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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 - 완벽하지 않아 완전한 삶에 대하여
마리나 반 주일렌 지음, 박효은 옮김 / FIKA(피카) / 2024년 5월
평점 :
자신의 평범함을 알고 있는 사람이 최고가 되지 못하여 낙담하는 순간이 있다. 평범하다는 건 무엇이고, 최고나 성공은 어떤 척도로 판단되는 것일까?
요즘 곳곳에서 채찍질을 받는 기분이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앞서기 위해 시간을 쪼깨고 잠을 줄이고 강박적인 몸매 스트레스나 보여줘야만 하는 성과들을 이루려고 머리카락이 빠질 지경의 사람들이 매우 많다. 정말 나 스스로의 이상이고 만족감인지 반드시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를 만나게 된 건 제목부터 강력한 끌림이 있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삶을 향한 찬사라, 읽기 전에는 고개를 갸웃할 만하다. 이 책은 그저 평범해라, 극단적인 성공을 향한 열망을 집어 치우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결과보다 과정을 향한 깊이 있는 애정과 중용의 미학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여러 철학자들의 삶과 이야기뿐만 아니라 작가와 문학 작품까지 예시로 들며 섬세한 시선으로 '그만하면 충분하다'라는 마음의 의미를 되짚는다.
타인을 향한 성급한 판단은 언제나 문제를 일으키고 우리의 삶을 단편적인 모습으로 축소할 우려가 있다. 편견과 편협함을 뛰어넘을 수 있는 현자의 시선을 가질 수 있는 중용의 비법들이 구절마다 기록되어 있어 밑줄 긋기에 여념이 없었다.
요즘 세상에 평범한 삶을 찬양한다라고 하면 어쩐지 어불성설로 느껴지기도 한다. 성공하지 못한 자의 자기합리화 또는 정신승리로 보여지기도 하니까. 책을 읽는 초반에 나도 느꼈던 감정이다. 내 게으름의 합리화를 위한 방편으로 이런 책에 의지하는 건 아닐까, 하고. 결과로써만 보여지고 판단되는 모든 상황들에 홀연히 빠져 나오기는 물론 쉽지 않겠지만 내 스스로의 가치를 지키고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삶을 가꾸어 나가야 진정한 만족감과 행복이 뒤따를 것이다.
숨막히는 세상에서 숨통 트여주는 유식하고 우아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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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비대한 자아와 오만한 인물에게는 반감을 가지면서도 평범한 인물과 소소한 이야기에 끌리는 것은 경쟁에서 발을 빼기 위한 핑계이자 자기기만이었을까? 내가 명예와 부, 인정과 유명세를 얻었다면 평범한 삶에 대한 이상을 하루아침에 내팽개쳐버렸을까?
70.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아무리 개인의 성공과 행복의 이상을 "그 무엇도 아닌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는" 상태라고 정의했다 한들, 현실을 무시하고 그럭저럭 괜찮은 평범한 삶을 기준으로 삼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우리 자신이 우리가 품은 원대한 야망의 원인이자 결과라고 해도, 우리가 열망하는 진리와 성공은 대개 타인의 성공에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삶에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123. 타인을 한마디로 규정하거나 칭찬과 비난을 퍼붓고 싶은 마음을 자제하고 타인의 불투명성을 인정하는 것은 난해한 책을 읽는 것과 같다. 그것은 위키피디아에서 제공되는 줄거리 요약본처럼 결코 쉽게 읽히지 않는다. 우리는 상대를 성급하게 판단함으로써 우리가 그를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 반면 판단을 유보하는 것은 상대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124. 떠들썩하고 눈부신 성공은 어떤 사람이나 상황에 대한 즉각적인 평가(그러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를 가능하게 한다. 그렇게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성공에만 집중해 그것을 쉽사리 판단하고 평가한다. 이력서로만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은 그 사람의 영혼을 짓밟는 일이다. 엄격한 평가 등급에 따라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으면 기존의 가치도, 제도적 틀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존의 가치를 흔드는 것이 '비범한 평범함'이 할 딱 털어야 돼수 있는 역할일지도 모른다.
162. 나는 내 주변에 존재하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경이로움을 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가리고 있었다. 다른 이들과 구별되기 위해, 평범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상업적시거나 싸구려 쾌락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의 미학을 추구했다. 순수한 영혼에 대한 열망과 모든 현실적 감정을 거부한 나의 태도는 일상의 만족으로 가는 길을 막는 걸림돌처럼 나를 평범하여 찬란한 삶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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