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영이 직면한 전환기란 18세기에서 19세기에로의, 
즉 성리학 지상주의의 동요기에서 쇠퇴기로의 그것이었다. 그러나 이 전환기는 현대에서 본다면 신시대 탄생의 
태동기였다. 그러한 전환기의 고뇌를 황사영은 구시대에 
대한 반역자 바꾸어 말하면 신시대에 대한 건설자로서 
심각하게 맛보았다. 남인 · 중인 서민부녀 등의 피압박 
계급한테 환영되고, 성리학지상주의를 파괴하여 
신규범하에 신사회를 건설하려는 전통파괴적 작용을 하고 있었던 천주교의 지도자로서, 황사영이 시대에 앞서는 
지식인의 고뇌를 토로한 것이 황사영 백서였다.

반면 1894년 2월 입국 이후 4년간 이 땅 곳곳을 누빈 
이사벨라 버드비숍(Isabella Bird Bishop, 1831~1904)은 농민봉기를 ‘반란자들(rebels)‘이 아닌 ‘무장개혁가들(armed reformers)‘이 일으킨 ‘무장개혁운동(armed reform movement)‘으로 보았다.

사람들은 동학군이 부패한 관료들과 배반한 밀고자에 
대항해 우발적으로 봉기한 농민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왕권의 확고한 충성을 고백하는 그들의 선언으로 판단해 볼 때, 한국의 어딘가에애국심의 맥박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농민들의 가슴속뿐이라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동학군의 봉기는 과격한 충돌이나 쓸데없는 피 
흘림은 없는 것처럼 보였고 자신들의 개혁 프로그램을 
수행하기 위한 시도에 자신들을 한정시키고 있었다. 
정부의 실정이 더 이상 지속될수 없고, 부패한 관리들의 
참기 어려운 강탈에 대항한 평범한 농민봉기보다는 훨씬 
큰 규모의 무장항쟁을 벌일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몇몇 외국의 동정은 동학군에게 쏠렸다. 
동학군은 너무나 확고하고 이성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어서 나는 그들의 지도자들을 ‘반란자들‘이라기보다 차라리
 ‘무장한 개혁자들‘라고 부르고 싶다.

동학농민전쟁 연구 중 ‘대원군 밀약설‘을 다루고 있는 
연구들은 논점에 따라 세 가지 입장으로 나뉜다. 

첫째, 대원군이 동학농민군과 관계를 맺고, 농민군 동원을 
사주)하였다고 주장하는 소위 ‘대원군사주설‘이 그것이다.

둘째, 전봉준과 대원군 사이에 모종의 연관이 있었다는 
소위 ‘대원군 연관설(이설)‘이 있다. 

셋째, 전봉준이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맞추어 ‘대원군‘의 
정치적 명성을 활용한 것으로 보는 ‘대원군 원격 활용설‘이 있다. 

본 연구는 특히 유영익의 소위 ‘대원군 사주설‘에 대한 비판적 사료 검토에 주안점을 두었다.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동학농민군의 제1차 봉기 이전 대원군과 전봉준의 
밀약설 주장은 강한 추정에 불과하다. 둘째, 대원군 사주에 의한 동학농민군의 제1차 봉기설에 동원된 기존 사료를 검토한 결과 ‘국태공 추대‘는동학농민군이 정부 관속에게 
보내는 ‘호소문‘, ‘화유문‘에만 나타나고있는 점에 비추어볼 때 동학농민군이 필요에 따라 대원군을 이용한 것으로 보
인다. 셋째, 대원군 측의 ‘사주‘ 내용이 실체적으로 확인되는 동학농민군의 재기포의 경우 대원군의 ‘사주‘는 결과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향한 일방적 ‘사주‘였고, 동학농민군은 이 실패한 ‘사주‘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동학농민군 재기포의 목적은 ‘아국국토에 대한 침략‘(경복궁 무력 점령)을 
감행한 일본군에 대한 항거에서 비롯되었음을 재차 확인했다(이영재).

필자는 동학농민봉기를 "농민전쟁과 농민혁명으로 
간주하면서 지배계급에 대한 피지배계급의 투쟁이 고조· 
격화되면서 역사발전 법칙상불가피하게 일어난 민중운동이나 계급전쟁이라고 보는 민중주의와 민족주의 사가들의 
역사해석은 이데올로기가 모든 것을 지배하던 시대에 
자신들이 꿈꾸는 세상을 정당화하기 위해 연역적으로 만들어진 도식적 역사서술의 산물이라고 본다. 민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꿈꾸는 민중혁명 필연론은 공산주의의 실현을 더 이상 반드시 구현되어야 할 역사적 진보나 필연으로 
보지 않는 냉전 붕괴 이후 신좌파들의 지적 흐름에 비추어 
시대착오적일 수 있으며, 저항담론으로서의 민족주의도 
어찌 보면 개인에게는 외세와 마찬가지로 억압기구이자 
탄압의 기제로 작용할 수 있는 거대담론이라는 점에서 
다원화된 시민사회를 운위하는 오늘의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일 수 있다.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다. 역사가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의 과정이라면, 오늘 우리의 지향이 썩지 않게 하는 성찰의 기억으로 역사는 쉼 없이 다시 쓰여야 한다. 

오늘의 한국인은 자본가와 노동자, 도시민과 농민, 남성과 
여성, 정규직과 비정규직, 시민권자와 이주노동자 등 생각과 지향과 이해를 달리하는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다원화된 
시민사회를꿈꾼다. 일본의 역사 왜곡을 둘러싸고 국제전과 내전의 포연이 가득한 이유는 침략의 과거사를 영광의 
역사로 미화하는 역사 교과서가 결과할 미대상에 대해 
동아시아와 일본의 시민사회가 품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남의 잘못을 나무라기 위해서는 내 결함도 살펴야 
하는 법이다. 반면교사로서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을 둘러싼 일본 내의 내전을 보면서 한국의 경우도 역사 교과서를
 반성적 · 비판적 입장에서 성찰해야 함을 절감한다.

왜냐하면 한국 시민사회도 타자와의 공존을 지향한다면, 
지난 고난의 역사에서 배태된 저항 민족주의에서 기인하는 배타성과 우월의식을 남의 눈을 감당할 수 있는 일반적인 
문제로 어떻게 환원시킬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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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판절차이분론(公判節次二分論)


‘공판절차이분론‘ 내지 ‘소송절차이론‘이란 소송절차를 
범죄사실의 인정절차와 양형절차로분리하자는 주장으로, 
영미의 형사소송에서 유래한다. 즉 영미의 형사소송은 
배심재판을 배경으로 유죄 평결과 형의 선고를 엄격히 
구분하여 배심에 의한 유죄의 평결이 있은 후에법관에 
의한 양형절차가 개시된다. 이에 반하여 현행 형사소송법은 아직까지 사실절차와 양형절차를 구별하지 않고 있으나, 
최근에 독일과 일본의 형사소송법학계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공판절차이분론을 도입하자는 주장이 강력히 대두되고 있다.

소송구조론

소송구조론이란 형사소송에 있어서 소송주체의 권리·의무로서의 제활동을 체계적으로파악하여 그들 상호간의 관계를 통일적으로 구성하려는 이론을 말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형사절차는 소추자인 검사와 소추를 당한 피고인간의 질서있는 대립 · 항쟁속에서 법관이 관단을 내리는 소송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이러한 소송형태 가운데에서 법원 · 검사 · 
피고인간의 기능분담과 역할이 어떻게 구축되어 있는가에 따라서 여러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다만 형사절차를 
규정하는 법제도도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소산이라 할 
것이므로 오늘날의 소송구조를 이해함에 있어서는 먼저 
그 연혁적 과정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당사자주의

당사자주의란 당사자, 즉 검사와 피고인이 대등한 입장에서 자기에게 우리한 주장·입증을 행하고, 공정한 제3자인 
법원이 이에 대한 판단을 행하는 소송구조를 말한다. 
즉 당사자주의에서는 소송의 결과에 대하여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당사자에게증거(예컨대 사실조사, 증인 면담,
전문가와의 상담 등)를 수집 · 제출케 함으로써 보다 많은 
증거가 법원에 제출될 수 있고, 법원은 순수한 제3자의 
입장에서 공정한 재판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당사자주의는 사실인정과 법률적용이 엄격하게 
분리되는 배심재판제도를 전제로 하는 영미 형사소송법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사실의 인정은 일반시민으로서 
비법률가인 배심원에게 맡기고 직업법관은 법률의 해석과 소송지휘만을 담당하도록 하는 구조이다.

직권주의

직권주의란형사소송의 주도적 지위를 검사나 피고인에게 
맡기지 않고 법원에 인정하는 소송구조를 말한다. 대륙법계 형사소송에 따르면 형사소송이 국가형벌권을 실현하는 
절차인 이상 심리의 주체인 법원이 형벌권의 실현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관여하는것이 형사소송의 본질에 비추어 당연하다는 것이다.

형사소송의 기본구조는 당사자주의이고 직권주의는 
당사자활동에 대한 보충적 역할을 가진다고 보는 견해
(다수설)와 형사소송의 기본구조는 직권주의이고 
당사자주의를 강화한 것은 직권주의에 대한 수정적 의미를 가질 뿐이라는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전자는 당사자대등주의 내지 무기평등의 원칙을 전제로 
소송결과에 대하여 이해관계가 절실한 피고인이 검사와 
대등한 입장에서 다툼으로써 실체진실의 발견에 보다 
기여할 수 있고, 피고인의 인권보장에도 충실할 수 있다는 
입장인 반면, 후자는 형사소송은 국가적 정의와 민족적 
윤리에 관련된 국가형벌권의 실현과정이므로 이러한 
형벌권의 실현과정에 법원이 관여하는 것은당연하며, 
검사와 피고인의 실질적 평등은 어떤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현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므로 법원의 직권개입을 
통해서만 실체 진실의 발견에 보다 접근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헌법재판소는 "형사소송의 구조를 당사자주의와 
직권주의 중 어느 것으로 할 것인가의문제는 입법정책의 
문제로서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은 그 해석상 소송절차의 
전반에 걸쳐 기본적으로 당사자주의 소송구조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는바, 당사자주의에 충실하려면 
제1심법원에서 항소법원으로 소송기록을 바로 송부함이 
바람직하다."고판시한 바 있고,

대법원도 "형사소송에 있어서는 입증책임의 분배를 
엄격하게 따질 수는 없다고 할 것이나당사자주의를 
그 소송구조로 하고 있는 현행 형사소송법 체계에서는 
소송범죄사실 또는 피고인의변소사실이 증거가 없거나 
불충분한 경우에 불이익을 받을 당사자는 바로 검사이거나 피고인이므로 공소범죄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다."고 하여 형사소송의기본구조를 당사자주의로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형사소송절차는 공익의 유지와 개인의 인권보장이라는 
두 개의 극점을 주축으로 하여 진행되는 것이므로 현행법도 직권주의적인 대륙법체계와 당사자주의적인 영미법체계를 절충한체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국민참여재판을 계기로 증거조사를 피고인신문에 앞서서 실시하는 등 대폭적으로 영미식 제도를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이념적 지향으로서의 당사자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직권주의는 보충적 성격을 가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대한민국의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식이 고양된 오늘의 
시점에서 국가권력으로 국부터민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여부(국가로부터의 자유)만이 중요한 문제가아니라, 
이제는 국가가 범죄로부터 국민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여부(국가에서의 자유)에 보다 더큰 가치를 두는 논의와 
입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즉 공권력의 확대에 따른 두려움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의 문제는 별론으로 하고, 
행복의 최대화보다는 불행의 최소화에 중점을 두는 
피해자 중심의 사법, 즉 ‘증거능력판단의 주도권을 
피고인에게 주는 시스템이 아니라 국가(법원)가 갖는 
시스템을 논할 시점인 것이다.

종래 형사소송법은 ‘국가형벌권의 존부확인과 실현을 
위한 절차로서, 형사사법을 통한 정의를 실현하여 판결의 
실질적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설명되어 
왔다. 따라서 형사절차법은이러한 목적을 추구함에 
있어서 한편으로는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보장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안전과 개인의 기본적 인권의 
보장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잘 조화시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이에 대하여 최근에는 ‘사회적 정의의 
실현이라는 의미에서의 법적 평화의 회복‘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견해도 등장하고 있다. 

형사절차를 형법실현이라는 측면에 치중하다보면 실체적 
진실발견을 위한 사법의 기능적 효율성만을 강조하게 되고, 당사자의 주체적 참여가 무시된 채 가능한 한 많은 증거의 
확보와 신속한 재판으로 사건을 일방적으로 처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형사사건 처리과정에서 피의자 · 피고인의 권리침해가 절대화된 정의를 지향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지만, 그동안 실체진실의 개념을 적정절차=
인권보장과 대치되는 개념으로 본 것에 기인하는 것 같다. 

그러나 실체적 진실주의와 피의자 ·피고인의 인권보장을 
위한 적정절차의 원칙이 충돌하는 경우 수사절차에서는 
적정절차의 원칙이 더 철저히 준수되어야 하지만, 
공판정에서는 실체적 진실주의가 보다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공판정에서 개인을 대신하여 형벌권을 행사하는 국가가 의심의 대상이 된다면, 그리고 이에 따라 
피해자의 권리구제가 피고인의 권리보호와 동등한 취급을 받지 못한다면 국가형벌권의 기반 자체가 정당성을 잃게 
되는 반면, 수사절차에서는 수사의 효율성을강조하는 수사기관의 권한남용으로 인하여 피의자의 인권이 언제든지 
침해될 가능성이 상존하므로 이에 대한 사법적 통제가 더 
큰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수사의 
효율성을 고려하면서도, 피의자의 인권을 수사절차에서 
어느 정도로 보호할 것인가의 문제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르고, 그 사회의 문명수준 및 이념에 따라 유동적인 
것이므로형사법의 매우 어려운 연구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수사단계에서 피의자의 진술을 얻기 위한 제도적 
장치 (유죄답변협상 등)가 없을 뿐만 아니라 참고인의 
출석을 강제하는 수단이나 수사과정에서 허위진술을 한 
참고인을 처벌하는 조항도 없다. 물론 한국의 수사기관은 
긴급체포 이외에도 최장 30일간 구속(사법경찰관10일 + 
검사 20일)할 수 있으며, 참고인진술의 증거능력을 확보하기 위한 증거보전설차 (제184)및 참고인에 대한 증인신문절차(제22조의2)가 인정되고 있다. 

이는 수사기관이 구속기간 중피의자신문을 하면서, 사건의 실체관계를 찾아내는 ‘수사 위주의 패러다임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조서의 증거능력을 규정하고 있던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1항의 개정 및 제2항의 폐지는 형사소송의 
실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대변혁이라는 점에서, ‘공판중심주의‘의 구현을 위한 바람직한 제도적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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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의 ‘시간적 적용범위‘란 형법이 적용될 수 있는 
시간적 한계를 말한다.

‘시제형법‘이라고도 한다. 형법은 다른 법률처럼 시행시부터 폐지시까지 효력을갖는다. 문제는 행위시와 재판시에 형벌법규가 변경된 경우 어느 법률이 적용되는지, 행위시의 
법률이 폐지된 경우 폐지된 법률이 재판시까지 효력을
미치는 추급효있는지 여부이다.

(1) 행위시법주의(제1항)

헌법(13①)과 형법(1①)에 따르면, 행위시법주의가 
기본원칙이다. 즉, "범죄의 성립과 처벌은 행위시의 법률에 따른다"(1①). 이는 형벌불소급원칙의 당연한요청으로, 
사후입법에 의한 국가형벌권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즉, 사후입법에 의하여 비로소 범죄로 규정하거나, 
사후입법에 의하여 그 형을 가중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행위시 이후 그러한 법률개정이 있더라도, 행위시의 법률(구법)이 적용된다.

(2) 행위시의 의미여기서 ‘행위시‘란 ‘범죄의 실행행위의 
종료시‘를 의미한다(대판 1994.5.10. 94도563). 
예컨대, ㉠ 법률개정 이전에 실행에 착수해도 법률개정 
이후에 실행행위가종료된 경우 신법 행위시법)을 적용하고위 94도563) ㉡ "포괄일죄로 되는 개개의범죄행위가 
법 개정의 전후에 걸쳐서 행하여진 경우에는 신·구법의 
법정형에대한 경중을 비교하여 볼 필요도 없이, 범죄 실행 
종료시의 법인 신법을 적용한다"(대판 1998.2.24. 97도183).

재판시법주의(제2항)

형법 (1②)에 따르면, 범죄 후 법률이 행위자에게 유리하게 변경된 경우에는예외적으로 신법재판시법)이 적용된다. 
즉, "범죄 후 법률이 변경되어 그 행위가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게 되거나 형이 구법보다 가벼워진 경우에는 신법에 따른다" (1②). 이를 ‘재판시법주의 (신법주의)‘ 또는 ‘가장 
유리한 법적용의 원칙‘이라고한다. 소급효금지의 원칙은 
불리한 소급효를 금지하는 것일 뿐 유리한 소급효까지 
금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신법에 경과규정을 두어 이러한 재판시법주의의 적용을 배제하는 것도 허용된다"(대판 1992.2.28. 91도2935). 

형의 집행에 관한 특칙(제3항)

"재판이 확정된 후 법률이 변경되어 그 행위가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게된 경우에는, 형의 집행을 면제한다" 
(1③). 유죄를 인정하여 형을 선고한 재판이 확정되면, 
확정판결은 유효하고 집행력이 발생하여, 그 내용대로 
형이 집행된다.

제3항의 입법취지는 재판정의 선후에 따른 처벌의 불공평을 해소하기 위한것이다. 주의할 것은, 형법의 적용범위에 
관한 특칙이 아니라, ‘형의 집행에 관한 특칙‘이라는 점이다. 실체법적 규정이 아닌 절차법적 규정이며, ‘실질적 의미의 
형사소송법‘에 해당한다.

여기서 ‘재판의 확정‘이란 통상의 불복방법으로 판결의 
효력을 다툴 수없게 된 상태를 말한다(예: 상소기간의 경과, 상소의 포기 · 취하, 상소기각재판의 확정 등).

나머지 ‘법률의 변경‘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게 된 경우‘의 의미는 제2항의경우와 같다. 

다만, 제2항과 달리 ‘형이 구법보다 가벼워진 경우는 명문의규정이 없다. 이 경우 이미 확정된 형을 그대로 집행한다.

[형집행기관의 조치]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게 된 경우‘에는, 형법 제1조 제3항에따라 ‘법률상 당연히 "형의 집행이
 면제된다." 

따라서 검사는 형집행 면제의 결정을할 필요가 없다. 
검사는 형집행 면제를 확인한 다음, 자유형의 수형자인 
경우에는 석방지휘를 하며, 교도관은 서류에서 석방일시가 지정되지 않는 한, 그 서류가 교정시설에 도달한 후 12시간 이내에 석방하여야 한다(형집행법 124①).

한시법

일반적으로 한시법이란 유효기간이 정해져 있는 법률, 
즉 미리 폐지가 예상되는 법률을 말한다. 한시법과 
관련하여, 추급효 인정 여부가 문제된다. 즉, 유효기간 
중의 위반행위에 대해 재판시에는 유효기간이 경과하여 
폐지된 경우 이미 폐지된 한시법을 적용하여 처벌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한시법의 추급효

우리 형법은 한시법의 추급효를 인정하는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추급효에 관한 명문의 규정이 없는 경우에도 추급효를 
인정하는 주장을 한시법이론이라 한다. 한시법이론에 
의하여 그 유효기간 중의 위반행위에 대해 유효기간이 
경과한 후에도 처벌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1) 추급효 긍정설 

추급효 긍정설은, 행위시에 이미 처벌규정이 존재한 이상, 
유효기간 경과전의 행위는 여전히 비난할 가치가 있고, 
한시법의추급효를 부정하면 한시법 폐지가 가까워짐에 
따라 위반행위가 속출하는 것을막을 수 없다는 점을 
근거로 한다.

2) 추급효 부정설

추급효 부정설은, 형법 제1조 제2항은 신법주의를
규정하고 있는바, 한시법의 추급효를 인정하려면 
행위시법주의로 환원하는 예외규정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인정할 법적 근거가 없고, 한시법의 추급효를
인정하면, 죄형법정주의의 실질적 의미에 반하며, 형법 
제1조 제2항의 취지에도맞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한다. 
다수설의 입장이다.

판례는 ‘법률변경의 동기‘를 기준으로 추급효의 인정 여부를 결정하는 이른바 동기설의 입장이다. 즉, 법률변경의 동기가 ㉠ ‘법률이념의 변경(즉, 법적 견해의 변경, 반성적 고려‘인 
경우에는 행위의 가벌성이 소멸하므로 추급효를 부정하고 행위자를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인 반면, ㉡ 단순한 ‘사실관계의 변화(즉, 사태의 호전, 경제·사회적 여건의 변화)‘인 경우에는, 가벌성이 소멸하지 않으므로한시법의 추급효를 인정하고 행위자를 처벌한다.

판례는 ‘한시법‘이나 ‘백지형법‘의 문제에 대해 일관되게 
동기설을 적용해 왔다. 이는 한시법에 관한 명문의 규정 
없음에도, 광의의한시법개념을 인정하고 그 처벌범위를 
확대하는 결과에 이른다. 

그러나 죄형법정주의에 부합하도록 그 추급효를 부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검토: 추급효부정] 형법법규의 개폐가 매우 빈번한 
입법현실에서, 법률변경의 동기가 단지 사정변경에 
기인한 경우 위반행위의 가벌성이 소멸하지 않는다는 
판례의 태도는 일 수긍할 점이 있다. 그러나 한시법에 
관한 명문의 규정이 없는 우리 형법의해석상 추급효를 
부정하는 것이 타당하다(추급효 부정설).

외국에서 집행된 형의 산입

제7조(외국에서 집행된 혐의 산입) 죄를 지어 외국에서 
혐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집행된사람에 대해서는 그 집행된 
형의 전부 또는 일부를 선고하는 형에 산입한다.

우리 국민이 외국에서 그 나라의 국제형법에 의해 처벌된 
경우에도, 다시속인주의에 의해 우리 형법이 적용될 수 있다. 외국판결은 우리 법원을 기속할수 없고, 우리나라에서는 
기판력도 없어 일사부재리 원칙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경우 형법은 "외국에서 ‘집행된 형‘의 전부 또는 일부를 
선고형에 산입‘한다"고 규정하여, 제한된 효력만 인정한다.
즉, 외국에서 집행된 형에 대해서만, 적어도 일부를 반드시 산입하도록 하였다.(필요적 산입).

여기서 ‘외국에서 형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집행된 사람‘
이란 "문언과 취지에비추어 ‘외국 법원의 유죄판결에 
의하여 자유형이나 벌금형 등 혐의 전부 또는일부가 
실제로 집행된 사람‘을 말한다"(대판 2017.8.24. 2017도
5977 전합). 

따라서 "형사사건으로 외국 법원에 기소되었다가 
무죄판결을 받은 경우 그 미결구금 기간은 형법 제7조에 
의한 산업의 대상이 될 수 없다" 2017도5977 전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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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척

제척이란 구체적인 사건의 심판에서 불공평한 재판을 할 
우려가 큰 경우를유형적으로 규정하여 놓고, 그 사유에 
해당하는 법관을 직무집행에서 배제시키는 제도이다. 
제척의 효과는 정형화된 사유의 존재만으로 법률상 당연히 발생한다는 점에서, 당사자나 법관 스스로의 신청과 그에 
따른 재판에 의해 직무집행에서 배제되는 기피·회피와 
구별된다.

제척은 공판절차의 법관은 물론, 약식명령 또는 즉결심판을 행하는 법관에게도 적용된다. 증거보전이나 수사상 증인신문을 행하는 법관에게도 적용된다.

기피

피는 법관이 제척사유가 있는데도 재판에 관여하는 경우나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경우에 당사자의 신청에 
의해 그 법관을 직무집행에서 배제시키는 제도를 말한다.

회피

회피란 법관이 스스로 기피원인이 있다고 판단한 때에 
자발적으로 직무집행에서 탈퇴하는 제도이다. 즉, 법관이 
제18조(기피의 원인의 규정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다고 
사료한 때에는 ‘회피하여야 한다‘(24①12) 회피는 소속 
법원에 서면으로 하고(?), 그 재판은 회피한 법관의 소속 
법원 합의부에서 결정으로 한다(24③ · 21①). 

신청시기에는 제한이 없다. 회피신청에 대한 결정에는 
기피에 관한규정이 준용된다. 법원의 결정에 대하여는 
당해 법관이 항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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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다.






다원화된 시민사회를 사는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학자의 주관적 해석이 아니다. 역사가의 존재 이유는 
사실 중심의 객관적 역사서술을 함으로써 시민 스스로 
다양한 역사해석을 할 수있도록 하는 게 아닐까? 

특히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시대의 역사인
 당대사(contemporary history)는 오늘 우리를 있게 
한 토대이자, 미래의 진로를 비추는 등대다. 우리가 누리는 물적 풍요와다원적 시민사회는 그들의 피와 땀이 씨앗이 
되어 거둔 결실이다.
그들의 삶의 발자취가 담긴 근현대사를 모르고 미래 시대의 앞길을 열 수는 없는 법이다.

이 책의 목적은 현재진행형인 역사가들의 충돌하는 
역사관의 요체를 황사영 백서(1801) 동학농민봉기
(1894-1895), 대한제국(1897-1910), 현행 검인정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현대사 시술에 보이는 문제점, 
그리고 근현대 문명전환의 주체를 둘러싼 논쟁등을 
살펴봄으로써 역사가의 존재 이유에 대한 나름의 관건을 
제시해보려는 데 있다.

-머리말 중에서

1980년대 신군부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성장한 586 
운동권 세대는1990년 냉전 붕괴 이후 실존 공산주의 
체제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민중민주주의 계급혁명 (social revolution)을 꿈꾸어왔다. 특히 이들이 파워엘리트 집단으로 군림한 문재인 정권은 
시민공동체의 통합을 해치는 분열의 정치와 역사 기억의 
왜곡을 추동한 바 있다. 이들은 한세기 전 실패의 역사를 
일본과 서구열강의 침략 탓으로 돌리며, 외세의 침락이 
없었다면 조선왕조가 주체적으로 근대를 이룩할 수 
있었다고 강변한다. 1948년 건국 이후 대한민국은 6·25전쟁으로 인한 폐허를 딛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 경제적 번영과 시민적 자유를 누리는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기적과도 같은 성취를 일구어냈다. 그렇지만 이들은 대한민국현대사를 친일파가 주도한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부끄러운 역사라고 오도한다.

이러한 역사해석은 사실이 아니다. 다원화된 시민사회를 
사는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학자의 주관적 해석이 아니다. 역사가의 존재 이유는 사실 중심의 객관적 역사
서술을 함으로써 시민 스스로 다양한 역사해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아닐까?

근대란 무엇인가? 부르주아지가 일찍 자라난 선발국 영국과 프랑스에는 굴뚝과 인권 세우기가 함께 행해진 시대였고, 
그렇지 못했던 후발국독일과 일본에는 인권을 유보한 국가주도의 산업화가 추동된 시대였다. 백색 전체주의로 갈 수밖에 없었던 후발국 일본과 독일의 역사 경험에 비춰볼 때 
개인의 발견이 없는 한 우리에게 진정한 근대는 없다. 

그렇다면 국가권력의 횡포에 맞서 개인의 기본권인 신앙의 자유를 쟁취하려한 백서의 역사성도 새롭게 조명돼야 한다고 본다. 여기서는 먼저 황사영은 누구이고, 백서의 내용은 무엇인지를 알아보려 한다. 다음으로 조선왕조에서 오늘에 이르는 역사관에 따라 다른 역사가들의 백서에 대한 평가를 살펴본 후 시민사회를 사는 오늘 개인의 인권을 중시하는 
시좌에서 백서에 대한 나름의 관견을 밝혀보려 한다. 

역사해석은 다양할 수 있으나 사실에 입각한 역사서술이어야 하며, 역사적 사건에 대한 판단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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