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법에서는 학자가 말하는 것이 법이다. 볼로냐에서 로마법이다시 발견된 이후부터 이런 현상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사람들은 주석학파의 견해에 따라 법을 이해하고 가르쳤다. 법의 목표, 방법, 절차, 그리고 법률 문제에 대한 관점까지도 주류 법학자들 의견을그대로 따랐다.
주석학파가 힘을 잃어가면서 후기주석학파가 나왔고, 이들의 연구방법론과 교육철학을 합쳐서 이탈리아학파라고 부른다. 그 다음이 프랑스에서 발달한 인문주의학파이고, 자연법학과 국제법학이뒤를 잇는다. 법제사의 어느 시점을 떼어놓고 봐도 늘 둘 이상의 학파가 경합을 벌였고, 그중 한 학파가 우세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륙법학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금은 개념법학의 시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륙법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강력하고 단결력 있는 학자모임이 바로 개념법학이다. 대륙법의 6요소라고 하면 로마민법, 교회법, 상법, 민주주의혁명에 개념법학이 포함된다. 마지막 한 가지요소는 이제 태동 중이기 때문에 제20장에서 설명하도록 하겠다.
개념법학은 19세기 중후반 독일법 학자들의 작품으로, 사비니의구상에서 시작됐다. 제4장에서 본 것처럼 사비니는 독일법이 합리주의와 비종교적 자연법학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법을 따라가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독일에서 역사적으로 발전해온 법률을 기초로 새로운 독일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독일법 제정을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그동안 시행되어온 법률을 분석해서그 안에 들어 있는 기본 이론을 찾아내고 이들을 체계화하는 것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독일법의 중심에는 로마민법이 있다. 독일 학자들은 주석학파가 복원한 로마민법 이론을 받아들인 다음 거기에독일식 색채를 가미했다. 특히 《로마법대전 > 가운데 《다이제스트>를 열심히 읽었는데, 《다이제스트》를 라틴어로는 ‘판덱텐‘이라고 하기 때문에 이 독일법 학자들을 판덱덴학파라고 부른다. 판덱덴학파는 독일법 공부를 통해 알게 된 법 이론에 대해서 다양한 글을 쓰면서 수백 년간 학과를 유지해왔다. 그러다가 19세기 중반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르는데, 그때까지의 성과를 집대성한 논문이 쏟아졌고, 때마침 1871년 비스마르크가 독일을 통일하면서 1896년에 독일민법의 제정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맞이하게 된다. 이 독일민법과 학자들이 쓴 글이 일부 영미법 국가를 포함해서 대륙법 전체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교재가 되었다.
이건 단지 민법만의 문제가 아니다. 독일민법에서 발달한 개념과 법학방법론은 민법이 아닌 공법에도 적용되었고, 민법에서 시작된개념법학이 모든 법학을 지배하고 있다. 사비니 시절부터 지금까지수많은 비판과 반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법 학자들은 개념법학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다.
개념법학의 주장에 따르면, 법의 세계에서 볼 수 있는 각종 자료들, 가령 법률과 규칙, 관습법 등을 잘 분석하면 그 전체를 아우르는 법 이론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과학자들이 물질에서 공통된 원리를 발견하는 것과 같다. 당시 유명한 법학자였던 루돌프좀(Rudolph Sohm)의 말을 빌리면, "화학자가 물질을 분석하듯이 우리도 법률을 분석해서 그 핵심을 이루는 법 이론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법학은 태생적으로 자연법학과는 대척점에 선다. 과학적 방법론을 따르고 심지어 본인들이 과학자로 취급되기를 바란다(이들보다는 과학에 대한 집착이 조금 덜하지만 공부 방법 자체는 거의 비슷한 한 무리의 학자들이 19세기 중반 미국법학에서 나와 소위 사례연구라는 독특한 교수법을 설파한 적이 있다).
개념법학은 실정법을 분석해서 공통적인 것을 모아 개념화, 체계화를 한 것이기는 하지만 실정법을 들여다볼 때 그게 금방 눈에 띄는 것은 아니다. 개념 자체는 학자들의 창작품이기 때문이다. 법학자들은 나름대로 개념을 만들어서 실정법을 설명하고자 한다. 그래서 ‘개념‘법학이다. 우리도 예를 들면 "계약"이라는 개념을 쓴다. 그것 없이는 이야기가 잘 안될 때도 있다. 따라서 법학에서 개념이들어가는 것을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문제는 그 개념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한다는 데 있다. 혹은 기존에 없던 개념을 만들어서 그걸외우도록 한다. 그리고 그 개념들을 서로 연결해서 체계를 만들어내는 일에 몰두한다. 학자들이 할 일은 바로 그것이라는 듯이, 실제세상을 있는 개념 또는 새로 만든 개념을 이용해서 추상화시킨다.
이처럼 사실은 전부 들어내고 세상 자체를 추상화시키는 법학을보고 미국이나 영국의 법률가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개념법학이 만들어낸 이론에서 사실관계나 역사적 맥락 같은 것은 의미가 없다. 구체적인 사실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개념법학의 목적은실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법 이론을 완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사실을 다 들어내고 최대한 추상화하다 보면 모든 사건에 고루 통용되는 법적 진실에 도달한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개개의 사건에 집중할 일이 아닌 것이다.
개념법학의 방법론으로는 주로 형식논리가 이용된다. 개념법학자들은 법률이나 재료를 잘 주물러서 그 전체에 적용되는 상위 원칙을 만든다. 그 과정에서 잘 안 맞는 원칙 한두 개쯤은 억지로 묶기도 한다. 이 상위 원칙들을 잘 따져보면 그들을 다시 한데 묶을더 상위의 원칙이 발견되고, 이런 식으로 거듭하다 보면 가장 윗자리에 "국법질서의 일반원칙"이 자리를 잡는다.
제7장에서 본 것처럼 적용할 법률이 없는 경우에 판사는 이 일반원칙에 따라 문제를해결해야 한다. 이와 같은 법 이론의 체계화 과정에서 무의식이나직관 같은 이질적인 요소는 낄 자리가 없다. 인간의 삶에서 때때로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인데도, 무의식은 이 과정에서 의미가 없다. 막스 베버의 말대로 개념법학은 "논리적이고 형식적인 합리주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또한 개념법학은 순수한 법학이어야 한다. 법과 관련 없는 것은 제외된다. 가령 사회과학 이론, 통찰력, 분석자료 등 법과 관련 없는 것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개념법학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사비니와 그 추종자들이 역사법학과라고 불리지만 역사마저도 개념법학에서는 설 자리가 없다.
개념법학에서 역사란 역사학자나 법사학자가 신경 쓸 문제이지 법학자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다. 법학자는 오로지 법에만 관심을 가지고 법적 가치만 중시한다. 결국 다른 사회문화와는 섬처럼 동떨어진 법 이론이 만들어지고 마는 것이다.
이처럼 이데올로기나 사상으로부터 자유로운 법학을 추구해왔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개념법학은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것 역시 시대적 산물이고, 정확히 말하면 19세기 후반 유럽자유주의의 풍토 속에서 태어난 사상이기 때문이다. 유럽자유주의의 특징은 개인과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극단적으로 강조한데 있었다. 사적 소유권과 계약자유의 원칙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만 제한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둥이라고 생각했다. 이른바 극단적 자유주의의 시대였다. 당시에는 법 중에 으뜸은 로마민법이라고 생각했고, 로마민법은 소유권에 관한 물권법과 계약법이 핵심이다. 개념법학자들은 이 법들을 공부하면서 더욱더 당대의 이데올로기에 깊이 물들었다. 법학이라는 이름으로 자유주의의 사상을 담아법 이론을 만들고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법학자들은 자유주의의 선봉에 섰고, 아는 법원의 법 해석과 적용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쳤다. 판례에도 영향을 미쳤고, 거래 실무에도 영향을 미쳤다. 법 제도 전체가 자유주의로 물든 것이다. 그렇게 이데올로기에물들어 있으면서도, 순수하고 과학적인 법학을 한다는 가림막을 쳤다. 결국 19세기 개념법학은 자유주의의 산물이면서 가장 중립적이고 엄정한 과학인 것처럼 포장이 되었다.
영미법 진영에서도 개념법학과 궤를 같이하는 생각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개념법학 교수들의 작품인데 반해서 영미법은 기본적으로 판사들이 주도하는 법이고, 판사들이 이론보다는 문제 해결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개념법학이 주장하는 과학주의, 체계화,형식주의는 문제 해결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또 개념법학은 태생적으로 사법제도 내에서 판사가 아니라 학자와 입법자의 역할을 강조한다. 반면에 영미법의 주류를 이루는 법사회학(추상화, 형식주의,순수법학과는 거의 반대되는)이나 법현실주의 (과학주의와 체계화를 부정하는)에서는 법과 이론보다 절차가 훨씬 더 중요하다. 미국법과 개념법학은 그런 의미에서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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