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인간의 감관을 위해 감각적인 것에서 이끌어 낸 예술작품

지금까지 우리는 예술작품이 인간에 의해 제작되었다고 
하는 측면을 고찰했는데, 이제는 그것이 인간의 감관을 
위해 산출되며 따라서 또한 다소간 감각적인 것으로부터 
조달된다는 두 번째 규정으로 넘어가야만 한다.
이러한 반성은 예술이 감웅을, 그것도 더 자세히 말해 
우리에게 적합한 쾌적의 감응을 자극하도록 규정되어 
있다는 식의 고찰을 유발했다. 이런 고려에서 예술의 
연구는 감의 연구가 되었고, 도대체 어떤 감응들이
예술을 통해 자극될 수 있는지, 그것이 예를 들어 공포와 
연민이라 하면, 이런 것들이 도대체 어떻게 쾌적할 수 
있는지, 불행의 관찰이 어떻게 만족을 보장할 수 있는지 
등을 묻게 되었다. 이런 방향의 반성은 특히 모제스 
멘델스존의 시대부터 나타나며, 그의 저술들에서는 
그러한 고찰을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감응은 정신의 모호하고 무딘 영역인 까닭에
그러한 연구는 크게 진척되지 못했다. 감응되는 것은 
매우 추상적이고 개별적인 주관성의 형식에 휩싸여 
있으며, 따라서 감홍의 차이들도 역시 전적으로 추상적일 
뿐 사태 자체의 차이들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예술작품은 혹여 아무 감응이나 자극하는 
것이어서는 안되며 왜냐하면 이 경우 예술작품은 이러한 목적을 웅변술이나 역사 서술, 종교적 교화 등과 특별한 차이 없이 공유할 것이기 때문에 다만 미적인 한에서의 감을 자극해야 하므로, 반성은 미를 위해 이제 미의 고유한감 응을 
또한 찾아내고 미를 위한 특정한 감각을 발견하는 일에 
탐닉하게되었다. 그럼에 있어 그러한 감각은 본성적으로 
확정된 맹목적 본능이이 본능이 이미 즉자대자적으로 
미를 식별한다고들 하는데 아니라는 사실이 바로 
드러났으며, 그리하여 그러한 감각을 위해 교양이 
요구되었고 또한 교양 있는 미감이 취미로 불리게 
되었으며, 또한 취미는 비록 미를 교양 있게 파악하고 
발견하지만 직접적 감응의 방식에 머물 도리밖에 없다고들 이야기되었다. 


추상적 이론들이 어떻게 그러한 취미감각을 육성하려 
시도했는지, 그리고 그 자체가 어떻게 하여 피상적 
일면적인 것에 머물렀는지에 대해 우리는 이미 언급한 
바 있다. 그런 입장들의 시대에는 한편으로 보편적 
명제들에 결함이 있었거니와 다른 한편 개별 예술작품에 
대한 특수한 비판도 좀 더 규정적인 판단을 정하는 
방향보다는 (왜냐하면 이를위한 수단이 아직 없었으므로) 
오히려 취미 일반의 계발을 촉진하는 방향을 취했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교양도 또한 비규정적 상태에 머물러 
있었으며, 다만 미가 어디에 어떻게 현전하는 직접 
발견될 수 있도록 미감으로서의 감응을 반성을 통해 
무장시키려 노력했을 따름이다. 그런데 취미에는 사태의
깊이가 은폐된 채 남았으니, 까닭인즉 그 깊이는 감각과 
추상적 반성에 그치지 않는, 충만한 이성과 견실한 
정신을 요구하는 반면, 취미는외적 표면에만 감응들은 
이 주위를 유희하며 또한 여기서는 일면적 명제들이
용될 수 있다. 그 때문에 소위 좋은 취미라는것은 좀 더
심오한 일체의 작용들 앞에서 공포를 느끼며, 사태가 
언표되고외면성과 부수성이 사라지는 곳에서 침묵한다. 

왜냐하면 심오한 영혼의 위대한 열정과 움직임이 열리는 
곳에서는 취미의 미세한 차이나 개별적인 것에 얽매이는 
잡동사니 취향은 더 이상 문제시되지 않기 때문이다; 
취미는천재가 그러한 바닥을 성큼 넘어감을 느끼며 
그의 힘 앞에서 뒷걸음치면서 안절부절 더 이상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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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신의 원칙

(1) 의의 

공시방법에 의하여 공시된 내용을 믿고 거래한 자가 있는 
경우에 그 공시방법에이 진실한 권리관계와 일치하고 
있지 않더라도 그 자의 신뢰를 보호하여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이 인정되어 있다면, 예컨대 A의 토지에 관하여 
B가 그 토지를 A로부터 매수한 것처럼 서류를 위조하여 
자신의 이름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한 뒤에 C에게 이를 
매도한 경우에, C가 B의 소유권등기를 진실한 것으로 
믿고 있었을 때에는, C는 토지의 소유권을 유효하게 
취득하게 된다.

공신의 원칙이 인정되어 있으면 물건의 매수인 기타 물권을 거래하는 자는 공시방법을 믿고 거래하면 설사 공시방법이 실제의 권리관계와 일치하지 않더라도 권리를 취득하게 
되어, 거래의 안전이 보호된다. 그런가 하면 공시방법이 
실제의 권리관계와 일치하는지를 따로 조사할 필요도 
없어서 거래의 신속도 기할 수 있게 된다.

(2) 우리 법에서의 공신의 원칙

우리나라는 공신의 원칙을 부동산거래에 관하여서는 
인정하지 않고, 동산거래에 관하여서만 인정하고 있다.

물권변동은 서론적인 설명이 끝난 뒤에는 부동산 물권변동, 동산 물권변동을 차례로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내부에서 법률행위에 의한 것과 기타에 의한 것을 나누어 
다루어야 한다.

그런데 부동산과 동산의 물권변동의 어느 것에 있어서나 
법률행위에 의한 물권변동에는 법률행위 즉 물권행위가 
공통하게 된다. 따라서 각각의 물권변동에 앞서서 공통적인 사항인 물권행위를 기술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가 하면 
부동산등기는 그것이 법률행위에 의한 부동산물권변동의 
요건이기 때문에 등기의 일반적인 설명도 체계상으로는 
그 물권변동의 아래에서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게 되면 
물권변동에 관한 논의의 초점이 흐려질 가능성이 커서, 
이해의편의를 위하여 체계를 다소 누그러뜨려 개별적인 
물권변동의 앞에서 논의하려고 한다.

물권행위와 채권행위는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지만, 둘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일반적으로 채권행위가 있은 후에 
그것의 이행으로서 물권행위가 행하여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토지의 매매계약이라는 채권행위를 한 뒤, 그에 
기하여 매도인이 부담하는 소유권이전채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소유권이전의 합의라는 물권행위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채권행위의 이행으로서 물권행위가 행하여지는 경우, 즉 채권행위가 물권행위의 원인(causa)이 되는 
경우에, 그 채권행위를 물권행위의 원인행위라고 한다. 

주의할 것은, 언제나 채권행위가 있고 그것을 전제로 하여 
물권행위가 행하여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거래의
실제에 있어서는 채권행위와 물권행위가 하나로 합하여져 행하여지는 때도 있으며, 채권행위가 없이 물권행위만 
행하여지는 때도 있다(예:소유권의 포기)

물권행위의 종류

법률행위가 단독행위 · 계약 · 합동행위로 나누어지므로
물권행위에도 물권적 단독행위 · 물권계약 · 물권적 
합동행위가 있게 된다.

물권의 포기 등은 물권적 단독행위에 해당한다.

물권행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리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물권계약이다. 물권계약은 좁은 의미의 계약인 
채권계약과 구별하기 위하여 합의 즉 물권적 합의라고 
하는 때가많다(그러나 지상권, 저당권설정계약 등과 같이 계약이라는 표현도 적지 않게 사용된다).
소유권이전의 합의가 그 예이다.
그리고 공유자의 소유권포기는 물권적 합동행위에 해당한다.

처분행위로서의 성질

물권행위는 처분행위이다따라서 그것이 유효하기 
위하여서는 처분자에게 처분권한이 있어야 한다. 
처분권한이 없는 자가 타인의 물건을 처분하는 경우에는 
그 처분행위는 무효이다. 그러나 처분권자가 사후에 
추인을 하면 처분행위는 소급해서 유효한 것으로 된다.

물권행위가 일정한 방식에 따라서 하여야 하는 
요식행위인가에 관하여는 학설이 대립하고 있는데, 
다수설은 불요식행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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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민법 - 민법총칙 / 물권법 / 채권법총론 / 채권법각론, 제4판
송덕수 지음 / 박영사 / 202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가족법을 제외한 민법의 기본개념과 심화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같은 저자의 신민법강의의
핵심 요약본 정도가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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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4 2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꾸러미 2022-12-15 01:55   좋아요 0 | URL
신민법강의에서 보충설명 좀 줄이고 판례 원문 삭제한 정도입니다. 사실상 거의 내용은 같아요.
 

1. 서설

(1) 민법은 시민 각자의 자아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법적 
기반이자 동시에 분쟁을 해결하고 거래를 촉진하는 
사회규범이다.

(2) 법관이 민사에 관하여 재판을 할 때 적용할 기준, 
즉 민법의 존재형식 내지 인식근거를 민법의 法源이라 한다.

제1조는 민법의 법원으로 일단 ‘법률과 관습법 그리고 조리‘를 열거하는데, 이들의 적용순서로 법률 제정법이 1차적으로 적용되고, 제정법이 없는 경우에 관습법이 적용되며, 관습법조차 없으면 조리에 따르도록 규정한다.

(3) 민법전은 총칙, 물권, 채권, 친족, 상속의 5편으로 
구성되는데, 이러한 구성방식을 판덱텐체계라 한다. 
판덱텐체계의 특징은 개념을 통한 추상화에 있으며,
그러한 특징이 총칙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관습법의 효력에 관한 선도적 판결로서 대관 1983.6.14. 
80다3231은 관습법이 성문법에 대하여 보충적 효력을 
가지며 사실인 관습은 당사자의 의사를 보충하는 것으로서 관습법과 구별된다는 입장인데,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관습법이란 사회의 거듭된 관행으로 생성한 
사회생활규범이 사회의 법적 화신과 인식에 의하여 
법적 규범으로 승인ㆍ강행되기에 이르른 것을 말하고, 
사실인 관습은 사회의 관행에 의하여 발생한 사회생활
규범인 점에서 관습법과 같으나 사회의 법적 확신이나 
인식에 의하여 법적 규범으로서 승인된 정도에 이르지 않
은 것을 말하는바, 관습법은 바로 법원으로서 법령과 같은 
효력을 갖는 관습으로서 법령에 저촉되지 않는 한 
법칙으로서의 효력이 있는 것이며, 이에 반하여 사실인 
관습은 법령으로서의 효력이 없는 단순한 관행으로서 
법률행위의 당사자의 의사를 보충함에 그치는 것이다.

[2] 법령과 같은 효력을 갖는 관습법은 당사자의 주장 
입증을 기다림이 없이 법원이 직권으로 이를 확정하여야 
하고 사실인 관습은 그 존재를 당사자가 주장 입증하여야 
하나, 관습은 그 존부 자체도 명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관습이 사회의 법적 확신이나 법적 인식에 의하여 법적 
규범으로까지 승인되었는지의 여부를 가리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므로, 법원이 이를 알 수 없는 경우 결국은
 당사자가 이를 주장 입증할 필요가 있다.

[3] 사실인 관습은 사적자치가 인정되는 분야 즉 그 분야의 제정법이 주로 임의규정일 경우에는 법률행위의 해석기준으로서 또는 의사를 보충하는 기능으로서이를 재판의 자료로 할 수 있을 것이나 이 이외의 즉 그 분야의 제정법이 주로 
강행규정일 경우에는 그 강행규정 자체에 결함이 있거나 
강행규정 스스로가 관습에따르도록 위임한 경우 등 
이외에는 법적 효력을 부여할 수 없다.

[4] 가족의례준칙 제13조의 규정과 배치되는 관습법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은 관습법의 제정법에 대한 열후적, 
보충적 성격에 비추어 민법 제1조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다.

[5] 가족의례준칙 제13조의 규정과 배치되는 사실인 
관습의 효력을 인정하려면 그와 같은 관습을 인정할 수 
있는 당사자의 주장과 입증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이 관습이 사적자치가 인정되는 임의규정에 관한 것인지 
여부를 심리 판단하여야 한다."

2. 민법의 기본원리

(1) 민법의 토대를 이루는 사적자치의 원칙에 따라 
각자는 자기의인생관 · 사회관을 바탕으로 사회공동체 
안에서 자기의 생활관계를 자기책임 하에 스스로 
결정하고 형성할 수 있다.

(2) ① 자유로운 처분과 용익의 근거로서 소유권의 존중, 
② 의사에 기한 권리변동의 계기로서 계약자유, ③ 책임을 
지우는 근거로 가해자의 의사작용을 요구하는 과실책임의 원칙이 사적자치의 중요한 발현 형태이다.

(3) 민법은 권리를 기준으로 법률관계를 규율함으로써 
진정한 권리자를 보호하는 한편, 거래의 안전을 위하여 
예외적으로 진정한 권리관계와 일치하지 않는외관을 
신뢰한 이가 보호되기도 한다(선의취득, 표현대리, 선의의 
제3자 보호 등). 그런데 신뢰보호와 진정한 권리자의 
희생은 동전의 양면을 이루므로, 진정한 권리자와 제3자의 이해가 적절하게 조절되어야 한다.

(4)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사적자치의 제한이 부득이하더라도, 그 방법은 사적자치의 폐단을 최소화하는 것이어야지, 
사적자치의 원칙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대판(전) 2007.11.22, 2002두8626 참조).

[1] 관습법이란 사회의 거듭된 관행으로 생성한 사회생활규범이 사회의 법적 확신과 인식에 의하여 법적 규범으로 승인ㆍ강행되기에 이르른 것을 말하고, 사실인관습은 사회의 
관행에 의하여 발생한 사회생활규범인 점에서 관습법과 
같으나 사회의 법적 확신이나 인식에 의하여 법적 규범으로서 승인된 정도에 이르지 않은 것을 말하는바, 관습법은 
바로 법원으로서 법령과 같은 효력을 갖는 관습으로서 
법령에 저촉되지 않는 한 법칙으로서의 효력이 있는 것이며, 이에 반하여 사실인 관습은 법령으로서의 효력이 없는 
단순한 관행으로서 법률행위의 당사자의 의사를 보충함에 
그치는 것이다.

[2] 법령과 같은 효력을 갖는 관습법은 당사자의 주장 입증을 기다림이 없이 법원이 직권으로 이를 확정하여야 하고 
사실인 관습은 그 존재를 당사자가 주장 입증하여야 하나, 
관습은 그 존부 자체도 명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관습이 사회의법적 확신이나 법적 인식에 의하여 
법적 규범으로까지 승인되었는지의 여부를 가리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므로, 법원이 이를 알 수 없는 경우 
결국은 당사자가 이를 주장 입증할 필요가 있다.

[3] 사실인 관습은 사적자치가 인정되는 분야 즉 그 분야의 제정법이 주로 임의규정일 경우에는 법률행위의 해석기준으로서 또는 의사를 보충하는 기능으로서이를 재판의 자료로 할 수 있을 것이나 이 이외의 즉 그 분야의 제정법이 주로 
강행규정일 경우에는 그 강행규정 자체에 결함이 있거나 
강행규정 스스로가 관습에 따르도록 위임한 경우 등 
이외에는 법적 효력을 부여할 수 없다.

"사유재산제도와 경제활동에 관한 사적자치의 원칙에 
입각한 시장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원칙적으로 사업자들에게 계약체결 여부의 결정, 거래상대방 선택, 거래내용의 결정 등을 포괄하는 계약의 자유가 
인정되지만,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이 우려되는 
경우에는 그러한 계약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 할 것이고, 이러한 제한 내지 규제는계약자유의 원칙이라는 시민법
원리를 수정한 것이기는 하나 시민법원리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시민법원의 결합을 교정함으로써 
그것이 가지고 있던 본래의 기능을 회복시키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대판(전) 2007.11.22, 2002두8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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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대한 통념들

예술작품에 관해 우선 인구에 회자될 만한 생각은 
다음의 세 가지 규정과 관계한다:

1. 예술작품은 자연산물이 아니며 인간의 행위를 
통해 생겨났다는 규정

2. 예술작품은 본질적으로 인간을 위해 제작되었으며, 
그것도 인간의 감관을 위해 다소간 감각적인 것에서 
끌어내었다는 규정

3. 예술작품은 자체 내에 목적을 갖는다는 규정

1. 인간 행위의 산물로서의 예술작품

예술작품이 인간 행위의 산물이라는 첫 번째 짐에 관해서 
볼 때, 이 견해로부터 나타나는 생각은 외형물의 의식적 
제작으로서의 이러한 행위가 인식 · 설명될 수 있기도
하고, 타인에 의해 습득. 추종될 수 있기도 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만드는 것은 그 절차의 방식을 알기만 
한다면 타인도 역시 만들거나 모방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일 
법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예술생산의 규칙들을 전반적으로 숙지할 
경우 동일한 방식으로 절차를 수행하여 예술작품을 
산출한다는 것은 단지 일반적인 임의 사안이 될 것이다. 

위에서 거론된 규칙의 제정을 목표로 삼는 이론들과 
그 이론들의 실제적 준수를 위해 산정된 지침들은 
이런 식으로 생겨났다. 그런데 그런 부류의 지침에 따라 
실행되는 것은 단지 형식적 규칙성 내지 기계성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렇듯 외적인 종류의 것은 기계성에 불과할 
뿐으로, 이것을 표상 속에 받아들이 작품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완전히 빈 의지의 행위와 숙련만이, 즉 자기자신 
속에 어떠한 구체성도, 일반적 규칙을 통해서는 주어지지 
않는 어떠한 지침도 수반할 필요가 없는 행위와 숙련만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그 같은 지침들이 외적, 
기계적인 것에만 한정되지 않고 내용으로 가득 찬 정신적, 
예술적 행위로까지 확대될 때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영역에서 규칙들이 포함하는 일반성이 있다면, 그것은 
예컨대 주제는 흥미로뭐야 한다든가, 각 인물은 자신의 
신분, 나이, 성별, 처지에 알맞은 어투를 써야 한다는 
따위의 모호한 일반성일 뿐이다. 여기서 규칙들이 충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 지침들은 더 이상의 고유한 정신 활동 없이도 표현된 꼭 그대로 또한 실행될 수 있는 
그러한 규정성을 동시에 구비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규칙들은 내용상 추상적이며, 그런 까닭에 
예술가의 의식을 채우기에 적합한 척하여도 그에 아주 
부적합한 것으로 밝혀진다. 왜냐하면 예술적 생산은 
주어진 규정성에 따르는 형식적 행위가 아닌 정신적 
행위로서 스스로 우러나 작업해야만 하며 또한 형식적 지
침들에 의해 제공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한층 풍부한 
내용과 한층 포괄적인 개별 형상들을 정신의 눈앞에 
가져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말 그 규칙들이 규정적인, 따라서 실제로 
유용한 뭔가를 내포한다손 쳐도, 그것들은 기껏 지극히 
외적인 주변을 위한 규정들 따위를 제공할 뿐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위에서 시사된 방향에서 완전히 등을 
돌렸지만, 대신 꼭 그만큼 다시 반대의 잘못에 빠졌다. 
왜냐하면 예술작품이 더 이상 일반적인 인간 행위의 
산물로 간주되지 않고 극히 독특한 재능을 타고난 정신의 
작품으로 간주되기는 했으나, 이제 이러한 정신도 역시 
모름지기 자신의 특수성만을 마치 그것이 특수한 자연력이나 되는 양, 보장받고자 할뿐, 보편타당한 법칙으로의 
지향으로부터 그리고 자신의 본능적인 제작에 의식화된 
반성이 개입하는 것으로부터(정신의 산물은 그러한 
의식을 통해 다만 불순해지고 훼손될 뿐이라고 하여)
완전히 벗어나고자 하는, 아니 그로부터 보호받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측면에서출발하여 
예술작품을 재능Talent 천재의 산물이라 공언하고 주로 
재능과천재가 속에 지니는 자연적 측면을 부각했다. 
부분적으로는 옳다. 왜냐하면 재능이란 천재에게 보편적인 특수 능력으로서, 인간은 단순히 자신의 자의식적 행위를 
통해서는 이 능력을 스스로에게 부여할 힘이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은 추후 좀 더 자세히 언급될 것이다.


여기서는 이러한 견해, 즉 예술적 생산에서는 자신의 행위에 관한 일체의 의식이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해가 되어 왔다는 견해의 잘못된 측면을언급하는 것으로 족하다. 이때 재능과 천재의 발현은 요컨대 다만 하나의상태, 좀 더 정확히 말해 영감의 상태로서 나타난다. 천재는 한편으로는대상에 의해 자극되어 그 상태에 이르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의에 의해 
스스로 그 상태로 옮겨 갈 수 있다고들 하는데, 이 경우라면 샴페인 병의 훌륭한 보조도 빼놓을 수 없다. 독일에서 
이러한 견해가 등장한 것은 소위 천재시대인데, 이 시대는 
괴테의 초기 시작품들을 통해 인도되었고, 후일 실러의 
작품들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이 시인들은 초기 작품들에서 당시 기존하던 모든 규칙을 제쳐 둔 채 새로 시작했으며, 
의도적으로 그 규칙들에 역행하여 작업했으며, 이 점에서 
그들은 실로 다른 시인들을 훨씬 능가하였다. 그러나 영감과 천재의 개념 위에 군림했던, 영감이면 이미 모든 것이
다가능하다는 생각 위에 오늘날에도 여전히 군림하고 있는 그러한 혼란을나는 이 이상 상세히 논하지 않겠다.

예술작품이 인간 행위의 산물이라는 생각에 관한 세 번째 
견해는 자연의 외적 현상들에 대해 예술작품이 갖는 
지위와 관련된다. 이와 관련해서는 인간의 예술적 산물이 
자연산물에 못 미치리라는 생각이 일상적 의식에게 그럴듯했다. 왜냐하면 예술작품은 그 속에 어떠한 감정도 갖고 
있지 않으며, 속속들이 삶을 갖는 것이 아니라 외적 객체로서 죽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통상 산 것을 죽은 것보다 높이 평가한다. 
예술작품이 자체적으로 살아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은 
물론 시인될 수 있다. 자연생명체는 안팎으로 극히 미세한 
부분까지 합목적적으로 구성된 유기체인 반면, 예술작품은 단지 겉으로만 생명성의 가상을 획득할 뿐 자체로서는 흔한 돌이거나, 나무와 캔버스이거나, 혹은 시에서와 같이 말과 
철자 속에서드러나는 표상이다. 그러나 작품을 미적 기술의 산물로 만드는 것은 이러한 외적 실존의 측면이 아니다. 

한 작품이 예술작품이려면, 그것은 필히 정신으로부터 
기원해야 하며, 정신의 기반에 속해야 하며, 정신적인 것의 세례를 받아야 하며, 또 정신의 울림에 맞추어 형성된 
것만을 표현해야 한다.

인간적 관심사, 즉 한 사건, 개인적 성격, 행위가 얽히고
설키어 생겨나는 정신적 가치는 예술작품 속에 포착되며, 
또한 여타의 비예술적 현실의 기반위에서 가능한 것보다 
더욱 순수하고 투명하게 부각된다. 

이를 통해 예술작품은 정신을 통과하는 이러한 과정을
 겪지 못한 일체의 자연산물보다 높이 위치하게 되니, 
이유인즉 일체의 정신적인 것은 여하한 자연의 소산보다 
우월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회화에서 한 풍경의 표현이 
감과 통찰에서 비롯된다면, 이를 통해 이 정신의 작품은 
단순한 자연경관보다 한층높은 지위를 얻는 것이다. 
아무튼 어떠한 자연물도 예술작품만큼 신적 이상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제 정신은 자신의 고유한 내면에서 얻어 낸 것, 바로 
그것에 외적 실존을 갖는 하나의 지속성을 부여하며, 
또한 이를 통해 예술작품들을 만든다;즉 예술작품은 
지속적인 반면, 개별적인 자연생명성은 일시적이고 
소멸되며 또한 외관의 면에서도 가변적이다. 

비록 자연적 현실에 대한 예술작품의 참된 우위를 형성하는 것은 단순한 지속이 아니라 정신적 영화Beselining의 발현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제 예술작품이 정신의 소산으로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할 때, 지금까지의 논의로부터 더욱 깊은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해 마지막으로 물어야 할 것은 
예술작품을 생산하려는 인간의 욕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러한 생산은 해도 좋고 말아도 좋을 
단순한 우연과 착상의유희로 간주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술이 목적하는 바를 구현하는 또 다른, 심지어는 더 나은 
수단들이 있으며, 인간은 예술이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높고 중요한 관심사를 지닌다고들 이야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다 른 한편 예술은 모든 시대와 민족들의 가장 
보편적인 세계관과 종교적관심에 결부되어 있으며, 그런 
까닭에 상대적으로 높은 충동으로부터 출현하며, 또한 좀 
더 높은, 아니 때로는 최상의 절대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우연적이 아닌, 절대적인 예술의 욕구에 대한 이러한 
물음은 그 답이 여기서 내려지기에는 너무도 구체적인 
까닭에 아직 완벽하게답변될 수 없다. 그래서 지금은 다만 
다음을 단언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형식적 측면에 따를 때) 예술이 발원하는 보편적, 절대적 
욕구의 원천은 인간이 사유하는 의식이라는 점, 
즉 인간이 자신의 본질과 존재 일반의 본질을 스스로부터 
대자화한다는 점에서 발견된다.

자연물은 단지 직접적이고 일회적이지만, 정신으로서의 
인간은 우선은 자연물처럼 존재하나 다음으론 이에 
못지않게 대자적으로도 존재함으로써, 즉 자신을 직관하고, 자신을 표상하며, 사유하고 오직 이러한 능동적 대자존재를 통해서만 정신으로 존재함으로써 스스로를 이중화한다. 
인간은 자신에 대한 이러한 의식을두 가지 방식으로 
획득한다. 

첫째는 이론적인 것이니, 인간이 내면에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의식해야만 하는 한에서, 즉 인간이 그의 가슴속에서 동요하며 그 속에서 헤집듯 몰아대는 것을 요컨대 자신을 
직관하고 표상해야 하고, 사상이 본질인 것으로 발견한 것을 스스로 확신해야 하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불러낸 것과 
외부로부터 수용한 것에서 오로지 자기 자신을 인식해야 
하는 한에서, 그러하다. 

두 번째로 인간은 실천적 활동을 통해자적이 되는데, 
그 까닭은 그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진 것, 그에 대해 
외적으로로 현전하는 것에 자신을 표출하며, 또한 거기서도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을 인식하려는 충동을 갖기 때문이다.

인간은 외물들에 그의 내면의 인장을 찍어 변형을 가하고, 
그런 뒤에 그 사물들에서 자신의 고유한 규정들을
재발견함으로써 이 목적을 완수한다. 인간이 이를 행함은 
자유로운 주체로서 외부세계에서도 그 서먹한 낯섦을 
제거하기 위함이며, 사물들의 형태에서 오로지 자신의 
외적 실재만을 향유하기 위함이다. 이미 어린아이가 갖는 
최초의 충동이 외물들의 이러한 실천적 변형을 내포하고 
있다; 소년은물결 속에 돌을 던지고, 물에서 퍼져 가는 
동그라미를 이제 자신의 모습이드러나는 작품인 양 경탄한다. 이러한 욕구는 극히 다양한 형태의 현상들을 거쳐, 
예술작품에서 보이듯 외물들 속에서의 자기산출이라는 
방식으로까지 나아간다.

그러니까 예술을 향한 보편적 욕구는 인간이 내적, 외적 
세계를 정신적의식으로, 즉 자신의 고유한 자아를 
재인식하는 대상으로 제고해야 한다는이성적 욕구이다. 

인간은 한편으로는 존재하는 것을 내적으로 대자화되
그에 못지않게 이 대자존재를 외적으로도 현실화하며, 
그리하여 이러한 이중화 속에서 자신 안의 본질을 자신과 
타자에 대해 가시화하고 인식시킴으로써 이러한 정신적 
자유의 욕구를 충족한다. 

이것이 인간의 자유로운 합리성으로서, 일체의 행위와 
앎이 그렇듯 예술도 역시 이 속에서 그 근거와 필연적 
원천을 갖는다. 하지만 기타의 정치적·도덕적 행위, 
종교적 표상, 학문적 인식과 구분되는 예술의 특수한 
욕구는 추후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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