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대한 통념들
예술작품에 관해 우선 인구에 회자될 만한 생각은 다음의 세 가지 규정과 관계한다:
1. 예술작품은 자연산물이 아니며 인간의 행위를 통해 생겨났다는 규정
2. 예술작품은 본질적으로 인간을 위해 제작되었으며, 그것도 인간의 감관을 위해 다소간 감각적인 것에서 끌어내었다는 규정
3. 예술작품은 자체 내에 목적을 갖는다는 규정
1. 인간 행위의 산물로서의 예술작품
예술작품이 인간 행위의 산물이라는 첫 번째 짐에 관해서 볼 때, 이 견해로부터 나타나는 생각은 외형물의 의식적 제작으로서의 이러한 행위가 인식 · 설명될 수 있기도 하고, 타인에 의해 습득. 추종될 수 있기도 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만드는 것은 그 절차의 방식을 알기만 한다면 타인도 역시 만들거나 모방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일 법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예술생산의 규칙들을 전반적으로 숙지할 경우 동일한 방식으로 절차를 수행하여 예술작품을 산출한다는 것은 단지 일반적인 임의 사안이 될 것이다.
위에서 거론된 규칙의 제정을 목표로 삼는 이론들과 그 이론들의 실제적 준수를 위해 산정된 지침들은 이런 식으로 생겨났다. 그런데 그런 부류의 지침에 따라 실행되는 것은 단지 형식적 규칙성 내지 기계성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렇듯 외적인 종류의 것은 기계성에 불과할 뿐으로, 이것을 표상 속에 받아들이 작품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완전히 빈 의지의 행위와 숙련만이, 즉 자기자신 속에 어떠한 구체성도, 일반적 규칙을 통해서는 주어지지 않는 어떠한 지침도 수반할 필요가 없는 행위와 숙련만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그 같은 지침들이 외적, 기계적인 것에만 한정되지 않고 내용으로 가득 찬 정신적, 예술적 행위로까지 확대될 때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영역에서 규칙들이 포함하는 일반성이 있다면, 그것은 예컨대 주제는 흥미로뭐야 한다든가, 각 인물은 자신의 신분, 나이, 성별, 처지에 알맞은 어투를 써야 한다는 따위의 모호한 일반성일 뿐이다. 여기서 규칙들이 충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 지침들은 더 이상의 고유한 정신 활동 없이도 표현된 꼭 그대로 또한 실행될 수 있는 그러한 규정성을 동시에 구비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규칙들은 내용상 추상적이며, 그런 까닭에 예술가의 의식을 채우기에 적합한 척하여도 그에 아주 부적합한 것으로 밝혀진다. 왜냐하면 예술적 생산은 주어진 규정성에 따르는 형식적 행위가 아닌 정신적 행위로서 스스로 우러나 작업해야만 하며 또한 형식적 지 침들에 의해 제공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한층 풍부한 내용과 한층 포괄적인 개별 형상들을 정신의 눈앞에 가져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말 그 규칙들이 규정적인, 따라서 실제로 유용한 뭔가를 내포한다손 쳐도, 그것들은 기껏 지극히 외적인 주변을 위한 규정들 따위를 제공할 뿐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위에서 시사된 방향에서 완전히 등을 돌렸지만, 대신 꼭 그만큼 다시 반대의 잘못에 빠졌다. 왜냐하면 예술작품이 더 이상 일반적인 인간 행위의 산물로 간주되지 않고 극히 독특한 재능을 타고난 정신의 작품으로 간주되기는 했으나, 이제 이러한 정신도 역시 모름지기 자신의 특수성만을 마치 그것이 특수한 자연력이나 되는 양, 보장받고자 할뿐, 보편타당한 법칙으로의 지향으로부터 그리고 자신의 본능적인 제작에 의식화된 반성이 개입하는 것으로부터(정신의 산물은 그러한 의식을 통해 다만 불순해지고 훼손될 뿐이라고 하여) 완전히 벗어나고자 하는, 아니 그로부터 보호받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측면에서출발하여 예술작품을 재능Talent 천재의 산물이라 공언하고 주로 재능과천재가 속에 지니는 자연적 측면을 부각했다. 부분적으로는 옳다. 왜냐하면 재능이란 천재에게 보편적인 특수 능력으로서, 인간은 단순히 자신의 자의식적 행위를 통해서는 이 능력을 스스로에게 부여할 힘이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은 추후 좀 더 자세히 언급될 것이다.
여기서는 이러한 견해, 즉 예술적 생산에서는 자신의 행위에 관한 일체의 의식이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해가 되어 왔다는 견해의 잘못된 측면을언급하는 것으로 족하다. 이때 재능과 천재의 발현은 요컨대 다만 하나의상태, 좀 더 정확히 말해 영감의 상태로서 나타난다. 천재는 한편으로는대상에 의해 자극되어 그 상태에 이르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의에 의해 스스로 그 상태로 옮겨 갈 수 있다고들 하는데, 이 경우라면 샴페인 병의 훌륭한 보조도 빼놓을 수 없다. 독일에서 이러한 견해가 등장한 것은 소위 천재시대인데, 이 시대는 괴테의 초기 시작품들을 통해 인도되었고, 후일 실러의 작품들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이 시인들은 초기 작품들에서 당시 기존하던 모든 규칙을 제쳐 둔 채 새로 시작했으며, 의도적으로 그 규칙들에 역행하여 작업했으며, 이 점에서 그들은 실로 다른 시인들을 훨씬 능가하였다. 그러나 영감과 천재의 개념 위에 군림했던, 영감이면 이미 모든 것이 다가능하다는 생각 위에 오늘날에도 여전히 군림하고 있는 그러한 혼란을나는 이 이상 상세히 논하지 않겠다.
예술작품이 인간 행위의 산물이라는 생각에 관한 세 번째 견해는 자연의 외적 현상들에 대해 예술작품이 갖는 지위와 관련된다. 이와 관련해서는 인간의 예술적 산물이 자연산물에 못 미치리라는 생각이 일상적 의식에게 그럴듯했다. 왜냐하면 예술작품은 그 속에 어떠한 감정도 갖고 있지 않으며, 속속들이 삶을 갖는 것이 아니라 외적 객체로서 죽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통상 산 것을 죽은 것보다 높이 평가한다. 예술작품이 자체적으로 살아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은 물론 시인될 수 있다. 자연생명체는 안팎으로 극히 미세한 부분까지 합목적적으로 구성된 유기체인 반면, 예술작품은 단지 겉으로만 생명성의 가상을 획득할 뿐 자체로서는 흔한 돌이거나, 나무와 캔버스이거나, 혹은 시에서와 같이 말과 철자 속에서드러나는 표상이다. 그러나 작품을 미적 기술의 산물로 만드는 것은 이러한 외적 실존의 측면이 아니다.
한 작품이 예술작품이려면, 그것은 필히 정신으로부터 기원해야 하며, 정신의 기반에 속해야 하며, 정신적인 것의 세례를 받아야 하며, 또 정신의 울림에 맞추어 형성된 것만을 표현해야 한다.
인간적 관심사, 즉 한 사건, 개인적 성격, 행위가 얽히고 설키어 생겨나는 정신적 가치는 예술작품 속에 포착되며, 또한 여타의 비예술적 현실의 기반위에서 가능한 것보다 더욱 순수하고 투명하게 부각된다.
이를 통해 예술작품은 정신을 통과하는 이러한 과정을 겪지 못한 일체의 자연산물보다 높이 위치하게 되니, 이유인즉 일체의 정신적인 것은 여하한 자연의 소산보다 우월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회화에서 한 풍경의 표현이 감과 통찰에서 비롯된다면, 이를 통해 이 정신의 작품은 단순한 자연경관보다 한층높은 지위를 얻는 것이다. 아무튼 어떠한 자연물도 예술작품만큼 신적 이상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제 정신은 자신의 고유한 내면에서 얻어 낸 것, 바로 그것에 외적 실존을 갖는 하나의 지속성을 부여하며, 또한 이를 통해 예술작품들을 만든다;즉 예술작품은 지속적인 반면, 개별적인 자연생명성은 일시적이고 소멸되며 또한 외관의 면에서도 가변적이다.
비록 자연적 현실에 대한 예술작품의 참된 우위를 형성하는 것은 단순한 지속이 아니라 정신적 영화Beselining의 발현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제 예술작품이 정신의 소산으로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할 때, 지금까지의 논의로부터 더욱 깊은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해 마지막으로 물어야 할 것은 예술작품을 생산하려는 인간의 욕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러한 생산은 해도 좋고 말아도 좋을 단순한 우연과 착상의유희로 간주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술이 목적하는 바를 구현하는 또 다른, 심지어는 더 나은 수단들이 있으며, 인간은 예술이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높고 중요한 관심사를 지닌다고들 이야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다 른 한편 예술은 모든 시대와 민족들의 가장 보편적인 세계관과 종교적관심에 결부되어 있으며, 그런 까닭에 상대적으로 높은 충동으로부터 출현하며, 또한 좀 더 높은, 아니 때로는 최상의 절대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우연적이 아닌, 절대적인 예술의 욕구에 대한 이러한 물음은 그 답이 여기서 내려지기에는 너무도 구체적인 까닭에 아직 완벽하게답변될 수 없다. 그래서 지금은 다만 다음을 단언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형식적 측면에 따를 때) 예술이 발원하는 보편적, 절대적 욕구의 원천은 인간이 사유하는 의식이라는 점, 즉 인간이 자신의 본질과 존재 일반의 본질을 스스로부터 대자화한다는 점에서 발견된다.
자연물은 단지 직접적이고 일회적이지만, 정신으로서의 인간은 우선은 자연물처럼 존재하나 다음으론 이에 못지않게 대자적으로도 존재함으로써, 즉 자신을 직관하고, 자신을 표상하며, 사유하고 오직 이러한 능동적 대자존재를 통해서만 정신으로 존재함으로써 스스로를 이중화한다. 인간은 자신에 대한 이러한 의식을두 가지 방식으로 획득한다.
첫째는 이론적인 것이니, 인간이 내면에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의식해야만 하는 한에서, 즉 인간이 그의 가슴속에서 동요하며 그 속에서 헤집듯 몰아대는 것을 요컨대 자신을 직관하고 표상해야 하고, 사상이 본질인 것으로 발견한 것을 스스로 확신해야 하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불러낸 것과 외부로부터 수용한 것에서 오로지 자기 자신을 인식해야 하는 한에서, 그러하다.
두 번째로 인간은 실천적 활동을 통해자적이 되는데, 그 까닭은 그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진 것, 그에 대해 외적으로로 현전하는 것에 자신을 표출하며, 또한 거기서도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을 인식하려는 충동을 갖기 때문이다.
인간은 외물들에 그의 내면의 인장을 찍어 변형을 가하고, 그런 뒤에 그 사물들에서 자신의 고유한 규정들을 재발견함으로써 이 목적을 완수한다. 인간이 이를 행함은 자유로운 주체로서 외부세계에서도 그 서먹한 낯섦을 제거하기 위함이며, 사물들의 형태에서 오로지 자신의 외적 실재만을 향유하기 위함이다. 이미 어린아이가 갖는 최초의 충동이 외물들의 이러한 실천적 변형을 내포하고 있다; 소년은물결 속에 돌을 던지고, 물에서 퍼져 가는 동그라미를 이제 자신의 모습이드러나는 작품인 양 경탄한다. 이러한 욕구는 극히 다양한 형태의 현상들을 거쳐, 예술작품에서 보이듯 외물들 속에서의 자기산출이라는 방식으로까지 나아간다.
그러니까 예술을 향한 보편적 욕구는 인간이 내적, 외적 세계를 정신적의식으로, 즉 자신의 고유한 자아를 재인식하는 대상으로 제고해야 한다는이성적 욕구이다.
인간은 한편으로는 존재하는 것을 내적으로 대자화되 그에 못지않게 이 대자존재를 외적으로도 현실화하며, 그리하여 이러한 이중화 속에서 자신 안의 본질을 자신과 타자에 대해 가시화하고 인식시킴으로써 이러한 정신적 자유의 욕구를 충족한다.
이것이 인간의 자유로운 합리성으로서, 일체의 행위와 앎이 그렇듯 예술도 역시 이 속에서 그 근거와 필연적 원천을 갖는다. 하지만 기타의 정치적·도덕적 행위, 종교적 표상, 학문적 인식과 구분되는 예술의 특수한 욕구는 추후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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