같은 상상력에 현실적인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잘 섞어서 나를 소설속으로 끌어당긴다. 혀를 내두르는 로즈의 심리 상태와 감정이 담긴 음식들에 대한 묘사를 읽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 충만해질 책이다.

➰️➰️➰️➰️➰️➰️➰️

🔖56. 우유로 말하자면, 지쳐 있었다. 이 모든 재료들이 마치 멀고도 시끌벅적하게, 저 멀리서 들려오는 비행기 소리, 혹은 차가 주차되는 소리처럼, 전부 다 배경에서 떠돌면서 음식 만든 사람의 상태를 앞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모든 음식에 감정이 담겨 있다는 거구나.

🔖137. 노력을 해봐도 전혀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다면 그다음은 입을 꾹 다물어버리기 마련이다.

🔖161. 그래도 오빠가 거기 서 있어서, 머리칼은 눌린 채로 팔짱을 끼고 퉁명스럽고 어색하게 거기 있어서 나는 안ㄷ느감이 밀려왔다. 오빠가 아직 거기 있다는 것, 만질 수 있고, 방으로 들어올 수도 있고, 짜증도 내면서 내 방에 있다는 사실에. 그것은 아무도 집에 없는 것 같은 적막함에 대한 해독제였다.

#에이미벤더 #레몬케이크의특별한슬픔 #멜라이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