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법에서 법은 공법과 사법으로 나뉘고, 사법 안에는 민법과 상법이 있다. 민법은 다시 사람에 관한 법(법인 포함) , 가족법, 상속법, 물권법, 채권법으로 나뉜다. 이런 목차는 유스티니아누스의 법학제요도 같고, 19세기 민법전도 같다. 그외 다른 법, 즉 행정법이나 형법 등도 전부 이민법 체계로부터 발달해왔다는 믿음도 대륙법의 또 하나의 특징이다.
대륙법에서는 민법 공부가 우선이다. 민법을 보면 개념에 익숙해지고, 법의 기본 구조를 알며, 사법기관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 민법 외의 다른 법학은 전부 민법에 엄청난 빚을 졌다. 민법을 통해서 익힌 법의 기본 개념과 기본 구조를 받아 다른 법 연구에 쓰기 때문이다. 민법 학자는 선구자다. 가장 열심히 법 이론을 발전시켜가는 사람들은 늘 민법 학자다.
현대사회로 오면서 소위 공법 영역이 눈부시게 넓어지며 이런 신념이 약간 흔들릴 만한 상황이 되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없다. 민법은 여전히 기본법이고, 민법 공부가 우선이다. 대륙법계의 법학자들은 다 이렇게 생각한다.
민법에도 당연히 주요 법전으로서의 민법이 있고, 그를 보충하는 민사에 관한 특별법이 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이 바로 기본 개념과 이론이다. 이는 전부 학자들의 작품이며, 제9장에서 본 것처럼 학자들의 권위는 이 연구에서 나온다. 학자는 결국 개념을 정리하고 이론을 세우는 사람이다. 개념과 이론은 실정법인 민법에 적혀 있지 않고, 실정법을 기초로 학자들이 과학적 방법으로 추출해내서 체계화한 것이다. 자료를 통해서 추출해낸 일종의 진리, 그것이 바로 개념이고 이론이다.
개념과 이론이 무엇인지 알려면 세 가지 문헌을 들추어보면 된다. 첫째, 1896년 독일민법과 그 체계를 이어받은 다른 국가 민법에서 찾아볼 수 있는 소위 ‘총칙‘ 규정이다. 둘째는 법학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재구성한 복잡한 민법 이론서이고, 셋째가 법학을 처음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법학개론‘이다. 서로 다른 곳에산재해 있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이 세 가지는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민법총칙, 민법 이론서, 법학개론 이 3종 세트는 19세기 이후독일법을 그대로 받아들였거나 독일법의 영향으로 기존의 민법을개정한 국가에서 공히 확인할 수 있다.
독일법을 본뜨지 않은 국가들도자기 국가 법이 ‘과학적‘ 이라고 여긴다. 여기서 말하는 과학성이란 총칙, 민법 이론서, 법학개론이 얼마나 잘 정리되어 있는지를 평가한 결과다. 그 세 가지가 체계적으로 정리가 잘되어 있으면 법은 과학적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기왕이면 민법전 총칙보다 민법 이론서나 법학개론이 잘 정리되어 있는 것이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 학자들이 눈여겨 보는 것은 민법전이 아니라 이론서나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먼저 교과서는 기본 개념인 ‘법 질서 (legal order)‘에 대해 "사람이사회생활을 하려면 사람들 사이에 충돌하는 이해를 조절하고 다툼을 피하기 위하여 일정한 규준 (사회생활의 준칙). 즉 법이 필요하며, 구성원들은 법이 각자에게 지시하는 바를 이행해야 한다"라고 설명한다. 이걸 그대로 국가에 적용하면 국가는 ‘국가가 정한 법을 시민들이 잘 지키는지 감시하기 위하여 법 제도와 기관을 만들어 법을 집행하는 것‘이다.
이어서 교과서는 법의 특징을 "법은 개인에게 어떤 행위를 할지강제하는 명령규범"이라고 설명한다(실제로 모든 법이 다 명령규범은 아니다. 민법을 보면 어떤 상태에 있으면 어떤 결과가 발생한다‘고만 적힌 법도 있다. 가령 ‘사람이 유언 없이 죽으면 그 재산은 자손에게 상속된다‘는 규정은 개인에게 특정한 행위를 하게 하는 명령규범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전통적인 설명에 따르면, 민법을 포함한 많은 법은 특정한 행위를 요구하거나금지하며, 그림으로써 "누군가에게 권리를 부여한다." 즉, 빚을 진자가 빚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 빚을 준 자는 원금을 받을 권리가 생긴다는 식이다. "법이 개인에게 특정 행위를 요구하는 순간, 이로인해 한 개인에게는 다른 개인에게 행위를 요구할 권리가 발생한다. 단, 여기서 말하는 법에 자연법은 포함되지 않는다. 대륙법은 오로지 실정법만 가지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법 규범은 단순한 권고가 아니다. 법을 어길 경우에는 "공권력이라는 필요악이 발동한다". 이런 의미에서 법은 양심의 가책이나 사회적인 비난이 뒤따르는 도덕이나 에티켓, 계명, 윤리와 다르다(법 규범 가운데 국가공권력의 제재가 발동하지않는 규범도 아주 많다. 유언 없는 상속의 경우 소유권이 누구한테 가는지, 계약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 민사나 형사사건, 소액사건의 관할법원은 어딘지를 정해주는 조항들 모두 제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민법총칙에 따르면 법 규범은 추상적이다. 특정 행위자를 지정하지 않고 ‘일반적인 예‘만 보여준다. 즉, 채무자가 빚을 갚지 않으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원래 ‘권리 (subjective right)‘라는 개념은 ‘사법상 법률관계로부터개인이 누리는 법적 이익‘을 의미한다. "법 규범의 궁극적인 목적은 일반인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 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개인이 각자 이익을 추구하도록 두고, 그 이익을 법이 보장하는 데 있다. 따라서 법 질서는 개인의 이익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법률관계에서 그것을 실현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권리란 개인이 이익을 추구해 만족을 얻을 수있게 하기 위해 법이 인정하는 힘이라고 정의된다."
권리자는 권리를 남용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권리 행사로 인해 타인에게 발생한 손해를 책임지지 않는다(이 명제는 정확하지도 않고, 충분한 논의 없이 내린 잘못된 결론에 가깝다. 앞서 사인 간의 법률관계가 제3자에게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명제에 대한 비판은 여기서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무엇보다 이 진술은 동어반복 이상의 의미가 없다. 권리를 남용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권리 행사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는 말은 권리 행사로 인해 책임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라고 바꿀 수 있는데, 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공허한 말이다. 중요한 것은 언제 책임지고 언제 책임지지 않느냐는 것인데 이 내용은 빠져 있다).
‘권리 남용‘에 대해서 프랑스 같은 국가는 무엇이 권리 남용인지 학자들이 정의한 내용을 법원이 적용한다. 하지만 어떤 국가에서는 "그 판단을 판사의 재량과 들쭉날쭉한 기준에 맡기고 있어 위험해 보인다"라고 한다. 명확성의 원칙에 따라 입법자가미리 제시해준 기준에 맞춰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권리를 나누는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방법"은 "절대권과 상대권으로 나누는 것"이다. "절대권은 특정한 상대방이 없고, 일반인을 의무자로 하여 모든 사람에게 주장할 수 있는 권리이며, 상대권은 특정인을 의무자로 하여 그에게만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절대권은 ‘물건에 대한 권리‘인 물권이다. 물권은 권리자가 물건의 전부(소유권 또는 일부제한물권)를 직접 지배해서 이익을 얻는 배타적 권리를 말한다. 물건과 그 권리자의 관계는 직접적이며, 권리의 향유를 위해서 타인의 도움이 필요치 않다.
다른 사람들은 그 권리자가 물건을 지배하는 데 방해하지만 않으면되는 것이다. 반면에 권리의무관계에서는 의무를 지닌 자의 행위가제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렇게 특정인의 행위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채권이라고 한다. 즉, 물건에 대한 절대적 권리는 물권사람에 대한 상대적 권리는 채권이라고 부른다. 채권은 어떤 사람의 행위만 요구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사람의 인격, 성명, 초상 등을배타적으로 누릴 수 있는 인격권과는 내용이 다르다. 한편 절대권이든 상대권이든 불문하고 권리의 반대편에는 의무(duty)가 있다. 어떤 물권을 다른 사람이 침해하면 안 된다는 점에서 물권에 대한의무자는 물권자 외 전부이고, 채권에 대한 의무자는 정해진 행위를 해야 하는 채무자에 국한된다.
이렇게 정의한 다음 교과서는 법률관계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간다. "법률관계에서는 법익의 주체가 권리를 취득한다. 권리의 취득으로 인해 주체에게 권리가 발생하고, 권리자는 소유자가 된다.
즉, 권리는 주체가 향유하는 재산 중 일부가 되는 것이다. 권리의 취득은 다시 원시취득과 승계취득으로 나뉘는데, 원시취득은 타인의 권리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 원시적으로 취득하는 것이며, 승계취득은타인의 권리를 바탕으로 하여 취득하는 것이다. 승계취득에서 권리자에게는 타인이 가지고 있는 이미 존재하는 권리를 이어받음으로써 권리가 발생한다. 따라서 두 가지 점을 주의해야 한다.
첫째, 승계취득에서 신(新)권리자는 구(舊)권리자가 가지고 있었던 권리 이상의 권리를 취득하지 못하고, 둘째, 구권리자의 권리에 제한이나 흠이 있으면 신권리자의 권리도 같은 제한이나 흠이 생긴다는 점이다."(여기서 이 원칙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신권리자는 구권리자가 가지고 있던것 보다 큰 권리를 갖거나 더 작은 권리를 가지는 경우가 아주 많고, 신권리자의 권리가 전(前) 권리에 붙은 제한이나 흠 외에 다른 사유에 의하여 제한받는 경우도많다는 점이다. 민법총칙 교과서의 저자의 승계취득에 관한 설명이 정확하고 충분한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한 검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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