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만들기 - 성형외과의의 탄생
린지 피츠해리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논픽션 중에 이렇게 재미있게 읽은 책이 얼마만인가 싶다!!
전쟁의 학살이 자극한 의학 발전으로, 성형외과라는 분야의 탄생 배경과 현대 성형 수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해럴드 길리스의 삶을 낱낱히 묘사한 책이다. 읽으면서도 너무 흥미진진한데 '재미있다'라는 말로는 아무래도 표현이 부족한 것 같아 나름 고심을 했지만 한계를 느꼈다.🙄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정보'와 '이야기' 사이의 균형이 훌륭하달까. 의학서나 역사서로써가 아닌 한 편의 이야기만으로도 만족한 독서였다. 다들 꼭 읽어 봤으면.

\이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독자를 각 일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의 한 가운데로 떨어뜨리고 싶었다.(p.332)

작가의 의도대로 초반부터 1차 세계대전 한가운데로 떨어져 모든 상황을 가까이서 지켜본 기분이다. 성형이라는 분야 자체가 없던 시절 나라를 위해 몸바친 군인들의 필연적인 부상과 죽음 앞에서 무력하고 씁쓸해지기도 했지만 부상자들을 위해 언제나 고군분투하던 의료진들의 힘이 엄청나다는 생각을 했다.

팔다리가 절단된 부상자들에 비해 얼굴이 손상된 환자들의 고통은 이루말할 수 없었다. 타인에게 혐오감을 불러 일으킬 뿐만 아니라 자기 존재마저 박탈 당한 우울감까지. 그들에겐 전쟁이 끝났다 하더라도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얼굴 손상으로 내면의 전쟁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었다. 각고의 노력으로 다양한 부상자들을 치료하며 의학 발전에 앞장선 해럴드 길리스 외 다른 의료진들에게도 진심어린 존경을 표한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걸 일찍 깨달은 길리스는 간호사는 기본, 다른 외과의사, 치과 의사, 화가, 조각가부터 사진가까지 일에 포함시켜 어벤져스같은 군단으로 협업을 했다. 진짜 멋져.

전쟁의 참혹함과 부상자들의 길고 긴 회복의 시간들, 서서히 이뤄지는 의학 발전의 눈부신 과정들 앞에 말로 다 못할 많은 희생들이 눈 앞에 훤히 펼쳐진다. 어쩌면 나 역시 전직 의료진(외과 중환자실 간호사였다)으로서 더 흥미롭게 다가온 이야기였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누리는 게 당연한 게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는 깊이있는 시간이었다.

⋱⋰ ⋱⋰ ⋱⋰ ⋱⋰ ⋱⋰ ⋱⋰ ⋱⋰ ⋱⋰ ⋱⋰ ⋱⋰ ⋱⋰⋱⋰ ⋱⋰

🔖10. 책에 들어간 인용문은 편지든, 일기든, 신문 기사든, 수술 기록이든 간에 모두 역사 자료다. 몸짓, 표정, 감정 같은 것들을 언급한 내용도 당사자가 직접 말한 내용을 토대로 삼았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독자가 참호전이 어떤 끔찍한 결과를 낳았으며, 군인들이 총을 내려놓은 뒤 오랫동안 사적으로 어떤 전투를 벌여야 했는지를 새로운 시각에서 보았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다.

🔖18. 치유의 과학은 파괴의 과학 앞에서 어찌할 줄 몰랐다.

🔖102. 간호에서 건강을 회복시킨 뒤 다시 참호로 돌려보내는 일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탈출구가 없는 직업이 아니었을까?

🔖151. 우리의 성형 계획이 잘못된다면 의지가 강하지 않은 환자는 거의 절망 상태로 빠져들 것이다. 그는 전투에서 시력을 잃은 사람들만이 얼굴 재건 과정 내내 의욕이 꺾이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차렸다.

🔖326. 인류에게 닥치는 모든 악은 언제나 어느 정도 선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전쟁의 학살이 자극한 의학 발전도 그런 선에 속했다.

#린지피츠해리스 #얼굴만들기 #열린책들 @openbooks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