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정상체중 - 크고 뚱뚱한 몸을 둘러싼 사람들의 헛소리
케이트 맨 지음, 이초희 옮김 / 현암사 / 2024년 4월
평점 :
깡마르고 싶었던 적이 있다. 나는 지나치게 뚱뚱하지도 않고 마르지도 않았으며 그저 보기에 나쁘지 않은 적당해서 보기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왔다. 깡마르는 건 꿈도 못 꾸고 그나마 '적당해 보이기' 위해 나름 얼마나 많이 애썼는지 다시 돌아본다. 게다가 과거형이 아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몸무게와의 싸움을 끝내지 못하고 있다. 아마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 평생의 숙제, 다이어트. 나는 왜 이렇게 몸무게에 집착하고 있을까?
극단적인 다이어트로 인한 건강의 해악은 사실대부분의 사람들이 분명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다이어트로 인한 체중 감량은 유의미하지 않다고 수많은 통계가 반증하고 있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오히려 다이어트 기간으로 살을 뺀 후 지속적인 유지가 더 힘들어질 뿐더러 이후 살이 더 증가하는 사람들을 내 주변에서도 많이 봤다. 그런 반복적인 급격한 체중 감소와 체중 증가는 필연적으로 건강의 악화를 야기한다.
게다가 믿고 싶지 않지만 운동은 체중 감량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운동의 역설]이라는 책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물론 너무도 당연히 운동으로 건강해지는 건 확실하다.
이 책은 비만인을 찬양한다거나 비만도 아름다울 수 있다고 꿈같은 이야기를 나열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이렇게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살을 빼고 예뻐지기 위한 노력을 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 그 뒷편의 시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체질량 지수'의 기준 역시 '누구를' 기준으로 잡아 만들어진 표준 지표인지, 표준 지표라는 의미 역시 누가 "표준"을 특정하는지, 머리가 띵하는 순간이 여러 번이었다. 지배적이고 억압적인 "미"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건데?
뚱뚱한 사람은 왠지 게으르고 나태하고 적절한 일을 수행하는 데 부족할 것 같고 심각한 건강 문제를 가지고 있을 거라는 그 헛된 상상은 모두 비만혐오에서 시작되고 또 더 심각한 비만혐오를 부른다.
사실 뚱뚱함과 건강의 상관 관계는 있을 수 있지만 인과관계는 아니라는 점, 나도 뚱뚱하면 건강이 안 좋을 거라고 편견에 쌓여 있었지만 정확하게 밝혀진 게 없다고 한다. 그 편견 역시 어쩌면 무의식에 누적된 비만혐오에서 나오는 생각들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건강한 음식을 챙겨 먹고 건강한 삶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누구도 나무랄 수 없다. 그래도 가끔 피자도 먹고 싶고 치즈 폭탄인 라자냐도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마음 껏 먹으면 슬쩍 죄책감이 들던 내 마음은 누구를 향한 마음인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먹고 싶은 걸 먹고 싶을 때 먹을 자유가 있다.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깡마르고 싶던 나는 이제 없다.
"세상은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 당신에게 더 좋은 곳이 되어야 한다. 특히 극히 무의미하지만 널리 퍼진 '미'의 경쟁에 사람들을 자동으로 끌고 들어가는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 (p.267)
▪︎▪︎▪︎▪︎▪︎▪︎▪︎▪︎▪︎▪︎
🔖21. 끝없는 등급으로 나타나는 몸무게에 집착하는 것은 내가 비만혐오의 기저가 된다고 주장할, 유독한 사회적 위계를 세우는 완벽한 방식인 것도 깨닫기 시작했다. 나아가 비만혐오를 저평가된 심각한 구조적 억압의 형태로 보기 시작했고 끊임없이 나를 숨기려고 함으로써 내가 이 시스템 에 공모한 것도 이해하기 시작했다.
🔖51. 한 종합적인 문헌 조사에 따르면 뚱뚱한 사람들은 수많은 악의적 고정 관념에 시달린다. 우리는 게으르고 규율이 안 잡히고 의지가 약하며 치료나 자기 관리 수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으로 비친다.
🔖58. 뚱뚱함과 건강 사이의 관계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게다가 뚱뚱한 사람이 건강하지 않다는 확신은 대개 걱정을 가장한 '트롤 짓', 즉 우리의 행복을 진정으로 걱정하기보다는 우리를 지배하고 모욕하려는 방식이다.
🔖78. 어쩌면 건걍과 체중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낙인일 것이다. 앞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몸집이 큰 사람들은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낙인을 경험한다. 그리고 이제 이러한 편견의 대상이 될 때 건강에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난다는 증거가 상당하다.
🔖110. 지난 세기를 거치면서 날씬해지기는 더 어려워졌고 동시에 가치는 더 높아졌다. 이는 분명 우연이 아니다. 이는 실제 가치와 상관없이 성취하기 어려운 것일수록 더 칭송할 만하다고 판단하는, '어려운 것이 더 좋은 것'이라는 오류의 예라고 볼 수 있다.
🔖111. 우리 인간은 우리가 우월하다고 느끼게 해주는 위계를 즉석에서 고안해 내는 경향이 무척 강하다. 인종 차별과 교차하는 비만혐오는 이런 지점에서 탄생했다.
🔖135. 혐오감은 어떤 대상을 향해 한번 생겨나면 쉽게 없앨 수 없는 끈질긴 감정이다. 혐오감은 대상 위에 얼룩지고 퍼지고 스며든다. 더군다나 혐오감은 쉽게 학습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된다. 한 사람이 어떤 대상에 대한 혐오감을 표현하면 이 혐오감을 목격한 다른 사람들 역시 이 감정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전염성 덕에 오염된 식품이나 병원균을 피하는 데 도움을 받았을 테니 진화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249. 결국은 자기 몸이다. 그리고 몸을 줄이고 싶거나 피부를 환히 밝히고 싶거나 콧날을 깎고 싶거나 찡그린 얼굴을 부드럽게 펴고 싶다면 그럴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인생은 힘들다. 그리고 세상의 인종 차별, 유색인 차별, 반유대주의, 성차별, 여성혐오, 노인 혐오, 비만혐오 같은 심한 편견으로 낙인이 찍힌 채 사는 건 더 힘들다. 좀 더 쉬운 길을 선택한다고 해서, 또는 삶을 견디기 위해, 때로는 그저 살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한다고 비난, 모욕, 비판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선택을 내릴 의무도 없다는 걸 알기 바란다. 특히 다른 사람이나 사회, 심지어 외모에 대한 내적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줄어들어야 할 의무는 없다.
#케이트맨 #비정상체중 #현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