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법의 전제로서의 자연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연이 어떠한 의미를 갖느냐에 관하여는 여러 견해가 갈려져 있다. 자연법의 전제로서의 자연은 실정법의 근원으로서 보편적이고 평화로운 질서 그 자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자연법의 전제로서의 자연은 물리적 존재로서의 자연이 아니다. 물리적 존재로서의 자연의 조화로운 운행질서가 자연법의 전제로서의 자연으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물리적 존재로서의 자연은 구체적인 물리적 존재인데 반하여, 자연법의 전제로서의 자연은 추상적인 자연질서 내지 우주질서를 의미한다.
홉스에게 자연상태는 만인이 만인을 상대로 한 투쟁상태이면서 무법상태이기 때문에 그 혼동상태를 극복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사회계약에 의하여 인민은 그들의 권리를 남김없이 전부 국가의 지배자에게 위임하고 그 지배자에게 절대복종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홉스는 절대권력자에게 지배권력을 위임한 인민은 그 절대지배자의 지배상태에 저항하거나 그의 정치권력을 할 권리는 없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그가 지향한 절대왕정의 정당성을 인정하려고 하였으며, 당시의 공화정을 지지한 세력에 대항하는 이론을 제공하였던 것이었다. 홉스의 이와 같은 자연상태와 사회계약에 관한 이론은 인간의 본성에 관하여 성악설에 입각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록크에게 있어서의 자연상태는 자유와 평등과 평화의 상태이었으며, 인민은 재화에 대한 사소유권을 갖고서 화평하게 살아가는 상태였다. 이러한 자유와 평화와 사유재산이 보호되는 자연상태를 사회상태에서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하여 인민은 사회계약에 의하여 지도자에게 그러한 자연상태를 유지하도록 그들의 권리를 위임하였으며 지도자가 자연상태를 위반하는 권력행사를 하는 경우에는 그 지도자를 제거할 수 있고, 그들의 정부를 전복할 수 있다는 저항권행사의 정당성을 인정하였다.
이러한 록크의 자연상태에 대한 이해와 인민의 폭군에 대한 저항권 행사의 인정은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입장에 있었다고 파악되며, 이와 같은 록크의 사상은 영국에서는 명예혁명 (Glorious Revolution: 1688-1689)과 권리장전(Bill of Rights:1689)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으며, 미국의 독립선언(Declaration of Independence;1776) 과 독립혁명(1775-1781), 그리고 프랑스대혁명(1789)과 프랑스 인권선언(1789)의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
생각건대 자연상태는 홉스가 말한 투쟁상태 내지 혼돈상태는 아니며, 평화로운 자연상태였던 것으로 이해되고 그렇게 이해함이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인류의 최초의 상태는 평화로운 상태라고 이해된다. 그것이 바로 자연상태였으며, 그 자연상태가 힘이 센 강자에 의하여 사회상태 내지 지배상태로 발전되었다고 이해된다. 자연상태에서 사회상태로의 전환에 의한 사회상태의 정당성은 사회계약에 의하여 이루어졌다고 이해되며, 그 사회계약의 내용은 사회상태이전의 이고 평화로운 자연상태의 회복을 위한 내용으로 구성되었다고 이해함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자연상태에 관한 록크의 이해와 설명이 자연상태에 관한 적절한 설명으로 이해된다.
자연권은 자연상태를 자유와 평등 그리고 평화의 상태로 이해할 때에 비로소 인정될 수 있으며 혼돈상태로 파악할 때에는 자연권을 인정할 수 없다.
따라서 록크는 자연권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홉스는 사회계약은 인정하였지만 자연권은 인정하지 아니하였다. 그는 오로지 실정적인 권리만을 인정하였을 뿐이었다. 록크는 자연권으로서 생명권, 자유권, 평등권 그리고 사유재산권을특히 강조하였다. 더 나아가 로크는 노예제도의 금지를 주장하였다.
록크는 자연상태에서 인민은 자연적인 의무를 부담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자연적인 의무는 법으로 되지도 아니하고 공포되지 아니하였지만인간의 이성에 의해서 알게 된다고 하였다. 자연상태에서 인민은 자기보존의 의무가 있으며, 타인에 대한 저의 의무를 진다고 하였다. 록크는 이러 한의무를 자연상태에서의 인민의 의무로 이해하였다.
자연상태를 자유롭고 평화로운 상태로 이해한 록크는 자연상태의 법을 자연법이라고 하였다. 그는 이 법을 Naturrecht 라 하지 아니하고 Naturgesetz라고 하였다.
그리고 록크는 자연법에 의한 저항권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홉스는 이를 인정하지 아니하였으며 인민은 절대왕정의 통치에 따를 것만을 주장하였을뿐이다. 저항권은 이론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국가권력이 남용되었을 때에 그것에 대한 대응권력으로서 승인되고 그 행사가 정당화되었다. 저항권은 성서에서 그 근거를 두고서 법사상으로 인정되기 시작하였으며, 록크의 자연법에서는 확고한 인민의 권리로 인정되게 되었다. 신약성서의 사도행전 제5장 제29절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느니라" (Man muß Gott mehrgehorchen als den Menschen)는 성서에서부터 한 지배자의 권력에 의한 불의한 법을 따르기보다는 정의로운 하나님의 법을 따르라는 것이며, 하나님의법을 따른 결과로 순교를 당한 데서부터 저항권의 역사는 시작되었다고 본다.
미국독립혁명, 프랑스대혁명은 록크의 자연법에 의한 저항권 행사의 극치였다. 이러한 자연법에서의 저항권은 오늘날 인류의 보편가치를 담은 법치국가체제가 마련되어 있지 아니한 곳에서는 그것을 쟁취하게 위한 수단으로서, 인류의 보편가치를 담은 법치국가체제가 이미 쟁취되어 있는 곳에서는 그유지를 위한 수단으로서, 그리고 인류의 보편가치를 담고 있는 법치국가체제가 파괴되었을 때에는 그것을 다시 회복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작용하는 법원리로 발전하였다.
자연법론과 법실증주의의 상호교착
법실증주의(Rechtspositivismus)는 입법자에 의하여 제정된 법률은 그 내용의 정당성과는 관계없이 항상 그 효력을 갖는다는 법사상이며, 법은 입법자의 의사에 의한 결정이며, 법은 오로지 제정법만이 존재하며, 제정법 위에 초실정법적인 법의 존재를 부인한다. 그러므로 법실증주의하에서는 입법자에의하여 제정만 되면 법이며, 악법도 법임을 인정한다.
이와 같은 법실증주의의 특징은, 첫째로 법과 도덕을 구별하며, 둘째로 법이 부도덕,부정당하더라도 법에 복종할 의무를 인정하며, 셋째로 법효력의 근거를 법의 내용의 정당성 내지 타당성에서 보다는 실효성으로만 보고자 하며, 넷째로 법의 징표를명령, 의지로 보며 실정성의 계기를 중요시한다. 이처럼 법실증주의에서는 법기를의 내용의 정당성 내지 정의에 부합여부보다는 권력자에 의하여 제정만 되면 그 법은 내용의 정당성에 상관없이 그 효력을 갖게 되어 강제력을 갖는다고 본다.
자연법은 좋은 법을 찾고자 하는 법사상 내지 법정책인데 반하여, 법실증주의는 그러한 좋은 법이나 바쁜 법이냐의 판단보다는 법의 실효성과 법적안정성을 중시하는 법사상이다. 자연법은 입법자에 의해서 법이 제정되었다 하더라도 그 내용이 정의롭지 못하면 그 법의 효력을 부인하고자 하는 법사상인데 반하여, 법실증주의는 법의 내용보다는 법의 실정성을 중시하고 강조하는 법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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